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왕진

<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by 이소정

“오늘은 기훈 씨 피앙세께서 보이지 않는 것 같은데요?”

미주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기훈의 여자를 찾았다.

마치 미주와의 사이에선 질투할 만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처럼 기훈이 항상 대동하고 다녔던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쌍둥이 만삭이라 그런가 이제 잘 움직이지를 못해요. 집안에서도 조금만 걸으면 배가 너무 무거워서 신경질이 난다네요. 하하.”

웃으며 말하는 기훈의 표정에서 만삭의 산모를 챙기느라 그가 무척이나 애쓰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럴 거예요. 배가 무거운 것도 무거운 거지만 아마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고 힘이 들 거예요. 쌍태 임신이 산모 심장에 꽤나 무리를 주거든요. 몇 주죠?”

“주수는 매번 들어도 헷갈려서. 아무튼 내일모레가 애들 태어나는 날입니다. 잡아 놓은 수술날까지 무사히 잘 버텨줬어요, 다행히.”

“미리 축하드려요.”

“미주 씨 덕분이죠. 지금까지 무사히 버틸 수 있었던 거요. 그 사람이나 저나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별말씀을.”

이제 겨우 인사를 나누었을 뿐인데 기훈의 피앙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뭐야! 왜 그래? 여보세요? 대답 좀 해봐! 여보세요?”

길게 이어지지 못한 통화에 기훈의 얼굴이 하얗게 내려앉았다.

“전화 끊겼어요?”

“아, 아뇨.”

“줘 봐요.”

미주가 기훈의 전화를 빼앗아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가느다랗게 신음소리가 넘어왔다.


[영미 씨. 한미주예요. 내 말 들려요?]


전화를 다시 찾아들었는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곧 기훈의 여자가 힘겹게 대답을 했다.


[네······.]

[진통이 온 것 같아요?]

[네······.]

[양수는? 터졌어요?]

[네······. ]

[진통이 몇 분 간격이에요?]

[모르겠어요. 자주 아파요. 아흐아아아. 또 아팠어요.]


미주가 휴대전화의 송화기 부분을 손으로 막고 기훈에게 물었다.

“영미 씨 위치요. 여기서 멀어요?”

“멀지 않아요. 10분 거리.”

“안 막혔을 때 10분?”

“네”

“결정해요. 119 불러서 산모를 바로 병원으로 보낼 거예요, 아니면 지금 바로 기훈 씨가 산모 데리러 갈 거예요?”

“내가. 119는······. 노출되면 곤란해져요. 영미도, 나도, 미주 씨도.”

“알겠어요.”

기훈의 의중을 파악한 미주가 다시 영미와의 통화를 시도했다.


[영미 씨! 내 말 들리죠?]

[네에. 흑흑.]

[기훈 씨하고 내가 영미 씨 있는 쪽으로 갈 거예요. 최대한 편한 자세로 누워 있어요. 전화는 끊지 말고. 기훈 씨랑 계속 통화하면서 상태 전해줘요.]


미주가 얼이 빠진 표정의 기훈에게 휴대전화를 넘기며 말했다.

“내 차로 가요. 주소 불러줄 정신은 있는 거죠, 지금?"




미주가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무시하고 골목길을 가로지르는 지름길로 차를 몰았다.

당황한 표정의 기훈이 운전대를 잡고 있는 미주를 빤히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걱정 말아요. 친구네 집 근처라 노상 이 동네서 놀아요, 요즘. 오피스텔 앞까지 7분 안에 도착할 테니 영미 씨나 잘 달래주고 있어요.”

미주가 기훈을 안심시키며 한쪽 손으로는 현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무슨 일······.]

[선배!]

[왜 소리를 지르고······.]

[뭐야, 소리 왜 이래? 선배도 핸즈프리? 차 안이에요?]

[어. 퇴근 중인······.]

[오, 타이밍 완전 땡큐네. 차 돌려요, 오밸리스크오피스텔 알죠? 청담사거리. 그리로 와요. 1007호.]

[무슨 소리야, 거길 내가 왜······. 무슨 일 있어?]

[트윈이에요. 양수는 터졌고. 진통이 왔다는데 몇 분 간격인지 잴 정신이 없는 걸로 봐서 꽤 진행이 된 거 같아요.]

[아니 그럼 119를 부르던가 앰뷸런스를 불러서 병원으로 옮겨야지 왜 나한테······.]

[자세한 건 나중에요. 당장 와줘요. 초산이라 급박하게 진행되진 않겠지만······.]


“두···둘째, 셋쨉니다.”

“네?”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중임에도 미주의 눈이 동그래졌다.

“딸이 하나 더 있어요. 10살 차이 나는······. 십 년 전에, 유학생 시절에 영미를 만나서······.”

“뒷얘기는 나중에요.”


[선배, 경산이래요.]

[들었어. 지금 차 돌렸어. 먼저 도착하는 거지?]

[네.]

[이미 다 내려와 있을 수도 있어. 확인해 보고 상황 계속 전해줘.]

[알겠어요.]


오피스텔에 도착하자마자 기훈이 차에서 뛰어내렸다.

“잠깐만요!”

미주가 기훈을 잠시 불러 세웠다.

“왜요?”

발을 동동 구르는 기훈을 두고 미주는 트렁크에서 커다란 가죽가방을 꺼내었다.

“왕진가방?”

“의사잖아요.”

가방을 보고 조금 안심이 되었는지 기훈의 얼굴색이 조금 누그러졌다.

“평소에도 그런 거 다 챙겨가지고 다녀요?”

“혹시 모르니까.”




산모는 침대 프레임에 등을 기댄 채로 방바닥에 비스듬히 앉아 있었다.

양수와 피로 범벅이 된 침실을 보며 기훈은 이미 얼굴색이 하얗게 질린 상태였다.

“정신 차려요, 쌍둥이 아빠.”

“······. 네.”

미주가 서두르는 기색 없이 영미에게 다가가 나긋한 목소리로 안심부터 시켰다.

“이제 우리 왔으니까 괜찮아요. 알죠? 저 의사인 거. 저뿐만이 아니고, 지금 아주아주 믿을만한 산부인과 선생님도 이리로 오고 있어요. 그러니까 더더욱 걱정 말고.”

“흐흐 흐흑. 선생님, 무서워요. 우리 아기들 괜찮겠죠?”

“당연하죠. 이미 날짜 다 채우고 뿅 하고 나올 날만 기다리고 있는 애기들이잖아요. 잘 있나 내가 좀 살펴볼게요.”

미주가 왕진가방에서 꺼낸 소독제로 간단한 소독을 마친 뒤 수술용 장갑을 손에 끼었다.

“기훈 씨, 내 전화 좀요. 통화 버튼 눌러서 귀에 대줘요.”

기훈이 허둥대는 와중에도 용케 미주의 지시를 따랐다.

“선배, 자궁문은 거의 다 열린 거 같아요. 이대로 이동이 가능하려나 모르겠네. 어디쯤이에요?”




딩동.

미주의 질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어 준 기훈을 보고 움찔 놀라는 듯하더니, 현준이 곧장 산모가 있는 침실로 들어왔다.

현준의 손에도 같은 디자인의 왕진가방이 들려 있었다.

“날아왔어요?”

토끼 눈을 뜬 미주가 얼굴에 안심이 섞인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응. 카메라 일곱 대 정도만 무시하고 지나치면 내 차 속도가 비행기랑 비슷하게 나와. 스포츠카잖아. 산모 이름이?”

“영미 씨요. 제영미씨.”

“쌍둥이 엄마? 제가 바로 산부인과 의삽니다."

"뭐야, 쌍둥이 엄마라고 부를 거면서 이름은 왜 물었대?"

미주가 살짝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현준이 미주를 잠시 째려보다가 이내 다시 산모에게 집중했다.

"이제부터는 걱정 놓고 내가 하자는 대로만 하면 돼요. 아셨죠? 잠깐 애기들부터 좀 볼게요.”

미주와 마찬가지로 수술용 장갑을 챙겨 낀 현준이 영미의 치맛단을 슬쩍 들어 올리자마자 도로 내리며 미주에게 속삭였다.

“이동 못해. 여기서 낳아야 해. 머리가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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