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호르몬제가 세상을 지배하는 날들(2)

<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by 이소정

“주사 더 맞아야 하는 거니?”

싫어 죽겠는 표정을 하며 은설이 우는 소리를 했다.

그런 은설을 안쓰럽게 보고 있으면서도 현준은 아주 단단하고 마른 목소리로 단호히 대답했다.

“응.”

“에휴.”

푹 숙인 은설의 정수리에 대고 현준이 설명을 시작했고, 바스락거리는 초음파 사진 소리에 은설이 고개를 얼른 쳐들었다.

“호르몬제에 대한 반응이 썩 좋은 편이야. 오른쪽에 열두 개 왼쪽에 열 개. 난포 크기도 좋고.”

“오, 사흘 전보다도 더 늘었네. 근간에 들은 소식 중 제일 반가운 얘기였어.”

은설이 반짝 웃음을 지었다.

“주사제는 용량을 낮춰서 이틀 치 더 처방할 거야. 여기서 더 늘면 복수가 찰 가능성이 높아지거든.”

“주사를 안 맞으면 안 되는 거야?”

다시 울상이 된 은설이 애원이 담긴 표정으로 물었지만 현준은 여전히 단호했다.

“이미 생긴 녀석들을 더 키워내야 해. 호르몬제가 그렇게만 작용하기를 바라봐야지.”

“무서워, 조금.”

시무룩히 고개를 떨군 은설에게서 현준은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은설이 보인 모습은 첫 번째 시험관 시술의 난자채취를 앞둔 환자들이라면 누구나 내비쳤던 두려움이었다.

다른 환자였다면 이제 시작이라며 약해지지 말라고 다그쳤겠지만, 은설에게만은 그럴 수가 없었다.

입술을 잠시 머뭇거리다가 현준이 좋은 말이 생각이 난 듯 은설을 위로했다.

“난포가 많이 생겼으니, 냉동배아도 많이 얻을 수 있을 거야. 기대해 보자.”




[현준이도 말주변이 좋은 사람은 아닌 거 같아.]


은설이 투덜대듯 수지에게 섭섭함을 토로했다.


[진료실에 앉아 있었잖아. 의사한테 무슨 위로의 말을 바란 거야?]

[하긴.]

[몸은 좀 어때? 죽겠지?]

[응. 또 뭐라 그럴까 봐 준수 씨한텐 말 안 했는데, 시험관 진행하면서는 처음으로 ‘이렇게까지 해서 아기를 낳아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어.]


애초에 준수는 시험관 시술에 회의적이었다.

어쨌거나 자신이 선택하여 밀어붙인 길이었기에 은설은 준수에게 마냥 힘들다는 내색을 비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김 선생이나 수지 같은 시험관 시술 경험자들과 통화를 할 때면 물을 만난 고기처럼 그간의 말 못 했던 고충들을 털어놓기 바빴다.


[옷깃만 살짝 스쳐도 가슴이 막 칼에 베인 것처럼 아파. 브래지어는 하고 있을 엄두가 안 나서 패드 달린 슬립온 겨우 입고 외출해.]

[배는 안 아파?]

[생리통처럼 아프고 그러진 않아. 근데 임신도 안 했는데 배는 무슨 오 개월쯤 된 사람 마냥 불룩해. 내 몸에 이렇게 못할 짓을 해도 되는 건가 싶다.]


제 몸이 겪고 있는 이런저런 부작용들에 대해 엄살과 어리광까지 섞어가며 수지 앞에 풀어놓으면서도 은설은 서러움을 느꼈다.

지금 하고 있는 모든 말들이 수지가 아닌 준수 앞에서 했어야 할 것들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난임 시술에 대해서 요즘 들어선 준수도 딱히 불편한 내색을 비치지 않았었는데, 은설은 여전히 그의 눈치를 보고 있는 스스로가 안쓰럽고 애달팠다.


[그게 원래 그래. 그래도 진짜 어디가 아픈 건 아니니까 축 쳐져 있지 말고 운동도 좀 하고 그래. 괜히 애달파하지도 말고. 그러다 폭발해서 괜히 준수 씨 잡지도 말고.]

[준수 씨한테 섭섭해하고 있는 건 또 어찌 알았어? 언제 내 속에 들어왔다 나간 거야?]

[난 내가 시험관을 하고 있는데 태국으로 들어와 보지도 않는다고 엄마한테 막 화냈었어. 그날 시험관 진행 중이라고 처음 말해 놓고서.]

[헐.]

[시험관 실패하고 소식 전하면서 그때 내가 좀 비정상이어서 그랬다고 엄마한테 빌고 막 그랬었다.]

[난 아직 그 정도까진 아냐. 근데 ‘이런 정신상태로 무슨 난임치료를 받겠다고!’ 그러면서 내가 나한테 막 역정을 내고 그런다.]

[너무 괴로워 말고. 생각이 들면 드는 대로, 화가 나면 나는 대로 너를 그냥 내버려 두면서 지내. 참아 봐야 스트레스나 받지, 뭐.]


수지가 선배답게 은설을 다독였다.


[알았어. 넌? 잘 지내고 있어?]

[나? 응. 잘 지내고 있지. 한국 들어갈까 하고 준비하고 있어.]

[정말? 안 들어온다며. 이사 앞두고 마음 바뀐 거야?]

[뭐 그런 것도 있고.]

[니가 들어온다니까 확 위로받는 기분이 드는데? 얏호!]

[기즈배. 좋아하시긴.]


기쁨을 감추지 않는 은설의 반응에 수지도 기분 좋게 웃어댔다.


[호르몬제가 효과를 아주 팍팍 내주고 있는 게 맞나 보다. 은설이 니 목소리 톤이 통화하는 내내 열두 번도 더 바뀐 거 같아.]

[준수 씨가 아주 죽겠나 봐. 내 기분 맞춰주느라. 근데 나도 내 기분을 막 주체를 못 하겠어.]

[준수 씨도 고생 많다. 근데, 그거라도 해야지, 남자가. 그거 말곤 할 것도 없는데.]

[맞아, 하하! 역시 우리 쑤지는 내편이야! 들어오면 어디서 살 거니, 내 편아?]

[일단은 부모님 집. 짐은 여기서 다 정리하고 몸만 갈 거니까.]

[좀 머네.]


은설이 금세 또 풀이 죽은 목소리를 냈다.


[근데 한 달 안에 친정에서 나오는 게 목표야. 그 다음번 행보는 아직 고민 중. 여차하면 오피스텔 월세라도 알아보려고.]

[그냥 참고만 하라고 이야기하는 건데, 우리 동네에 괜찮은 오피가 참 많아.]

[하하, 알았어. 참고 많이 할 게.]




“너무 많네.”

채취 전 마지막 초음파를 보면서 현준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나직이 혼잣말을 했다.

“왜 그래? 뭐 문제라도 생겼어.”

넓디넓은 책상 너머로 현준이 손에 쥐고 있는 초음파사진을 넘겨다 보려 애를 쓰며 은설이 물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너무’라며. 그건 부정적인 상황일 때 쓰는 말이잖아. 솔직히 말해줘. 어떤 상황인 거야?”

걱정을 한가득 품을 목소리로 은설은 재차 현준에게 물었다.

현준은 외려 좀 전의 목소리보다 훨씬 누그러진 표정을 지으며 은설에게 차분이 이야기를 했다.

“난포가 스물여덟 개가 됐어. 늦게 생긴 녀석들은 미처 자라지 못한 상태라 큰 의미는 없을 거야. 그래도 잘 자란 난포들이 많아서 채취 걱정은 안 해도 될 거 같아. 공난포 여부는 채취를 해 봐야 아는 거니 미리 걱정할 일은 아니고.”

“공난포?”

“간혹 자란 난포 안에 난자가 없는 경우가 있어. 넌 별다른 문제가 없어서 공난포가 나올 가능성은 극히 적다고 판단하고 있으니, 지레 겁먹을 필욘 없고.”

“근데 좀 전엔 왜 놀란 거야?”

긍정적인 뉘앙스가 강한 현준의 말에 걱정이 조금 누그러진 은설이 진료 책상 위로 바짝 붙였던 몸을 도로 환자용 의자에 가지런히 옮겨 놓으며 물었다.

“다낭성이 아닌데도 투여한 호르몬제 용량에 비해 생긴 난포 수가 많아 좀 놀랐어. 난포가 너무 많이 생기면 채취 후에 복수가 찰 가능성이 높아져.”

“채취하고 나서 복수 찼다는 얘기는 많이 들어보긴 했는데.”

그 무시무시한 후기가 곧 자신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말에 은설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갔다.

“안 찰 수도 있고, 찰 수도 있어. 마음의 준비 정도만 해 둬. 복수가 찼어도 금방 빠지는 경우도 많아. 뭐, 상황에 따라 한 두 달 쉬어야 하는 경우도 있고."

"바로 이식 못할 수도 있어, 나?"

"그건 말 그대로 상황에 따라 결정하는 거니 미리 고민하지는 마.”

“응.”

은설은 최대한 담담하게 대답하려 애를 썼다.

“다른 고민은 말고 다음번 진료까지 채취할 때 수면마취를 하고 진행할지 그냥 할지만 결정해서 와. 생각할 거리는 그거면 충분해."

상냥히 웃는 현준의 표정을 보면서 진료실을 나서긴 했지만 은설은 찜찜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현준은 분명히 은설의 상태를 걱정하고 있었다.

‘복수’에 대한 설명이 상세했던 것은 그만큼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은설에게 더 큰 걱정거리로 다가온 것은 ‘어쩌면 차오를지도 모를 복수’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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