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꿈꾸던 날들

<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by 이소정

현준의 손길을 그대로 내버려두고 있는 스스로에게 당황한 은설이 살짝 고개를 뒤로 뺐다.

은설이 난감해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현준도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준의 눈은 자신의 손을 거부하지 않던 은설의 모습만을 바라 보려했다.

현준의 마음속에는 일방적인 행복감이 차올랐다.

"꿈 같다."

"응?"

"이렇게 있는 거. 너랑 마주 앉아서 같이 밥 먹고 웃고."

언제나 꿈꾸어 왔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말 그대로.

부질없이 사그라드는 꿈과 다르지 않은 순간.

지금이 딱 그러하다는 것을 현준도 알고 있었다.

아기가 자리를 잡기까지였다. 어쩌면 2주. 혹은 3주?

은설에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줄 수 있는 시간.

아이러니하게도 현준의 머릿 속에 준수의 얼굴이 스쳤다.

지금 떠나있는 그가 고마웠다.




“벌써 10시네. 갈게. 너 자야해.”

현준이 시계종소리를 들은 신데렐라처럼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현관에서 배웅하며 은설이 잊으면 안된다는 듯 현준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내일 아침엔 여기 오지 마. 늦게까지 푹 자다가 바로 출근해."

"왜? 내일 뭐 사올지도 벌써 다 정해 놨는데."

"이미 네가 사온 걸로 두 끼는 더 먹을 수 있어. 추어탕도 아직 많이 남아 있고.”

“질리지 않겠어? 먹었던 거 또 먹으려면.”

“내일 아침에 뭐뭐 조합해서 먹으면 맛있을지 벌써부터 계획중인데······.”

“하하, 그래?”

“그리고 늦잠도 잘 거야. 연락도 없이 여인네 집에 새벽부터 찾아오는 건 실례라고, 이 사람아.”

“아, 그건 미안했어. 그럼 저녁에 올게.”

“······.”

은설은 저녁에 오겠다는 현준의 말을 차마 거부하지 못했다.




매일.

현준이 찾아 왔다.

현준이 오면 은설은 외롭지 않았다.

아니, 외롭고 싶지 않아서 다른 이들을 불렀을 때처럼 고단하지가 않았다.

난임 치료 과정을 궁금해하는 친구들에게처럼 시험관 후의 상태가 어떠한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고, 친정 식구들 앞처럼 과하게 조심하지 않아도 되었다.

매일 저녁 찾아오는 현준에게 ‘이제 그만 오라’는 말을 하지 않는 자신을 은설은 애써 그런 식으로 이해하려 했다.

오로지 이식 이후의 모든 날들을 안정적으로 보내기 위해 현준을 이용하는, 이기적인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오늘 아침에 두 줄을 봤어.”

은설의 고백에 현준이 ‘우선’ 활짝 핀 미소를 보여주었다.

“기쁜 소식이네.”

“약간 흐려.”

“아주 초기라 그래. 내일이 1차피검 날이지?”

“응.”

“내일은 좀 더 정확히 알 수 있을 거야.”

“긴장이 많이 되네.”

두 줄을 보고도 마냥 기뻐하지 못하는 은설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현준이었지만, 은설의 지금 상황에 꼭 맞는 위로는 해주는 것은 그것과 별개의 문제였다.

입술을 우물쭈물하던 현준은 결국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어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라고 묻는 것을 택했다.

“글쎄······.”

먹을 것에 관심이 없는 듯 심드렁한 표정을 하고서도 무엇을 먹을 지 곰곰히 궁리하는 은설의 얼굴이 귀여웠다.

현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은설의 눈과 마주치려 애쓰는 시늉을 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은설이 현준의 시선을 덩달아 빤히 바라보며 쑥스러운 목소리로 메뉴를 읊었다.

“······뚜, 뚝배기 불고기?”

“그래. 그거 먹으러 가자.”




현준의 차가 맛집으로 제법 유명한 불고기집 앞에 멈춰섰다.

“그냥 동네에서 간단히 먹어도 되는데.”

“지금이 제일 몸이 가벼울 때야. 맛집 찾아다니며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어 둬야 해.”

“그런가?”

현준의 말에 은설이 냉큼 차에서 내려 총총히 식당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뚝배기불고기 말고 다른 거 더 먹고 싶은 거 없어?”

“으음, 글쎄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아서······. 떡갈비?”

“그렇게 주세요.”

“아유, 맛있는 것만 골라서 시키시네.”

현준이 나긋한 목소리로 주문을 했고, 넉살 좋은 아주머니 서버가 탁월한 선택이라는 듯 엄지를 치켜 세우며 주방 쪽을 향해 ‘뚝둘 떡하나’를 외쳤다.

“여기 엄청 유명한 데야? 방송도 많이 나오고 그랬나봐. 벽 하나가 다 유명한 사람들 싸인이네. 진짜 맛있는 집인가 보다. 어떤 맛일지 궁금하네?”

호기심에 제대로 발동이 걸린 듯 보였던 은설은 막상 먹고싶다던 음식들 앞에서는 헛젓가락질을 하며 깨작이기만 했다.

“별로야?”

“아니, 그런 건 아니야. 고기도 많고. 야채도 많고.”

“근데 왜 이렇게 못 먹어?”

“모르겠어. 그냥······. 맛이 안 느껴지는 거 같아. 혓바닥이 고장이라도 난 건 지.”

“벌써 입덧 하는 건가?”

“진짜? 어머, 나 정말 그런 건 거야?”




‘입덧증상이 일찌감치 시작 되었으니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여도 될 거야. 그럴 거야.’

피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은설은 엊저녁 현준이 해주었던 말을 계속해서 되뇌이고 있었다.

길고 지루한 낮을 보내고 오후 해가 점점 붉어질 무렵 병원에서 기다리던 전화가 왔다.

“현준이 진료실 번호네!”

일단은 긍정적인 신호였다.

간호사의 메시지가 아니라 의사인 현준이 직접 전화로 소식을 전한다는 것은 적어도 ‘피검 결과 임신 가능성이 높음’이라는 의미를 뜻했다.

엊저녁까지 함께 있었던 현준이 묻는 안부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제발, 제발······.’

괜찮게 잘 지내고 있다는 말 아래로 은설은 계속 이 말 만을 주문처럼 외우고 있을 뿐이었다.

“피검수치가 101이 나왔어.”

“와!”

화학적 유산을 했던 지난 임신 때 보다 두 배 정도 높은 수치가 나왔다는 소식에 은설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눈물도 찔끔 나오려 했다.

은설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현준에게 가장 먼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현준아, 고마워. 다 니 덕분이야. 니가 신경 써 준 덕에······.”

“인사는 다음주에 서로 해주기로 하자. 아기집 보고 나서. 일단 이번 주는 이틀 간격으로 피검사를 더 진행할 거야. 수치가 잘 오르는 지 확인해 봐야지.”

“아, 응.”

뜨뜨미지근한 현준의 반응에 은설이 살짝 당황을 했다.

착상이 확실해보이는 수치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현준은 아직 기뻐하기는 이르다는 식의 뉘앙스로 말을 이어 갔다.

업무 중의 통화였으므로 현준과의 통화는 짧게 끝이 났다.

휴대전화 화면을 정리하며 은설은 현준에게 무척이나 섭섭한 마음이 들어 당혹스러웠다.

“뭐야, 사람 마음 불안하게. 기쁘지 않은 건가? 내가 임신을 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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