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두 줄

<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by 이소정

“두 줄······. 허억!”

임테기엔 분명히 두 줄이 그어져 있었다.

처음 본 두 줄에 밀려온 감동이 은설의 숨을 턱 하고 막았다.

흐릿했지만 분명 두 줄이 맞았다.

눈물은 나지 않고, 대신 얼굴 가득 자리를 잡은 환한 웃음이 스프레이를 뿌린 머리칼처럼 고정된 채 몇십 분이나 지속이 되었다.

은설은 가지고 있던 임테기를 종류별로 다 꺼내어 종이컵에 받아 두었던 아침 첫 소변에 담그고 또 담갔다.

“다 두 줄이다!”

번진 소변이 늘어놓은 임테기들에 차례차례 보라색과 분홍색의 두 줄을 새길 때마다 은설의 표정이 환해지고 또 더욱 환해졌다.

마치 아기의 50일 사진을 찍는 엄마처럼 은설은 임테기마다 독사진을 찍어주고, 한꺼번에 나란히 뉘어 단체 사진을 찍어 주었다.

그렇게 폭풍처럼 사진을 찍고 나서야 은설은 흥분한 마음을 조금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리고, 준수에게 다섯 임테기들의 잘 찍힌 사진 여섯 장을 준수에게 전송했다.




1은 은설의 기대처럼 빨리 사라지지 않았다.

어느 때 보다도 초조한 마음으로 준수의 답신을 기다리며 은설은 방안을 계속 서성였다.

“아니지, 쓸데없이 움직이지 말아야지.”

들을 사람 없는 집안에서 홀로 하는 말인데도 은설의 입에선 볼륨이 조절되지 않은 혼잣말이 나왔다.

한 시간쯤 지나고 나서 준수에게선 답메시지 대신 영상통화가 걸려 왔다.


[준수 씨이~!]


준수의 이름을 부르니 와락 눈물부터 나왔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두 줄 소식, 생애 처음인 이 기쁨을 자그마한 휴대전화를 통해 나누어야 한다는 사실이 억울하고 속상했다.

집에서라면 분명 은설을 부둥켜안고 집안 여기저기를 빙글빙글 돌며 축하의 세리머니를 해주었을 준수였다.

준수는 축하의 말을 전할 새도 없이 우는 은설을 달래느라 바빴다.

한참을 달랜 후에야 비로소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요. 우리 마누라.]


하며 역시나 울먹이는 목소리로 진심 어린 축언을 할 수 있었다.

준수와의 통화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속은 괜찮은 지, 먹고 싶은 것은 없는 지를 묻는 준수에게 ‘괜찮다, 아직 그런 건 없다’는 말을 할 때 누군가 준수를 찾는 듯한 소리가 화면 너머로 들려왔다.


[어서 가봐요.]

[미안. 내가 이따 퇴근하고 또 전화할게. 참, 부모님들한테는 연락했어?]

[아니. 모레 병원 가서 피검해 보고 결과 확실히 나오면 말씀드리게.]

[그래, 알았어요. 그럼 이따 또 해.]


바쁜 일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화면에는 준수의 얼굴만 담길 뿐이었지만 그의 표정에서 총총히 사라지는 걸음이 보였다.

은설은 그것이 못내 섭섭하고 아쉬웠다.




“아냐. 좋은 생각만 해야지!”

기쁘고 즐거워야 했다.

작은 스트레스도 독이 되어 자궁 어딘가에 해를 끼칠까 두려운 마음이 휙 하고 은설의 뇌리를 스쳤다.

“아냐, 이런 생각도 하지 말아야 돼!”

준수와의 통화 이후에도 여전히 흥분이 가라앉지 않고 있는 자신의 상태를 은설의 본능이 긍정적이지 않은 상태로 파악했다.

은설은 두서없이 거실을 서성거리고 있는 발길을 소파 쪽으로 돌렸다.

그리곤 어느 때보다도 차분한 몸놀림으로 소파 위에 엉덩이를 내리고 양 발을 다소곳이 들어 팔걸이 위에 살짝 걸친 다음 천천히 상체를 뉘었다.

마치 동화 속의 잠자는 미녀처럼.

두 손을 다소곳이 아랫배 위에 올린 채로 은설이 생애 첫 태교를 시작했다.

“애기야. 안녕? 엄마야. 만나서 반가워.”

휴대전화 번호가 아닌 진료실의 전화번호를 통해 현준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피검수치가 30 정도 나왔어.]

[아······.]


이미 수많은 블로그 글들을 보아왔던 터라 은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이틀 후 한 번 더.

이미 다 알고 있었지만 은설은 검색창에 시험관 피검수치, 2차 피검, 피검 수치 30 등을 입력하여 다른 사람들의 사연들을 찾아 읽었다.

대다수가 하릴없이 사그라져버린 아가에 대한, 그리고 그 과정을 견뎌내느라 처절해져 버린 본인의 심정을 다룬 글이었다.

하지만 30부터 시작하여 조금씩 조금씩 수치가 올라 결국에는 무사히 출산까지 이어지더란 글도 분명히 있긴 있었다.

난임카페의 댓글 들에서는 그러한 사연이 조금 더 많이, 자주 목격이 되었다.

그러한 글들을 찾아 읽는 것만으로도 은설은 조금 위로가 되었다.

주변에는 소식을 조금 더 나중에 알리고 싶었지만 피검일을 알고 있는 친정어머니에게는 둘러댈 말이 없었다.


[아직 확실하게는 말 못 해요. 2차 피검까지 해 봐야 정확히 알 수 있대요.]

[그게 언젠데?]

[일주일 뒤요. 병원마다 다를 걸요. 보통 임신도 5주 넘어야 병원에서 확인해 주잖아요. 그때 아기집 같은 것도 같이 보여주고 그러지 않나?]


알고 있는 지식을 이리저리 짜깁기하여 은설은 거짓말을 했다.

언니의 난임을 이미 함께했던 터라 어머니의 사전 지식도 만만찮았지만 그런 것은 개의치 않았다.

어머니도 조금은 상황을 파악한 듯 더 깊게 캐묻지 않았다.

확실해지면.

그때 이실직고를 하면 될 일이라고 은설은 생각했다.

그래봐야 겨우 일주일.

유통기한이 우유보다 짧은.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오직 은설의 마음을 덜 불편하게 해 줄 뿐인 거짓말이었다.




48년 같은 48시간이 침대 위에서 지나갔다.

합격을 기원하는 수험생처럼 약간의 터부라도 있는 행동들은 모두 배제한 채로 지낸 은설이 만 이틀 만에 샤워를 하고 집을 나섰다.

수치는 53 정도로 늘어 있었다.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아.”

현준은 주말을 보내고 돌아오는 월요일쯤에 3차 피검사를 하자고 했다.

은설의 입장에선 두 배에서 아주 약간 못 미치는 수치 상승률이었다.

누군가는 이런 식으로 수치가 조금씩 늘어 결국 난임클리닉을 졸업했다고 했다.

은설이 현준보다 밝은 표정으로 “월요일에 다시 만나자”는 인사를 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우리 둘째 9주 차에 심장소리 들었잖아.]


오랜만에 안부 전화를 걸어온 영선이 은설의 상황을 듣고 선 고무적인 이야기를 해주었다.

늦게 착상되는 애들이 있다고.

9주에 심장소리를 들었어도 아이는 37주에 3.4킬로그램으로 나올 만큼 빠르고 튼튼히 잘 자랐다며 미리 걱정할 일이 아니더라는 자신의 경험을 전했다.

은설이 듣고 싶던 종류의, 마음을 다독이는 데에 꽤나 도움이 되는 이야기였다.

혼자였지만, 집 앞 브런치집에서 제법 근사한 식사를 할 용기가 났다.

왠지 새콤한 것이 당기는 것 같아 생과일주스를 입에 물고 산책도 했다.

폭풍 전야처럼 평화로운 은설의 주말이 아주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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