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 지극정성

<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by 이소정

현준은 ‘지극정성’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를 그대로 실천하려는 듯 보였다.

딩동.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은설이 미처 손질하지 못한 뻗친 머리를 한 손으로 누르며 현관문을 열었다.

“이거 받아.”

“이게 뭐야?”

“베이글 샌드위치. 나 간다.”

“읭?”

현준은 샌드위치가 담긴 종이봉투만 건넨 채 바로 뒤돌아서서 엘리베이터의 내려가기 버튼을 눌렀다.

“이거 주려고 온 거야? 이 아침에?”

자신의 뒤통수에 대고 하는 은설의 질문을 듣고서야 다시 고개를 돌린 현준이 ‘쓰윽’하고 웃음을 지으며 짧게 대답했다.

“응.”

“헐.”

“아참참! 레인지에 30초만 데우면 매장에서 먹는 것처럼 다시 맛있어진다더라.”

“알았어. 너 근데 요즘 그렇게 입고 출근하니?”

“응?”

현준이 그제야 자신이 보풀이 잔뜩 난 트레이닝복 차림이란 것을 알아챘다.

집안으로 고개를 돌려 시간을 확인한 은설이 현준에게 다시 물었다.

“25분 후에 첫 진료 시작하는 거 아냐? 요즘은 새벽 진료 안 해?”

“아니. 해.”

“잠깐 들어와 봐.”

먼저 총총히 집안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던 은설이 남자옷 한 벌을 꺼내와 거실에 오독하니 서있던 현준에게 건넸다.

“이거 입어 봐.”

“어······.”

달리 방도가 없던 현준이 순순히 은설의 말을 따랐다.




“얼추 맞네. 다리가 좀 짧긴 하지만 막 이상하진 않아.”

“누구 거야? 새 옷 같은데.”

“남편 꺼. 연애 초반에 내가 선물했던 옷. 이거 사주고 딱 한 번 밖에 못 입혀봤어. 연애 시작하고 나서 살이 갑자기 마구 쪄서.”

“아.”

“괜찮다. 입고 가도 될 거 같아, 유행 없는 디자인이라. 간호사들은 좀 놀랄 수도 있겠다."

"왜?"

"평소 니 스타일은 아니야, 이 옷이. 그렇지? 그래도 보풀 난 운동복보단 나으니 그냥 입고 가도록 해.”

“응. 그럼 할 수 없이······. 이따 저녁에 다시 와야겠네. 옷 돌려주러.”

“응? 아, 응.”

옷을 갈아입는 사이 시간이 더욱 빠듯해졌다.

“니 진료실 앞까지 15분이면 충분해. 내가 항상 그렇게 도착했어. 길 안 막힐 때.”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한 현준에게 은설이 응원의 말을 했다.

안타깝게도 현준은 평일 아침 출근시간대에 이동을 해야 했다.

은설이 말끝에 붙인 ‘안 막힐 때’라는 단어가 계속 맴을 돌며 현준이 직시해야 하는 현실이 무엇인지를 상기시켰다.

지각이 걱정되었지만, 현준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뒤를 돌아 좀 전에 은설에게 보여 주었던 미소를 한번 더 ‘씨익’하고 지어 보였다.

“도착하면 메시지 보낼 게. 쉬고 있어!”

현준과 한바탕 난리를 치른 은설이 갑작스레 찾아온 적막을 도리질을 하며 쫓았다.

“아, 정신없어. 은근히 분답스러운 스타일이야, 류현준.”

정신을 차리니 배가 고파왔다.

은설은 현준이 사준 베이글 샌드위치를 살짝 데워 볕이 좋은 창가에 앉아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맛있네.”

은설은 맛있는 베이글 샌드위치를 맛없는 표정으로 먹었다.

그리고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 ‘준수’를 생각하며 혼잣말을 했다.

“우리 준수 씨도 현준이 엇비슷하게 호리호리하던 시절이 있었네. 105 사이즈 옷이 이쁘게 맞았었는데. ······. 그랬었네, 참.”




현준은 8시가 거의 다 되어서야 은설의 집으로 돌아왔다.

백화점에 들렀던 모양인지, 현준이 입고 있던 세미 슈트가 ‘새 옷!’하며 조명빛을 반사했다.

현준의 오른손에 들려 있던 쇼핑백 안에는 아침에 입고 나섰던 준수의 옷이 가지런히 정리된 채 들어있었다.

“세탁은 못했어.”

“세탁은 무슨. 아침에 입고 나갔다 저녁에 돌려준 옷을 어떻게 세탁까지 해서 줘.”

“이건 옷 빌려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

현준이 백화점 식품관을 털어오기라도 한 것처럼 커다란 쇼핑백을 하나 더 내밀었다.

“맨 위는 후식이야. 케이크 좋아하잖아.”

“오, 고마워. 안 그래도 단 게 먹고 싶었어.”

“아래는 이것저것. 뭐가 입맛에 맛을 지 몰라서 골고루 골라 봤어.”

“와, 뷔페가 따로 없네.”

은설이 크고 예쁜 접시 두 개를 꺼내어 현준이 사 온 음식들을 골고루 담아냈다.

“더 예쁘게 담아주고 싶었지만, 그러면 설거지가 너무 늘어서.”

“잘했어. 내가 설거지 실력이 썩 좋진 않거든. 접시 두 개가 딱 알맞아.”

“설거지도 해주게?”

“잘해줘도 된다며? 나 하고 싶은 만큼.”

“내가? 언제 그랬어?”

“어제. 잘해주는 만큼 나한테 마음 써주겠다 하지 않았나?”

“아, 그건······.”

“아침에 마음 써준 거 갚는 거야. 선결제 후 서비스. 니가 먼저 시작한 거야.”

“그건 니가 베이글을 사 오느라 옷 갈아입는 것도 까먹고······.”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위에 가운 입으면 되는 거였어.”

은설은 진료실에서 종종 보아오던 현준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

“니가 먼저 마음 써 준거 맞다니까.”

평소 현준에게선 들은 적이 없었던 의기양양한 목소리였다.

“옷은 왜 사 입었어? 그냥 다시 츄리닝 입으면 될걸.”

“너한테 멋있어 보이려고.”

은설이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어? 웃었네. 진짜 웃음이었어. 광대뼈 부분이 부풀었다고, 너.”

현준의 말에 은설이 두 볼을 쓸어내렸다.

“그러지 마. 웃으니까 보기 좋아.”

“언제는 찡그리고 있었니, 뭐?”

“활짝 웃진 않았었어. 놀이공원에서도 지금처럼은 안 웃었었어.”

“그랬나? 그때 나 꽤 재밌었는데.”

“계속 이렇게 웃게 해줘야 하는데······. 빨리 그래야 하는데.”

현준이 혼잣말처럼 속내를 드러냈다.

“의사 선생님아. 속상해하는 거니, 지금?”

낮춘 고개의 시선을 위로 올리며 은설이 반쯤 숙인 현준의 얼굴을 살폈다.

“울어?”

“무슨 소리야. 내가 왜 울어.”

은설의 질문에 현준이 질색을 하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네. 난 또 속상해서 우는 줄 알았지. 이은설한테 빨리 아기를 만들어주고 싶은데 그게 뜻대로 잘 안 되어서.”

“속이 좀 쓰린 건 맞아.”

“너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거 알고 있으니 너무 속상해하지 마. 니가 최선을 다해주고 있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어. 심지어 지금은 내 밥까지 챙겨주고 있잖아. 이렇게.”

은설이 스테이크 샐러드를 포크 한가득 집어 맛있게 입 속으로 집어넣으며 말했다.

커다란 양상추 하나가 은설의 콧잔등과 볼에 소스를 묻히며 떨어졌다.

현준이 그 모습을 보고 좀 전의 은설처럼 활짝 웃었다.

그리고 아이의 얼굴을 닦아주는 아빠처럼 반사적으로 엄지 손가락을 펴 은설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다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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