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출장이 한 달쯤 빨리 끝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정말?”
“응. 생각보다 작업도 빨리 끝나고 문제도 별 게 없어서. 현지 직원이 똘똘해서 운영도 별문제 없이 하더라고. 본사에서 우리 팀을 빨리 철수시킬 거 같아.”
“국내 프로젝트 할 때랑 정 반대네.”
“체류비가 많이 들잖아. 수당도 줘야 하고.”
“그렇구나. 어쨌든 나한텐 잘 된 일이네요. 아싸~. 이제 두 달만 기다리면 된다.”
“좋아하시긴. 이렇게 잘해줘도 몰라주면서.”
“돌아오면 잘해줄게. 지금은 마누라가 만사가 다 귀찮아서 그래요.”
“그래? 저녁 먹고 산책 잠깐 나가자고 할까 했는데. 안 되겠네.”
“그건 좋아. 답답해요. 일주일째 갇혀 지냈더니.”
집을 나서려는 두 사람을 막아선 것은 어머니였다.
“수술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집 밖을 나가.”
“너무 답답해서요.”
“요 앞에 한 바퀴만 돌게 하고 얼른 데리고 들어올게요, 어머님.”
금방 데리고 들어오겠다는 사위의 말에 은설의 어머니가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나갈 거면 옷이라도 좀 바꿔 입고 가.”
어머니가 은설의 드레스룸을 뒤져 한겨울 옷을 꺼내왔다.
“엄마 이거 기모 들어간 건데. 시월 말에 기모가 웬 말이에요.”
“그냥 몸이 아니잖아. 잔말 말고 입어. 괜히 감기라도 걸려서 덧내지 말고.”
준수가 눈짓을 했고, 은설이 어머니의 말에 더 토를 달지 않고 잠자코 옷을 갈아입었다.
“이상기온이라더니 가을 밤바람인데도 차지가 않네.”
거의 매달리다시피 준수의 팔짱을 낀 은설이 그의 팔에 볼을 부비며 말했다.
“아니야. 은설 씨가 내 팔을 그렇게 꼭 끌어안고 있어서 안 춥게 느껴지는 거야.”
“그런 건가······.”
“덥진 않지?”
“응.”
“그럼 됐지, 뭐.”
편안한 산책이었다.
은설은 준수가 부재했던 지난 석 달간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꿈처럼 느껴졌다.
모든 일들이 다 꿈만 같다는 은설의 말에 준수가 슬프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에효, 나 없이 혼자 너무 많이 애를 쓰며 지냈어.”
준수가 반대편 손을 들어 은설의 볼을 쓰다듬었다.
은설은 속상해하는 준수의 말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뜨끔했다.
‘혼자였던가······. 내가······.’
은설의 머릿속이 3주 전의 시술 때로 돌아갔다.
친정 부모님에게조차 말하지 않은 채로 진행했던 시술이었지만, 전혀 외롭지가 않았었다.
‘현준이······.’
지금의 어머니와 준수만큼이나 애를 써주었던 현준의 모습이 은설의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무슨 생각해?”
한참을 말이 없는 은설에게 준수가 물었다.
“응? 아니 그냥······. 3주 전에 시술받았을 때가 생각이 나서요.”
“생각은 해서 뭐 해. 아픈 추억이니 잊어요, 그냥.”
은설은 멀고 먼 아프리카대륙에서부터 날아와 지금 자신에게 이렇게 팔을 내어주고 있는 준수에게 어쩐지 미안했다.
외롭지가 않았었다.
준수가 없었는데도.
그리고 현준에게도 미안해졌다.
준수가 돌아온 동시에
잊고 말았던 현준에게.
“만나자마자 이별이라니.”
침대에 걸터앉아서 돌아갈 짐을 챙기는 준수를 보며 은설이 한숨을 쉬었다.
“속상해?”
“응.”
“나 돌아올 때까지 또 시술받고 그러지 말고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요. 다음번은 나랑 같이 해.”
“어차피 회복기간이라 두 달 동안은 아무것도 못해요. 여기 봐. 이렇게 쓰여 있잖아.”
은설이 침대 협탁의 서랍 안에서 수술 후 주의사항이 적혀 있는 종이를 꺼내어 준수에게 읊었다.
“부부 관계는 8주 후부터 가능합니다. 이게 혹시라도 다 회복되기도 전에 임신이 될까 봐서 못하게 하는 거잖아요. 이건 아주 지키기 쉽겠어요. 어차피 준수 씨가 8주 후에나 돌아올 테니.”
“헐. 지금 떠나면 마누라랑 8주 후에나 가능하다니.”
준수가 장난스레 은설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꾹꾹 잘 참았다가 8주 후에 회포 풀어요, 우리. 오른손이야, 그동안 우리 신랑 잘 좀 부탁해.”
은설이 준수의 오른손을 쓰다듬으며 정중히 부탁을 하자, 준수가 민망한 듯 은설의 손을 밀쳤다.
“처리 치우도록 해요.”
“나 진심으로 부탁하는 건데. 오른손이 가 잘해줘야 딴 맘을 안 먹죠, 울 신랑이.”
“어허,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
“알 수 없지.”
“헐.”
“곰돌이 같이 푸근한 게 은근히 매력 있는 스타일이란 말이야. 밖에다가 내놓기 조심스러워서요. 아프리카 여자들을 믿을 수가 없어.”
“농담이야, 칭찬이야? 크큭.”
은설의 말에 툴툴거리면서도 싫지는 않았던 모양인지 준수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 내용도 없이 실없기만 한 은설의 농담이 준수가 짐을 정리하는 내내 이어졌다.
그리고 느긋하게 짐을 싸고 있던 준수가 여유롭게 웃으며 그 말들을 모두 다 받아주었다.
“고마워요. 내 말 다 받아줘서. 아쉬워서 그런가 입이 가만있질 않고 자꾸만 아무 말이나 막 중얼중얼 거려.”
준수의 트렁크에서 ‘딸깍’하며 자물쇠를 닫는 소리가 남과 동시에 은설이 준수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같이 있는 시간이 몇 시간이나 남았다고, 마누라한테 조용히 좀 해달랠 수가 있겠어.”
“뭐야, 실은 듣기 싫었단 얘기 하는 거야, 지금?”
“아니, 같이 있는 시간이 몇 시간 안 남아서 아쉽단 소리지 이 사람아.”
“공항까지 데려다줄까?”
“장모님이 잘도 보내주시겠다. 멀쩡할 때도 정류장에서 헤어졌는데 뭐 하려고 수술한 몸 이끌고 인천까지 가려고 그래.”
준수가 정색을 하며 은설의 농담을 진담으로 받았다.
“그냥 해 본 소리예요. 칫.”
준수는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은설과 함께 거실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다가, 버스 시간이 임박해서야 현관을 나섰다.
“은설 씨, 나오지 마요. 나 엄청 빨리 걸어가야 해.”
“버스시간은 왜 착각을 해가지고. 못 타면 어떡하지?”
“다음 거 타도 비행기는 안 놓쳐. 공항에서 여유가 좀 없을 뿐이지.”
“임서방, 내가 정류장까지 태워줄게.”
은설의 아버지가 점퍼를 입고 나섰다.
“그럼 되겠다. 아빠 임서방 좀 부탁해요. 저 대신 배웅 좀 잘해주세요.”
“아버님, 안 그러셔도 되는데······.”
“아유, 트렁크 끌고 보도블록 빨리 못 걸어 다녀. 그러다 바퀴라도 빠지면 낭패라고.”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손사래를 치던 준수가 잠자코 장인의 말을 따랐다.
“예, 그럼 부탁 좀 드릴게요, 아버님.”
후닥닥 푸닥닥 거리며 준수의 트렁크가 요란스레 현관을 빠져나갔고, 준수와의 두 번째 작별의 순간이 그렇게 정신없이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