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이식이라는 용어를 쓰지만, 자궁내막 위에 적합한 위치를 찾아 배아를 놓아주는 시술이에요."
"······."
"착상 자체는 배아 스스로의 힘으로 해야 하는데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배아가 난관 쪽으로 이동을 해 착상을 하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 요인이라는 게······.”
어머니의 질문이 끝나기 전에 현준이 은설과 은설의 어머니를 번갈아 바라보며 무언의 신호를 보내었고, 어머니가 곧 질문을 멈췄다.
“잘 치료받으면 다시 임신하는 데에 큰 문제는 없는 거죠?”
“그럼요. 그리고 발견을 일찍 한 편이라서 다행히도 수술 대신 주사제를 써볼 수 있을 듯합니다.”
“나팔관 절제하는 수술 없이 치료가 가능하단 말씀이신가요?”
“네. MDX라고, 일종의 항암제예요. 극소량을 투여하면 임신조직이 서서히 말라가며 제거됩니다.”
“암세포 없애는 것처럼요?”
“네.”
“부작용은요? 머리가 빠진다거나······.”
“극소량이라 일반적인 항암제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다만, 주사제의 효과가 제한적으로 나타날 수는 있어요. 임신조직이 제대로 제거되지 않으면 그땐 복강경수술로 왼쪽 난관을 절제해야 합니다.”
“아휴······. 효과가 있어야 할 텐데.”
“잠깐만요!”
MDX주사를 놓기 직전 ‘STOP’을 외치는 은설의 목소리에 놀란 간호사가 움찔하며 몸을 뒤로 뺐다.
“왜 그러세요?”
“아, 아니에요.”
“주사 놓을까요?”
“네.”
차가운 알코올솜의 기운이 엉덩이 위로 넓게 퍼져나갔다.
“자, 잠깐만요.”
“어디 불편하신 곳 있으세요? 편하게 말씀하셔도 돼요.”
“아니요, 그냥. 마음의 준비가 필요해서요.”
은설의 심정을 헤아렸는지 간호사가 경험담인 듯한 이야기를 짧게 풀었다.
“저는 이 주사 맞을 때 조금이라도 빨리 보내주는 게 좁은 공간에 갇혀 있는 아기를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하는 거라 생각했었어요. 그러니까 좀 놓을 수가 있겠더라고요.”
“······. 네.”
은설이 체념 같은 한숨을 쉬며 간호사에게 다시 엉덩이를 내어주었다.
MDX주사는 생각보다 괴롭지 않았다.
‘겨우 이런 주사 한방으로 착상을 마친 아기가 사라질 수 있다니’
은설은 태아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새삼스레 생각했다.
저녁 무렵이 되니 왼쪽 아랫배에 즈음에서 욱신거리던 통증이 점차 희미해져 갔다.
임신초기의 ‘배 콕콕 증상’이라 생각했던 게 실은 아기집으로 인해 부풀어 올랐던 나팔관이 자아내는 통증이었단 것을 은설은 그제야 깨달았다.
사라져 가는 통증과 함께 난관 파열의 공포도 누그러졌다.
그리고 역시나 통증과 함께 사라져 가는 아기를 생각하며 은설은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훌쩍이는 소리를 들은 어머니가 은설에게로 다가왔다.
달리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으므로 어머니는 그저 은설 옆에 앉아 은설의 손과 발을 주물러 주기만 했다.
어머니의 손길에 몸과 마음을 가만히 맡겨두던 은설이 꼬박 사흘 만에 깊숙이 잠들었다.
꿈은 꾸어지지 않았다.
그저 칠흑 같은 어둠뿐인 곳에서 숨을 헐떡이다가 가늘게 들리는 어머니의 근심스러운 목소리에 점차 잠이 깰 뿐이었다.
은설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뒷모습의 아이가 인사도 없이 어둠 끝으로 사라지는 장면을 선잠 끝의 꿈처럼 떠올렸다.
은설의 마음속에 치솟은 화가 가시처럼 변해 가장 만만한 대상인 어머니에게로 향했다.
“방문 좀 닫지. 시끄러워서 깼잖아요.”
어기적거리는 걸음으로 침실에서 나오는 은설을 보자마자 어머니가 식탁 의자를 박차고 달려와 부축을 했다.
“괜찮아? 어지럽고 그런 건 없어?”
“없어요. 이런 거 안 해줘도 돼요.”
은설이 팔뚝을 붙잡고 있던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며 날카롭게 말했다.
“엄마까지 그렇게 울상 짓고 있지 마요. 내가 지금 엄마 위로해 주게 생겼어?”
말을 뱉는 동시에 후회가 되었지만, 이성을 잃은 혀가 제멋대로 못된 말들을 내뱉었다.
어머니의 반응은 은설의 예상과 달랐다.
퍽.
“이노무 기지배가 어따대고 승질이야.”
“아야.”
예상치 못하게 날아온 팔뚝 스매싱을 맞은 자리가 아려왔다.
“아프고 속상한 건 속상한 거고. 속이 쓰려서 고운 소리가 잘 안 나오면, 응? 엄마가 이르케 챙겨주니 그래도 좀 낫구나. 그냥 생각이나 하고 말 일이지. 어따 대고······. 쓸데없이 승질내지 말고 어여 여기 와서 앉아. 너도 밥 먹어. 엄마 두 번 상 차리게 하지 말고.”
억울함이 덕지덕지 붙은 얼굴을 있는 대로 일그러뜨리면서도 은설은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식탁 자리에 앉았다.
어머니가 미역국 대신 소고기뭇국을 한가득 퍼다가 은설 앞에 놓아주었다.
미역은 국이 아닌 초무침과 줄기 볶음의 형태로 다른 반찬들 사이에 묻혀 있었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양손에 나눠 쥐고 있는 은설 대신 어머니가 발갛게 오른 자리를 썩썩 비벼주며 잔소리를 이어갔다.
“승질부릴 여력 있으면 이 밥이나 많이 먹고 소화시키는 데다 써. 체력 아까워.”
“좀 받아주지. 딸이 지금 두 번째 유산을 하고 누워 있는데.”
“엄마가 니 승질 받아주는 사람이야? 세상 어디에도 그런 사람은 없어. 니 짜증 받아주라고 난 사람은 없다고. 나중에 태어날 니 새끼도 너한테 그러면 안 되는 거고.”
“난 받아줄 거예요.”
“어서 밥이나 먹어. 다 먹으면 엄마도 생각해 볼게. 종일 니 짜증 받아줄지 말지.”
밥이 들어가고 속이 좀 든든해지니 치솟아 오르던 화와 울분도 조금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울컥할 만큼 섭섭했지만, 괜한 짜증은 받아주지 않겠다는 어머니의 선언과 팔뚝 스매싱 덕분에 정신이 좀 차려진 것도 있었다.
또다시 자신만의 동굴로 침잠해 들어가기 싫었던 은설이 방 안 침대가 아닌 거실 소파에 드러누워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TV를 보았다.
당신의 뜻대로 생활정보프로그램과 종편채널뉴스 사이에서 채널을 오르락내리락 돌리고는 있었지만 아버지는 종종 은설의 의견을 물으며 눈치를 살폈다.
“이거 볼래?”
“아무거나요. 지금은 제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안 하는 시간이에요. 아빠 보고 싶은 거 보세요.”
하릴없는 은설의 대답에 아버지는 더 묻지 않고 뉴스 대신 생활정보프로그램에 채널을 고정시켰다.
그리고 썰렁해 보인다며 소파 한편에 접어 둔 담요를 끌어와 은설의 다리 위를 덮어주었다.
설거지를 마친 어머니가 일전에 현준이 사다 놓았던 망고를 꺼내왔다.
세 사람 모두 TV에 시선을 묶어둔 채로 어떠한 말도 않고 그저 어머니가 썰어 놓은 망고 과육만 집어먹을 뿐이었다.
별다른 위로의 말도 걱정하는 소리도 없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한 일상의 모습이 연출되었다.
“아가씨 때로 돌아간 것 같네. 임서방하고 연애하기 전에요. 정시 퇴근한 날 약속도 없고 그러면 집에 와서 저녁 일찌감치 먹고 거의 이렇게 엄마 아빠랑 TV보고 과일 먹고."
“약속 없는 날이 몇 날 없었잖어.”
“그래서 섭섭했어요?”
“그 나이 때는 자식이 집에만 처박혀 있어도 걱정이지. 그때 놀지 언제 논다고.”
“하긴. 그건 그래요.”
오래전부터 익숙했던 분위기의 집안 풍경이 은설의 마음을 한결 안정적이고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처음에 처음에 처음으로 돌아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