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나 비수면으로 채취할게.”
“응? 꽤 고생스러울 텐데 괜찮겠어?”
의외의 선택이라는 듯 현준이 은설의 의사를 재차 확인했다.
“단호하게 대답하는 거야. 비수면 채취로 진행해 주세요, 선생님.”
은설은 지난 사흘 내내 했던 기나긴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을 뒤집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면마취에 대한 불안감이 가시질 않았다..
‘현준이가 근무하는 병원 간호사들 앞에서 무슨 헛소리를 어떻게 할 줄 알고, 내가······.’
2년에 한 번씩 받는 위내시경도 늘 같은 병원에서만 받는 중이었다.
자신의 상황을 이미 알고 있는 곳에서만.
수면마취가 빨리 깨지 않는 편인 은설은 마취가 깰 무렵이면 꽤 오랜 시간 동안 헛짓을 했다.
그 기억나지 않는 시간에 대해 간호사들이 전해준 바에 따르면 은설은 대개 그즈음에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을 복기하는 행동들을 했었다.
맨 처음 했던 수면내시경 때는 나이가 좀 있는 간호사를 붙잡고 ‘어머니, 애를 생각해서라도 어머니까지 그러시면 안 된다’며 통곡을 했다고 했다.
그다음에는, 교환수업계획서도 제출하지 않으시고 수업을 바꿔 달라고 하시면 어찌하느냐며 깨우러 온 간호사에게 짜증을 냈었다.
수학능력시험 감독을 하고 온 후 했던 수면내시경 때는, 지각하면 안 된다면서 감독을 나갔던 중학교로 데려다 달라며 애원을 했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화려하다 하면 제법 화려한 전적들이었다.
은설에겐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난자 채취의 아픔보다 이미 알고 있는 수면마취 후 벌어질 헛소리 퍼레이드에 대한 두려움이 훨씬 더 큰 공포로 다가왔다.
현준과 관련하여 간호사들에게 어떤 허튼소리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도저히 떨칠 수가 없었다.
사흘 간의 숙고 끝에 수면마취 없이 난자채취를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린 터였으므로 은설의 의지는 확고했다.
“정말 맨 정신으로?"
"정말로."
"그럼 국소마취만 하고 채취하는 걸로.”
은설의 의사를 재차 확인한 현준이 은설의 결정을 차트에 기록했다.
“이틀 뒤 오전에 채취하러 오면 돼. 남편도 그날 같이 와서 채취하는 거고.”
“응”
은설이 결의에 찬 눈빛을 쏘며 다부지게 대답했다.
“일반적으로는 3일 배양 후에 가장 건강한 배아 두 개를 이식하고 나머지는 이틀 더 배양한 후에 배아를 냉동해."
은설이 현준의 설명을 들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에 따라선, 그러니까 채취 후에 난소가 너무 부어있다거나 아니면 복수가 차는 등등의 상황이 발생하면 일단 배양된 배아들은 모두 냉동시킬 거야."
"······."
"몸이 회복되는 걸 보고 이식 시기를 다시 조율하고.”
“응. 알고 있어.”
“신선 배아 이식할 수 있길 바라보자고.”
은설은 현준의 목소리에 묻어나는 간절함을 느꼈다.
은설에겐 처음이지만 현준에겐 한 달이면 수십 번씩은 진행하는 시술일 터였다.
그런데도 현준의 표정에선 여유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 이식 날은? 그날도 나 같이 가야 해? 그날은 장모님하고······.”
“죽고 싶은 거야?”
“아니.”
“그럼 묻지 마. 그런 건.”
“사흘에 한 번씩 휴가를 쓰는 게 눈치 보여서 그러지. 망한 프로젝트에 똥 치우러 들어가서 요새 아주 바쁘단 말이야."
"회사에서 주는 눈치랑 마누라가 주는 눈치 중에 더 괴로운 걸 골라요, 그럼."
"마누라한테 죽으나 회사에서 일하다 죽으나 죽는 건 마찬가지라고, 지금. 쳇.”
자기 사정은 알아주지 않는 은설에게 섭섭해진 준수가 대놓고 삐친 티를 냈다.
잠시 잊고 있었던 준수의 상황이 그제야 떠오른 은설은 준수에게 조금 미안했다.
“시험관 시술은 처음이라 내가 어떤 상황을 어떻게 겪게 될 건지를 몰라서 더 두렵고 긴장되고 막 그래서 그래요."
"그거야 그렇지."
"결혼한 지 삼 년 넘었다고 이젠 엄마보다 남편이 더 든든하고 막 기대고 싶고 그런 걸 어떡해. 준수 씨는 안 그래? 아직도 어머님이 나보다 더 편하고 의지가 되고 그래?”
준수가 곰곰이 생각하는 눈빛이 되어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뭐야, 진짜 그런 거야?”
“아니. 엄마는 스물네 살 때 서울 올라오면서부터 나한테 의지의 대상은 아녔어.”
“근데 표정이 왜 그래요?”
“은설 씨가 나한테 의지가 되는 사람인지를 생각하고 있었어.”
“그걸 그렇게 오래 생각해야 되는 거야?”
“그러게.”
“준수 씨는 그동안 나한테 별로 의지를 안 하고 지냈었나 보네.”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누구한테라도 의지를 해본 적이 있었는지를 생각하느라······.”
“암튼 나한테 기댔던 적이 없었단 소리잖아.”
“그런 줄 알았는데······.”
“그런데?”
“지금 당장 은설 씨가 사라지고 없다 생각을 하니, 당장 입을 거 먹을 거부터 걱정이 되고 막막하기 이를 데가 없어서 속으로 좀 놀라고 있는 중이었어.”
“뭐야, 밥 해주고 빨래해 줄 사람 필요해서 나랑 결혼했어?”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이 사람아, 내가 자취 경력만 12년이 넘는데. 설마 그거 못해서 못 살까 봐.”
“근데 왜 입을 거 먹을 거 얘기부터 꺼내고 그래요.”
“들자면 그런 거란 거지, 예를 들자면. 진심은 ‘세상이 막막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포인트라고요, 이 마누라야.”
“그럼 그것만 말하지, 왜. 치이.”
잔뜩 독이 올라 있던 말꼬리를 누르면서 은설이 ‘그럼 그렇지’하는 표정을 지었다.
“암튼 알았어요. 이틀 연차 내놓을 게."
"이틀이나?"
"가정을 내팽개쳐가면서 일한다고 회사가 내 공을 다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이래 일 하나 저래 일 하나 월급보다 넘치게 일해주고 있는 건 변함없으니.”
“고마워요.”
“됐네, 이 사람아. 다른 신경은 다 쓰지 말고 내일모레 시술 잘 받을 준비나 잘해요.”
인공수정을 하며 등록해 두었던 혈관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도 간호사가 한 번 더 확인 절차를 거쳤다.
“남편분 신분증 좀 주시겠어요?”
“여기요.”
준수가 냉큼 신분증을 간호사에게 건넸다.
“난포 터지는 주사 시간 잘 맞춰 맞으셨고요?”
“네.”
이것도 준수가 대답을 하자 간호사가 은설을 쳐다보았다.
은설이 알면서 뭘 그러냐는 듯 싱긋 웃으며 짧게 설명을 덧붙였다.
“남편이 놔줬어요.”
“소독용 질정은 시간 맞춰 잘 넣으셨고요?”
“네.”
시험관실로 안내를 받은 은설이 준수에게 장난스레 울먹이는 표정을 지으며 잠시간의 안녕을 고했다.
기다란 가운 형태의 시술복으로 갈아입은 은설은 옷깃을 타이트하게 여며 허전한 아랫도리를 감쌌다.
‘벌써 몇 번을 입었는데도 적응이 참 안 되는 옷이야.’
간호사가 채워 준 손목띠를 내려다보며 전처럼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은설 곁으로 일군의 여자들이 차례차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은설 님.”
시술실의 간호사가 은설을 호명했다.
간호사를 따라 시험관실 내의 주사실에 들어간 은설의 팔에 혈관주사용 관이 꽂혔다.
“엉덩이 주사도 한 대 있어요. 항생제 주사라 좀 아플 거예요.”
“아, 네.”
가운을 걷어 간호사에게 엉덩이를 내어주면서 은설이 무덤덤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꽤나 뻐근한 주사였지만, 은설은 아픈 내색을 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다 큰 어른이 주사 한 대를 가지고 엄살을 부리는 것이 간호사 보기 부끄러워서는 아니었다.
웬만한 고통은 참고 이겨 내야지만 용기를 잃지 않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 은설 스스로 용기를 북돋는 법으로 고통을 참아내는 과정을 선택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마치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성인식처럼.
앞으로 있을 난자채취 과정의 고통이 이보다는 훨씬 더 심할 것이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