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오동통히 오른 살의 익숙한 느낌

<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by 이소정

“전신마취 후라 폐가 지금 오그라져 있어요. 앞으로 두세 시간 정도는 계속 깨어 있는 상태로 호흡을 많이 해줘야 해요. 안 그러면 합병증이 올 수 있어요.”

자꾸만 도로 잠이 들려하는 은설에게 간호사는 단호하고 꼿꼿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가며 깊은 호흡을 유도하는 의료기구를 건넸다.

‘합병증’이라는 말에 눈을 뜬 은설이 비몽사몽인 중에도 말 잘 듣는 학생처럼 간호사의 지시를 따랐다.

"간호사님, 등이 이상한 거 같아요."

“아직 느낌 없을 텐데? 이상해요? 무통주사 바늘이 꽂혀 있어요."

"바늘 꽂혀 있는 것까진 몰랐고, 그냥 이상해요."

"감각이 좀 빨리 돌아오셔서 그래요. 수술 마치고 나서 마취가 잘 깨는 건 좋은 거니 걱정 말아요. 조금 지나면 적응되어서 괜찮을 거예요. 무통주사 사용법 안내해 드릴게요.”

등과 허리 중간쯤 되는 곳에 얇은 호스가 달려 있었다.

간호사가 호스에 연결되어 있는 작은 기계의 버튼 사용법을 안내했다.

은설이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고 나니 간호사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여기서 두세 시간 쉬었다가 회복이 어느 정도 되신 게 확인되면 병실로 옮겨드릴 거예요.”




아침이라 해야 할지 오전이라 해야 할지 헷갈리는 시간 즈음에 은설은 병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은설에 대한 걱정으로 얼굴빛이 잿빛에 가까웠던 어머니의 얼굴이 은설을 보자마자 순식간에 환해졌다.

“별 것도 아닌 수술인데 뭘 그렇게 걱정을 하고 그랬어요. 괜찮으니까 걱정 말고 엄마도 이제 좀 주무세요.”

수술을 마친 은설이 대범한 체를 하며 밤새 마음고생이 심했을 어머니를 위로했다.

어머니는 30분쯤 더 은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런거렸다.

아버지는 ‘괜찮어?’ 한 마디만 묻고는 병실 소파에 모로 누워 잠을 청했다.

'모두 지나갔다.'

폭풍처럼 휘몰아친 절체절명의 위기가.

병실엔 다시 일상에 가까운 평화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긴장이 풀린 은설이 꾸벅꾸벅 졸자 어머니가 아버지를 깨웠다.

“얘 자는 동안 우린 잠깐 집에 다녀옵시다. 은설아, 엄마 아빠 집에 가서 아침밥 먹고 옷 좀 갈아입고 올게.”

“네. 간 김에 편한 침대에서 한잠 푹 주무시고 오세요.”

자고 싶어 하는 은설을 위해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둘러 병실을 나섰다.

아무도 없는 병실에 덩그마니 누워있던 은설은 잠시 허공을 응시하다가

이내

잠이

들었다.




뜨끈한 느낌이 드는 쪽이 링거를 꽂은 손이었다.

오동통히 살이 오른 익숙한 느낌의 손.

은설이 눈을 번쩍 떴다.

“준수 씨!”

은설의 손을 제 손으로 받쳐 들고 꾸벅꾸벅 졸고 있던 준수가 피곤이 달려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겨우 들어 올리며 은설을 행해 웃었다.

“깼어요?”

“흐흑~”

참고 참았던 은설의 눈물이 그제야 터져 나왔다.

‘꺼억꺼억’ 거리며 우는 소리 낼 때마다 수술한 자리가 아려오는지 은설이 ‘아야’하는 신음소리를 번갈아 내자 준수가 우는 은설을 말리고 나섰다.

“고만 울어요. 배 아프잖아. 응?”

다독이는 준수의 품에 꼬옥 안겨 은설은 울고 또 울었다.

한참 만에야 진정이 된 은설이 그제야 준수에게 어찌 된 일인지를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여기 어떻게 왔어요?”

“비행기 타고, 버스 타고 왔지.”

“아니, 그거 말고.”

“어제 전화 끊자마자 휴가 내고 공항으로 달려갔지.”

“휴가를 내줬어?”

“마누라가 다 죽어가고 있다고 난리난리 쳤더니, 안 보내주면 그 자리에서 때려 칠 것처럼 보였나 봐요. 거기 지금 나 없으면 안 되거든.”

“일 바쁜데 나 때문에 억지로 시간 낸 거 아니에요?”

“일이 중한가, 마누라가 중하지."

"준수 씨 없는 동안 거기 난리 나는 거 아냐?

"버그 생기면 그거 잡아주는 거 말고는 별로 할 일 없어. 일주일 사이에 버그가 안 생기길 바라긴 해야 하지. 근데 뭐 차장님도 개발자 출신이라. 사실 상관 없어."

"아 맞다. 그랬지."

"웬만한 건 조금씩은 할 줄 아니까. 시간을 끌어 줄 수 있을 거야.”

“아, 대신 고쳐주는 게 아니고?”

“그랬으면 휴가를 내주는 게 아니라 권고사직서를 내줬겠지. 나가라고.”

“아아, 그렇겠네. 돌아가면 잘해드려야겠어요. 차장님한테.”

“그건 돌아가서 생각할게요.”

“언제 돌아가야 해요?”

은설이 준수가 얼마나 머물 수 있는 지를 물었다.

“일주일 받았어.”

“표는?”

“급한 대로 편도 타고 왔어. 젤 빨리 출발하는 걸로. 돌아가는 항공권은 이제 알아봐야지. 걱정 마요. 한 자리는 구하기 쉬워. 좀 비싸서 그렇지 사실 표는 항상 있다고.”

“그러게. 비쌌을 텐데. 이번 건 회사에서 대주지도 않았을 텐데 표를 어찌 샀어요?”

“은설 씨한테 허락 맡고 모았던 비상금 통장 있잖아. 그거 폭파시켰지.”

“정말?”

“신랑 이제 거지됐어요.”

“표를 살만큼 많이 모았었어?”

“편도 밖에 못 샀어.”

“돌아가는 표는 마누라 비상금통장 폭파시켜서 사줄 테니 걱정 마요.”

“공평하네. 우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요.”

“네. 히히.”

“우흐히히.”

은설의 얼굴에서 드디어 웃음이 피어나는 것을 보고 준수가 따라 웃었다.

진심이 담긴 웃음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웃음이었다.




다행히도 회복은 빨랐다.

3박 4일의 입원 기간 동안 준수는 은설의 곁을 거의 떠나지 않았고, 준수의 등장으로 친정어머니와 아버지는 걱정이 한결 가벼워진 듯 보였다.

현준은 회진 시간 이외에는 은설의 병실에 들르는 일이 없었다.

자신이 머물 곳이 아니라는 듯.

집으로 돌아와서도 준수는 지극정성이었다.

지난 석 달 동안 해주지 못한 것을 몰아서 해주기라도 하려는 듯 은설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수발을 들었다.

침대에 누워 있던 은설이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나 슬리퍼를 신으려 하니 준수가 쏜살같이 달려와선 미끄러지듯 은설의 발아래 무릎을 꿇었다.

그리곤 섬세한 손길로 한 짝 한 짝 은설의 발에 슬리퍼를 신을 신겼다.

“안 그래도 되는데.”

은설이 귀찮아하는 뉘앙스로 말을 해도 준수는 알아듣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식사랑 살림은 장모님이 다 해주시니까 나는 은설 씨 심부름이라도 해야지.”

“혹시 울 엄마가 보고 있어서 더 그러는 거 아녜요?”

“몰라요. 쳇. 잘해줘도 뭐라 그러기야?”

“앗. 미안. 실수.”

“이것도 이틀 밖에 안 남았어. 해줄 때 즐기도록 해요.”

두 번의 주말을 끼고 받은 닷새 간의 휴가였지만 가고 오는 데에 사흘을 쓰고 나니 남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후. 준수 씨 가고 나면 난 또 석 달을 기다려야 하는 거지?”

“아직 확실한 건 아니라 얘기 안 했는데······.”

“뭘요?”

작가의 이전글144. 네가 의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