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가장 행복했던 열흘(1)

<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by 이소정

[쌤!]


몇 달 만에 걸려 온 김 선생의 전화였다.

은설이 수화기 건너편에서 인사말을 건네오기도 전에 먼저 반가운 내색을 했다.


[잘 지내셨어요? 새해 복은 잘 받고 계시죠?]

[응. 그럭저럭 맨날 똑같았어.]

[오잉? 해석하기 어려운 대답인데? 그 정도면 잘 지내신 거 맞는 거죠?]

[나빠진 게 없으니 잘 지낸 거라 치지 뭐. 쌤도 잘 지냈어?]

[쌓인 사연이 많아요. 지금은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긴 해요.]

[전하고 싶은 소식 생겼음 샘이 먼저 연락했을 거라 생각은 했어.]

[그랬을 거예요.]


이것만으로도 대답은 충분했다.

김 선생이 은설에게 안부를 더 캐묻지 않고 전화를 건 본래의 목적으로 넘어갔다.


[곧 2월이라 전화했어.]

[안 그래도 학교로 연락을 해야 할 때가 됐다 싶었어요.]

[복직하는 거지?]

[하긴 해야 하는데 말이죠.]

[뉘앙스 독특한데. 고민이 뭔데?]

[샘 여전히 예리하시다. 목소리 톤만 듣고 어떻게 아시는 거예요?]

[내가 이은설을 좀 잘 알잖아. 얼른 말해 봐.]

[실은 오늘 이식을 했어요. 중간이 이런저런 일들이 좀 많았어서 마지막 남은 냉동배아들을 이제야 이식하게 됐거든요.]

[그래서 고민인 거군.]

[큰 기대는 안 하고 있긴 해요. 남편 하곤 이번에 하는 이식을 끝으로 난임센터 다니는 거 마무리하기로 했고요.]

[잘 돼서 임신으로 이어지면 어찌해야 하나 그 고민을 하고 있는 거구나?]

[네. 생각을 안 할 수는 없어서. 이식할 땐 휴직 끝나기 전에 다 마무리하고 쌈빡한 마음으로 새 학기 시작할 마음이었는데, 혹시 이번 이식이 몇 주라도 진행이 되면······.]

[학교를 나갈 수도 없고, 안 나갈 수도 없고 그렇네요. 아, 내가 알려줬단 얘긴 얻다 하지 말고. 응? 크흠.]


김 선생이 조심스레 헛기침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변의 동향을 눈치껏 살펴야 할 때면 으레 나오던 김 선생의 버릇이었다.

곧 목소리를 낮게 가다듬은 김 선생의 조언이 수화기 너머로부터 흘러나왔다.


[일단 복직 신청해. 2주 뒤쯤엔 결과 나오지? 그쯤 새 학기 발령 나고 바로 기간제 모집하겠네. 상황 봐서 그때 휴직 연장해. 산전휴직 쓸 수 있을 거야.]

[5주 차는 되어야 병원에서 임신 판정받을 텐데요.]

[그럼 그때 휴직해. 샘도 잘 알잖아. 3월 1일까지만 기간제 구하면 학교 수업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거.]

[그래도 돼요?]

[안 되는 게 어딨어? 사람 상황이 그렇게 돌아가면 그리 하는 거지. 규정을 어기는 것도 아니잖아. 쓰라고 만들어 놓은 제도 활용하는 것뿐야.]


김 선생이 되려 자기가 흥분을 하기 시작하며 은설의 입장을 대변했다.


[애가 맘먹은 대로 날짜 맞춰 들어설 수 있는 거였으면 애초에 난임휴직이라는 걸 했겠어? 힘들고 복잡할 것도 없어. 막말로 일은 내가 하지 교감 교장이 하나?]


그러다 너무 높아져 버린 언성에 지레 놀라 잠시 눈치를 보는 듯 뜸을 들이다가 또 말을 이었다.


[결재버튼만 누르면 그만인 사람들 신경 쓰지 말고, 그 업무 도맡아 하는 내 말이나 새겨 들어. 교무부장님한텐 내가 잘 말해둘게. 부장님도 마음의 준비는 해두셔야 하니.]

[고마워요, 샘.]

[쓸데없는 데에 스트레스받지 말고 쉬기나 해, 샘. 오늘 이식했다며.]

[네. 그럴게요, 꼭.]




김 선생과 이야기를 이어가는 내내 은설은 몇 번이고 반복해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김 선생이 아니었다면 상의해 볼 엄두도 내지 못했을 어려운 이야기였다.

길었던 통화를 마무리하고, 누운 채로 침대 협탁 위의 충전판에 휴대전화를 얹어 놓으며 은설은 폐 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공기를 꺼내어 한숨을 내뱉었다.

막막했던 와중에 난관을 헤쳐나갈 길을 찾은 것 같아 기쁘면서도 진이 빠졌다.

그리고 이식과 동시에 학교로의 복귀를 준비해야 하는 자신의 상황이 혼란스럽기도 했다.

은설은 자신이 마치 어지러운 꿈과 현실의 경계에 서서 두 발을 각기 다른 세상 속에 담그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강박이 슬금슬금 은설의 머릿속에 차오르려 했다.

머릿속을 무엇으로도 채우고 싶지 않았던 은설은 살짝 고개를 흔들어 깨운 의식을 방 벽 한편에 붙어 있는 고흐의 보리밭 풍경화 포스터에 집중시켰다.

고흐의 보리밭과, 어둑한 겨울 오후의 빛이 든 공간이 은설의 마음처럼 적막했다.

“오늘 이식이 알게 모르게 좀 힘이 들었던 건가.”

전과 같지 않은 컨디션이 은설을 조금 우울하게 만들었고, 은설은 아무런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아 잠을 청했다.




삐리리릭.

도어록이 열리는 소리를 들은 은설의 눈이 스르륵 떠졌다.

반차밖에 낼 수 없어 오전에 은설과 함께 병원에 갔다가 오후에는 회사로 출근을 해야 했던 준수가 분명했다.

“뭐를 하나? 왜 안 들어오는 거야?”

원래대로라면 현관부터 안방까지 직선으로 달려왔을 준수였다.

닫혀 있는 방문 쪽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아무리 기다려도 준수는 좀처럼 은설이 누워있는 방 안으로 들어오질 않았다.

“준수 씨? 준수 씨 맞는 거죠?”

“어, 잠깐만. 나오지 말고 방에 있어 봐.”

“왜 그래? 뭐 해? 도어록 열리는 소리만 나고 준수 씨가 방으로 안 들어와서 나 좀 전에 완전 식겁했었어요.”

“나쁜 사람일까 봐? 히히.”

준수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은설이 뾰루퉁히 골이 난 목소리로 준수의 장난에 응수했다.

“웃지 마. 난 재미없어. 나 오늘 완전 예민해. 작은 일에도 날카롭게 반응한다고요.”

“알았어. 입조심할 테니까 이제 나와봐요.”

“피곤해요. 준수 씨가 방으로 들어와.”

“어차피 저녁은 먹어야 하잖아. 잠깐 나와 봐.”

“에잇, 귀찮은데.”

은설이 준수에게 들리지는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컴컴해진 방안을 가로질러 문틈으로 들어오는 거실의 환한 빛을 향해 더듬더듬 걸음을 옮겼다.

“짜잔!”

놀이동산으로 인도하는 탈인형처럼 두 팔을 활짝 벌린 자세를 하며 준수가 창가 쪽 티 테이블로 은설의 시선을 이끌었다.

“히익, 이게 뭐야? 오늘 무슨 기념일이에요, 우리?”

“기념일이라면 기념일이죠.”

“뭐지? 뭐지?”

“일단 앉아요.”




하나부터 열까지 은설이 좋아하는 것들로만 구성한 아주 제대로 꾸민 다과상이었다.

딸기가 수북이 올라가 앉은 생크림케이크와 옅게 우린 홍차, 그리고 두 사람의 앞접시 위에 소담히 올라앉은 마카롱과 다쿠아즈.

케이크 옆에는 초콜릿칩과 견과류가 잔뜩 박혀 있는 쿠키도 있었다.

“장미도 있네요.”

준수가 베란다 구석에 치워둔 꽃병까지 꺼내어서 꽃들을 옮겨 담아두었다.

“집에 오는 길에 있는 꽃집에서 싸게 팔길래 냅다 샀는데 떨이라 그런가 장미 상태는 쪼끔 메롱이예요.”

“괜찮아요. 멀리서 보면 티 안 나. 아, 이쁘다아. 향기는 무지 좋은데? 여기서도 향기를 맡을 수가 있어요.”

은설이 한껏 들뜬 목소리로 준수를 칭찬했다.

“근데 이거 왜 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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