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응? 아직 진료시간이지 않아? 혹시 나 뭐 무슨 일 있어?]
이른 오후에 걸려온 현준의 전화를 받은 은설이 걱정부터 앞세웠다.
[아니, 그냥. 잘 들어갔나 해서. 아까 보호자 없이 왔었잖아]
[아아. 잘 들어왔지 그럼. 한번 해 봤잖아. 보호자 없어도 괜찮을 거 같아서 혼자 간 건데, 뭘.]
[그래도. 걱정이 됐어, 좀.]
의사가 아닌 친구였다.
은설은 걱정과 안쓰러움이 담긴 현준의 목소리가 고마웠다.
[괜찮으니 아무 염려 말고 얼른 진료 봐.]
[응. 뭐 불편하고 그런 건 없지? 식사는 참 어떻게 해결해?]
은설의 마무리에도 전화를 끊지 못하고 현준이 이런저런 질문을 이어갔다.
은설은 대답 대신 현준에게 충분한 감사를 담아 한번 더 인사를 했다.
[고마워. 진짜 고마워서 하는 말이야. 진료 보고 또 시술도 하고 정신없이 바쁠 텐데. 그 와중에 나한테 전화까지 해서 괜찮은가 살펴 주고.]
[알아주니 내가 더 고맙네.]
[근데 정말 괜찮으니까 전화 끊어도 돼. 바쁘잖아, 너.]
[응. 그래. 알았어.]
[담엔 니 걱정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아무라도 데리고 이식받으러 가야겠다.]
[다음이 없도록 해야지.]
[아 맞다. 하하. 시술받는 게 일상이 돼버렸어.]
은설이 쓰게 웃으며 무안을 감추려 했다.
[오해하지 마. 다음이 없도록 노력해야 하는 건 나니까. 넌 밥 잘 챙겨 먹고 맘 편히 쉬기만 하는 거야.]
[알았어. 의사 선생님 말씀 믿고 잘 따를 게. 그러니까 이제 걱정 말고 끊어.]
은설이 작별인사를 몇 번이나 더 하고 나서야 현준과의 통화가 끝이 났다.
은설은 보호자 없이 홀로 시술을 받으러 간 것 때문에 현준이 괜한 걱정을 하게 된 것 같아 조금 후회를 했다.
하지만 현준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또다시 친정어머니를 대동하고 이식을 받으러 병원에 갈 생각은 없었다.
시부모님에게처럼 친정부모님에게도 ‘완벽히 좋은 소식’만을 전하기로.
은설은 그렇게 결심을 한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식과 착상의 과정이 진행되는 내내 어머니의 감정은 은설과 함께 기복을 탔다.
은설은 자신이 느끼는 좌절과 고통을 어머니 역시 그대로 느끼는 것이 싫었다.
화학적 유산이 진행되고 있음을 고백한 다음 날, 어머니는 미역국이 가득 담긴 냄비를 들고 새벽같이 은설의 집으로 찾아왔었다.
어머니가 애써 짓고 있는 담담한 표정 뒤에 눈물이 숨어 있는 것이 보였다.
정갈히 차린 아침상을 은설의 침대 위로 올려주는 어머니의 모습이 은설의 눈엔 마치 다친 새끼를 핥아주는 어미사자처럼 보였다.
별 말은 없었지만, 따뜻하고 든든했다.
그리고 슬펐다.
은설은 어머니의 슬픔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는 어머니의 슬픔을 보며 그것을 견뎌낼 여력이 없었다.
슬픔은 은설의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설마 정말로 어젯밤에 무슨 꿈꿨는지 그거 궁금해서 물어보려고 전화한 거야?]
[어.]
현준의 용건이 다소 어이없다 생각을 했지만 은설은 진지하게 어젯밤 꾼 태몽의 내용을 현준에게 읊었다.
[해태꿈. 샛노란 해태랑 초록색 해태 두 마리가 우리 집 안방에서 장난치며 놀다가 내 품으로 폴짝 뛰어 들어왔어. 아들 쌍둥이 심어 놨나 봐, 니가.]
[아, 그래? 내가 그랬으려나? 성별 구별해서 이식하는 건 불법이라서 말이야... 배아 성별은 나도 정확히 모르는 일이라.]
현준의 반응에서 진심으로 호기심이 풀렸다는 뉘앙스가 느껴지지 않았지만, 은설은 굳이 현준에게 확인을 했다.
[이제 궁금한 거 풀렸지?]
[아니.]
[뭐야. 내 꿈 내용 뭔지 궁금해서 걸었다며. 설마 나 저녁 먹었나 안 먹었나 그거 궁금해서 걸었니, 혹시?]
시곗바늘이 7시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을 보며 은설이 재차 현준에게 물었다.
[혼자 있는 거면 아직 안 먹었을 것 같아서.]
소극적인 목소리로 본심을 이야기하는 현준에게 은설이 마치 학생에게 이야기하듯 장난이 반쯤 섞인 칭찬을 해주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추측도 잘 하긴 하더라만은. 아주 정확하구나, 우리 현준이. 똑똑하네.]
[잘 됐다. 저녁 먹으려고 테이크아웃을 했는데 좀 과하게 샀어. 같이 좀 먹어 줘.]
[야, 나 밥 챙겨주는 건 고마운데 방식이 너무 고전적인 거 아니니? 메뉴라도 좀 물어보고 사······.]
[추어탕이야. 너 시술하고 나면 맨날 추어탕 먹는다며. 오늘은 혼자라 사갈 여력 없었을 거고. 107동 맞지? 몇 호야?]
통화를 마친 지 십 분이 채 되지 않아 현관 벨이 울렸다.
“집 앞에서 전화했니?”
“안 멀잖아, 너희 집.”
“그렇긴 하지만. 내가 청소 안 해놓고 있는 상태였으면 어쩔 뻔했어.”
“너 원래 옛날에도 정리정돈 잘했었어."
"시험관 진행 중이라는 상황의 특수성을 고려해야지. 이 친구야."
은설이 흐트러져 있는 소파패드와 쿠션을 정리하며 괜스레 핀잔을 줬다.
"이식하고 나면 한동안은 집안일 다 미뤄둔다고 했으니까 당연히 이식 전날 청소 같은 거 해뒀을 거고, 그럼 오늘이 가장 깨끗한 상태일 테니 이렇게 막 찾아와도 문 안 열어 줄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구나 했는데. 아니었나?”
꽤나 논리적인 추정이었다.
“내가 진료실에서 별별 얘길 다 했었구나, 너한테.”
“수다가 없는 환자는 아니지. 이거 어떻게 데우면 돼?”
냄비를 꺼내려는 은설을 식탁 의자에 끌어다 앉히고 현준은 그냥 지시만 내리라고 했다.
그리고 은설의 설명에 따라 차분하게 냄비와 수저, 김치를 꺼냈다.
“짝을 다 맞췄네.”
“응?”
“준수 씨는 잡히는 대로 빨리 줘. 젓가락이랑 숟가락.”
“그래?”
“응. 뭐, 그냥 그렇다고.”
“넌? 어떻게 줘?”
“난 잡히는 대로 주는 사람한텐 잡히는 대로 빨리 주고. 짝을 맞춰 주는 사람에겐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제 짝 맞춰서 주지.”
은설이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꼭 성격 테스트 같구먼."
“테스트는 아니지만 성격을 보여주는 건 맞는 거 같아. 어느 게 더 좋은 건지는 아직 모르겠어.”
“그러게.”
“······.”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은설도 현준도 지금 그 자리에 없는, 아무렇게나 잡히는 대로 수저를 놓는 준수를 떠올리고 있었다.
“남편······. 보고 싶지?”
“조금.”
“많이는 아니고?”
“많이라고 하면 좀 쑥스럽잖아. 너한테 좀 미안하기도 하고.”
“왜?”
“니가 지금 나 챙겨주고 있잖아. 그 사람 대신.”
“······.”
“지금은 너한테 고마워하는 데에만 마음을 써야지.”
“그래 줄거야?”
“응?”
“나한테만 마음을 써 줄 거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