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현준이 방을 한바퀴 둘러 본 뒤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쌍둥이 엄마 조금 일어설 수 있겠어요? 거기······. 혹시 그 쪽이 쌍둥이 아빠세요?”
현준이 기훈을 보고 물었다.
“네. 접니다.”
“와서 엄마 좀 부축해줘요. 뒤 쪽에서 겨드랑이 사이로 손 넣어서······.그러치이. 오케이. 그렇게 살살 들어서 침대 위로 뉘어줘요.”
현준이 산모의 하체를 받쳐 조심스레 이동시켰고, 미주가 잽싸게 다리 모양을 잡아주었다.
“쌍둥이 아빠, 믿고 다니는 병원 선생님한테 어서 전화하세요. 아, 그냥 나를 바꿔줘요.”
통화를 시도한 지 한참만에야 전화가 연결되었다.
현준은 마지막 진료 당시의 산모와 아기들의 상태를 물었다.
그리고 현재 산모와 아기들의 상태를 확인한 대로 전달하고 인큐 이동이 가능한 앰뷸런스를 요청했다.
“앰뷸런스가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나 걸리죠?”
전달받은 시간을 들은 현준의 표정이 자못 심각해졌다.
“여차하면 여기서 다 받아야겠네요. 최대한 빨리 부탁합니다. 엇?! 전화 치워!”
현준이 다급히 전화를 귓전에서 떼어내고 산모와 아이에게 집중을 했다.
“쌍둥이 아빠, 장갑끼고 가위 들고 대기!”
미주가 현준의 가방에서 장갑과 수술용 가위를 찾아 기훈에게 건넸다.
조여오는 산통에 산모가 저도 모르게 자꾸만 힘을 주었다.
아기의 한쪽 어깨가 빠져 나왔고, 두 번째 아이의 양수가 터지면서 첫째가 쏟아지듯 미끄러져 내려왔다.
“시간 확인해.”
“20시 3분이요.”
“아가, 미안. 얼른 확인해야 해서 그래.”
현준이 아기 엉덩이를 찰싹 때렸고 아기가 울음을 터뜨렸다.
“쌍둥이 아빠, 와서 탯줄 잘라 줘요."
기훈이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첫째 아기의 탯줄을 잘랐다.
"잘 하는데요? 좀이따 둘째도 그렇게 해줘요. 한선생?"
현준이 미주에게 신호를 보냈고, 미주가 재빨리 수건을 가져다가 아기를 감싸 산모에게 보여주었다.
“공주님이에요. 에구, 이뻐라.”
산모가 아기를 보며 기쁨의 눈물과 웃음을 동시에 지었고, 그런 산모를 보며 현준은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산모가 곧 두 번째 진통을 시작했다.
“오케이! 왔어!”
현준이 산모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쌍둥이엄마, 둘째도 쑥쑥 잘 내려오고 있어요. 지금 했던 대로 쭉 하면 돼요. 자, 내가 힘주세요 하면 세게! 알죠?”
현준의 구령에 맞춰 산모가 서너 번 더 힘을 주었고, 이어 두 번째 아기가 쑥하고 빠져나왔다.
“20시 14분이요.”
현준의 말이 있기 전에 이번엔 미주가 알아서 아기가 태어난 시간을 확인했다.
두번째 아기의 호흡까지 확인한 현준이 그제서야 산모에게 다가가 축하 인사를 전했다.
“왕자님도 무사하고 건강하게 잘 나와줬어요. 만점짜리 출산이었어요. 진짜 잘했어요. 장해요, 쌍둥이 엄마.”
“감사합니다. 선생니이임. 흐흐흐흑.”
긴장이 풀린 영미가 두 아이를 양쪽 품에 끌어안고 눈물을 쏟았다.
“울지마요. 병원 도착할 때 까지는 기운을 아껴야 돼요. 지금까지 다 괜찮아 보이기는 하지만 출혈과 감염 위험 때문에 태반은 병원에 가서 나오도록 하는 게 좋겠어요. 곧 앰뷸런스가 도착할 거고, 담당하시던 선생님이 앰뷸런스 타고 같이 오신다 했으니 이제 안심해도 돼요.”
현준이 아이를 어르듯 다정한 목소리를 산모를 달래었다.
앰뷸런스에 기훈 가족을 모두 실어 보내야 했으므로, 기훈의 오피스텔에 덩그마니 남은 것은 미주와 현준뿐이었다.
“옷이 다 엉망이 되었네요.”
“그러게. 새로 산 수트였는데.”
“그 옷 그대로는 못 나갈 거 같은데. 누가 보면 무슨 사건이라도 벌이고 온 줄 알겠어요. 실례인 줄은 알지만 이집 옷장 좀 뒤져봐야겠는데······.”
미주가 옷을 찾아보겠다며 어색하게 자리를 떴다.
현준은 식탁에 엉덩이를 반쯤 걸치고 앉아 미주에게 무엇부터 질문해야 할 지를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주가 수트 한 벌을 들고 나왔다.
“좀 크겠는데요. 기훈씨가 워낙 기골이 장대한 스타일이라. 입어봐요.”
미주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와이셔츠를 벗던 현준이 불현듯 생각이 난 듯, 미주에게 눈짓을 보냈다.
“아, 맞다. 우리 이혼했지. 참······. 나도 화장 좀 고쳐야겠네.”
미주가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현준이 기훈의 수트로 갈아입기를 마쳤다.
“할아버지 양복 훔쳐 입은 열 다섯살 같아 보여요.”
“미주가 너무 옛날 것을 꺼내왔어.”
“새 양복 꺼내는 건 실례 같아서. 단추 개수라도 세어볼 걸 그랬네요.”
“단추가 아니라 어깨가 문제······. 아니야. 주차장까지만 가면 되니까 상관없어. 신경쓰지 마.”
“······. 말 돌리지 말고 묻고 싶은 거 물어요.”
“······.”
“어서요. 괜히 혼나는 기분 들게 하지 말고요.”
“뒷감당은 생각하고 저지른 거야?”
“아버지한테 욕 좀 먹겠죠, 뭐.”
“그게 아니라······.”
“파트너쉽이 진행되고 있다는 걸 동시에 발표하기로 했어요. 기훈씨 진짜 피앙세가 누구인지 밝히게 될 때."
"아니."
"사실과는 다른 과한 소문이 돌았지만, 결과적으로는 투자자들이 예측한 대로 이산병원과 jk그룹의 딜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걸 밝히면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 그게 아니라.”
“그럼 뭐요?”
“쌍둥이 아기들 임신한 채로 사랑 놀음 하고 있는 두 사람 옆에서 들러리처럼 서서 뭐하는 짓이었냐고."
"······."
"그러면서 시험관 시술을 음성적으로라도 하네 마네 하며 이런 저런 거 알아보고 다녔던 거야? 왜 그렇게 쓸데없이 스스로를 초라하게······.”
“선배하고 상관없는 일에 너무 과하게 관심 갖고 있네요.”
“뭐?”
“그때, 아무 대답 않는 걸로 선배하곤 끝난 거 아닌가, 그 얘기?”
“······.”
“과해요. 그만 둬요. 그런 얘기라면. 상관 없잖아.”
“······. 불안해서 그래. 미주, 니 마음이······.”
현준이 걱정을 하고 있었다.
다름 아닌 미주의 마음을.
“먼저 갈게요. 오늘 고마웠어요.”
미주가 더 이상 현준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는 듯, 커다란 왕진가방을 챙겨 들고 쓸쓸히
기훈의 오피스텔을 빠져나갔다.
“바뀌었네. 가방에 열쇠고리라도 달아두던가.”
툴툴거리는 소리를 하면서도 현준은 트렁크가 아닌 조수석에 미주의 왕진가방을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미주의 왕진가방 안에는 휴대용 제세동기까지 들어 있었다.
왕진가방은 한진웅이사장이 마련한 결혼 축하 선물 중 하나였다.
“이런 저런 일들로 바쁘게 살게 되겠지만, 우리의 근본이 의사라는 것을 잊고 살아선 안 돼네.”
한 이사장은 의사로서의 소명과 자세에 대해 자못 진지하고 멋지게 말을 했었다.
현준은 이것과 똑같은 디자인의 가방이 지금 한진웅이사장의 자동차 트렁크 안에도 있음을 떠올렸다.
“그 때 받아서 트렁크 안에 쳐박아두고 나도 그렇고 미주도 오늘 처음 꺼내본 것 같은데. 장인은 이걸 꺼내본 적이 있으시려나?”
괜스레 궁금해졌지만 달리 확인해볼 길은 없었다.
“미주에게 한번 여쭤보라고 할까? 어차피······.”
만나야 했다.
가방을 돌려주려면.
“아, 맞다! 도시락!”
현준이 황급히 조수석 아래를 살폈다.
몇 번의 급정거로 조수석 아래 구석진 곳으로 굴러 떨어진 도시락을 미처 좌석 위로 올리지 못하고 황급히 차에서 내린 것이 이제서야 생각이 났다.
도시락의 투명한 플라스틱 뚜껑 아래로 본래의 차림새를 알 수 없게 뒤섞여버린 음식들이 보였다.
“이거 못 먹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