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따르르르르 따르르르르.
“저 벨소리. 아, 촌스럽고 시끄러워.”
휴대전화를 집안 아무 곳에나 버려두고 받지 않는 일이 잦아진 은설을 나무라며 준수가 바꿔 놓은 벨소리가 수선스럽게 울렸다.
은설은 반사적으로 시계부터 살폈다.
“헉. 4시네.”
휴대전화의 화면에는 예상대로 현준의 진료실 전화번호가 떠 있었다.
막 잠에서 깬 티를 내지 않으려고 몇 번이나 큼큼거리며 목소리를 가다듬고 나서야 은설이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아, 받았어요. 여보세요?]
정간호사에게 하는 듯한 말이 작게 들리고, 그러고 나서 인사를 건네는 현준의 목소리가 정확히 들려왔다.
[응.]
[안 받아서 잠든 줄 알았어. 이따 다시 걸어야 하나 싶어서 끊으려는데 받았네.]
[아, 잠시 뭐 좀 하느라.]
[결과 안 궁금했어?]
뜸을 들이는 현준의 목소리에 약간의 흥분이 녹아 있었다.
[왜? 결과가 어떻길래 그래?]
현준과는 반대로 은설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
[수치가 364야.]
[정말? 그렇게 높아?]
은설의 목소리가 그제야 빛나듯 밝아졌다.
[응.]
[잠깐, 4주 차에 그렇게 높을 수도 있어?]
은설이 순식간에 당황스럽고 의아한 목소리가 되어 현준에게 다시 물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쌍둥이일 가능성이 높아 보여, 은설아.]
[뭐? 쌍둥이?]
[이식한 배아 두 개가 모두 착상에 성공한 듯해.]
[어머! 꺄악! 어머 웬일이야! 쌍둥이래!!]
그제야 제대로 흥분한 은설이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진정해. 은설아, 진정 진정!]
[아, 응. 그래. 알았어.]
아직 현준과의 통화가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은설은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며 현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현준이 목소리 톤을 담담히 바꾸어 으레 해야 하는 말인 것처럼 은설이 예상했던 이야기들을 꺼냈다.
[이틀 뒤 2차 피검. 그다음 이틀 뒤 3차 피검까지 수치가 상승되는 추이를 지켜보긴 해야 해. 자궁 외 경력이 있으니까 아기집을 확인하기 전까진 신경 써서 지켜봐야 하고.]
[후, 니 말 들으니 마음이 갑자기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너무 걱정은 하지 마. 느낌이 그래.]
[니 느낌?]
[응. 대개는 잘 맞아. 친구라서 해주는 말이야.]
현준의 말에 은설이 다시 웃음소리를 냈다.
[헤헤. 다시 기분 좋아졌어.]
[임준수 씨하고 오늘은 기쁘고 즐겁게 보내. 기쁜 날이 맞으니.]
[알았어.]
[그럼 이틀 뒤에 봐.]
[현준아.]
[응? 왜?]
[고마워.]
[어쩌면 쌍둥이일 수 있대요.]
[정말?]
준수가 기쁨에 길길이 날뛰는 이모티콘들을 있는 대로 긁어모아 화면에 띄웠다.
[마누라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아직 그런 거 있을 때는 아녜요.]
[그래도. 이따 뭐 사갈까?]
[되도록이면 야근하지 말고 와요.]
은설의 바람대로 칼같이 퇴근을 한 준수가 발로 차내듯 신발을 벗어던지며 집안으로 뛰쳐 들어왔다.
“마누라! 은설 씨! 나왔어요!”
은설이 차분한 걸음으로 안방에서 걸어 나오며 준수를 나무랐다.
“에? 뭐야? 빈 손이야? 선물 없어요?”
“일찍 오라며.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오느라 아무것도 못 사 왔지.”
준수가 미안함에 풀이 죽은 목소리도 대답했다.
“짜잔! 그럴 줄 알고 내가 준비했지!”
은설이 맥주꾸러미와 마른안주가 든 비닐봉지를 준수에게 내밀었다.
“그동안 나 챙겨주느라 좋아하는 맥주도 못 먹고 맨날 일찍 들어와 살림하느라 힘들었죠? 오늘 내 몫까지 축배를 들어줘요.”
“와우! 무겁게 뭘 이런 걸 사가지고 왔어.”
걱정하는 말을 늘어놓고는 있었지만, 준수가 함박웃음이 가득한 얼굴이 되어 은설이 내민 선물들을 끌어안았다.
“잘 먹을게요. 근데 이거 아꼈다가 나중에 먹을래. 마누라 안정기 들어가면 그때 맘 편히 먹을래요. 여기다 두고 맨날 구경해야지이.”
준수가 창가 쪽 티테이블의 꽃병 옆에 맥주와 안주들을 보기 좋게 세팅했다.
기뻐하는 준수를 흐뭇하게 지켜보던 은설이 준수의 세팅작업이 끝나는 것을 보고 외식을 제안했다.
“나가자. 외식해요, 우리. 먹고 싶은 게 생각났어.”
은설이 준수를 이끌고 동네 맛집으로 소문난 돼지갈빗집으로 들어갔다.
“소갈비 먹지. 신랑이 크게 쏠라고 그랬는데, 쩝.”
은설의 선택이 못내 아쉬웠는지 준수가 마른 입을 다셨다.
“이게 먹고 싶었어. 달달한 양념에 폭 절어 비계까지 보들보들 맛나게 씹히는 부드러운 돼지갈비.”
은설이 맛집 프로그램에서나 나올 법한 멘트를 날리면서 알맞게 익기 시작한 돼지갈비 한 점을 입이 넣었다.
맛있게 오물거리는 은설을 보며 준수도 기분 좋게 상추쌈을 싸기 시작했다.
“자, 아 해봐요. 신랑의 사랑이에요.”
준수가 자신의 주먹보다 조금 작게 싼 쌈꾸러미를 은설의 입에 밀어 넣었고, 은설은 쌈을 요리조리 돌려 기어이 입안 가득 받아 물었다.
“어때요? 맛있죠?”
우걱우걱 쌈을 씹고 있는 은설에게 준수가 기대에 찬 눈으로 자신이 튜닝한 쌈이 맛있는 지를 물었다.
은설은 혀를 놀려 입안 구석구석으로 파고든 쌈의 흔적들까지 훑어 삼키고 나서야 대답을 했다.
“준수 씨, 근데 나요. 맛이 하나도 안 느껴져요. 다 맹맛이야.”
은설의 입덧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바로 보이네. 여기 이거. 아기집.”
현준이 은설에게 초음파 화면 한편을 가리켰다.
“어머! 이쁘게 생겼다. 이전하고 달라. 진짜 이쁘게 동그래. 그치?”
기쁨에 취한 은설이 볼륨 조절이 전혀 되지 않은 목으로 높은 소리를 냈다.
“······.”
당연히 있을 줄 알았던 화답이 없자, 은설은 고개를 빼꼼히 들어 커튼 너머 현준이 앉아 있을 쪽을 바라보았다.
“왜, 그래?”
“잠시만······.”
‘잠시만’이라는 말과 달리 현준은 초음파 기계를 이리저리 굴리며 한참을 더 진찰에만 열중했다.
쌍둥이 임신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현준이 나머지 한 개의 아기집을 찾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은설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길어지는 초음파 진찰에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한 은설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자궁 외 임신의 공포가 또다시 은설의 내면을 장악하려 들썩이고 있었다.
“찾았다! 여기 숨어 있었네. 하하. 은설아 이거 봐봐. 여기! 하나 더 있어.”
“어후, 다행이다. 어후. 어후······.”
은설이 기쁨과 걱정이 뒤섞인 듯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궁금해 견딜 수가 없다는 듯 현준에게 물었다.
“얜 왜 동그랗지가 않지?”
“길쭉한 모양으로 커진 거야. 걱정하지 않아도 돼. 자궁 뒤편에 있어서 내가 발견을 일찍 못 했어. 위치가 둘 다 좋아. 축하해, 은설아.”
현준의 설명에 그제야 안심을 한 은설의 눈에서 참았던 기쁨의 눈물이 터져 나왔다.
“히잉. 고마워. 고마워. 진짜 고마워.”
“진정해. 아직 갈길이 멀어. 지금까진 아주 좋지만 난황 확인하고 심장소리 들을 때까지는, 아니 난임센터 졸업할 때까지는 고맙단 인사 생략. 알았지?”
“응.”
안쪽 진료실에서의 진찰을 마치고 진료책상으로 돌아온 현준이 은설에게 몇 가지 당부를 했다.
“피고임이 약간 보여. 며칠은 더 갈색혈이 소량씩 흘러나올 거 같아. 혹시라도 붉은 출혈이 보이면 바로 병원 응급실로 와야 해.”
“응. 알았어.”
기쁨에 한껏 취해 있던 은설의 표정이 다시 진지해졌다.
은설에게 너무 겁을 준 것 같아 왠지 미안해졌는지 현준이 은설의 기분을 풀어주려 가벼운 농담을 던졌다.
“남편이 애타게 니 소식 기다리고 있겠다. 지금까지는 아주 긍정적이고 좋은 상황이니 기쁜 마음으로 남편에게 결과 알려줘."
"응!"
"임준수 씨 이제 돈 많이 버셔야겠네. 쌍둥이 아빠된 거 축하한다고 내 인사도 전해주고.”
은설이 현준을 따라서 다시 방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