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프로게스테론 질정제가 문제가 아니었다.
채취 때 한 국소마취가 완전히 풀린 이후로 은설은 찢어질 듯한 복통 때문에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쬐끄만한 난소에 바늘을 스물여덟 방이나 찌르니까 완전 너덜너덜해져 버린 거 아니야? 몇 개는 좀 그냥 두지. 은설 씨 친구 진짜 유명한 의사 맞아?”
준수가 괜한 성을 내며 은설의 신경을 더 긁어댔다.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조용히 좀 있으면 안 돼? 내가 지금 현준이 대변해 가며 준수 씨까지 달래주게 생겼어?”
“속상하니까 그러지, 이 사람아.”
“알겠으니까 나 좀 그냥 내버려 둬.”
신경질적으로 내뱉은 은설의 말에 섭섭해진 준수가 삐친 티를 내며 방을 나섰다가 곧 이온음료 한 병과 컵을 쟁반에 담아 들고 들어왔다.
“이거 마셔 봐.”
“아, 맞다.”
“이거 마셔야 복수 안 찬다며. 약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마셔요.”
“땡큐.”
“이런 남편이 어딨 다고, 칫.”
“짜증내서, 미안.”
“몸이 괴로우니 어쩔 수가 있나.”
은설의 사과에 마음이 금방 누그러진 준수가 누워 있는 은설의 헝클어진 머리칼을 쓰다듬듯 정리해 주었다.
사달은 다음날 나고 말았다.
“정말 괜찮아? 정 힘들면 택시 불러서 병원 가봐.”
전날 명치가 꽉 막힌 듯 숨이 차고 쥐어뜯듯 배가 아파 뜬 눈으로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는 은설의 말을 들은 후로 준수는 내내 ‘정말 괜찮아’를 입에 달고 있었다.
“괜찮은 거 같다니까. 다들 이 정도는 배가 부푸는 거 같더라고. 쪼끔이라도 이상한 기분 들면 병원 갈게요. 걱정 말고 출근해요. 내일모레 또 연차 내서 눈치 보인다며.”
걱정하는 준수를 달래어 출근시킬 때만 해도 은설은 자신의 상태가 다른 여자들의 블로그에서 많이 보았던 그 상태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참으면 언젠가는 지나가고 말 고통에 지고 싶지 않다는 결연한 마음이 얼마나 바보스런 고집이었는지를 깨닫는 데에는 서 너 시간에 걸친 고통이 더 필요했다.
[나 좀 이상한 거 같아요.]
찢어질 듯 부푼 배를 움켜잡고 은설은 준수에게 겨우겨우 메시지를 보냈다.
곧바로 걸려온 준수의 전화를 받은 은설의 목소리엔 절반 이상의 신음이 섞여 있었다.
[아아아아······. 아파 준수 씨. 옆구리랑 등까지 딴딴하게 부풀었어.]
[당장 택시 불러서 병원 가. 나도 바로 출발할 테니까. 병원에서 만나.]
당장 출발하라며 으름장을 놓듯 준수가 다그쳤지만 그렇다고 잠옷바람인 채로 병원에 갈 수는 없었다.
은설은 펴지지 않는 허리를 겨우 들어 욕실로 향했다.
고양이 세수와 30초짜리 양치질로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만 매무새를 다듬었는데도 다리가 무너질 듯 후들거렸다.
자꾸만 숨이 가빠지는 탓에 도저히 브래지어를 할 수가 없었던 은설은 가장 크고 헐렁한 원피스를 찾아 뒤집어썼다.
[3분 뒤 도착이네. 아씨, 왜 이렇게 빨리 와.]
안방에서 현관까지 가는 데에도 3분은 더 걸릴 것 같은 걸음을 겨우겨우 떼어가며 은설은 홀로 병원에 가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현준아······.”
진료실에 들어서서 현준의 얼굴을 보니 은설은 눈물부터 나려고 했다.
현준이 처음으로 진료책상에서 몸을 일으켜 정간호사와 함께 은설을 안쪽진료실로 부축해 옮겼다.
“나 너무 힘들어. 다들 이렇게 힘든 거야? 아니면 내가 못 참는 거야?”
의자에 실린 몸이 뉘어지자마자 줄줄 흐르는 눈물을 양 옆으로 훔쳐내며 은설이 물었다.
“아니야. 다들 힘들어해. 니가 너무 잘 참아서 더 많이 힘들었던 거야, 지금은.”
“참지 말 걸.”
설움이 북받친 은설이 작게 ‘잉잉’ 소리를 내며 울었다.
“복수천자 준비하라고 하세요.”
은설의 상태를 본 현준이 초음파를 마치자마자 간호사에게 냉철하고 명료한 목소리로 지시했다.
“복수천자? 그것 해야 하는 상황인 거야, 나?”
“응.”
“무서워.”
"너무 무서워 안 해도 돼. 하고 나면 좀 편해질 거야.”
현준이 부드럽고 따뜻하게 웃어주며 가늘게 떨리고 있는 은설의 손을 지그시 잡아주었다.
분만실로 옮겨 간 은설에게 간호사들이 붙어 일사불란하게 환자복으로 환복을 시키고는 곧 복수천자를 받을 준비를 시켰다.
곧이어 들어온 현준이 꼼꼼한 손논림으로 소독을 하고 은설에게 곧 복수천자 바늘이 옆구리 쪽 배를 뚫고 들어갈 것임을 알렸다.
“이은설 씨, 숨 들이마시고요. 잠깐만 참아요. 조금 아픕니다.”
“잠깐만요, 선생님. 마취 같은 거 안 해?”
푹.
“네. 안 해요.”
“안 해도 되는 거였네요. 배가 너무 아프니까 이 바늘 찌르는 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에요.”
은설의 말에 현준이 안쓰러운 웃음을 지으며 아이를 달래듯 위로의 말을 했다.
“잘 참았어요. 이제부터는 힘 쭉 빼고 가만히 있기만 하면 돼요. 복수 빠질 때까지.”
현준과 바통 터치를 하듯, 은설이 있는 곳으로 준수가 달려들어왔다.
“괜찮아?”
“준수씨이······. 이잉······.”
준수의 얼굴을 보자마자 은설은 틀어잡고 있던 마음의 고삐를 푼 듯 엉엉 울기 시작했다.
“울지 마. 기운 빠지잖아.”
아픈 아기를 어르듯 은설을 달래는 준수의 목소리도 울먹거리고 있었다.
한참이나 머리와 볼을 쓰다듬어주는 준수의 손길을 위로 삼던 은설이 좀 나아졌는지 옆구리에 꽂은 관을 통해 빠져나오고 있는 복수에 관심을 보였다.
“붉은 갈색이네. 난 복수가 노란색일 줄 알았어. 내 복수 잘 나오고 있어?”
“시워언 하게 잘 나오고 있어.”
준수가 흘러나온 복수가 큰 통에 담기고 있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궁금해하는 은설에게 보여주었다.
“피 같다. 이거 거의 3-4시간 빼내야 한대.”
“피가 이만큼 나오면 죽지, 이 사람아. 이거 다 그냥 물이야 물.”
“내 몸에 물이 언제 이렇게 많이 들어간 거지?”
“들어간 게 아니고 우리 몸의 70 퍼센트가 물이니까······.”
생물시간 조별 수업 중이라도 되는 것처럼 은설과 준수가 이런저런 아는 지식들을 동원해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복수가 좀 빠지고 나니, 지루한 기다림의 연속인 복수천자 과정을 견뎌내려 애를 쓸 만큼 은설의 상태가 빠르게 회복되어 갔다.
“링거 맞으셔야 해요.”
“수액이에요?”
“알부민이라고 빠져나왔던 혈액 속 수분을 다시 끌어당겨주는 역할을 해요.”
“아······.”
링거를 맞는 동안에는 은설도 준수도 말이 별로 없었다.
보글보글 거품이 나는 링거병을 보며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그제야 문득 생각이 났는지 은설이 준수에게 물었다.
“회사는?”
“빨리도 물어본다. 반차 내고 나왔어. 내일도 연차야.”
“정말?”
“올해 휴가는 물 건너 간 거지.”
“하긴. 태국도 갔다 오고. 앞으로도 이런 일이 또 생길지 모르는데. 아껴둬야지.”
“이런 일이 없어야지.”
준수가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게 뜻대로 되나. 섭섭하게. 누워 있는 사람한테 너무한 거 아녜요?”
“은설 씨 친구한테 하는 말이지.”
“쉿. 저기 왔어요.”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걸 알고 있기라도 한 듯 때맞춰 현준이 들어왔다.
“좀 어때?”
“많이 좋아졌어. 이제 좀 누울만하기도 하고. 배가 훅 꺼지니까 헛헛하기도 하고 배가 고프 것 같기도 하고 그래.”
“어제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던 배가 이제 고파오나 보네.”
은설이 현준에게 말하고 있는 중간을 가로질러 준수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현준은 준수의 말을 못 들은 척하며 은설에게 현재 상태와 앞으로 맞닿뜨리게 될 상황을 설명했다.
“몇 시간 지나면 다시 복수가 차오르긴 할 거야. 그래도 아까보다는 한 결 나을 거고. 이온음료 많이 마시면서 소변을 많이 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해."
"응. 응? 다시 찬다고?"
"응. 근데 복수천자를 또 할 정도까진 아닐 거야."
“이식은? 나 내일모레 할 수 있는 거야?”
은설이 가장 궁금했던 것을 현준에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