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유산이 진행 중인 걸로 보여.”
초음파를 본 현준이 안쓰러움이 가득 배인 표정과 어울리지 않게 목소리를 담담히 내며 은설에게 자궁 안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은설이 본능적으로 초음파 기기의 화면 쪽을 돌아보며 제 눈으로 상황을 확인했다.
이제껏 보아왔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구성을 하고 있는 화면.
둥글게 부푼 자궁벽 안에 찌그러진 까만 구멍이 보였지만, 그 안은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아직 초기라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것 아냐?”
은설이 부질없는 질문을 했고, 현준은 전과 달리 자세한 답을 해주지 않았다.
“조금 달라.”
현준의 입이 돌리고 돌린 대답을 내놓았지만, 은설의 가슴에 꽂힐 날카롭고 뾰족한 비수는 그것으로도 충분히 만들어졌다.
현준이 자연적으로 배출되길 기다려 보자면서 일주일 후로 재진일을 잡았다.
늦은 오후 집에서 메시지로 전달받은 3차 피검 수치는 17대로 떨어져 있었다.
“유산이 정말 맞나 보네.”
그때까지 차라리 현준의 진단을 신뢰하지 않기로 했던 은설의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인공수정에 실패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슬픔이 밀려왔다.
자궁벽에 뿌리를 내리려 몸부림치고 집을 짓느라 애썼을 배아가 결국은 착상을 마치지 못하고 사그라든 뱃속 안의 장면이 은설의 상상 속에서 자꾸만 펼쳐졌다.
생각하지 않으려 아무리 애를 써도 미쳐 돌아가는 머릿속에 계속 그 장면을 떠올렸고, 그럴 때마다 은설은 한없이 서럽고 미안해졌다.
[화학적 유산의 대부분은 배아의 유전자 이상 때문입니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에요. 엄마가 자책할 문제가 아니랍니다.]
화학적 유산을 겪은 이들을 위로하는 글들이 많았지만 마음에 와닿지가 않았다.
'나쁜 것들은 철저히 가려 먹고, 좀 더 잘 쉬고 잘 잤더라면 분열과정 중에 벌어진 유전자 이상을 막지 않았을까.'
따위의 전혀 합리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않은 자책만이 떠올라 스스로를 괴롭힐 뿐이었다.
은설이 받기를 두려워한 친정어머니의 전화가 걸려왔다.
[암튼 그렇게 됐어요.]
[그때 그 가전제품샵에서 다리 다친 거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은설이 마치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것처럼 낮게 빈정대는 말투로 어머니의 분석을 비아냥거렸다.
머쓱해진 어머니 쪽 송화기에서 침묵이 흘러나왔다.
그것이 버릇없는 은설의 말투에 대한 화 때문인지, ‘어머니’라는 존재가 본능적으로 갖고 있는 죄책감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은설이 재빨리 사과를 하며 통화를 마무리 지으려 했다.
[죄송해요. 일이 이렇게 돼서. 기대하고 계셨을 텐데.]
[니가 제일 속상하지, 뭐. 엄마 아빠는 신경 쓰지 말고 푹 쉬어. 여차하면 이리 건너오고.]
[아니에요. 화학적 유산을 하면 그게 다 그냥 생리처럼 나온 대요. 양이 좀 많은 생리처럼. 집에 있는 게 제일 편해요.]
[그래도 유산인데 몸조리를 좀 해야지.]
[그럴 거 없어요. 요즘처럼 임테기 해보고 4주 초부터 확인할 수 있는 시절이 아녔을 때는 '그냥 좀 생리가 늦게 시작하나 보다' 생각하며 지나 보냈던 일이에요.]
세상 더없이 쿨하게 이야기를 하며 은설이 친정어머니와의 전화를 서둘러 끊었다.
“거짓말. 이걸 어떻게 모르고 지나갈 수 있어.”
우울증 환자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먹지 않고 며칠을 보낸 후였다.
주말을 앞두고 울컥 선홍색의 피가 쏟아졌다.
아기가 진짜로 나를 떠나려나보다 하는 생각에 은설의 눈에서도 울컥 눈물이 났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심한 생리통이 밤새 이어졌고, 출혈이 시작된 지 몇 시간이 흐른 후 손바닥 반 만한 핏덩이가 쏟아져 나왔다.
은설은 반사적으로 변기 안을 들여다보았다가 이내 눈을 질끈 감았다.
평소의 생리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출혈량도 많았다.
가장 크고 두꺼운 오버나이트를 대고, 옷매무새를 정리한 은설은 그러고도 한동안 새빨간 변기물을 내리지 못했다.
저 핏덩이 안에 있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아주아주 작은.
사람이 되려다 멈춘 나의 아기씨.
예전 같으면 ‘이번 달거리 참 호되게 치른다’ 하며 모르고 지나쳤을 화학전 유산이라지만 은설은 분명히 알고 있었으므로,
그러므로 눈앞의 핏덩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변깃물에 휩쓸어 버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저것을 건져다가 무엇을 해줄 수가 있단 말인가.’
준수라도 있었다면 대신 떠나보내 달라며 도움을 청했을 거란 생각이 드니 더욱 서러웠다.
뚜껑을 내린 변기를 끌어안고 한참을 흐느끼고 난 후에야 비로소 은설은 은색의 레버를 조심스레 눌렀다.
현준의 진료가 토요일에도 있었지만 은설은 병원에 가지 않았다.
핏덩이를 쏟은 이후, 출혈이 꽤 많고 복부의 통증이 심하긴 했지만 견디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었다.
진통제 몇 알로 당장의 통증을 진정시키며 은설은 주말 내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빛 한 점 켜지 않은 집안에서 누워만 지냈다.
월요일 오전, 힘없는 발걸음으로 진료실로 들어온 은설을 보곤 현준도 다소 놀란 눈치였다.
아무도 없는 광야를 홀로 헤매다 돌아온 사람처럼 은설의 눈은 퀭하게 꺼져 있었다.
현준 앞에 앉은 은설이 차분히 지난 주말을 힘겹게 보내고 온 자신의 상태를 설명했다.
“손바닥만 한 핏덩이가 나왔어.”
“탈락한 아기집이 자연배출 되었구나.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된 것은 다행이네."
"다행인 거구나."
"초기 유산의 대부분은 태아의 유전자에 이상이 있기 때문인 경우야. 결코 네 탓이 아니니까 너무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알아. 나도.”
은설이 조금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현준이 자궁의 수축을 돕는 약을 처방하겠다는 말 끝에 은설에게 물었다.
“밥은? 먹었어?”
“이제 먹으려고. 약 먹으라며.”
“꼬박꼬박 잘 챙겨 먹어. 힘들면 다시 친정가 있는 건 어때?”
“······. 나 바로 다음번 이식 진행할 수 있는 거니?”
은설이 대답 대신 다음번 시술에 대해 물었다.
“화학적 유산은 엄밀히 말하면 유산으로 집계조차 하지 않는 단계야. 더구나 형성됐던 태반도 자연배출 되었고 초음파 상에 특별한 문제도 보이지 않으니······."
"바로 할 수 있단 얘기지?"
"응. 근데 정말 그렇게 하려고? 한 달 정도는 쉬어보는 게 어때?”
“난임휴직 기간이 이제 얼마 안 남아서.”
“아······.”
평소 은설에게 한 번을 하더라도 몸과 마음이 최상인 상태에서 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말하던 현준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은설의 말에 별다른 토를 달지 않았다.
이제까지 은설이 이토록 힘겨운 내색을 하며 진료실을 들어섰던 적이 없었다.
지금으로선 은설의 마음을 회복시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연이은 시술이 그 방법이 될 수 있다면 현준은 그리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푹 쉬어야 해. 네가 우선 회복이 되어야 이식도 하는 거야.”
“응.”
현준에게 짧은 대답 한 마디만을 남기고 은설은 진료실 의자에서 일어나 총총히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준수에게 다음번 이식을 준비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남기곤 휴대전화를 가방 속 가장 깊숙한 곳에 처박았다.
그 누구의 어떠한 위로나 조언도 듣고 싶지 않았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