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현실복귀

<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by 이소정

태국에서 돌아온 후 준수는 여독을 풀 새도 없이 바삐 돌아가는 프로젝트에 중간 투입이 되었다.

은설은 작년부터 벼르었던 빵 만들기에 도전하며 혼자 보내는 시간들을 채웠다.

좀처럼 소식을 전하지 않는 은설과 준수에게 친정어머니와 아버지는 굳이 안부를 묻지 않았다.

자식들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알아야 하는 스타일인 시어머니만이 난임휴직 중인 은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무척이나 궁금해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조차 은설에게 난임치료의 진행 정도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 것을 예의로 알며 철저히 지켰다.

시어머니가 더 이상의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은설에게 병원에 잘 다니고 있는 지를 물은 것은 준수와 은설이 태국 여행을 다녀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후였다.

"아이, 급하게 간 여행이라모. 내도 그그 으찌 가는 긴지 다 안대이."

"선물을 사 왔는데 막상 부산으로 부치려니 말씀 안 드리고 여행 떠났던 게 너무 마음에 걸려서요."

"에이, 신경 안 써도 된다. 가서 마 재미나게 놀다 왔으믄 됐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어머니."

"내는 마 느그 잘 지내고 있는지, 잘 쉬고 또 병원은 잘 다니고 있는지 그그만 궁금했지. 그래 느그 병원은 잘 다니고 있나?"

"네? 아, 네에. 아직 쉬고 있는 중이에요."

"아 그래? 휴직 1년이라 안 캤나? 시간 모자라고 그르지는 않은 기가?"

"이제 슬슬 다시 가보려고요."

"그래, 마 느그가 알아서 잘하긋지. 멀리 있어가 신경도 몬 써주고 내가 미안타."

"아니에요, 어머님. 마음 써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은설이 교과서 같은 답을 했고, 시어머니는 은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본인이 정말로 하고 싶던 이야기의 본론을 꺼내었다.

"여그 부산에 시험관 성공률이 80프로가 넘는 병원이 있다드라. 엄마 친구 딸이 거서 시험관 성공했다 카데. 휴직해 가 시간이 좀 괜찬으모 여 와서 함 해볼래?"

"네에?"

시어머니는 꽤나 구체적으로 나름의 계획을 세웠던 듯했다.

은설은 성공률이 80퍼센트라는 것은 아마도 와전된 소문일 것이며, 준수가 바빠 부산에서 시술을 받는 것은 어렵다는 말로 시어머니의 제안을 완곡히 거절했다.

본의 아니게 주치의인 현준의 이력을 자세히 읊기도 했다.

"시험관 성공률이 국내에서 제일 높은 선생님이래요. 인공수정은 할 만큼 했고, 이제 시험관시술을 할 차례니까 이 선생님 믿고 한번 진행해 보려고요."

"그래 마 느그가 나보다 더 잘 알아보고 결정했긋지. 엄마가 걱정이 되어가 함 말해 본기다. 마음 쓰지 마라."

"네, 어머니.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해요. 어머, 준수씨 들어오나 봐요. 잠깐 통화하시겠어요?"

"아이다. 별로 할 말 읎따."

괜한 소리 하지 말라며 타박할 것이 뻔한 것을 아는 시어머니가 준수와의 통화를 피했다.

때마침 들어온 준수 덕에 평소보다 세 배는 더 길어졌던 통화가 마무리되었다.

은설은 통화종료 버튼이 확실하게 실행된 것을 한 번 더 확인하며 길게 숨을 내뱉었다.




“우이쒸.”

“왜 그래?”

등을 돌린 채로 식탁의자 위에 웅크리고 앉아서 씩씩 거리고 있는 은설을 향해 준수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아악! 진짜!!”

“왜? 왜?”

음소거 버튼을 누르고 은설을 주시하던 준수가 결국 리모컨을 집어던지고 은설에게로 뛰어왔다.

“무슨 일인데 그래?”

“계란이!”

“뭐?”

“삶은 계란 껍데기에 자꾸 흰자가 붙어서 까지잖아. 여태까지 깐 거 전부 다. 이건 흰자가 아예 한 꺼풀이 벗겨져 나가서 계란이 메추리알만 해졌어.”

“난 또 뭐라고.”

“아우, 스트레스받아. 준수 씨 계란장조림 해주려다가 혈압으로 쓰러지겠어요.”

“뭘 이런 걸 가지고 혈압으로 쓰러지고 그래요.”

“나 머리 아프려고 그래.”

은설은 결국 손을 털고 일어났다.




싱크대에서 대충 달꺌껍질의 파편들을 씻어내고 은설이 잔뜩 오른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표현하며 소파로 걸어갔다.

널브러지듯 소파 위로 몸을 누인 은설을 보며 준수가 걱정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어째 휴직하고 나서 사람이 더 예민해진 거 같지?”

“몰라요. 내가 느끼기에도 좀 그래. 저 계란껍데기가 뭐라고······. 근데 요샌 정말 작은 스트레스도 잘 못 견디겠어.”

“신경 쓸 게 그거밖에 없어서 그런가?”

준수의 한마디에 은설의 머릿속이 물을 한 바가지 끼얹은 것처럼 맑아졌다.

“듣고 보니 그렇네.”

시어머니와의 긴 통화 이후로도 은설은 병원에 가지 않았다.

‘아직은 더 쉬어야 할 때’라는 생각이 은설을 지배하고 있었고, ‘쉼’에 대한 욕구가 은설에게 시어머니의 관심마저도 무시할 용기를 주었다.

그렇게 한 달 반을 더 보내고 나서, 은설은 작은 일에도 부쩍 예민해진 자신의 상태를 맞닥뜨리게 된 것이었다.

“스트레스를 너무 안 받아서 오히려 작은 스트레스에도 예민해진 거 같아. 준수 씨가 보기에도 내가 좀 그러지?"

"정확한 분석이야."

"학교 나갈 때는 계란껍데기에 흰자가 붙어 나오면 까면서 대충 긁어먹고 버렸는데 말이야. 저게 뭐라고 내가 지금 이렇게······.”

‘스트레스 청정구역’에 가까운 현재 자신의 상태를 분석하던 은설은 급작스레 뱃속 깊은 곳부터 끓어올라오고 있는 분노에 당황했다.




은설보다 더 당혹스러워진 것은 은설이 온몸으로 덮어버린 리모컨을 찾아 소파와 은설 사이를 뒤적이던 준수였다.

“왜에? 일어나기 귀찮을까 봐 그냥 틈새로 손 넣어서 뒤적인 건데. 싫었어?”

말을 하다 말고 얼굴이 벌겋게 되어선 혼자 씩씩거리고 있는 은설을 내려다보며 준수가 기가 빠진 듯 힘없고 부들부들한 목소리도 은설에게 재차 물었다.

“그간 내가 얼마나 극악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살았는지를 깨달아서 그래요.”

“아······.”

“쉬니까 알겠어.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스트레스 속에 살았는지."

"그랬지."

"매일같이 지속되니까 내 상태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태인지 그냥 정상적인 상태인지도 잘 구별이 안 되었던 거야. 바보같이 그냥 누른 채로 근 십 년을 살았던 거였어."

"······."

"그랬으니까 애가 안 생긴 거다 싶은 생각이 드니까 순간 주체할 수 없이 화가 치밀어 올랐어. 나 스스로 한테. 내가 너무 멍청해서······.”

준수는 잠자코 은설의 말을 들어만 주었다.

“그 따위로 일을 몰아준 학교에도 화가 나고, 매일같이 돌아가면서 사고 쳤던 애들도 밉고, 은근슬쩍 나한테 업무 미뤘던 나부랭이들도 짜증 나고."

"이해해요. 나도 요즘 맨날 짜증 나. 이번에 경력직으로 들어온 디자이너 쉑히 때문에······."

준수가 본인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려다가 이내 말소리를 줄였다.

지금은 은설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할 때였다.

"이럴 거면 애는 왜 싸질러 낳아서 애한테 상처만 주고 여러 사람 고생시키나 싶었던 학부모들도 다 죽여버리고 싶고······. 그러네, 지금.”

“죽이고 싶은 거만 참고, 나머진 나랑 같이 욕하면서 풀어. 고생 많았었네, 우리 마누라. 그동안 몰라줘서 미안해요.”

미안하단 준수의 한 마디에 은설은 화의 꼭짓점이 스르륵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화의 기세가 한풀 꺾이니, 그제야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준수가 눈에 들어왔다.

은설이 자신의 골반과 소파 사이에 끼어 있던 리모컨을 찾아 준수에게 쥐어주며 물었다.

“준수 씨는? 준수 씨도 스트레스 많잖아요.”

리모컨을 받아 든 준수가 은설의 다리를 들어 자리를 만들고는 소파 깊숙이 엉덩이를 밀어 넣으며 말했다.

“나는 그냥 술 마시잖아.”

“아, 괜히 물어봤네. 스트레스받으려고 그래.”

은설이 준수의 허벅지 위로 들려 있던 다리를 툭툭 떨어뜨리며 심통을 부렸다.

“이 사람아, 술 조금 마시고 스트레스 덜 받는 게 더 낫지. 올챙이한텐 스트레스가 쥐약이라며.”

“몰라. 그만 얘기해요. 스트레스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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