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 좋지 않은 예감

<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by 이소정

전날 연락도 없이 집에 오지 않은 현준에게 은설은 섭섭할 대로 섭섭해진 상태였다.

“아니, 전화를 할 거면 일찌감치 했어야 할 거 아냐. 밥도 안 먹고 기다렸는데.”

2주 만에 냉동실 아래로 내려온 추어탕을 데워 아침 찬거리를 준비하며 은설이 듣는 이 없는 화를 투덜거렸다.

“사람이 사회생활 하다 보면 바쁠 수도 있지. 의사잖아. 얼마나 바쁘겠어. 바쁜 게 정상이지. 그래도. 아무리 바빠도. 연락은 할 수 있는 거잖아, 못 온다고.”

엄밀히 말하면 아예 연락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평소라면 현준이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을 시간인 밤 10시가 다 되었을 즈음 현준에게서 뒤늦은 연락이 오긴 했었다.


[미안. 갑작스럽게 일이 생겨서 못 갔어.]

[아냐, 뭐. 니가 꼭 오겠다고 약속을 한 것도 아니었잖아.]

[그래도······. 참, 저녁은 어떻게 했어? 챙겨 먹었어?]

[응.]

[잘?]

[응. 잘. 냉장고 안에 네가 사다 쟁여 놓은 것들이 그득그득하잖아. 샌드위치 먹고 싶어서 니가 그저께 사온 크루아상에 어제 사다 준 샐러드 넣어서 잔뜩 먹었어.]

[잘했어.]

[응······. 너 무슨 일 있었어? 목소리 엄청 피곤한 것처럼 들려.]

[아, 그······.]


현준이 은설에게 설명해 줄 말을 한참이나 생각했다.


[그, 뭐냐. 예정에 없던 업무가 생겨서 그것 좀 처리하느라.]


한참을 기다렸음에도 불구하고 현준의 설명은 자세하지 않았다.


[그랬구나. 많이 힘들었겠네. 그러면 전화 끊고 얼른 쉬어, 현준아.]

[그래. 오늘은 그래야겠어. 너도 푹 쉬어. 좋은 꿈 꾸고.]


현준이 통화를 더 끌지 않고 작별 인사를 했다.


[응. 너도.]


피곤에 전 기색이 역력한 현준에게 더 이상 무어라 할 수 없었던 은설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

“반드시 오겠다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난 왜 당연히 현준이가 올 거라고 생각한 거지? 참 나.”

추어탕을 야무지게 입속으로 떠 넣으며 은설이 자신의 허튼 판단을 탓했다.

그리고 잔뜩 잠겨있던 현준의 목소리를 다시 떠올렸다.

아무리 기억을 되돌려 보아도 그토록 피곤이 묻어나는 현준의 목소리는 처음이었다.

“어제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324? 정말?]


현준이 전화기 너머에서 전하는 숫자를 듣고 은설은 뛸 듯이 기뻤다.

이틀 간격으로 두 배씩 오르는 수치.

임신이 분명했다.

그것도 아주 안정적인.


[이틀 뒤 3차 피검에선 600대 정도로 수치가 올라야 해. 그러면 다음 주 초음파 때 아기집을 볼 수 있을 거야.]

[응]


은설은 현준의 설명을 새겨들으려고 애썼지만 머릿속에선 자꾸만 두 달 후, 넉 달 후, 일곱 달 후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정신이 없었다.

‘배가 아주 남산만 해지겠지?’


[수치가 오르는 추이를 보면 하나는 도태되고 나머지 하나가 착상에 성공한 것 같아. 다음 주에 아기집 꼭 보자.]

[아, 응.]


현준은 여전히 기뻐하고 있지 않았다.

‘도태’라는 말에 은설도 들떴던 기분이 한풀 꺾였다.

현준과의 통화를 끊으며 은설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기분을 띄우려고 애썼다.

“쌍둥이엄마는 내 팔자가 아닌가 보군. 그럼 이제 분홍인지 파랑인지만 추리하면 되는 건가? 어디 보자. 내가 지금 왼쪽으로 돌았나, 오른쪽으로 돌았나?”




현준은 여전히 저녁마다 은설을 찾아왔지만 은설의 아기에 대해선 일절 먼저 말을 꺼내는 법이 없었다.

관심이 있는 것은 오로지 은설의 컨디션뿐인 것처럼.

“뭐 좀 먹었어?”

“그냥 밥. 김이랑 김치랑.”

“맛있는 것 좀 사 먹지.”

“먹어도 맛을 잘 못 느끼니까 왠지 속상해서. 애기야, 엄마가 아직 입덧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어. 조금만 더 있다가 고생시켜 줘.”

은설이 자신의 배에 톡톡 노크를 하며 태담을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현준은 아주 잠깐 흐뭇한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3차 피검 결과부터는 은설도 좋지 않은 예감을 느낄 수 있었다.


[500대면 좀 애매한데.]

[600보다 100 정도 낮은 건데도 안 좋은 쪽을 생각해봐야 하는 거야?]

[다음 주에 아기집 보고 나서 이야기하자.]

[아니, 지금 얘기해 줘. 어떤 상태인 거야?]


은설이 단호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초음파로 확인해 보기 전까진 정확히 알 수 없어. 하지만 수치상으로는 자궁 외 임신을 의심해봐야 해.]

[아······.]


많이 들어 봤지만 자신을 일이 될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단어였다.

난임처럼.


[괜히 이야기를 한 것 같다. 앞서 걱정은 하지 마. 정말로 수치가 잠시 주춤했을 뿐인 걸 수도 있어.]

[어······.]




현준과의 통화를 끝내고 은설은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자궁 외 임신’에 대한 글만 검색했다.

그러니까.

폭발적으로 수치가 늘어야 하는 시기에 주춤하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물론, 3차 피검 때 불안 불안하던 수치가 주말을 보내고 한 4차 피검에서 4000대 이상을 보였다던 글도 있긴 있었다.

자궁 외 임신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정상임신이었다는 글도 임산부 카페에서 꽤 보였다.

하지만.

“현준이도 미리 걱정하지 말랬잖아.”

하며 아무리 달래 보려 해도 불안으로 들뜬 마음은 좀처럼 은설의 뜻대로 가라앉질 않았다.

그리고 언제나 그러했듯 불안한 예감은 어김없이 들어 맞고야 말았다.




“아기집이 안 보이네.”

초음파 화면을 보고 있는 현준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이제 5주 차니까 안 보일 수도 있는 거 아니야?”

현준이 대답 대신 피검 결과를 언급했다.

“정상 임신의 경우 피검수치가 1000이 넘으면 일반적으로는 아기집이 보여.”

그렇다면 보여야 했다.

주말을 보내고 한 피검수치는 정상 수치보다 400 정도 낮았지만 분명 1000은 넘은 상태였다.

“아. 후우-”

무언가를 발견한 현준이 짧게 탄식을 했다.

“왜···그래?”

불안을 넘어선 확신이 들었지만 그래도 확인을 해야 했으므로 은설은 현준에게 질문을 했다.

“왼쪽 나팔관에서 아기집으로 추정되는 결절이 보여.”

은설은 눈 끝에서 소리 없이 두 줄기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과 동시에 은설에게서 출혈이 시작되었다.

“어머니께······. 연락을 하는 것이 좋겠어.”

현준의 조언대로 은설은 친정에 전화를 했다.




그리고 같은 날 저녁, 은설의 집에선 현준 대신 어머니와 아버지가 은설의 저녁 식사를 챙겼다.

다음 날 오전엔 은설의 어머니가 처음으로 은설과 함께 현준의 진료실로 들어섰다.

어머니와 함께 있으니 은설은 외려 반쯤 넋을 놓아버린 상태가 되었다.

그런 은설을 대신하기라도 하듯 어머니가 현준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이어갔다.

“시험관 시술인데도 자궁 외 임신이란 게 되나요?”

은설의 어머니가 상기된 목소리로 조금 따지듯이 현준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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