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채취(2)

<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by 이소정

수술대와 비슷하게 생긴 굴욕의자에 앉아 잠시 대기하고 있으니 마스크를 쓴 현준이 채취실로 입장을 했다.

진료실이 아닌 곳에서의 현준은 한결 더 차분하고 냉정했다.

“이은설 씨. 긴장되죠?”

“네. 안 아프게 해 주세요.”

“한 가지만 지켜주면 돼요. 힘주지 않기.”

“네. 선생님 말씀 잘 들을게요.”

얌전한 모범생처럼 은설이 대답했고, 현준이 바로 소독에 들어갔다.

차가운 소독제가 아랫도리 전체에 도포되는 느낌이 불쾌하게 느껴졌다.

은설의 왼편에선 간호사가 은설에게 본인과 남편의 이름을 물어 재차 확인에 들어갔다.

그러는 사이 현준이 국소마취 주사를 놓았다.

“힘주지 마세요. 마취 주사 놓을 거예요.”

“앗”

“옳지, 잘했어요.”

“오른쪽에 모니터 보시겠어요?”

“네.”

현준이 초음파 기계로 난소를 찾아 쿡쿡 누르는 느낌이 났다.

“초음파로 난포 위치를 확인해서 난자를 채취할 거예요. 여기 보이는 게 난포들. 꽤 많이 자란 거 보이죠?”

“네”

라고 대답은 했지만, 팽배한 긴장감 때문인지 은설은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초음파 모니터의 화면의 내용을 해석하기가 어려웠다.

“이제부터 채취 시작합니다. 힘주지 마세요.”

드드드드드드드드.

괴팍한 소리를 내며 난포를 채취하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한 개 채취되었습니다. 두 개 채취되었습니다. 세 개······.”

현준이 난자를 채취할 때마다 간호사가 하나씩 개수를 세어가며 확인을 했다.

국소마취 주사를 놓았다고는 했지만 바늘로 쿡쿡 찌르는 듯한 아픔이 장기를 타고 은설의 뇌리까지 올라와 박혔다.

그 와중에 들리는 간호사의 목소리가 은설을 더욱 정신없게 했다.

‘이 느낌. 이거 어디서 많이 느껴 본 느낌하고 비슷한데. 뭐 더라. 아!!’

은설은 난자를 채취하는 느낌이 치과에서 느껴 본 고통과 꼭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점점 배근육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어어, 힘주면 안 돼요.”

“네헤.”

은설이 배가 아닌 폐에서 힘을 쭉 빼는 소리를 내며 대답했다.

간호사의 카운트가 열다섯이 넘어가고 나선 현준이 한참이나 그다음 난자를 찾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경력이 많아 보였던 간호사가 눈치껏 은설의 배를 꾸욱 눌렀다.

“으으.”

“이은설 님, 조금 참으셔야 해요. 배에서 힘을 빼주셔야 빨리 끝낼 수 있어요.”

현준이 초음파를 이리저리 굴리며 그다음 난포를 채취할 위치를 재는 동안 간호사가 은설을 달래었다.

그제야 정신을 좀 가다듬을 수 있었던 은설은 간호사가 자신의 배를 꾸욱 누르는 것이, 현준이 난포를 조금 더 수월히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임을 깨달았다.

“후욱.”

상황을 파악한 은설이 뱃가죽이 골반 아래까지 내려가도록 숨을 길게 내뱉었다.

“오오, 잘하셨어요, 이은설 님!”

힘겹게 은설의 뱃가죽을 누르고 있던 간호사가 은설 스스로 배근육의 힘을 풀자 반색을 하며 아이에게 하듯 폭풍칭찬을 해주었다.

은설이 최대한 납작하고 말랑하게 만들어낸 복부를 간호사가 다시 한번 지그시 눌렀다.

“오케이, 이제 잘 보이네요.”

환경이 조성되자 난자를 채취하는 현준의 손이 더 빨라졌다.

드드드드.

드드드드드드드.




스물여덟.

간호사의 카운트가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곧바로 출혈을 잡기 위한 거즈가 거친 존재감을 드러내며 뱃속에 자리를 잡는 것이 느껴졌다.

“고생했어요, 이은설 씨.”

현준이 시술실에 들어온 이래 가장 따뜻한 목소리로 은설을 다독이곤, 서둘러 시술실을 빠져나갔다.

“일어나실 수 있겠어요?”

뒷마무리를 책임지는 간호사가 은설의 다리를 모아주며 물었다.

“네.”

라고 대답은 했지만, 은설의 머릿속엔 ‘너덜너덜’이라는 단어만 왔다 갔다 했다.

회복실로 이동한 은설은 한 시간가량 수액을 맞았다.

커튼 너머의 다른 침대들에선 잠에 취한 사람들의 신음소리, 훌쩍이는 소리, 별 것 아닌 상황에 잔뜩 짜증을 내며 ‘아이씨’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까또.


[끝났어요?]


그 사이 자기 몫의 할 일을 마치고 하염없이 은설을 기다리고 있던 준수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응. 수액 맞으면서 회복 중이요.]

[글쿤. 은설 씨 다 끝나면 얼추 점심시간일 거 같아서 근처 맛집 검색 중.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추어탕]

[아, 넴······.]


준수가 보낸 메시지의 글자에서 실망한 기색이 역력히 느껴졌다.

역시나 추어탕이 성에 차지 않았던 준수가 다시 메시지를 보내왔다.


[마누라 맛있는 것 좀 사주려고 그랬더니, 쳇.]

[시술 후엔 추어탕이 제일 맛난 보양식임, 아님 뭐 더 좀 좋은 거 있나 찾아보던가요.]

[소고기라도 구워 먹으러 갈까?]

[마누라는 지금 난자 채취하고 나서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졌어요. 빨리 집에 가 쉬고 싶은 마음뿐이라고요, 이 눈치 없는 사람아.]

[알겠어요. 그럼 맛있게 후딱 먹고 갈 수 있는 걸로 찾아보고 있을게요. 없으면 추어탕에 추어튀김 세트로 진행하겠음.]


다행히 사무칠 정도의 서러운 감정을 들지 않았다.

눈치 없이 잘해주려는 통에 투덕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게 다 모두 준수와의 채팅 덕이라고 은설은 생각했다.

수액이 거의 다 내려간 것이 보였다.

카메라를 달아 놓은 것도 아닌데 간호사가 마치 지켜보고 있다가 온 것처럼 정확한 타이밍에 들어와 은설의 팔에 꽂혀 있는 바늘을 정리했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느낌이 들면 말씀하셔야 해요. 정말 일어나실 수 있겠어요?”

“네”

간호사가 회복실 안의 화장실로 은설을 안내했다.

“소변 한 번 보시고, 소변에 피가 섞이지 않았으면 입구 쪽으로 살짝 내려놓은 것 잡고 거즈 빼시면 돼요. 거즈는 비치된 쓰레기통에 꼭 버려주시고요.”

“네.”




“채취는 아픈 거였지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었거든. 근데 넣어뒀던 거즈 뺄 때는 정말! 우와아. 상상치도 못한 대목에서 놀라 그런가 아직도 충격이 가시질 않아.”

“아팠어?”

호들갑스레 무용담을 전하는 은설에게 준수가 안쓰럽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그냥 탐폰 뺄 때랑 비슷한 정도?. 근데 그게 대체 어떻게 넣어 놓은 건지 꼬다리 쬐끔 내려놓은 거 붙잡고 뽑기 시작하니 정말 끝도 없이 길게 나오는데 나중에는 무섭기까지 하더라니까.”

“가서 따져요, 친구한테. 뭐야, 이게! 이럼서.”

“됐어요. 창피하게 무슨. 의사가 알아서 해 놓은 거였겠지. 그래도 한방에 스물여덟 개나 채취를 할 수 있게 해 줬으니 고마워하려고요."

"스물여덟 개나 나왔어?"

"응. 할 거 다 하고도 한 두 개 밖에 채취를 못하는 사람도 있대요. 어떤 여자 블로그에서 봤어.”

준수의 걱정과 달리 은설의 컨디션이 나빠보이지 않았다.

큰 일을 끝내고 나온 기쁨이 아직은 몸이 겪고 있는 고통보다는 큰 모양이었다.

“조심할 건 없대? 진짜 이온음료만 열심히 먹으면 되는 거야?”

“잠깐만.”

진지한 준수의 물음에 은설이 가방을 뒤져 간호사에게서 받아 온 ‘주의사항’이 적혀 있는 종이를 꺼내어 들었다.

“일단 목욕, 운동, 부부관계 일주일 금지. 샤워만 가능.”

“그건 잘 지켜줄 수 있겠어. 나도 오늘 아주 혼신의 힘을 다했거든.”

진담을 농담처럼 하고 있는 듯한 준수의 말에 은설이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그만 웃고 더 읊어보기나 해요.”

준수의 닦달에 은설이 웃음을 멈추고 나머지 사항들을 읽어내려갔다.

“복부불편감과 출혈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에 또 그리고.”

은설이 종이에 적힌 내용을 읽다 말고 잠시 말을 멈추었다.

“왜 그래?”

순식간에 긴장감이 치솟은 준수가 쌓인 스트레스가 역력히 드러난 얼굴을 하고 은설에게 재차 물었다.

“뭐라고 쓰여 있어? 왜 읽다 말아?”

“아니, 찬찬히 자세히 좀 읽어 보려고. 다 읽었어. 음······.”

잠시 더 뜸을 들이던 은설이 긴 내용의 핵심만 한번 더 정리하여 준수에게 말해줬다.

“복수, 복강 내 출혈이 발생할 수 있으니 심한 복통과 호흡곤란, 혈뇨가 보이면 병원으로 오래요.”

“헐. 뭐 그런 무서운 내용이 쓰여 있대.”

“이것보다 더 무서운 내용도 있어요.”

“뭔데?”

“오늘부터 사흘은 항생제랑 호르몬제 두 종류를 시간 맞춰 먹어야 하고, 아침저녁으로 시간 간격 잘 맞춰서 프로게스테론질정제를 2주 동안 넣어야 해.”

은설의 얼굴에 짜증 섞인 고통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작가의 이전글120. 채취(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