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정리할 것이 많았으므로 족발은 배달을 시키기로 했다.
이른 오후, 족발집이 문을 열 무렵에 시킨 족발은 뜨끈하고 또 한없이 부드러웠다.
포장을 뜯은 족발세트 옆으로 은설이 등갈비를 넣고 끓인 김치찌개를 냄비 째 올려놓았다.
“밥 해놨었어?”
“신랑이 두 달 만에 집에 오는데 당연히 준수 씨가 젤루 좋아하는 걸로다가 준비해 놨었죠. 우리 그래도 아직은 간당간당 신혼이잖아.”
“진작 말을 하지. 그럼 족발 안 시켰을 텐데. 난 은설 씨 공항까지 왔다 갔다 운전했는데 밥까지 차리려면 힘들까 봐 족발 먹자 한 건데.”
“아프리카에서부터 먹고 싶었던 거잖아요.”
“어떻게 알았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찾은 음식이니까.”
“예리하네. 실은 저번에 나미비아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먹고 싶었어. 두 달 전에 잠깐 왔을 때 먹고 갔어야 하는 건데. 그땐 경황이 없어가지고······.”
“배달음식 안 좋아하시는 엄마 아빠랑 내내 같이 밥 먹어야 해서 시켜 먹을 생각도 못했지, 뭐. 그거 아니까 김치찌개 끓여놨단 얘기를 못하겠더라고요.”
“원래 하루 묵은 김치찌개가 더 맛있어요. 족발이랑 같이 좀 먹다가 남으면 내가 내일 또 먹을 거니 걱정 말아요. 유후우~오늘도 고기, 내일도 고기구나!”
반가운 음식들 앞에서 신이 난 준수를 은설은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오들거리는 아강발부터 집어 든 준수가 아무것도 안 들리는 사람처럼 몇 입 열심히 뜯다가 곧 정신을 차리곤 은설을 챙겼다.
“나 쳐다보고 있지 말고 은설 씨도 얼른 먹어요. 배가 든든하고 힘이 나야 진지하게 고민을 하든 말든 하지.”
“돌아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오늘, 내일은 아무 생각 없이 놀아요.”
“둘이 수다 떨다 보면 그 얘기 나오지, 그냥.”
“그럼 이거 다 먹고요. 지금은 재미난 얘기만 하면서 먹고.”
상을 물린 준수가 방으로 뛰어가더니 트렁크를 풀어 옷가지 사이사이에 박아둔 무언가를 잔뜩 꺼내 들고는 다시 거실로 나왔다.
“얼른 와 봐요. 상은 나중에 나랑 같이 치우고 은설 씨가 제일 좋아할 선물이나 구경해요.”
“뭔데요?”
“짜잔~”
한 무더기의 과자였다.
“커피만 맛있는 줄 알았더니 과자도 장난 아니게 맛있는 게 많더라고.”
준수가 신이 난 표정으로 테이블 위로 우르르 쏟아낸 과자들을 줄을 세우며 정리했다.
“이거! 특히 맛있어.”
준수가 뜯어준 과자 봉지 안에서 꽤 두툼한 질감의 쿠기가 나왔다.
“음. 진짜 맛있네. 근데 이거 메이드 인 스위스라고 쓰여 있는데?”
“진짜?”
은설의 말에 놀란 준수가 사 온 과자들의 출처를 하나하나 다시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미비아 마트에서 샀으니까 나미비아 과자예요, 다.”
하며 무안한 표정을 지었다.
“마누라 생각해서 나미비아 마트를 다 뒤졌나 보네, 울 신랑이. 잘 먹을게요. 땡큐.”
“마누라 왠지 우울하게 지내고 있을 거 같아서······. 이런 거 사다 주면 좋아할 줄 알았지.”
“좋아. 진짜 좋아요. 이런 게 행복이지.”
은설이 과자 한 봉지를 더 새로 뜯어 연거푸 입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세상 더없이 맛있는 표정을 지으며, 준수의 노고를 치하했다.
십 분쯤 지났을 때는 종류별로 한 둘 씩 꺼내먹은 각종 과자들의 소포장재가 거실 테이블 위를 그득 채우고 있었다.
굵고 짧은 과자 파티가 마무리될 무렵이 되자 준수가 은설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과자 잔뜩 먹으니까 스트레스가 좀 풀리는 거 같아요? 두 달 내내 혼자 고민하느라 애썼어.”
“고민한 시간 자체는 길지 않았어. 그 결정을 스스로 받아들이기까지가 오래 걸렸을 뿐이지.”
“은설 씨가 내린 결론은 뭐야?”
“이제 그만하자.”
“······. 그렇군.”
“근데 그러자니 준수 씨가 마음에 걸려서. 준수 씨도 아이 생각이 아예 없는 건 아니잖아요. 어때요, 준수 씨 생각은?”
“시술을 더 이상 받지 않겠다는 건 동의. 은설 씨 몸고생, 마음 고생하는 거 더 못 보겠어."
"난 그건 괜찮은데."
"괜찮긴 뭐가 괜찮아. 수술방까지 들어갔다 나온 사람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 나중에라도 생기면 낳고, 안 생기면 말고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살자.”
준수가 은설 쪽으로 상체를 숙여 은설의 귀밑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쓰다듬는 준수의 손길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가, 은설은 진지하고 단단한 표정으로 자신의 생각을 좀 더 깊은 곳까지 드러내었다.
“준수 씨, 근데 나는 그거 싫어. ‘생기면 낳고, 아니면 말고’라는 마음으로 지내면 내가 어떻게 되는 줄 알아요? 매달 생리날짜만 되면 다시 증상놀이를 하게 될 거란 말이지."
"증상놀이를 왜 해?"
"생겼을 수도 있으니까. 감기에 걸려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약 한 알도 제대로 못 넘기는 생활로 또 돌아가게 될게 뻔하다고요."
"······."
"그러고 사는 게 너무 싫어서 난임 센터도 다니기 시작한 거잖아. 종지부를 찍으려면 아예 확실하게 찍어버리고 싶어요, 나는."
"종지부?"
"우리 인생에 아이는 없는 걸로. 그래야 내가 다시 예전처럼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 같아요. 임신으로부터.”
“······.”
준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은설의 단호함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준수의 입장에선 임신의 가능성을 아예 닫아버리고 싶다는 말도 난임센터를 다니면서 아이를 만들겠다는 말만큼이나 부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수의 심장 한편에서 계속 준수의 뇌 쪽으로 신호를 보내왔다.
대답을 해야만 한다고.
사랑하는 마누라 이은설의 행복을 위해서 너도 단호히 그래야 한다고.
“은설 씨 뜻대로 해요. 나야 원래 자식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쪽이었잖아. 그러니까 나는······.”
“······.”
“없어도 괜찮아.”
새해가 보름쯤 지났을 무렵 은설은 다시 현준의 진료실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이번 이식까지만 진행하려고.”
은설이 담담히 현준에게 준수와 자신이 내린 결정을 현준에게 알렸다.
현준의 표정이 복잡 미묘해졌다.
“필요하면 소견서 써줄게. 알아본 곳 있어? 좀 더 큰 센터로 옮겨서······.”
“아니. 소견서는 안 써줘도 돼. 병원 안 옮겨. 난임치료를 그만두기로 했어. 남편하고 그렇게 얘기를 끝냈어.”
“지금 포기하긴 좀 아까운데. 시험관 5, 6차 시술 즈음에 생기는 경우도 많아. 채취도 한 번밖에 안 했고, 난소 상태도 좋잖아.”
“해볼 수 있는 것들, 겪을 수 있는 것들은 다 해봤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제 다시 예전처럼 정상적인 생활리듬을 찾고 싶어졌어. 그래서 그래.”
“······.”
“결심을 했으니, 새해도 되었겠다 난임치료를 바로 그만두려고 했는데, 근데 자꾸만 얼어 있는 마지막 배아들이 생각이 나서 말이야."
"아."
"그 녀석들한테 사람이 될 기회는 주고 싶어서. 큰 기대는 안 하고 있지만. 아니, 남아 있는 나팔관 쪽으로 또 자궁 외 임신이 될까 봐 그 걱정이 더 크긴 하지만."
"그렇다고 폐기해 달라 하기엔 마음이 편치가 않았구나?”
"응."
은설이 멋쩍게 웃으며 자신의 결심을 전했다.
힘을 뺀 목소리에선 여유마저 느껴졌고, 담담한 그 모습에서 현준의 외려 은설의 확고한 결심을 느꼈다.
“알았어.”
현준도 담담히 은설의 뜻을 받아들였다.
“고마워. 반드시 극복할 수 있다고 몰아붙이지 않아 줘서.”
“너하고 임준수 씨가 결정할 일이잖아. 내겐 자격이 없지. 아무리 담당의라 해도. 아니, 그 누구라도 너와 임준수 씨의 결정에 왈가왈부할 순 없어.”
시선을 바닥 어딘가에 떨군 채로 은설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일련의 과정들을 진행하니 모든 것이 새삼스레 새롭게 느껴졌다.
이제 다시 오지 않을 병원 앞 약국의 친절한 약사에게 은설은 이유를 말하지 않은 채로 아래 카페에서 테이크아웃해온 달달한 커피 한 잔을 건네었다.
“어머, 단 커피 좋아하는 거 어찌 아시고.”
“조기······. 약국 카운터 안쪽으로 믹스커피봉투라 종이컵이 종종 보이길래요.”
“어머, 센스있으셔라. 잘 마실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요.”
웃으며 마지막 인사를 하는 은설에게 약사가 한 봉지 가득 비타민을 담아 내밀었다.
은설은 사양 않고 그녀의 새해 인사를 받아 들었다.
은설만 아는 마지막 인사를 기분 좋게 나누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