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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첫 관문(2)

<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by 이소정

현준보다 좀 더 젊은 여자 의사가 은설을 맞았고, 검사복으로 환복을 한 은설을 평평한 검사대 위에 눕게 했다. 예상은 했지만 나팔관 조영술 시술을 받는 자세는 굴욕의자에서보다 조금 더 민망했다. 의사가 질초음파 자세와 비슷하게 은설의 다리 모양을 잡아주며 말했다.

“기구가 들어갈 때 좀 불편할 거예요.”

“네. 윽!”

은설이 대답소리를 다 내뱉기도 전에 질경이 삽입되었다. 입을 강제로 벌리는 것 같은 느낌이 아래쪽에서 강하게 느껴졌다. 은설의 짧은 비명에 의사가 걱정스러운 듯 미리 경고를 했다.

“이게 제일 안 아픈 단계예요. 조영제 들어오면 더 많이 아플 수 있어요.”

“네?”

의사의 말은 정말이었다. 질경 사이로 기구가 들어오는 느낌이 한번 더 있었고, 악 하는 통증이 한 번, 그리고 아랫배 중앙에서 왼쪽으로, 중앙에서 오른쪽으로 뻗는 뻐근한 느낌이 서너 번 더 느껴졌다.

“으으······.”

걱정했던 것만큼 극심한 통증은 아니었지만 은설은 자신도 모르게 약한 신음소리를 냈다. 참을만했고, 은설은 이만하면 자신이 통증이 별로 없는 축에 속하는 사람일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왠지 좋은 신호인 것만 같아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다.




검사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걱정하고 마음 졸이던 시간에 비해 검사 너무 빨리 끝이 나서 은설은 조금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이거 하려고 며칠을 겁먹은 채로 보낸 건가. 윽’

방심하고 있던 찰나에 묵직하고 껄끄러운 덩어리가 은설 안으로 쓰윽 밀어 넣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출혈 때문에 거즈 넣어드렸어요. 거즈 끝이 내려와 있으니 2시간 후에 탐폰 뺄 때처럼 빼시면 돼요. 조금 흐를 수 있으니 탈의실에 있는 패드 사용하시고요.”

여자 의사라 그런지 의사는 거즈 빼는 법을 탐폰에 비유했고, 은설은 두툼하게 불은 묵직한 덩어리를 애써 뽑아낼 때의 느낌을 떠올렸다.

“1~2시간 정도 조영제가 흘러서 빠져나오는 동안은 아랫배 불편하실 수 있어요. 소독제랑 조영제랑 다 빠져나오는 데에는 2~3일 정도 걸릴 거고요. 통증이나 출혈이 7일 이상 지속되면 반드시 내원해주셔야 합니다.”

친절하려고 애쓰는 티를 내며, 의사가 피곤한 목소리로 기계처럼 안내사항을 읊었다.

의사의 피곤만큼 난임인 사람도 많은 것이라는 생각에 은설은 마음이 씁쓸했다.




어기적 거리며 걸어 나오는 은설을 보자마자 어머니가 달려와 부축했다.

“부축받을 정도는 아니에요.”

“근데 왜 그러고 걸어?”

“거즈 넣어놔 가지고 불편해서. 똑바로 걸을 수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괜히 엄마 앞이라 어리광하고 싶나 봐요.”

걱정하는 어머니의 표정이 싫어 은설은 애써 웃으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두 번째 진료는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지치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질 즈음 담당 간호사가 은설의 이름을 불렀다. 어머니는 이번에도 같이 들어가 줄지를 물었다.

“일단은 혼자 들을래요. 그게 마음이 더 편해요.”

은설의 단호한 말투에 어머니가 다시 소파에 엉덩이를 붙였다. 최대한 담담한 표정을 지으려 했지만, 진료실 문 앞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세게 쿵쾅거리는 심장소리 때문에 은설은 긴장을 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다. 은설을 책상 앞에 앉혀두고도 현준은 한참 동안이나 더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꿀꺽.

은설이 침을 넘기는 소리가 진료실을 울릴 것처럼 크게 들려왔다. 그제야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은설의 표정을 살핀 현준이 입을 떼었다.

“검사 결과가 나왔어요. 일단 나팔관조영술 결과는 정상이네요. 막힌 곳 없이 다 잘 뚫려 있어요. 용종이나 기형도 발견되지 않았고요.”

“다행이네요.”

“피검사 소견도 정확하게 이상이 있다고 이야기할만한 것은 없어요. 다만 유즙분비호르몬이 미미하지만 좀 높고, 갑상선 수치도 경계선 상이라······.”

“유즙분비호르몬이요? 아기를 낳은 것도 아닌데 그런 게 높아질 수 있나요?”

“갑상선 기능이 저하되면 그럴 수 있어요. 그게 높으면 자연적인 임신에 방해를 받게 돼요. 최근에 스트레스가 좀 많았댔죠?”

“아, 네. 그랬어요.”

“스트레스 때문에 일시적으로 나타난 증상일 수 있어요. 갑상선 수치가 경계선상이라 일단은 한 달 후에 다시 혈액검사를 해 볼 거예요. 다음 달에도 여전히 수치가 안 좋거나 더 심해지면 갑상선 치료를 진행해 보는 걸로 합시다.”

“갑상선 수치가 저절로 좋아질 수도 있나요?”

“갑상선 기능에 이상이 생긴 게 아니라면 대개는 스트레스가 완화된 뒤에 수치가 정상이 되죠. 그러면 유즙분비호르몬도 정상이 될 거고. 그러니까 한 달 동안 스트레스 관리 잘해야 됩니다. 알겠죠?”

“네. 선생님, 반드시 그렇게 할게요.”

은설이 고개를 푹 숙이고 설움이 북받친 듯한 목소리로 다짐하듯 말했다.

“울어요?”

현준이 살짝 고개를 숙여 은설의 눈가를 살폈다.




의도치 않게 은설을 울렸던 예전의 기억이 떠올라 현준은 저도 모르게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럴 리가요. 분노하고 있었어요. 지난달에 받았던 스트레스들한테.”

은설이 이글거리는 눈빛을 쏘며 고개를 쳐들었다. 그제야 안심이 되었는지, 현준이 은설을 달래듯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이며 진료를 끝내는 말을 했다.

“정상이냐 아니냐만 두고 이야기하지면 정상에 가깝습니다, 이은설 씨. 너무 걱정 말고 다음 진료까지 푹 쉬다가 오세요.”

“정상에 가까운데 저는 왜 임신이 안될까요? ”

“그래서 남편과 함께 받아야 한다니까요. 이렇게 아내 쪽만 혼자 검사를 받으면 검사 결과가 정상으로 나와도 자책을 한다니까. 난임의 25%는 원인불명이에요. 누구의 탓도 아닌 난임이 있어요.”

현준이 여동생 일로 속상한 오빠처럼 다그치듯 은설을 위로했다.

“일단은 컨디션 회복을 목표로 다음 진료 때까지 잘 지내다가 오는 걸로 합시다. 생리시작하면 둘째 날 되는 때에 오세요.”

은설이 어기적거리며 진료실 문을 나섰다. 현준은 은설의 뒷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봤다.

‘아랫배가 불편한가 보네.'

진료시간이 거의 다 끝나갔지만, 그렇다고 은설을 기다리게 하여 데려다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차라리 택시라도 잡아 타고 가는 게 훨씬 더 빨리 은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길이었고, 더구나 오늘은 은설의 어머니도 있었다.




아랫배를 부여잡고 나오는 은설을 어머니가 부축했다.

“많이 아파? 어지러?”

“쪼끔”

“뭔 진료를 그렇게 오래 봐?”

“설명 좀 자세히 듣느라. 큰 이상은 없대요. 갑상선 수치가 좀 안 좋은데 스트레스 때문인 거 같다고, 푹 쉬었다가 피검사만 한번 다시 해 보재요.”

“갑상선 안 좋대?”

“아니. 혹시 그럴까 봐 확인.”

집으로 돌아와서 은설은 오래간만에 따뜻한 어머니의 손길을 느꼈다. 어머니는 은설의 아랫배와 손과 발이 따뜻해질 정도로 연신 쓰다듬어주었다. 은설은 약속한 대로 어머니에게 특초밥세트를 시켜드렸다. 세상이 끝나더라도 오늘은 일찍 들어가 봐야 한다며 야근을 뺐노라 자랑하면서 준수도 늦지 않게 들어왔다. 준수가 사들고 온 조각케이크들을 종류별로 맛보며, 은설은 간만의 공주대접이 좋아서라도 검사를 자주 받아야겠다고 농담을 했다가 어머니에게 등짝을 한 대 후려 맞았다.


그래도 웃음이 났고,

은설은 나쁘지 않게 끝난 하루에 감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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