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 에필로그(9) - 그러고 나니 이해되는 것들

<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by 이소정

중환자실에서 꼬박 2박 3일을 보내고, 은설이 드디어 일반 병동으로 내려왔다.

본래 있던 병실로 돌아온 은설이 휴대전화부터 찾았다.


[엄마! 저 일반병실로 내려왔어요. 이제 걱정 안 하셔도 돼요!]


한껏 톤을 올려 부러 밝고 씩씩한 목소리를 낸 은설에게 돌아온 것은 울며불며 쏟아내는 어머니의 거침없는 욕설이었다.


[······.]


은설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엄마 말 들을 거야, 안 들을 거야? 어? 어디서 그딴 고집을······. 대답해! 이 나쁜 노무 기지배야!]

[엄마 속상한 건 알겠는데······. 근데, 너무 하신 거 아녜요? 방금 전에 중환자실에서 나온 딸한테?]

[······. 면회시간 언제야. 거기 일반 병동도 시간 정해져 있다며. 시부모님들 걱정하고 계셔. 너한테 갔다 오시면 엄만 그다음에 갈 거야.]

[여기 간호간병통합서비스병동인가 그래서 준수 씨도 잠깐 밖에 못 있어요. 여러 사람 올 수도 없고. 저는 입원해 있는 동안은 그냥 신랑만 만나고 싶어요.]

[······. 알았어.]


폭풍이 몰아치듯 냉랭하기만 한 통화가 지나갔다.

기대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른 친정어머니와의 통화에 마음이 상한 은설이 창밖의 먼 산으로 시선을 옮겼다.

바나나송이를 새로 사들고 온 준수가 심상치 않은 은설의 표정을 살폈다.

"왜 그래?"

"엄마랑 통화했어."

"아."

"준수 씨 한테도 뭐라 그랬어?"

"응?"

"태어나서 지금까지 엄마한테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쌍욕을 방금 전에 들었어."

"은설 씨 속상해할까 봐 얘기 안 했는데, 어머님 난리도 아니셨어. 은설 씨 죽으면 어떡하냐고 울며 불며 내 탓도 많이 하셨어. 수술 안 시켜줬다고."

"고생했네. 엄마가 준수 씨한테 욕은 안 했어?"

"하하, 약간 입술이 움찔움찔하셨는데 그건 참으시는 거 같더라."

"참아야지. 딸도 아니고. 사위인데."

"내 편 들어주는 거야?"

"아니. 그냥 엄마 편 안 드는 거야. 수술 안 시켜준 거 아직도 삐쳐있는 중이야, 나. 찰떡이 머리 걸렸단 소리 듣고 진짜 무서웠는데."

"······. 미안해요."

준수가 촉촉해진 눈으로 창밖으로 눈을 돌린 은설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만지지 마요."

은설이 날카롭게 준수의 손길을 거부했다.

"······. 싫으면 안 할게."

"떡졌어. 일주일이나 못 감았잖아. 챙피해."




오후에는 출근을 해야 했던 준수가 병실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초췌한 모습의 현준이 은설의 병실로 찾아왔다.

말은 하지 않지만 꽤 많은 걱정을 한 티가 났고, 은설은 부러 씩씩한 척을 했다.

"어?! 류현준 선생님! 나 살았어. 히힛!"

은설이 먼저 건네는 장난스러운 인사에 현준이 미안한 얼굴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정말 다행이야. 내가 더 일찍 알아챘어야 하는 건데."

"늦지 않게 알아봐 줘서 무사히 살아났잖아. 이제 그건 마음 쓰지 마."

"그렇게 얘기해줘서 고맙다."

"근데 나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물어봐도 돼?"

"뭔데?"

은설의 말에 현준이 긴장한 표정이 되어 은설에게 되물었다.

"나, 제왕절개 수술했으면 심장병 안 오는 거였어? 울 엄마가 자꾸 그렇게 말하시네."

"그건 아니야. 아마 출산 전에 이미 심부전 증상이 시작이 된 상태였을 거고. 그걸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마취가 들어갔으면······. 그랬으면 오히려 더 큰일이 났을 거야. 진짜 죽었을 수도 있어."

"아, 그렇겠구나."

"나도 십 년 감수했어.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정말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사고가 나는 거였어. 네가 수술 우기지 않고 끝까지 자연분만 해준 덕에 나도 살았어. 고마워."

"그런가? 암튼 울 엄마한텐 그렇게 설명할게. 자연분만 해서 내가 산 거라고. 엄마 말 안 듣고 자연분만 했다가 이렇게 된 거라고 엄청 노발대발하셨어. 남편한테까지."

"고생하셨겠네, 형. 참! 유축은 계속하고 있지?"

"응."

"모유수유는 할 수 없을 거야. 약 먹고 말리는 방법도 있지만 이미 여러 가지 약을 투여하고 있는 상태여서 굳이 그 방법을 추천하고 싶지는 않네."

"응. 휴우."

은설의 아쉬움이 한숨과 함께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쏟아져 나왔다.

"산부인과 간호사 선생님 보낼게. 붕대로 동여매고 있으면 그나마 좀 나을 거야. 민간요법이지만 그렇다더라고."

현준이 처방 아닌 처방을 내며 조금 쑥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응."

"참, 현준아."

"응?"

"축하해."

"응? 아. 하하. 고마워."

현준의 표정에 조금 전 보다 훨씬 더 많은 쑥스러움이 담겼다.




"간호사님, 저 이것 좀 다시 해주실 수 있어요?"

"어머, 이게 뭐예요?"

심장내과 병동의 간호사가 놀라 물었다.

"아까 산부인과 간호사님이 와서 묶어주고 가셨어요. 저 젖 말려야 해서."

"아아, 그랬구나."

교대를 하며 전달받지 못한 사항이었는지 간호사가 잠시 당황한 기색을 보이다가 이내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은설의 붕대를 다시 매어 주었다.

"조금씩 젖는 거 같아요. 매일 한 번씩 교체를 해드릴게요."

"그래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간호사가 별 것 아니라는 듯 싱긋 웃다가, 자꾸만 침대시트를 긁으며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은설의 행동을 발견했다.

"왜 그러세요?"

"아, 그게. 가슴이 너무 아파서요."

"어머, 어떡해. 진통제 드려도 되는지 선생님께 여쭤 볼게요."

"감사해요오. 흐윽."




젖몸살이었다.

은설은 가슴으로 다시 진통을 겪는 것만 같았다.

땀처럼 삐질삐질 눈물샘을 뚫고 눈물이 솟았다.

'붇자마자 젖을 말려야 하는 것도 서러운데. 젖몸살이라니."

심장이 아픈 것은 통증이 없었으므로 죽다 산 당사자임에도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졌었다.

그러나 젖몸살의 통증은 은설을 서럽고 또 서럽게 만들었다.

쌍둥이 완모의 꿈을 접어야 하는 현실이 울컥하며 솟구쳐올라 은설의 마음을 후벼 파기 시작했다.

진통제를 가지고 온 간호사가 울고 있는 은설을 발견했다.

"에구. 어떡해. 괜찮으세요?"

"네에."

"쌍둥이 엄마시라고 들었어요. 애기들 많이 보고 싶으시죠?"

"네? 네에."

몹시 무안해진 은설이 결국 거짓말을 했다.




"낳자마자 이별에, 초유도 제대로 못 먹여보고 불을 대로 불은 젖을 생으로 말려야 하다니. 엄마는 이런 내 고통을 알지도 못하면서 전화에다 대고 욕이나 하고."

은설은 퇴근 후 면회를 온 준수에게 그동안 생각할 새 없이 쌓아두기만 했었던 설움을 쏟아냈다.

"장모님 너무 미워하지 마. 속상해서 그러신 거잖아."

"······. 그건 알아요. 엄마 마음이 어땠을지. 애기들을 낳아 봐서 나도 조금은 알아."

"진짜? 애기 낳으면 여자들은 그렇게 빨리 부모님이 막 이해되고 그래?"

"그게 아니라······. 쑥떡이, 나오자마자 좀 아팠잖아."

"그랬지. 지금은 괜찮잖아."

"응. 근데 그때는, 세상 나오자마자 중환자실 들어갔다는 이야기 들었을 때요. 세상의 모든 돌덩이들이 내 위로 쏟아져내리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어?"

"죄책감을 느꼈어."

"은설 씨 탓 아니잖아. 현준이랑 소아과 의사가 그랬잖아. 나올 때 그런 애기들이 종종 있다고."

"알아. 알지만 상식과 상관없이 다 내 탓이었어. 내 마음은. 그리고 그 상황에서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게 너무 비통했어."

"······."

"울 엄마도 그랬겠지. 자식이 중환자실 들어갔다니. 본인이 더 악착같이 자연분만 하겠다는 걸 말렸어야 했었는데 그러지를 못해서 이 사달이 난 거라고 자책했을 거야. 엄마의 분노가 나나 준수 씨를 향한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라는 거 알아요, 나."

"난 몰랐는데. 어머님한테 그만 섭섭해해야겠네."

"준수 씨는 좀 더 섭섭해해도 돼. 낳아준 엄마 아니고 장모님이잖아. 섭섭할 수 있어. 인정! 그리고 현준이가 그랬는데 말이야."

"뭐라 그랬는데?"

"자연분만 했으면 나 죽었을 수도 있대요. 마취 용량 잘못 맞춰서 못 깨어났을 거래. 수술 동의서에 싸인 안 해줘서 고마워요."

고맙다는 은설의 말을 들은 준수가 오히려 괴로워했다.

"그런 얘기 그만해요. 생각도 하기 싫어."

"고맙대도 싫다네, 이 사람이."

"죽었을 수도 있었단 얘기 하지 말자고. 상상만 해도 끔찍해. 은설 씨 앞에서 티는 안 냈지만, 사실 나 중환자실 앞에서 질질 울고 있었어."

"정말? 너무 의연해서 섭섭할 뻔했는데."

"기도삽관 할 수도 있고 그거 하다 죽을 수도 있다는데, 어후. 그래도 그걸 하겠다는 싸인을 하래더라. 손이 막 덜덜 떨리는 걸 미주가 붙잡아줘서 겨우겨우 했어."

"한미주랑 손 잡았어?"

은설이 장난스레 딴지를 걸었다.

"손등, 손등!"

"알았어요. 이번만 그냥 넘어갈게. 나 살려 준 의사 선생님이니까 내가 참아야지, 뭐. 근데 솔직히 말해 봐요."

"뭘 또?"

준수가 아직도 딴지 걸기를 끝내지 않는 은설의 장난에 눈살을 찌푸렸다.

"마누라가 죽을까 봐 눈물이 났던 거야, 아니면 난지 일주일 밖에 안 된 새끼들 데리고 홀아비로 어찌 살아가야 하나 막막해서 눈물이 난 거야?"

"그런 걸 뭘 물어. 당연히 둘 다지. 일어나지도 않은 일 가지고 더 힘 빼지 마요."

"힘 안 빼요.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어."

"그 막막함을 은설 씨가 겪어보질 않아서 그래. 후우."

자신도 모르게 그날이 다시 떠오른 듯, 준수가 회한에 젖은 사람 같은 얼굴이 되었다.




"속상했던 일 한 가지 더 있어."

"또 뭔데? 오늘 왜 이렇게 일이 많았어?"

"아니, 무슨 일 까지는 아니고. 나 자신에 대한 실망?"

"왜?"

"아까 간호사가 나보고 '애기들 많이 보고 싶으시죠?'하고 물었는데. 그때 '네'라고 거짓말했어요."

준수가 눈치 없이 박장대소를 했다.

"웃지 마요."

"낳자마자 모성애가 솟구쳐서 돌덩이 같은 죄책감을 느꼈다며. 근데 안 보고 싶었어 진짜?"

"몰라요. 그때서야 알았어. 내가 생각보다 우리 찰떡이, 쑥떡이 생각을 안 하고 지냈던 거. 내 몸이 죽겠으니까, 애들 생각이 별로 안 났나 봐. 암튼, 새끼를 낳기만 하고 돌보지는 않는 어미 개의 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겠더라고. 나 계속 이런 식이면 어쩌지?"

은설이 진심으로 걱정을 실은 표정이 되어 준수에게 물었다.

"걱정 말아요. 집에 와서 사흘만 돌보면 그냥 직방으로 모성애가 다시 솟구칠 테니까. 얼른 나아서 빨리 집에 오기나 해, 이 사람아."




은설의 상태는 하루가 다르게 나아졌다.

중환자실에서 내려온 지 사흘 째 되던 날, 휠체어를 타고 준수와 함께 병원 안을 산책했던 은설은 그다음 날 소변줄을 뽑자마자 스스로 걸어 병실 앞 복도를 걸었다.

심장내과 병동으로 옮긴 지 일주일 이 지났을 무렵에는 할머니들과 함께 집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을 아이들이 생각났다.

하루가 더 지나고부터는 돌아가 본격적인 육아에 돌입할 수 있을 만한 체력이 자신에게 있는 지를 확인하기 위해 걷는 속도를 체크하기까지 했다.

하루 세 번, 살짝 힘이 들 정도의 걸음으로 걷는 십 분 이상의 산책.

은설은 나름의 규칙을 세워 지키려고 애를 썼고, 아침저녁으로 달라지는 산책 속도에 점점 회복에 대한 자신감도 붙었다.




"어! 현준이네. 류현준 선생니임!"

병원 안을 이리저리 배회하던 은설이 산부인과 근처에서 현준의 뒷모습을 알아봤다.

은설의 목소리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현준이, 멀리서 걸어오는 은설을 보고 반갑게 웃었다.

"와. 많이 좋아졌네?"

"응. 놀라운 소식 알려줄까? 나 몸무게가 임신 직전으로 돌아갔어. 다 붓기였나 봐."

"몸무게만 돌아간 거야. 너무 빨리 빠져서 걱정이네. 체력이 회복되어야 하는데."

은설의 기대와 달리 현준이 걱정스러운 반응을 보이자, 은설이 재빨리 자신의 걷기 속도에 대한 쪽으로 말을 돌렸다.

"나 방금 전에 성인 여자의 평균 걷기 속도에 맞춰서 걸었어. 여기 병원 복도에 그런 것도 쓰여 있더라. 알고 있어?"

"그래? 몰랐네."

"이제 내가 너보다 이 병원 구석구석에 대해 더 잘 알지도 몰라. 하도 돌아다녀서."

"다행이다."

"살아나 보여서?"

"응."

은설과 현준이 아주 오랜만에 서로를 마주 보며 편안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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