106. 반가운 사이

<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by 이소정

“아는 사람 누구? 자기 말고 휴직한 선생님이 또 있어?”

“몇 명 있지만 그들은 아니야."

"그럼 누구지?"

"현준이를 본 거 같아.”

“의사가 왜? 일요일 저녁에 태국 가는 비행기를 왜 타? 이제 그 병원에서 진료 안 보나?”

“글쎄······. 내가 잘 못 본 걸 수도 있겠지. 오, 줄이 생각보다 빨리 준다. 우리도 금방 타겠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종종걸음을 멈추지 않았던 은설과 준수도 이내 방콕을 향해 날아갈 예정인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일찌감치 탑승을 완료한 현준은 비행기가 이륙을 준비하길 기다리는 동안 형석과 통화를 했다.


[그러니까 네가 왜 내 학회 일정에 맞춰 효도여행을 오냐고.]

[야, 같이 놀면 좋지 뭘 그래.]

[학회라니까.]

[무슨 학회를 일주일씩 해. 너 이 자식, 휴가 끼워서 겸사겸사 태국 가는 거 형님이 모를 줄 알아?]

[그러니까 혼자 조용히 휴가 보내겠다는 데 왜······.]

[나 좀 구해줘. 효자 노릇 좀 해보겠다고 엄마랑 이모 모시고 태국행 비행기표를 끊어놓긴 했는데 그녀들의 수다를 견딜 자신이 없다.]

[효도 관광이라며. 네가 모시고 다니면서 가이드도 해드려야지. 어딜 빠져나와서 나한테 오려고 그래.]

[관광은 투어가이드가 시켜줄 거야. 그리 조치를 다 해놨으니 그건 네가 걱정 안 해줘도 된다. 암튼 태국 도착하면 연락할 테니 그리 알아라. 응?]


형석의 목소리 너머로 형석을 찾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섞여 들렸다.

형석이 황급히 전화를 끊었고, 현준은 덩그마니 남겨진 사람처럼 황망한 표정으로 휴대전화를 내려다보았다.

예상을 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몇 달 전 학회 강연자로 초청을 받은 사실을 이야기 끝에 흘린 이후로 형석은 몇 번이나 현준에게 일정이 변함없는 지를 물었었다.

어머님과 이모님이 따라나서지 않으셨더라도 형석은 기어이 현준에 일정에 발을 얹었을 것이었다.

이륙을 기다리며 현준은 형석과 태국에서 무엇을 하는 것이 좋을지를 잠시 생각했다.

귀찮음과 기대가 반반 섞인 채로, 현준은 밤에나 겨우 시간을 내어 호텔 밖으로 나올 수 있을 형석의 사정을 헤아렸다.




“와우, 태국이 동남아 선진국이라더니만 그 말이 진짜 참말이었네.”

은설은 놀이공원에 처음 온 아이처럼 고개를 높이 쳐들고 천천히 360도 회전을 하며 공항의 전경을 구경했다.

수완나품 공항은 은설의 예상보다 훨씬 크고 세련된 모습이었다.

“인천공항이 제일 좋은 줄 알았더니, 여기도 만만찮구나.”

새벽까지 운영되고 있는 이동통신사 부스에서 유심칩을 사가지고 온 준수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은설이 서 있는 곳으로 뛰어왔다.

“은설 씨, 이제 수지 씨한테 전화 걸어요.”

“오오, 역시 해외여행 많이 해 본 사람은 다르다니까!”

은설이 준수가 퍽이나 자랑스러워하는 부분을 살살 건드려가며 칭찬을 퍼부었다.

“걸지 마. 니 친구 여깄다.”

“엄마야!”

어깨를 툭툭 치는 수지의 손에 깜짝 놀란 은설이 휴대전화를 떨구려는 것을 준수가 몸을 날려 기어이 받아내었다.

“헉, 미안. 이렇게 놀랄 줄은 몰랐네.”

“야아!”

은설이 웃는 얼굴로 놀라움보다는 반가움이 훨씬 더 많이 섞인 탄성을 지르며 수지를 껴안았다.

“우리 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알았어?”

“척하면 탁이지. 준수 씨가 유심칩부터 살 거라 생각했어.”

“이그, 똑똑한 기즈배.”

은설이 수지의 볼살을 두 손으로 마구 비벼대며 칭찬을 했다.

"어?"

예상치 못한 감촉이었다.

은설의 손바닥으로 수지의 얄팍한 얼굴 피부와 단단한 광대뼈가 적나라하게 만져졌다.

한동안 채팅창과 전화 목소리만으로 안부를 물었던 수지는 마지막 영상통화를 했을 때보다 훨씬 더 마른 모습이었다.

“살 뺐어? 아님 영상통화 화면이 좀 쪄 보이게 나오는 건가? 살면서 본 네 모습 중에 젤 마른 것 같은데?”

은설이 잡고 있는 수지의 얼굴을 요리조리 돌려 살피며 물었다.

꽉 잡힌 얼굴을 힘겹게 움직여 말을 하면서도 그것이 싫지 않은 듯 수지는 은설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쵸큼 빠혀혀. 가쟈, 택히 대히힠혀놔혀.”




공항 출입구를 열자마자 아열대기후의 뜨거운 공기가 훅하며 치고 들어왔다.

4월이었고, 물의 축제가 열릴 만큼 태국은 연중 가장 뜨거운 시기가 지나는 중이었다.

“오자마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지는 열기네.”

은설이 저도 모르게 투덜대는 말부터 꺼내었다.

“하루만 지나면 적응할 거야. 이쪽이야. 저 택시 타면 돼.”

충분히 이해가 가는 반응이라는 듯 수지가 웃으며 택시를 가리켰다.

“공항에서 집까지는 얼마나 가야 하니? 멀어?”

“30분 정도? 인천공항에서 서울까지 보다는 가까워.”

오롯이 놀고 쉬는 것에만 집중했던 은설의 ‘지난 한 달 반’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택시는 금방 통로 거리의 빌딩 숲 사이에 도착했다.

“오, 동네 깔끔하다. 수지 좋은 데서 사는구나.”

은설이 짧은 탄성을 지르며 격의 없이 부러움을 드러냈다.

“외국인이잖아, 나. 외국인들이 이태원이나 서래마을 쪽에 몰려 사는 거하고 비슷해. 여긴 통로 거리라고 굳이 비유하자면 청담동 비슷한 곳이야.”

“청담동에 비유를 하니 뭔가 더 럭셔리하게 느껴지는데?”

“연세 내고 사는 집이야. 한방에 내는 연세도 럭셔리하다. 계약기간이 좀 남아서 살고는 있는데 곧 다시 이사 갈 거야. 좀 작은 데로. 옮기기 전에 아주 딱 맞춰 잘 왔어.”

“좁은 집 답답해서 큰 데로 옮긴 거 아녔어?”

“요즘 혼자 지내.”

“아. 또 먼데 어디로 출장 가셨나 보구나.”

은설은 무뎠고, 준수는 수지의 근황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연락이 뜸했던 사이, 수지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때까지만 해도 은설은 눈곱만큼의 의문을 가지지 않았었다.




수지의 아파트에 도착하니, 새벽시간임에도 경비원이 달려 나와 수지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며 짐을 옮겨 주었다.

태국식의 친절인 모양인 듯했다.

“호텔이 아닌데 호텔 서비스를 받는 기분이네요. 어? 저거 수영장 아니에요?”

이번엔 준수가 부러움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물었다.

“동남아는 웬만한 아파트 단지엔 다 수영장이 있어요. 워낙 더우니까, 저거 없으면 견디기가 힘들거든요.”

수지가 별 것 아니라는 듯 설명을 했고, 그 설명 아래로 은설이 준수에게 나직이 소곤거렸다.

“수영복 챙겨 온 거 여기서 쓰면 되겠네요.”

“낮에 나와봤더니 애들만 잔뜩 놀고 있으면?”

“애들하고 놀아주지, 뭐.”

수지의 집은 영상통화 화면 사이로 보였던 것 그대로 깔끔히 정리가 되어 있었다.

“오, 예쁘네. 내가 꾸민다고 꾸며 놓은 우리 집보다 훨씬 예쁘다. 우리 수지 감각 있는 여자였네.”

“여기 다 빌트인이야. 난 패브릭 몇 개 하고 그릇밖에 산 거 없어.”

“그게 홈스타일링의 핵심들이지. 동남아풍 킨포크 스타일로 꾸몄네?”

은설이 자신도 제법 할 줄 안다는 듯이 알고 있는 단어들을 되는대로 풀어놓았고, 수지가 그런 은설의 모습을 귀엽게 바라보았다.

“어머, 참. 저 선물꾸러미들부터 풀어야 해.”

은설이 이럴 때가 아니라는 듯 서둘러 짐더미들 쪽으로 종종걸음을 치며 말했다.

“어머니께 연락받았지? 김치랑, 고추장이랑, 된장은 도착하자마자 냉장고에 넣으라고 신신당부하셨었어. 그리고 이거. 건어물 좀 샀는데 이것도 넣어 둬.”

은설이 잔뜩 꺼내놓는 반찬거리들에 수지가 살짝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보내셨네. 아, 이거 다 먹을 사람이 없는데.”

사온 건어물을 식탁 위에 풀러 놓으며 은설은 차라리 반찬을 만들어 올 걸 그랬다는 생각을 했다.

“그건 맥주 안주로 내가 금방 다 먹어치울 거니까, 걱정 마.”

조금 무안해하는 은설의 표정을 읽은 수지가 웃으며 은설을 안심시켰다.

“세 시 넘었네. 얼른 정리하고 자자. 내일은 느긋하게 일어나서 브런치 먹는 걸로.”

“브런치?”

“이 근처에 이쁜 맛집이 많아. 밥 먹고 준비 철저히 해서 오후에는 카오산로드 쪽으로 이동하자.”

“오오오. 말로만 듣던 카오산로드에 드디어 가보겠네요. 거기가 쏭크란 축제 메인스트리트죠?”

“네. 거기가 배낭여행객들의 메카쯤 되는 곳이라 그런지 이런저런 행사를 많이 해요.”

“무슨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하는 거야?”

“뭐긴. 물 맞을 준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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