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엄만 여기 있어요. 진료 금방 보고 나오니까.”
“같이 들어가지.”
“아녜요, 오늘 어차피 초음파로 난포크기만 확인하고 끝나.”
어머니는 내심 서운한 눈치였다.
은설의 난임문제를 책임져줄 의사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이해했지만, 어머니의 마음에 쏙 드는 의사이기에는 현준이 너무 어렸다. 좀 전에도 어머니는 대기실에 비치되어 있는 여성잡지의 성형외과 광고를 보며,
“의사 나이는 40대 후반에서 50대 사이가 딱 좋아. 그 정도는 되어야 노하우가 쌓이지. 손기술이 녹슬 나이도 아니고.”
라고 은설에게 소곤댔다. 의사를 고르는 어머니의 지론이었다.
“그 정도로 나이 많은 의사는 아니지만, 나름 잘한다고 소문난 의사래요.”
“누가 소개해줬어?”
“으응, 친구가.”
“그 친구도 거기서 했대?”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잘 한대 암튼.”
“뭐 잘하니까 니가 다니겠지. 오죽 열심히 알아봤으려고.”
은설이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어머니는 자식들의 선택을 거의 전적으로 믿고 지지했다. 참견한다고 해도 무얼 어떻게 해결해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이긴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에 어머니는 지금 주변 누구보다도 자식들과의 유대가 좋은 사람이 되었다. 어머니가 어서 가보라는 손짓을 하며 쿨하게 은설을 진료실로 들여보냈다.
“좀만 기다리세요. 5분도 안 걸릴 거야, 아마.”
“남편은요?”
진료실에 홀로 들어서는 은설에게 현준이 대뜸 남편부터 찾아 제꼈다.
“아······.”
“밖에 계시면 들어오시라 하세요.”
“오늘은 친정어머니랑 왔어요.”
“5분 더 걸리겠는데. 밖에 계신 어머니께 문자라도 넣어드려요. 의사한테 혼나느라 빨리 못 나갈 거 같다고.”
현준이 문 앞에서 은설이 한 말을 들었단 티를 냈다.
“합의가 쉽지가 않아요.”
“쉽지 않죠. 대부분의 남자들은 다 자기에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검사 같은 거 받을 필요도 없다고 우기죠. 정액검사 자체에 대한 거부감도 있고. 비뇨기과도 아닌 산부인과에서 그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걸 남사스러워하기도 하고.”
“인위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아기를 꼭 낳아야만 하는지에 대한 답을 못 내렸대요. 이건 신념문제라······. 제가 설득을 할 게 아니라 남편의 결정을 기다려야 해요.”
은설의 말이 맞았다.
마지못해 병원에 끌려온 남자들은 검사와 시술에 비협조적인 경우가 많았다.
“알겠어요. 일단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이은설 씨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진행해 보는 걸로 하죠.”
“고맙습니다, 선생님.”
차분하고 담담한 목소리였다. 현준은 20년 전의 현명했던 은설과 다시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
꼭 한번 다시 보고 싶었던 모습이었다. 한번 마주친 적도 없는 사람이었지만, 마치 싸움을 걸었다가 크게 진 것처럼 현준은 은설의 남편에게 알 수 없는 패배감을 느꼈다.
“초음파 준비 해주세요.”
현준은 마주 앉은 은설에게서 시선을 떼는 것으로 복잡해지려는 마음을 수습했다.
세 번 째라 그런지 초음파 검사는 한결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안쪽 진료실에서 나온 은설에게 현준이 초음파사진 몇 장을 이어서 보여주었다.
“이쪽이 왼쪽 난소, 이쪽이 오른쪽 난소. 조금 커다랗게 난포가 왼쪽에 2개, 오른쪽에 3개 있네요. 크기로 봤을 때 이번 달 배란은 왼쪽에서 나올 확률이 크네요. 오른쪽은 도태될 거고.”
“아깝네요.”
“아까워 말아요. 다 나름의 역할이 있어요. 얘네들이 나중에 황체가 되어서 호르몬을 분비해 줄 거예요. 자 왼쪽에 제일 큰 난포 14mm 정도 되죠? 아직 배란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고, 그건 오늘 나팔관조영술을 안전하게 할 수 있단 뜻이에요.”
초음파 사진을 하나하나 뜯어 살피며 꼼꼼히 설명을 덧붙여주는 현준이 은설은 왠지 고맙게 느껴졌다. 보통 같으면 ‘이상 없네요.’ 한마디로 끝났을 진료였다.
“네. 선생님 엄청 자세히 설명해 주시네요. 좋은 의사 선생님이세요.”
설명에 열중한 현준을 빤히 바라보다가 은설이 미소를 지으며 칭찬 한마디를 건넸고, 느닷없는 은설의 칭찬에 현준의 귀가 빨개졌다.
은설은 빨갛게 달아오른 현준의 귓가와 부끄러운 듯 당황한 기색이 서린 눈매에서 14살 현준의 흔적을 찾았다. 반갑고 귀여웠다.
‘잘난 모습’에 설레기는 했어도 영 다른 사람 같기만 했던 몇 번의 만남이 한순간에 ‘내 짝꿍 현준이’로 정리되는 듯했다.
“크흠. 감사합니다. 나팔관 조영술은 담당의가 하는 것이 아니니 잘 받고 오세요. 결과는 바로 알 수 있으니 이따 한번 더 진료실로 오시면 됩니다.”
현준이 괜스레 헛기침을 하며 말문을 돌렸다.
“네. 그럼 이따 봬요.”
은설을 다시 진료실 밖으로 안내하며 담당 간호사가 호들갑스럽게 말을 건넸다.
“오늘 우리 선생님이 기분이 엄청 좋으신가 봐요. 원래 이렇게 자세히 설명 안 해주시는데. 이은설 씨만 오면 더 그러신 거 같기도 하고.”
“아, 그러세요? 제가 운이 좋나 봐요. 앞으로도 맨날 의사 선생님 기분 좋을 때에 맞춰 왔음 좋겠네요. 이렇게 속 시원하게 설명 들은 게 얼마만인지.”
진료실을 나온 은설을 보자마자 어머니가 벌떡 일어났다.
“뭐래?”
“괜찮대지 뭐.”
조금 기다리니 간호사가 주사실로 은설을 호출했다. 간단한 조영제 부작용 검사를 하고 이상이 없다는 판정과 동시에 항생제 주사를 맞았다.
“주사까지 다 맞았으니 이제 겁난다고 도망갈 수도 없어요.”
실없는 농담을 하며 은설은 어머니와 함께 영상촬영실로 향했다.
대기용 벤치에 나란히 앉아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어머니와 은설은 말없이 각자의 휴대전화만 매만졌다.
은설은 현준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원래 아는 사이라고 솔직하게 말해도 돼?]
30초도 되지 않아 현준에게서 연달아 답신이 왔다.
[아니.]
[내가 말할게.]
[간호사가 먼저 알은체 하기 전까지는 너도 얘기하지 마.]
난색을 표하는 기색이 역력한 현준의 답신에 은설은 은근히 기분이 언짢아졌다.
그리고 20년 전 현준과 사귀기로 했던 때를 자연스레 떠올렸다.
“ 애들이 놀릴 수도 있고, 선생님들이 알면 혼날 수도 있으니까 학교에선 비밀로 하자.”
그때는 은설이 이렇게 말했었다.
비밀로 하는 것이 좋겠다며.
‘아마도 비슷한 마음이겠지. 새로운 직장인데 어떤 형태로든 괜한 소문이 날 수도 있으니.’
이해를 하려 했지만 괜스레 섭섭한 마음은 가시질 않았다.
“왜 그래? 어디 불편해?”
은설의 불편한 표정을 본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듯 은설에게 물었다.
“아니요. 그냥. 막상 하려니 겁도 좀 나고. 아플까 봐 무섭기도 하고 이상 있달까 봐 두렵기도 하고.”
“이상 없겠지. 없다는 거 확인하려고 하는 거라 생각해 봐.”
“그러면 좀 나으려나?”
“없을 거야. 늬 언니도 아무 이상 없다고 그랬었어.”
“근데 왜 안 생겼대요?”
“그걸 모르니 환장할 노릇이었지.”
“나도 그럴까 봐 겁난다. 차라리 어딘가에 원인이 확실히 있는 게 마음이 편할 수도 있겠어요. 그럼 그것만 치료하면 되니까.”
“그런 소리 말어. 이상이 없는 게 그래도 좋지. 치료하느라 고생 안 해도 되잖아.”
어머니와 주거니 받거니 말을 이어가면서도 은설은 부질없는 언쟁이라 생각했다.
원인이 있든 없든 ‘아이가 뜻대로 생기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그냥 모두 환장할 노릇이었다.
띵.
언니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엄마랑 같이 갔다며? 잘했어. 오늘은 혼자 있지 마. 엄마보고 니 신랑이랑 바통터치 하라고 했어.]
이미 난임 경험이 있는 언니는 무엇보다도 은설의 마음을 걱정하고 있었다.
“엄마, 언니랑 채팅하고 있었어요?”
“응. 언니가 너한테 말 걸었어?”
“네. 검사 잘 받으라고.”
“검사 끝나고 너 어떻게 해주면 좋을지 언니한테 물어보느라 했어. 그냥 푹 쉬게 해 주면 된다네. 혹시 모르니까 혼자 두지 말고. 조영제 부작용이 늦게 오는 사람도 있대.”
“응. 그렇다데요.”
검사실 문이 열리고 간호사가 은설을 호출했다.
“잘하고 와”
“파이팅!”
자그맣게 파이팅을 외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