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이상해.”
“왜 그래, 은설 씨!”
거실과 주방 사이에 우두커니 서서 휘청이는 은설을 붙잡으며 준수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뭐라고 딱 꼬집어 어디가 어떻다 말 하긴 어려워요. 그냥 이상해, 몸이. 근데 부축까진 필요 없는데, 나.”
“남편 뒀다 어따가 써먹으려고 그래요. 올챙이 말고는 필요한 게 없다는 거야 뭐야?”
“피히.”
기대지 않아 섭섭하다는 듯 툴툴대는 준수의 말에 은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결국 준수의 팔에 매달려 소파까지 온 은설이 시트 위에 풀썩 주저앉으며 심상치 않은 자신의 몸상태에 대해 토로했다.
“몸살이 난 것처럼 온몸이 찌르르해요. 머리도 아프고.”
편두통처럼 쪼개지는 듯한 통증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난시 때문에 종종 생기곤 하던 머리통이 폭발할 것만 같은 압통도 아니었다.
그냥 ‘정신이 멍하고 띠잉’ 한 상태가 며칠 전부터 지속되고 있었다.
가스가 찬 것처럼 불룩해진 배는 종일 더부룩했다.
“너무 고용량의 호르몬제를 매일 맞아서 그런가 봐. 복시는 완전 애교 수준이에요.”
은설이 허탈히 웃으며 농담 아닌 농담을 했다.
“언제까지 맞아야 되는 거지?”
“몰라. 내일 가봐야 알아. 저번처럼 또 사흘 치를 더 처방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용량을 좀 줄여 달라 그러면 안 되나?”
“의사가 알아서 처방해 주겠지. 매번 갈 때마다 난포 얼마나 자랐는지 체크하고 상태에 맞춰서 용량을 정하는 거 같았으니까.”
“에휴. 대신 맞아줄 수도 없고, 참.”
“준수 씨더러 나 대신 맞으라고 하고 싶지도 않아요. ‘아, 내가 지금 내 몸에 못할 짓을 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니까."
“그 정도야?”
"진짜, 진심으로, 정말! ‘억울하니까 당신도 맞아라’ 할 수준의 주사가 아니야.’
진지한 은설의 목소리에 준수가 한 번 더 놀라는 눈치였다.
“나만 편한 거 같아 미안하네.”
“난임 원인이 남자 쪽에 있는 집은 마누라 고생하는 거 보면서 우는 남자도 많대. 준수 씨는 울진 않네?”
은설이 장난스레 섭섭한 체를 하며 준수의 눈물을 부추겼고, 준수가 능구렁이 같은 눈웃음을 지으며 은설의 바람을 피해 갔다.
“에이, 우린 원인불명이잖아.”
“마누라만 고생하는 건 똑같잖아, 치.”
조금은 섭섭해하고 있는 티가 섞인 은설의 말에 준수가 혓바닥의 침을 손가락에 발라 눈밑을 꼭꼭 찍었다.
“봐요, 내 눈물.”
“저리가요. 침냄새나요.”
“헐. 이렇게라도 가슴 아픈 내 마음을 표현하려는 거지, 이 사람아.”
“쳇, 거짓 울음 따윈 필요 없어. 차라리 짱구춤이나 춰봐요. 그럼 기분 전환이라도 되겠지.”
은설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은설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준수가 몸을 벌떡 일으켜 엉덩이를 씰룩였다.
준수의 걱정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던 터라 은설은 일부러 더 깔깔대며 웃으려 애를 썼다.
은설의 웃음에 힘을 받은 준수가 만류에도 불구하고 회식자리 춤사위를 직급별로 선보이며 한참을 더 흔들어댔다.
은설을 위한 준수의 한바탕 재롱잔치는 진이 빠진 준수가 소파 앞으로 널브러지면서 마무리되었다.
은설도 또르륵 몸을 굴려 소파에서 내려와 대(大) 자로 뻗은 준수의 허벅다리를 베고 누웠다.
“마누라 기운 나게 해 주려고 애써줘서 고마워요.”
“알아주니 그걸로 됐어요. 그럼 나 이제 좀 쉬어도 되지?”
“응. 이대로 그냥 아침까지 자도 돼.”
은설의 말에 마음이 편안해졌는지 준수가 눈을 감으며 슬며시 은설의 귀를 만졌다.
한참이나 준수에게 귀를 내어주던 은설이 새삼스레 생각이 났는지 혼잣말처럼 김 선생 이야기를 꺼내었다.
“김쌤은 이런 걸 다 어떻게 근무하면서 견뎠던 거지? 시험관만 2년을 했댔는데.”
오래 맞춘 합 덕분에 텔레파시가 통한 모양이었다.
김 선생이 물어볼 것이 있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오케. 그럼 1학기말에는 요거만 점검하면 된단 거지?]
[네.]
[땡큐. 잘 지내고 있지? 안부를 이제야 묻네.]
[시험관 시작했어요.]
[아이고. 하필이면 자기 힘들 때 업무전화를 했네. 쏘리.]
[에이, 아니에요. 근데 힘들긴 힘들어요. 쌤은 이걸 어떻게 근무를 하면서 했어요?]
[자기도 알잖아. 일단 학교 출근하면 아플 새도 없는 거.]
[그렇긴 하지만요. 그래도 샘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대신 집에선 진짜 아무것도 안 했어. 특히 난자채취 하던 달은······. 어후, 내가 그걸 세 번을 했다.]
[난자 채취하는 거 그 정도로 힘들어요?]
[해 봐야 알아. 내 나름은 아주 힘들어 죽을 뻔했는데, 그래도 나는 하면서 막 탈이 나거나 그러진 않았으니까 나름 할 만했던 케이스였지.]
[샘은 부작용 같은 거 겪은 거 없어요?]
[난 약물에 반응을 잘 안 했었어. 그래서 호르몬제 맞을 때 좀 힘들었지. 주사를 막 종류별로 섞어 맞고 그랬어. 고용량으로.]
[전 그냥 스탠더드 한 용량이래요. 근데도 힘들어 죽겠어요. 다행히 난포는 많이 생겼나 봐요. 복수 차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그래서 겁먹고 있는 중이에요.]
[응. 근데 다 그런 건 아니고. 복불복이야. 나는 이온음료도 별로 안 마셨던 거 같아. 짝으로 사놓은 거를 내가 안 먹고 남편이 다 마셔서 그때 애들 아빠 살이 엄청 쪘었어, 생각하니 그게 제일 무서운 부작용이었네.]
[어머, 하하. 우리 남편도 조심시켜야겠어요. 안 그래도 자꾸 살이 쪄서 고민인데.]
[그래. 귀찮아도 한두 병씩 자주 사다 먹어.]
[그럴게요. 샘은 잘 지내시죠?]
[담임을 안 하니 속 썩는 일은 덜 한데 업무가 두 배라 맨날 일거리 싸가지고 퇴근이지, 뭐.]
[부장님도 참. 올해 업무는 공평히 나눈다더니.]
[김유리가 3월 한 달도 다 못 버티고 휴직할 줄 누가 알았나.]
[왜 기간제샘한테 업무를 안 맡기고 샘한테 준 거예요?]
[새로 온 기간제가 아주 애기야. 이제 스물네 살이래. 기간제 해보고 교직이 자기랑 맞는지 확인한 뒤에 임고 볼 생각이래드라. 요즘 애들은 뭔가 다르네.]
[그 샘이 생기부 업무를 맡을 수가 있을까요?]
은설이 학교생활기록부 업무가 아직도 자기 업무인 것 마냥 걱정하는 말을 했다.
[부장님이 다른 거 말고 연말 오기 전까지 생기부 업무만 열심히 공부하라 그랬어. 애는 똘똘해.]
[그럼 교환수업 업무는요?]
[당장 해결해야 하는 교환수업은 불안해서 도저히 못 맡기겠다고 나보고 맡아 달라하니 어쩔 수가 있나. 담임도 안 하는 주제에 말이야.]
[잠깐. 좀 전에 저한테 생기부 업무 물어보셨잖아요.]
[그랬지. 그건 내 오지랖.]
김 선생은 1학기에 임신 소식을 전했던 여교사 넷 중 셋이 유산을 해서 학기 내내 보강수업 짜대느라 정신이 없었다는 무시무시한 소식도 전했다.
다들 5주에서 10주 사이를 무사히 넘기지 못했다며, 기왕이면 휴직 기간 중에 안정기까지 보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은설에게 전했다.
[잘 되면 1번으로 소식 전할게요, 샘.]
[그런 건 100번째여도 괜찮으니, 맘 잘 다독이면서 시술 잘 받고 잘 지내, 은설샘.]
김 선생에게도 은설에게도 버거운 날들이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