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다 그래.

<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by 이소정

현준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수술을 하는 게 좋겠어.”

“후우-“

은설이 고개를 깊숙이 떨구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MDX주사제를 1차로 투여한 떨어졌던 수치가 2차로 주사제를 투여하기 위해 했던 피검에선 오히려 상승해 버렸다.

어떻게든 나팔관을 보전하고 싶었던 은설이 현준에게 주사제 치료를 계속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현준의 입장은 단호했다.

“의사로서 주사치료를 더 권할 수가 없어."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은설의 표정을 외면하고 현준이 말을 이었다.

MDX주사제로 임신조직이 고사하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는데 계속 주사치료를 강행했다가는 나팔관이 파열될지도 몰라. 그렇게 되면······. 네가 굉장히 위험해져.”

‘굉장한 위험’이 어떤 뜻인지는 은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왼쪽 나팔관에 대한 미련이 주사치료를 강행하는 쪽으로 은설의 마음을 자꾸만 끌어 앉혔다.

망설이는 은설에게 현준이 비장함으로 무장한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다.

“은설아, 나는······. 나는 니가 조금이라도 위험해지는 게 싫어."

"······."

"다른 무엇보다 너를 잃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해. 니가 감내하고자 하는 위험이 어느 정도로 너를 침해할지는 의사인 나도 장담을 해줄 수가 없어. 하지만 이건 확실해. 니가 너무 많이 아프게 된다거나 혹은······. 위태로운 상황까지 이르게 되면 니 왼쪽 나팔관도 임신도 아기도 아무것도 의미가 없어.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다 그래.”

“······.”

“수술일정 잡자.”




은설은 결국 ‘그래’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초음파로 확인한 나팔관에선 고사되지 않은 임신조직이 나팔관조직에 염증을 일으켜 부종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현준이 자꾸만 진지해지려는 목소리를 애써 담담하게 조절하며 은설에게 설명을 이어갔다.

“아직 파열의 위험은 없어 보이지만 나팔관에 염증이 시작되었어. 상태로 봐선 왼쪽 나팔관을 보전하는 게 큰 의미는 없을 것으로 판단돼."

수술을 확정한 이후로 은설에게선 어떤 질문도 없었다.

"수술 스케줄은 이틀을 넘기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빨리 잡아 볼 거야. 하지만, 염증이 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니까 혹시라도 복통이 생기면 무조건 병원으로 달려와야 해. 알았지? 아니, 차라리 지금 입원을 하자.”

현준이 더 불안한 눈치였다.

즉각적인 입원을 권하는 현준의 제안을 뿌리치고 은설은 당장은 입원하기가 곤란하다며 난색을 표했다.

몸으로 느껴지는 위기감이 아직은 없었다.

또 한동안은 가만히 누워 몸조리를 해야 한다 생각하니 은설의 머릿속에 미리 처리해 두어야 할 이런저런 일들이 떠올랐다.

조금씩 먹다 그냥 넣어둔 음식들로 가득한 냉장고 안도 정리를 해 두어야 할 것 같았고, 미뤄두었던 은행업무도 해결해 놓고 싶었다.

곧 추워질 텐데 두꺼운 옷도 몇 벌은 꺼내두어야 했다.

이틀 뒤 수술일정에 맞춰 입원을 하고 싶다는 은설에게 현준이 마지못한 표정으로 그러라며 허락을 했다.

진료실을 나올 때 즈음엔 은설이 부러 씩씩한 체를 했다.

그래야만 이틀 뒤 다시 보게 될 때까지 현준이 조금은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병원 문을 빠져나오자마자 나미비아에 있는 준수에게 울면서 전화를 걸었다.




[왜 그래? 은설 씨, 왜 그래? 아파? 아파?]

[아니. 아직 안 아퍼.]

[아직 안 아픈 건 뭐야?]

[나 수술해야 한대요. 어떡해······.]

[주사 맞으면 된다며?]

[효과가 없대. 나한테는 안 맞는 주사였나 봐.]

[그래서 더 심각해졌대?]

[더 심각해진 건 아니고 그냥 이제는 수술해야 된대.]

[돌팔이 의사 XX. 수술해야 하는 거면 진작에 수술을 시켜주지. 괜히 사람 고생만 시키고 에이씨!]


준수가 현준을 향해 욕지거리를 해댔다.


[너무 그러지 마. 내가 주사제에 반응 안 하는 몸인 줄 걔라고 뭐 어떻게 미리 알았겠어.]

[알아야지! 알아야 의사지!]


준수가 더 성을 냈다.


[화내지 마. 준수 씨가 자꾸 그러면 내가 다른 사람 편들어주게 되잖아. 나는 지금 내 편만 들고 싶단 말이에요.]

[내가 지금 은설 씨 편들어주는 거잖아.]


준수가 화를 누르며 부드럽게 말을 하려고 애를 썼다.


[아니 그렇게 말고. 위로가 필요해요. 엉엉. 준수 씨 지금 당장 내 옆으로 와주면 안 돼?]

[······.]


잠시 준수의 말이 끊겼다.

은설이 섭섭함을 누르며 준수가 처하게 된 난감한 상황을 무마시켜주려 했다.


[아냐. 그냥 해 본 말이야. 거기서 여기가 어디라고 와. 준수 씨 오면 벌써 나는 수술 마쳤을 텐데, 뭐].


은설이 목소리에서까지 묻어나던 눈물을 말렸다.

차츰 담담해지는 은설의 목소리에 준수가 큰 결심을 한 듯 목에 힘을 주며 말했다.


[갈게!]

[응?]

[지금 바로 표 구해볼 게. 구할 수 있을 거야. 아니, 구할 수 있어.]


준수의 목소리톤이 점점 심상치 않아졌다.


[왜 그래. 진정해, 준수 씨.]


은설이 달래는 소리도 준수에게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휴가도 낼 수 있어. 회사 일이 뭐라고. 이기 뭐 내 끼도 아인데. 내 마누라가 혼자 수술대 위에 올라야 하는 마당인데 내 지금 여서 뭔 지랄이고.]


흥분한 준수가 생각나는 대로 말을 내뱉는 중인지 표준어와 사투리를 섞어가며 울분을 토해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준수의 울분이 은설에게 위로가 되었다.


[수술대 위에는 원래 혼자 올라가. 준수 씨.]


은설이 한결 누그러진 기분이 되어 준수를 놀렸다.


[그런 말이 아니잖아, 지금. 이 마누라야.]

[알어. 못 와도 괜찮아요. 고마워요, 준수 씨.]

[아냐, 진짜 갈 거야. 내가 가서 보호자 싸인 할 거야. 그러니까 은설 씨 수술 때까지 서글퍼 말고, 외로워도 말고 잠깐만 버티고 있어 봐. 알았죠?]


알겠다며 대답을 하면서도 은설은 준수의 말을 믿지는 않았다.

단숨에 달려오기에 나미비아는 멀어도 너무 멀었다.




수술이 이틀 뒤 오후로 잡혔다.

현준은 은설의 수술일정을 직접 전해주며 복강경 수술을 담당해 줄 의사의 스케줄이 워낙 빼곡해 더 일찍 잡지 못했다며 미안해했다.

간간이 찌르듯 아려오는 아픔이 있었지만 심하지 않았으므로 은설은 괜찮다고 했다.

사달이 난 것은 다음 날 저녁 식사를 마친 후였다.

너무 오래 비워두었다며 어머니와 아버지가 잠시 친정 본가로 돌아가셨고, 무조건 쉬라는 잔소리만 반복하는 부모님이 안 계신 틈을 타 은설은 옷장과 냉장고 정리를 했다.

냉장고에 쌓여 있는 먹다 남긴 음식들을 정리하고 나니 정작 당장 먹을 것이 없었다.

어머니가 해 넣어 둔 반찬들이 잔뜩 있었지만, 혼자 상을 차려서까지 밥을 먹기 싫었던 은설은 늦은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집 앞 샌드위치집으로 갔다.

가장 길고 화려한 이름의 세트를 시키면서, 사이드 메뉴도 평소 먹어본 적이 없던 것들로 바꾸거나 추가를 하고 나니 혼자 다 먹기 버거울 정도로 쟁반이 그득해졌다.

남김없이 다 먹어치우고 가려했던 은설의 계획은 맘처럼 실행되지 못했다.

“더부룩해.”

샌드위치는 손도 대지 않고, 사이드로 나온 쿠기와 음료수 몇 입을 먹었을 뿐인데도 은설의 속이 버거워했다.

입맛도 여전히 없었다.

MDX주사제의 영향 때문인지, 떨어지지 않은 임신수치 때문에 아직도 입덧이 진행 중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모든 상황이 은설의 마음을 더 울적하게 했다.

“악.”

은설이 작고 짧은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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