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 에필로그(7) - 은설이 쓰러졌다.

<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by 이소정

“걸을 수 있겠어?”

준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은설에게 물었다.

“물론이지! 처음으로 울 애기들 만나러 가는 길인데."

자신만만한 말투와 달리 은설은 병실 바닥에 발을 내려놓자마자 휘청거리며 옆으로 쓰러졌다.

“거 봐!”

“휠체어 타야겠다.”

은설이 제 입으로 휠체어를 찾았다.

“빈혈이 이런 거구나. 여태 빈혈인 줄 알고 걱정했던 증상들은 그냥 어지러운 느낌일 뿐이었네. 느낌 완전 신기해!"

너스레로 출산 직후의 후유증을 덮으려는 은설을 보며 준수가 다정히 물었다.

“애기들 보러 가니까 좋아?”

“응! 처음 얼굴 보러 가는 건데 당연히 좋지. 울 애기들 누구 닮았어? 준수 씨는 봐서 알잖아.”

은설이 탄 휠체어를 밀어주는 팔에 한껏 오른 기분을 실으면서도 준수는 은설에게 속시원히 답을 주지 않았다.

“가서 직접 봐 봐. 누구 닮았는지.”

“궁금해서 못 견디겠다. 얼른 밀어줘!"

"오케이!"




친정어머니에게 한소리를 들었으면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내달려온 준수와 은설은 정작 신생아 중환자실 앞에선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너무 서둘렀네. 은설 씨 안 힘들어?"

"괜찮아요. 근데 여기 휠체어 타고 들어가도 되나?"

대기 중인 보호자들이 꽤 있었지만 은설처럼 산모복을 입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몇몇은 안면이 있는 사이인지 자기들끼리 인사를 나누는 것이 보였다.

그들 틈에서 휠체어에 몸을 실은 채로 주뼛거리고 있는 은설과 준수를 구원해 줄 간호사가 드디어 신생아중환자실 문 밖으로 나왔다.

“이은설 산모님, 아버님 휠체어 이쪽으로 미세요. 아가들이 이동을 했어요. 저기 다르게 생긴 침대 두 개 있는 쪽으로요.”

아까 전의 상황을 혼자만 알고 있는 준수가 반가운 소식을 들은 사람처럼 소리쳤다.

"와! 둘째 인큐베이터 옮겼네요. 더 심플하네!"

"네. 집중치료실에 있는 인큐베이터는 혹시 생길지도 모를 응급 아가에게 양보하기로 하고 이리로 왔어요."

간호사가 준수보다 더 환하게 웃으며 화답을 했다.




이벤트 없이 태어난 첫째는 일반적인 신생아 요람에 누운 채로 둘째가 들어 있는 인큐베이터 옆에 놓여 있었다.

“에구, 귀여워라. 이렇게 작고 귀여운 아가가 우리 애기구나. 찰떡아, 내가 니 엄마야. 반가워어.”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은설이 첫째에게 인사를 건넸고, 마치 알아듣기라도 한 듯 아기가 엄지손톱만 한 입을 새끼제비처럼 벌리며 운설에게 아는 체를 했다.

“둘째도 보여드릴게요.”

신생아 중환자실의 간호사가 쑥떡이의 인큐베이터 위에 덮어 둔 가리개를 걷었다.

“쑥떡아, 엄마야아.”

자그마한 몸에 이런저런 기계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아기가 투명한 박스 안쪽에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 애기 괜찮다고 들었는데 이게 다 뭐예요?”

“아아, 심박이 약했던 아가라 바이탈사인 체크하려고 붙여 놓은 것들이에요. 콧줄도 숨쉬기 좀 더 편하라고 해준 거고요. 놀라지 않으셔도 돼요.”

“네에.”

간호사의 설명에 은설이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애기 쭈쭈 먹는 거 보여드릴게요. 애기야, 엄마 안심하시게 쪽쪽 잘 먹는 거 보여드리자아.”

간호사가 아주 능숙한 솜씨로 인큐베이터의 옆구리에 난 구멍을 통해 아기에게 젖병을 물렸다.

“첫째는 엄마가 직접 먹이실 수 있어요. 둘째는 제가 잘 먹여줄 테니까 걱정 마시고 첫째한테 가보세요. 여기 면회시간이 30분 밖에 안 되어서 지금부터 먹여도 아마 다는 못 먹이실 거예요.”

첫째에게 얼른 가보라는 간호사의 말에 준수가 급히 첫째 쪽으로 휠체어를 돌렸고, 다른 간호사가 기다렸다는 듯 안고 있던 첫째를 은설에게 넘겼다.

“에구, 우리 애기가 엄마 팔뚝만 하네. 조금만 힘주면 아기가 어디 부러질까 봐 무서워요, 선생님.”

비슷한 이야기를 천 번도 넘게 들은 간호사가 웃으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기가 좀 더 편안히 은설의 품에 안겨 있을 수 있도록 수유자세를 아주 섬세히 조정해 주었다.




짧은 면회였지만, 아기들의 상태를 눈으로 직접 확인한 은설의 상태가 눈에 띄게 빠른 속도로 호전되었다.

머슴밥과 머슴미역국을 삽질하듯 퍼먹으며 은설이 친정어머니에게 이제 막 엄마가 된 티가 나는 말들을 늘어놓았다.

“잘 먹어야 쭈쭈도 잘 나온대요.”

“분유 좀 먹여도 돼. 너무 애쓰지 마. 몸 닳아.”

친정어머니는 은설의 상태만 걱정을 했다.

“이 사람 목표가 쌍둥이들 완모 하는 거래요.”

준수가 은설의 계획을 자랑스레 알렸고, 친정어머니는 그 말을 듣고 손사래를 쳤다.

“아유, 한 명 배부르게 먹이는 것도 힘들어. 둘을 어떻게 다 먹여. 분유랑 섞여 먹여. 알았어?”

“해보고요. 안되면 별 수 없는 거고.”

영 만족스럽지 않은 호응을 보이는 친정어머니에게 실망한 은설이 시큰둥이 대답했다.

은설의 작은 소망이 산산이 부서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퇴원을 앞둔 월요일 아침, 회진을 온 현준이 은설에게 근심스럽게 물었다.

“좀 어때?”

“배에 퍼렇게 멍들었어. 엊그제 아침에 회진 왔을 때 니가 내 배 살펴보면서 미안하다고 한 이유가 이거였어? ”

"응. 근데 지금은 다른 걸 물어보는 거야."

"다른 건······. 괜찮아."

“괜찮긴. 안 괜찮아서 물은 거야. 혈압이 조금씩 오르고 있어. 심박도 평소보다 빨라지고.”

“그래서 그런가? 숨이 차는 거 같아.”

“얼마나?”

“말만 해도? 지금도 숨 차. 너랑 말해서. 어젯밤엔 잘 때도 숨이 잘 안 쉬어져서 자주 깼어."

현준의 얼굴이 병실에 들어섰을 때보다 더 어두워졌다.

“하나도 괜찮지 않았네. 엑스레이 좀 찍어 보자. 걸을 수 있겠어?”

“응. 천천히 걸어 다니는 건 괜찮아.”

엑스레이를 찍을 때만 해도 은설은 그런대로 견딜 수가 있었다.




별일이야 없겠거니 하며 보낸 오전이 끝나갈 즈음이었다.

신생아 황달 때문에 이틀 더 입원하기로 한 아가들과 이틀 뒤에 함께 조리원으로 들어갈지 그냥 바로 조리원에 들어갈지를 준수와 상의하는 사이에 현준이 은설의 병실로 다시 찾아왔다.

“입원을 좀 더 해야겠어.”

“응? 왜?”

“간혹, 임신과 출산 과정 중에 심장에 병이 생기는 산모들이 있어.”

“뭐?”

“지금 니 심장이 2배쯤 커져 있어.”

“······. 아기 낳기 전에 찍은 엑스레이는 결과 괜찮다고 하지 않았어?”

“그 사이에 커진 거야.”

“아······. 그럼 나 뭐 어떻게 되는 거야?”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다.

현실감각을 장착하지 못한 은설이 호기심마저 묻어나는 목소리로 현준에게 물었다.

“심장내과 쪽에 협진 넣었어. 이 분야 전문으로 하는 선생님이 있어. 지금 외래 쪽으로 내려가면 바로 진료 볼 수 있을 거야.”

“응.”

“형도 잘 아는 의사예요.”

"나도?"




"나도 잘 아는 의사래서 너일 줄 알았어."

준수가 한시름 놓았다는 듯이 진료책상 건너편의 미주에게 인사를 건넸다.

“다급하게 협진 요청이 들어왔어요. 외래 있는 날 아니었으면 병실에서 봐드렸을 텐데.”

미주가 전보다 한결 편안하고 다감한 미소를 지으며 은설에게 말했다.

“괜찮아요. 선생님이 봐주신다니 한결 마음이 놓여요.”

“우리 집사람 대체 어떤 상태인 거야?”

은설은 미주를 보며 웃었고, 준수는 다시 걱정에 잠식된 채로 은설의 상태를 물었다.

두 사람의 상반된 태도에 어쩔 줄을 몰라하다가 미주가 ‘잠시만’을 읊조린 뒤 은설의 차트를 살폈다.

그리고 곧 은설의 엑스레이 사진을 열어 놓은 미주의 표정이 현준처럼 어두워졌다.

“이은설 씨, 예전에 내 논문 본 적 있다고 했죠?”

“아, 네. 주산기로 시작하는 제목이었는데.”

“은설 씨가 지금 그게 온 거 같아요.”

“네?”

“정확한 원인은 불명이지만 노산과 쌍태아 임신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긴 했을 거예요. 임신을 기전으로 오는 일종의 급성심부전인데. 아마 출산 전부터 증상이 있긴 했을 거예요. 혹시 뭐 이상한 점 없었어요?”

“애기들 낳기 직전에 다리가 사흘 만에 코끼리처럼 붓긴 했어요. 발목까지 부었다가 종아리까지 부었다가 나중에는 허벅지까지 붓는 식으로요."

"그랬을 거예요."

"단백뇨도 있어서 류현준 선생님이 임신중독이 시작되는 조짐일 수 있다고 그랬고, 그러고 나서 일주일 있다가 아기들 낳았는데."

"부기가 빠지지 않았죠?"

"네. 그 후로 다리가 더 부어서 이상하다 하긴 했어요. 어젯밤부턴 숨이 막히는 느낌이 나서 잠도 못 자고, 기관지 쪽에서 보글보글 소리도 나고. 그래서 감기가 오나 보다 했는데.”

“이게 임신중독하고 구별이 잘 안 돼요. 출산 전에 찍은 엑스레이 상에선 심장이 부은 게 보이질 않아서 더 그랬을 거예요. 이은설 씨는 아기 낳고 나서 심부전이 빠르게 진행된 케이스예요."

"······."

"걱정할까 봐 보호자한테만 말하려고 했는데 증상을 느끼고 있다니 정확히 말씀드릴게요. 폐부종 소견도 보여요. 꽤 진행 됐어요.”

폐부종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던 은설은 ‘꽤 진행이 되었다’는 말로 상황이 녹록지만은 않음을 인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는 아기들 생각이 먼저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진짜 더 입원해야 해요? 외래에서 진료받으면 안 되나요? 아기들이 걱정되어서······.”

"이 사람아, 지금 애들이 문제야? 입원하면 바로 치료받을 수 있는 거지?"

“응. 아기들이 눈에 밟히실 줄은 알지만 그래도 입원은 하셔야 해요. 그래야 바로 심장초음파를 찍어 볼 수 있어요. 외래로 진행할 상황은 아니에요.”

“네.”

“병동을 심장내과 쪽으로 옮길 수 있도록 조치해 둘게요. 옮기고 조금 기다리면 심장초음파 받을 수 있도록 간호사 선생님들이 안내해주실 거예요.”

“네.”

“그럼, 이따 다시 뵐게요.”

준수의 부축을 받으며 은설이 일어섰고, 미주가 따라 일어나 진료실 문 앞까지 은설을 배웅했다.




“어머, 선생님!”

하얀 가운의 앞섶 사이로 볼록히 올라와 있는 미주의 배를 보며 은설이 알아본 내색을 했다.

“아, 네. 저도.”

“어머! 축하드려요. 선생님도 혹시?”

“시험관.”

“몇 주?”

“16주요. 일단은 아들.”

미주가 속 시원히 누구나 무척 궁금해하며 묻는 질문들의 답을 미리 내놓았다.

“어머어머! 축하드려요!!!!”

“고마워요. 근데 지금은 조금만 기뻐해주세요. 심부전 때문에 호흡이 갑자기 꼬일 수 있어요.”

“아, 네. 히힛!”

미주의 진료실을 나올 때까지만 해도 은설은 간간이 웃기도 할 만큼 자신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를 인지하지 못했다.

“현준이 앙큼하네. 벌써 16주나 되었는데 애기 아빠 됐다는 내색도 않고.”

“은설 씨 애 낳게 해 주느라 바빠서 말할 틈이나 있었어? 16주라니 이제부터 슬슬 소문 내려고 했겠지. 얼른 가자. 병실부터 옮겨야 한다잖아.”




준수의 걸음이 빨라졌다.

“준수 씨, 조금만 천천히 가자.”

“숨 차?”

“응.”

“괜찮아? 엇! 엘리베이터 온다.”

마음이 급해진 준수가 괜찮은지를 물으면서도 또다시 서둘러 엘리베이터를 붙잡았다.

“은설 씨, 얼른 타요.”

준수보다 몇 발자국 늦게 엘리베이터에 오른 은설의 숨이 서둘러 내디딘 그 서너 발 때문에 가빠지기 시작했다.

“은설 씨 괜찮아?”

심상치 않은 은설의 상태를 보고 준수가 연신 괜찮은 지를 물었다.

“몰라. 힘들어.”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준수가 당황하며 은설을 둔 채로 간호사 데스크를 향해 뛰었다.

“준수 씨이, 같이 가. 아우, 나, 더, 못 가겠어.”

은설이

결국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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