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그 담엔 뭐 너도 알만한 일들 일어났지. 형석이랑 같이 한국 들어와서 짧게 한 바탕 난리 치르고. 근데, 아기가 이미 생긴 후라서 그런지 부모님들도 더 말 않으시더라고."
"당연하지!"
은설이 저도 모르게 높아진 목소리에 스스로 놀라선 주위의 시선을 살피는 시늉을 하며 속삭였다.
"기지배, 나한테는 좀 일찍 알려주지 그랬어."
"전화로 소식 전하기 싫어서 그랬어, 미안해."
"한국에 들어왔으면 들어왔다고 소식이라도 좀 빨리 전해주든가. 여러 가지로 섭섭해, 너."
"상황 정리하고 바로 다시 태국 들어가야 했어. 거기서 벌여 놓은 것들이랑 집을 정리해야 해서. 근데 그게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렸지."
"그럼 완전히 한국에 들어온 지는 얼마 안 된 거야?"
"석 달쯤? 그쯤 된 거 같다."
"뭐야, 석 달 전에 들어와 놓고 이제야 나를 만나준 거야?"
"에이, 과정 다 알면서 뭘 그래. 형석이랑 살 집 구하고, 짐 들이고, 결혼식······, 형석이가 초혼이라 조촐하게라도 치르기로 해서 그것들 좀 준비하고 그러느라 바빴잖아."
"그거야 그렇지만."
"자, 이거. 니 꺼.”
수지가 작은 손가방에서 수줍게 청첩장을 꺼내어 내밀었다.
“친구들 안 불렀는데, 그래도 너는 와줬으면 했어. 네 덕에 생긴 아기랑 남편이니까.”
“본의 아니게 중매를 섰네, 하하.”
“맞아. 고마워.”
“의도를 했어야 고마운 거지. 너랑 형석이 인연이 이어지려니까 중간에 어쩌다 내가 낀 거지 뭐. 결혼식 언제야? 어머, 2주 뒤네?”
“응.”
“아, 나 그때 시험관 2차 하고 있을 거 같은데.”
“아, 그래? 그럼 오지 마.”
“미안.”
“고민도 하지 마. 미안해도 하지 마.”
“의미 있게 생각해서 불러준 건데 못 가서 미안.”
“니 마음 누구보다 잘 안다. 오면 화 낼 거야. 오지 마.”
“대신 선물 진짜 너 갖고 싶은 걸로 사 줄게. 뭐 필요한 거 있어?”
“결혼 선물은 형석이 사줘. 난 됐어.”
“그럼 아기 꺼 뭐 뭐 샀어? 아직 안 산 거 뭐야? 참, 애기 성별 나왔지? 부뜰이 뭐니? 아들? 딸?”
“아들. 아직 하나도 안 샀어. 얻어다 놓은 건 많아. 주변에서 물려받을 만큼 받고 모자란 것들 추가로 살 생각이어서.”
“그럼 봐서, 아기 살림 살 때쯤 내가 연락할게. 목록 뽑아 놓고 있어.”
“고마워.”
아기에게 필요한 물품에 대해 들었던 풍월을 한참이나 더 읊은 후에야 은설은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우리가 이런 대화를 나누는 날이 오다니, 참.”
“너도 얼마 안 남은 거 같아. 느낌이 그래.”
수지가 담백한 덕담을 했다.
“니 느낌이 그렇다니 믿어 봐야겠다.”
“알지? 나 옛날부터 감 좋았던 거. 내가 내 일은 몰라도 남의 일은 잘 맞췄잖아.”
“맞다. 그랬다.”
“원래 제삼자가 잘 맞추잖아.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니까.”
“내 시험관 시술이 객관적으로 잘 될 것 같이 보이는 거야?”
“응. 몇 차에 될지는 못 맞춰도. 근간에 되긴 될 거 같아. 쉰 지 6개월 넘었잖아. 속 썩이는 남편도 없고. 아니 준수 씨는 속 썩이는 남편은 아니었지만."
"가끔 썩여."
"그 정도면 양호하지, 뭘. 아무튼 딱히 챙겨 줘야 는 남편도 없고. 에너지가 다른 데로 새지를 않잖아.”
“근거가 없는 분석인데도 굉장히 과학적으로 들린다. 니 말을 믿어봐야겠어.”
“그래. 믿고 얼른 가져라. 우리 부뜰이 1월에 태어나. 내년에 같이 낳아서 같이 키우자.”
은설이 '꼭 그러마.'를 외치며 수지와 하이파이브를 쳤다.
결의를 다지듯 주먹을 불끈 쥐고, 머리에 띠를 두르는 시늉을 하며 수험생 모드로 시험관에 임해보겠단 다짐을 하기도 했다.
속이 상하거나 질투에 불타지는 않아서 수지와 우스갯소리를 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지만, 은설의 마음 깊은 곳에선 자꾸만 '불안'이 스멀스멀 기어올라 왔다.
'임신과 육아'라는 결혼한 여자들의 흔한 일상에서 자신만 영원히 '제삼자'로 남을 것만 같은 불안감이.
“불편했어요?”
움찔거리는 은설에게 현준이 당황과 걱정이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조금요. 긴장해서 계속 몸에 힘을 주고 있었어서 그런 거 같아요. 지금은 괜찮아요.”
현준은 은설의 자세가 조금 더 안정이 될 때까지 약간의 텀을 두었다.
은설은 시술을 하는 현준의 손놀림이 전보다 훨씬 신속하고 정교한 느낌을 준다고 생각했다.
이식까지 걸렸던 시간은 3분.
아니, 56일.
쉼 없이 이어 하려던 두 번째 이식은 뜻하지 않은 일로 한 달 이 더 미뤄졌었다.
“해동 과정에서 배아가 모두 도태되었어.”
“뭐?”
적잖이 충격을 받은 은설의 목소리가 격앙되었다.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귀하고 아까운 배아들을 4개씩이나 함께 묶어 동결시킨다는 것도 이해했다.
하지만 그것은 최소한 50%는 생존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은설이 찾아본 글들에선 최근 동결배아 해동 과정 중의 도태율은 5% 미만이라는 내용도 있었다.
“어떻게 전부 다 그렇게 될 수가 있어?”
“해동과정 중에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지만 밝히기는 쉽지 않아. 3일 배양 배아들이라 5일 배양 배아보다는 도태율이 높기도 하고.”
은설은 해동과정 중의 문제에 대해 먼저 이야기한 것이 그나마 친구이기 때문에 해줄 수 있었던 현준의 배려라 생각했다.
동시에 현준이 한 이야기의 핵심이 해동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를 따지 묻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한 것임을 은설도 잘 알고 있었다. 3일 배아의 연약함이 100% 도태의 원인으로 지목되리라는 것도.
화가 났지만,
은설은 따져 묻는 노력과 에너지를 비축해 두기로 했다.
“먹던 약은 어떻게 해?”
“중단해. 이번 텀은 넘기고 다음번 생리 시작하면 진료받으러 와.”
“알았어.”
“미안해.”
“······. 니가 녹였어?”
“응?”
예상치 못한 은설의 질문에 현준이 당황했다.
“니가 녹인 거 아니면 됐어. 내 배아들 녹인 사람이 누군지 몰라서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 중이거든."
"······."
"길에서 만나면 딱 내가 복수천자 하느라 겪었던 고통만큼 아프도록 그 사람 명치를 주먹으로 때려줬을 거야.”
“그래. 그만큼 속상한 거 알아. 그래서 더 미안하다.”
“내 배아들 녹인 사람 대신해서 하는 사과는 여기까지만 들을 게."
"진심인데."
"알아. 근데, 니가 그렇게 진심으로 속상한 목소리를 내면서 ‘미안하다’ 하니까 내가 지금 화나는 게 꼭 속이 좁은 사람이라서 그런 것처럼 느껴지잖아.”
“아니야. 충분히 쿨해, 지금.”
“그것도 싫어. 쿨하기 싫은데 나 지금 불굴의 의지로 화를 누르면서 쿨한 척하고 있는 거야. 의사가 친구라 욕을 할 수가 없어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네.”
“일단 끊자. 마음 좀 가라앉으면 내가 별일 없던 것처럼 다시 연락을 하겠지, 뭐.”
현준의 불편함을 풀어주기 위해 서둘러 제 마음을 다스릴 만큼의 여유가 은설에게 없었다.
혼란스러운 자신의 머릿속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은설의 하루하루가 짧게 지나갔다.
‘아직 더 쉴 때라는 신의 뜻일 수도 있다.’
‘지나치게 많이 과배란 되어서 난자 하나하나의 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았던 거 아닐까?’
‘5일 배양 배아들도 상태가 영 아니올시다이면 어쩌지? 3조와 4조 배아들은 해동이 다 잘 될 거란 보장도 없는 거 아닌가?’
‘이런 식으로 계속 한 달 한 달 미뤄지다 결국 복직 앞두고 채취를 한 번 더 하게 되는 건 아닐까?’
‘또다시 복수천자를 하게 되면 어쩌지? 애매하게 3월에 채취를 하게 되면······. 그땐 진짜 바빠서 입원할 새가 없을 텐데.’
배아 해동 실패 사건은 은설로 하여금 6개월 뒤 1년 뒤의 불행한 상황까지 상상하게 만들었다.
복잡한 생각들로 어지러운 마음 한편엔 마치 천재지변으로 인해 수능시험이 유예된 수험생 같은 불안한 평온도 있었다.
‘뭔가 느낌이 불안했는데 차라리 잘 된 건지도 몰라. 아니,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느낌이 안 좋았던 건가?’
반드시 지나가고야 말 불행이 액땜처럼 가볍게 은설을 훑고 간 것일지도 몰랐다.
해동한 배아가 몽땅 다 도태되는 일을 그만큼 드문 일이었다.
[잊어, 은설아. 해동 중에 도태된 배아들이라면 이식까지 진행을 했어도 니 아이가 되지는 못했을 거야.]
[그랬겠지.]
[차라리 잘 된 걸 수도 있어. 이식이 진행된 게 아니라 시험관 시술 차수에 산입 되진 않으니까. 한 번을 받더라도 건강한 배아들로 시술받는 게 더 좋잖아.]
속상한 마음에 은설은 수지에게 전화를 걸었고, 수지가 아프지만 현실적인 조언을 했다.
수지도 태국에서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은설은 수지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이기 때문에 참고 들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화가 났다.
‘차라리 잘 됐다니······.’
은설이 주방 구석에 있는 쓰레기통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잊지 않고 챙기기 위해 식탁 위해 두었던 소독제 질정과 항생제를 쓸어 모조리 버렸다.
“이건 좋네. 안 먹고 안 넣어도 되니.”
씁쓸히 웃는 은설의 얼굴엔 여전히 화가 서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