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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같이 좀 가줄 수 있어요?

<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by 이소정

은설은 여전히 업무에 집중하지 못했다.

무언가에 홀린 듯한 눈을 하고 은설은 일 하는 중간중간 검색포털을 열어 ‘나팔관조영술’을 입력했다. 은설은 자신의 행동이 마치 영어 단어 하나를 외울 때마다 과자를 한 입씩 먹는 아이와 같다고 생각했지만 웹서핑을 도무지 멈출 수가 없었다. 인터넷에는 은설과 같은 길을 먼저 걸었던 수많은 여자들의 생생한 ‘나팔관조영술’ 후기가 차고 넘치도록 많았다. 훑어 읽은 글들을 종합하여 내린 결론은 세 가지였다.



1. 통증의 유무는 사람마다 다르다.

2. 내가 아픈 경우 일지, 견딜만한 경우인지는 해 봐야 안다.

3. 아프지 않더라도, 혼자 검사받고 나오면 서럽다.



조영제 부작용으로 시술 이후 쓰러지기도 한다는 얘기를 읽고 은설은 바로 휴대전화를 들었다.

“엄마? 나 오늘 집에 가서 저녁 먹어도 돼요?”



“니가 사는 그 지입~. 그 집이 내 집이었어야 해. 니가 타는 그 차아~. 그 차가 내 차였어야 해. 니가 차린 음시익~. 니가 낳은 그 아이까지도. 모두가 내 것이었어야 해. 모두가······.”

“무슨 노래 가사 다 그따구냐.”

“그치? 나도 첨에 듣고 참 찌질하다 생각했어요.”

“근데 왜 불러?”

“몰라요. 그냥 입에서 안 떨어지네 이게.”

은설은 이와 비슷한 대화를 수지와의 통화에서도 했었던 것을 기억했다. 폭풍처럼 지나간 주말 동안의 일을 어디에다 가라도 이야기하며 응어리를 풀고 싶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수지가 마침 전화를 했다.

“써얼~ 제사 잘 지내고 왔어? 새 동서는 어떻디?”

“새 동서는 임신을 아주 잘하는 사람이었어.”

“뭐? 헐. 허니문베이비 생겼대?”

“허니문 다음 달 베이비.”

“우리 썰, 우짜냐.”

“소처럼 일만 열심히 하다 왔지, 뭐.”

수지는 ‘응, 그래, 아이고’만 말했다.

짧은 위로마저도 은설이 하고 싶은 만큼 이야기를 다 쏟아낸 후에야 조금 풀어놓을 뿐이었다. 온전히 속내를 다 털어놓은 은설은 그제야 목소리에 여유를 되찾았다. 짧게 이야기가 끊긴 사이, 은설은 저도 모르게 ‘니가 사는 그 집’을 흥얼거렸다.

“니가 낳은 그 아이까지도. 모두가 내 것이었어야 해. 모두가······. 에휴, 이 노래 가사를 내가 진심으로 이해하게 될 줄을 몰랐다.”

“첫사랑이 알고 보니 애기가 있대?”

“아니. 야 뭐야, 걔 얘기는 왜 꺼내. 그게 아니라, 동서가 애기 생겼다고 친척들한테 칭찬 듣고 이쁨 받는데 왠지 원래 내 거였어야 하는 걸 뺏긴 기분이 들었어. 살면서 이렇게까지 질투심 느껴본 건 처음이었다.”

“아, 그 기분 나도 알지.”

“너도?”

“영지 임신했어.”

“영지가? 어머. 애기가 시집을 간다고 놀라워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걔도 삼 년 만에 가진 거야.”

“맞다. 나보다 먼저 결혼했지, 참. 동생이 먼저 애기 생겨서 우리 수지 속상했어?”

“아니라면 거짓말이고. 그렇다고 질투까진 아녔고. 조카 생긴 다니 기분 좋기도 했고.”

“난 조카 생겨서 좋진 않았어. 못돼 쳐 먹었나 봐, 나.”

“야, 정상이야. 시조카면 너랑 닮을 가능성은 없는 애기잖아. 핏줄이 땡겨서 기쁠 사이는 아니니 자책 좀 하지 마.”

“자책이 습관이 됐다. 아.. 할머니, 할아버지 첫 정의 영광은 영영 물 건너가버렸다.”

“별 의미 없어, 그거. 첫정이든 두 번째 정이든 가까이 있는 손주가 젤 이쁜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친할아버지, 할머니 사랑은 그냥 그 애기 꺼니, 질투하지 마라. 원래부터 니 애기의 것이 아니다.”

“그런가······.”

“가까이 있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사랑이나 듬뿍 받게 해 줘.”

“아직 생기지도 않은 애기 걱정을 하고 있네, 우리가.”

“그러게.”

수지도 은설도 '죽은 아이 나이세기' 만큼이나 의미 없는 걱정을 하고 있는 자신들의 처지를 씁쓸해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 허탈함이 아무래도 ‘내가 사는 그 집’의 후렴구를 반복하는 것으로 풀어져 나오는 듯했다.



어머니가 애청하는 드라마가 끝이 나고 뉴스 브리핑이 TV화면을 채웠을 때, 은설이 대뜸 엄마에게 병원 이야길 꺼냈다.

“엄마, 다음 주 수요일에 나랑 병원 좀 같이 가줄 수 있어요?”

“병원?”

“응. 나팔관조영술 하러. 나 요새 난임센터 다녀요. 혼자 가서 해도 되긴 하는데, 보호자 있는 게 낫대서. 준수 씨는 요새 좀 바빠서 시간 내기 어렵거든요.”

“그래. 같이 가야지 그런 건.”

“별일 없죠? 그날.”

“있어도 취소해야지. 동네 계모임이 뭐라고. 나 없어도 잘만 놀아.”

“땡큐요, 엄마.”

“별개 다 땡큐다.”

은설은 내친김에 그간 엄마에게 궁금했던 것들을 더 물었다.

“엄마. 나 궁금한 거 있어요”

“뭔데?”



“언니 애기 안 생겨서 고민할 때, 그때는 엄마가 한의원도 데리고 가고 좋다는 병원도 소개받아서 언니 데리고 가고 그랬잖아요. 근데 왜 나 애기 안 생기는 거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

어머니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은설은 살짝 고개를 빼어, 자신보다 조금 더 TV 가까이에 앉아있는 어머니의 안색을 살폈다. 은설의 질문에 당황하신 것 같지는 않았고, 무언가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CF가 대여섯 개쯤 지나갔을 때, 어머니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늬 언니 때, 그때는 늬언니가 애를 못 낳으면 그게 남의 집 대를 끊어 놓는 일인 것 같아서 엄마가 그렇게 종종걸음을 쳤었어. 근데 나중에 첫째 낳고 나서 늬 언니가 그러더라고. 내가 그렇게 나서서 설쳤던 게 상처가 됐다고. 불효자식 된 기분이었대. 엄마는 그 말이 더 가슴이 아팠어. 애기 낳는 거. 그게 뭐라고 내가 내 자식 가슴에 상처를 내가며 그 유난을 떨었나. 그래서 너한테는 일부러 좀 마음 안 쓰는 척했어.”

예측해보지 못한 대답이었다.

'쿵'

심장 한편을 누군가 툭 하고 때린 것처럼 은설은 가슴이 울려오는 것을 느꼈다.

"어렵네. 해주면 부담스럽다고 난리. 안 해주면 섭섭하다고 난리. 엄마 딸들은 왜 이모양으로 다 애기 하나 턱턱 못 만들어서 우리 엄마 애간장을 녹인대요? 근심 걱정 덩어리들 같으니라고.”



“내가 너네 임신했을 때 뭘 잘못 먹은 게 있나. 그 생각만 나드라.”

어머니는 어머니 나름의 고통을 감내하느라 애를 쓰고 있는 중이었다. 은설은 ‘불효자식이 된 기분이었다’는 언니의 말을 백 퍼센트 이상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식은 평생 짊어질 근심과 걱정’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는지 내내 TV만 응시하며 말을 잇던 어머니가 몸을 돌려 은설의 허벅지를 투덕이며 말했다.

“근심 걱정은 늘지만 그거랑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기쁨도 있지. 어디 가서 이런 보물들은 내가 구해다가 가져보겠어. 엄마 금뎅이들이야, 너네가.”

말을 하는 내내 어머니는 함박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삼십이 넘도록 속이나 썩이고 있는데, 뭘.”

“그래도, 야. 늙은 애미 애비라고 찾아와서 맛있는 것도 사주고, 같이 텔레비전도 봐주고, 때 되면 놀러도 데려가 줘. 명절에 용돈 줘. 이만한 보물이 어딨니.”

“치. 잘 하란 소리네. 알았어요. 수요일에 병원 갔다가 우리 집에서 맛난 거 시켜 먹어요. 우리 동네에 진짜 맛있는 초밥집 있는데, 요새 배달도 된대요. 우리 엄마 내가 특초밥세트로 시켜드려야지!”

은설의 너스레에 그제야 마음이 놓인 듯, 어머니가 다시 TV에 집중했다. 머리카락이 성성한 어머니의 정수리가 은설의 눈에 들어왔다. 은설은 지금 은설의 나이쯤이었을 무렵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머니 등어리에 매달려 비비고 꼬아대던 굵고 탐스러웠던 어머니 머리칼의 촉감이 은설의 손끝에 생생히 살아났다. 파마도 염색도 멈춘 이후 자란 은설의 머리카락이 만지면 꼭 이런 느낌이었다. 은설은 어머니의 머리칼이었어야 했던 것을 뺏어와 제 머리에 붙여놓은 것만 같아 마음이 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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