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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직도 '장래희망'을 찾는 중입니다.

<40대라서 사춘기(四春期)입니다>

by 이소정

스물네 살이었다.


쌀쌀하게 부는 봄바람을 정수리로 가르며

절친에게 내 진심을 고백했던 때가.


"그냥 눈을 감았다가 떴더니 내가 서른네 살이 되어 있었으면 좋겠어."


소위 말하는 '청춘'이

그만 빨리 지나가 주기를 바랐던 나의 고해를 들은 친구에게서 돌아온 대답이 의외였다.


"나도!"


사춘기 때 아이들의 '빨리 스물이 넘기를 바라는 마음'과

스물네 살의 '빨리 서른네 살이 되기를 바라는 이유'는 결이 사뭇 다르다.


"그때는... 뭐라도 좀 안정되어 있지 않을까?"


안정된 직장이 있고, 나름의 커리어를 쌓는 중인 십 년 차 직장인. 혹은 전문성을 갖춘 멋쟁이 프리랜서. 웬만한 세상 풍파에는 치맛자락 정도만 나부끼고 말 단단한 하체, 아니 뚝심.


알고 보니 제대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고, 대체 나 보고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도 잘 모르겠는.

'한 세상 살아내는 일'이 생각보다 버거웠던 스물 네 살에게 서른네 살은 그런 나이였다.


"그뿐이겠어?"


아마도 결혼을 했겠지. 애도 낳았지 않을까? 넌 몇 명? 셋? 나도 셋. 셋이 좋아. 어릴 땐 진짜 짜증 났는데 다 크고 나니 셋이 좋아, 그치? 집도 샀을 거야. 청담동은 너무 비싸더라. 건대입구 쪽에 삼십 평 대 아파트. 다리만 건너면 청담이니까 거기 정도만 돼도 살기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너무 큰 건 별로. 대출받기 싫어. 대신 차는 식구 수 대로 끌고 다니는 걸로. 나는 아우디, 남편은 벤츠. 야, 남자들은 포르셰 타고 싶어 해. 그럼 포르셰. 맞벌이해야지. 돈이 문제가 아니라 나도 내 커리어가 있는데. 그땐 우리한테도 그게 진짜 있겠지? 그리고 잘 나가니까 옷도 백화점에서만 사고. 시즌권 사서 겨울엔 주말마다 스키장도 가고, 응? 맨날 베니건스에서 밥 먹고, 하하.


돈이 무지하게 많이 드는 것과 생각보다 별 것 아닌 것,

'열라 노력'을 하면 가능할 수도 있는 것과

태생부터 부자가 아니라면 서른 네 살에는 불가능한 것들에 대한 분별도 없이

마냥 신나게 쏟아내었던 우리의 미래가

서른네 살쯤이면 다 이루어져 있을 것만 같았다.


.....


그런 서른네 살이 훌쩍 지나가고도 십 년이 더 흘렀다.


나는 여전히 '장래희망'을 찾는 중이다.


서른넷을 훌쩍 넘겨 낳은 두 아이와

나와 도긴개긴 하여 그저 애처로운 나의 남편을 위해

적어도 일흔다섯 살 까지는 할 수 있을 만한 삼십 년짜리 '장래희망'을 찾는다.


"그런 일이 있긴 있을까? 스물넷에 찾은 일도 이십 년을 못 해 먹었는데."


이제는 지극히 현실적인 안목을 갖추게 된 나의 친구가 여전히 낭만적인 나의 '장래희망'을 지적한다.


"이 놈의 장래희망은 대체 언제까지 찾아야 하는 거야?"

"그냥 십 년 주기, 오 년 주기로 계속 갱신하면서 산다고 생각해. 운전면허 갱신하듯이."

"육십 살에도? 칠십 살에도?"

"응! 머리 굴러가는 만큼. 젖 먹던 힘 짜내지는 만큼!"


너는 유튜브를 안 보는 게 정말 맞구나. 하루에 한 시간만 투자하고 한 달에 천만 원씩 버는 사람이 유튜브 세상엔 수천수만 명이나 있다고. 그러냐. 그럼 우리도 그거 해서 떼 돈 모으자. 그래서 말년엔 일주일에 네 시간만 일하면서 크루즈 여행도 다니고 그러자. 야, 떼 돈을 벌었으면 말년엔 일을 안 해야지. 왜 네 시간이나 일을 하려고 들어. 깔깔.


허황된 농담 끝, 터져 나온 웃음에 이십 년 전처럼 한껏 부푼 진심은 없다.

그저 오래간만에 듣는 친구의 웃음소리를 서로에게 보내는 가벼운 위로라 여기며,

매일 한 자 씩, 낚시추처럼 무겁게 가라앉는 마음을 건져 그것으로 닦는다.


그러면 그날 저녁은 좀,

낫다.


여전히 '장래희망'을 찾아 헤매고 있는 사십 대의 사춘기에도

함께 길 잃어 줄 친구가 필요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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