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쉴 만큼 쉬었다는 느낌

<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by 이소정

날은 여름을 향해 가고 있었다.

낮이면 훅훅한 더위가 길 위를 가득 채웠고, 건물 안에선 에어컨들이 열일을 하기 시작했다.

은설은 감기에 걸리지 않으려 얇은 면 카디건 하나를 챙겨 가방에 넣고 다녔다.

여기저기 메모해 놓은 스케줄을 정리할 겸 스멀스멀 집안의 공기를 데우는 더위도 피할 겸 집 앞 카페에 가기로 한 은설이 볼펜 한 자루와 다이어리를 챙겨 작은 가방에 넣었다.

그러다가 무언가가 생각이 났는지 신발 신는 것을 멈추고는 도로 집안으로 들어와 책 한 권을 더 손에 들고선 다시 현관을 나섰다.

평일 오전 시간인데도 카페 안엔 사람들로 꽤 차 있었다.

‘한가한 사람들 많나 보네.’

하고 생각을 하다가, 자신이 바로 그 한가한 사람 중 하나라는 생각에 은설은 피식 웃음이 났다.

6월에 접어들면서 하루 걸러 하나씩은 있던 은설의 스케줄이 한가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육아휴직 중이거나 전업주부가 된 친구들의 집마다 방문해 간만의 회포를 푸는 일도, 골드미스의 길을 걷고 있는 친구들과의 늦은 저녁 약속도 할 만큼은 다 한 터였다.

몇몇 가지 가족 행사 외엔 더 정리할 것이 없는 다이어리를 한쪽으로 밀어 두고, 은설이 가지고 나온 책을 펼쳤다.

피로를 종용하는 사회에 대해 분석한 책이었다.

“읽기 싫네.”

남이 써 놓은 글을 읽고 이해하는 것이 꽤나 피로한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은설은 문득 ‘이제 쉴 만큼 쉬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설이 난임 휴직을 택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쉼’이 필요하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작은 스트레스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만큼이라면 이제 ‘충분히’이라는 단어를 자신의 ‘쉼’ 앞에 붙여도 될 것만 같았다.

꼬박 석 달을 간단한 집안일과 노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보낸 후였다.

“이제 다시 현준이한테 가봐야겠어.”




“어머, 오랜만에 오셨네요.”

한눈에 은설을 알아본 정간호사가 반갑게 은설을 맞아주었다.

“네에. 좀 쉬면서 컨디션 회복했어요. 이제 다시 해볼 만한 거 같아서 왔어요. 간호사 선생님도 잘 지내셨죠?”

은설도 반가움을 머금은 눈으로 정간호사에게 인사했다.

진료대기실 소파에 느긋하게 앉아서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은설은 그간 잊고 지내려 애썼던 병원의 풍경을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출근 도장을 찍듯 한 달이면 몇 번씩 정기적으로 드나들었던 병원은 석 달의 시간이 무색하도록 익숙했다.

이제껏 했던 모든 시술이 한 번도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던 씁쓸한 기억과 새롭게 시험관 시술에 도전하며 갖는 기대감이 교차되면서 은설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은설 님.”

정간호사의 호명을 듣고 벌떡 일어난 은설이 반가운 웃음을 한가득 담은 채로 진료실 문을 들어섰다.

하얀 가운을 입고 진료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현준은 근 5달 만에 보는 것이었다.

은설보다 더 반가운 웃음을 머금고 현준이 아주 밝게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세요.”

“오랜만이에요, 선생님.”

어색한 존댓말을 주고받으며 둘이 동시에 피식하는 웃음을 터뜨렸다.

“쉬고 싶은 만큼 푹 쉬어서 다시 컴백한 거야?”

“응. 충분히.”

“잘 지내서 다행이네. 스트레스 관리 잘하면서 잘 쉬고 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야. 보통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기간에도 힘들어는 하거든, 심적으로.”

“더 쉬면 그랬을 거 같아, 나도. 그래서 쉴 만큼 쉬었단 생각이 들자마자 병원 온 거야.”

“잘했어.”

“오늘이 생리 이틀째라서 왔어.”

“그럼 이은설 씨, 안쪽 진료실로.”

오래간만에 받은 초음파진료에 은설이 조금 긴장을 했다.

은설의 상태를 파악한 현준이 재빨리 초음파를 마쳤고, 다시 진료받을 채비를 마치고 나온 은설을 다독였다.

“다시 시작하려니 좀 떨리지?”

“응. 시험관 시술을 한다 생각하니 좀 그렇네. 인공수정보다는 몇 배 더 힘들다 하니까.”

두려움 섞인 걱정을 살짝 내비치는 은설을 현준은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다른 환자들에게선 좀처럼 느껴본 적이 없던 측은지심이 은설에게만은 폭발하듯 샘솟았다.

“약물에 대한 반응이 좋은 편이니까, 난자 채취가 잘 안 되어서 힘든 일은 없을 거야. 부작용 겪지 않도록 같이 잘 노력해 보자.”

“아, 부작용. 피해 갔으면 좋겠다. 복불복이겠지? 좀 찾아보니 무섭긴 하더라. 드물지도 않은 거 같고.”

“부작용이랄 것도 없이 잘 마치는 사람도 많으니 미리 걱정은 하지 마.”

“그건 그렇지만. 늘 혹시라도 만에 하나가 발목을 붙잡는 인생이었어서 말이야.”

“그럼 ‘혹시라도 부작용 없이 지나가면’이나 ‘만에 하나 부작용 없이 지나가면’이라고 생각해.”

“친구라서 하는 농담이지?”

“응.”

“보통 환자들에게 하는 말도 해줘.”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가서야 쓰겠어요? 혹시라도 무슨 일 생기면 그건 내가 책임지고 처치합니다. 의사 믿고 시술하지, 무얼 믿고 시술합니까?”

“오오, 쎈데?”

“진심이야. 그러라고 공부도 많이 하게 하고, 돈도 많이 주는 거잖아, 의사한테.”

“멋지네. 믿음이 가는 의사 선생님이야.”

은설이 힘을 좀 얻은 듯 한결 또렷해진 목소리로 현준을 추켜세웠다.




“에? 225IU요?”

주사실 간호사에게 은설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네. 인공수정 해봤던 분들은 다들 첨에 놀라셔요.”

IU가 무얼 뜻하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인공수정 때 맞았던 주사액보다 몇 배는 더 높은 용량임은 분명했다.

달라진 주사제의 주사방법을 배우면서 첫 번째 호르몬주사를 주입한 은설은 그제야 시험관을 진행하고 있는 자신의 현 상황이 제대로 인지되었다.

“이 삼일에 한 번씩 진료받으시면서 난포 자라는 상태를 확인하실 거예요. 주사제 처방은 그때마다 조금씩 달라지고요. 직장 다니면서 진행하기는 조금 벅찬 스케줄이긴 해요.”

“휴직했어요.”

은설이 걱정이 없다는 듯 빙그레 웃으며 말했고, 간호사도 진심으로 잘 되었다는 듯 환히 웃으며 말했다.

“우와! 보통은 정말 힘들다고 속상해하시거나, 직장 그만두셨다고들 그러시는데. 진짜 잘 되었네요. 혹시 공무원?”

“네, 뭐. 비슷한. 학교에서 근무해요. 난임휴직이라는 게 몇 년 전에 생겼더라고요.”

“어머, 그렇구나. 방학 다음으로 부럽네요. 호호. 그래도 전 애들 가르치는 건 못 해요. 요건 좀 아픈 주사요.”

간호사가 밀고 당기기를 적절히 섞어가며 은설의 정신을 쑥 빼더니 꽤나 아픈 주사 한방을 은설의 배에 놓았다.

“아야야야야.”

“끝! 많이 많이 문질러 주세요.”

“무슨 주사인데 이렇게 아파요?”

“조기배란억제제요. 채취날짜 맞추려고 맞는 거예요. 미리 배란되면 안 되니까.”

“아.”

“중간에 몇 번 더 맞을 수도 있어요.”

“하아.”

처방된 사흘 치의 주사제와 항생제를 한 아름 들고 온 은설이 항상 그랬던 것처럼 냉장고 문짝의 가장 위칸에 주사제를 가지런히 넣어두었다.

아까 맞은 고용량 주사제의 영향인지, 시작된 시험관 시술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지 종일 몸이 축 처져서 은설은 점심도 거른 채 잠이 들어 버렸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난 은설은 여전히 고프지 않은 배에 가만히 손을 얹고 무언가를 먹을까 말까 고민했다.

그러다가 평소보다 더 잘 먹고 잘 쉬어야 한다는 현준을 말을 떠올렸고, 그와 동시에 침대를 박차고 나와 냉동실을 뒤졌다.

“소고기, 소고기······. 여깄네.”

얼려둔 고깃덩어리를 해동시키기 위해 전자레인지 앞으로 간 은설이 투덜이 스머프마냥 잔뜩 인상을 쓴 채로 해동 버튼을 누르자마자 재빠르게 몸을 날려 전자레인지 앞에서 벗어나려 애를 썼다.

“난, 전자파 나오는 거 싫어.”

별다른 양념도 없이 소금과 후추만 조금 뿌려 구운 소고기를 대충 손에 잡히는 아무 그릇에다가 담으려던 은설은 손끝의 감촉에서 본능에 가까운 거부감을 느꼈다.

손에 잡힌 그릇이 플라스틱 접시인 것을 본 은설이 잡은 김에 정리를 해버리겠다는 듯 꺼내어져 있던 플라스틱 그릇들을 빠짐없이 챙겨 상부장 가장 깊숙한 곳으로 처넣었다.

“난, 환경호르몬 용출되는 거 싫어.”

혼자 있는 집에서 투덜이 스머프 흉내를 내며 집안에 도사리고 있는 온갖 위험한 것들에 대해 투덜거리는 것으로 무료함을 달래던 은설이 힘없이 자조하며 나직이 읊조렸다.

“아우, 나 또 시작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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