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 에필로그(10) - 그렇게 스리슬쩍 화해

<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by 이소정

2주 만의 퇴원이었다.

아기를 낳으러 들어왔을 때는 현준을 통해 입원했지만, 퇴원을 허락한 의사는 미주였다.

"경과가 좋아요. 폐에 물이 빨리 빠지지 않아서 조금 걱정을 했는데, 닷새째부터 눈에 띄게 호전되더니 지금은 별로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예요."

"그럼 이 사람 폐에 아직도 물이 좀 차 있는 거야?"

준수가 걱정스럽게 미주에게 물었다.

"폐에 찬 물이 완벽히 빠지려면 시간이 좀 더 걸려요. 무리하지 않으면 생활하는 데에는 크게 지장 없을 거예요."

"으응."

미주가 은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원래 먹어야 하는 약 외에 비상약을 좀 처방해 줄 거예요. 급작스럽게 숨이 차거나 너무 힘들면 먹어요."

"아, 네. 숨도 안 차고 똑바로 누워서 잘 수도 있어서 이제 다 나은 건 줄 알았어요. 약은 얼마나 먹어야 하나요?"

"경과에 따라 다르죠. 임신성 심부전은 다른 심부전과 다르게 회복이 돼요. 다만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 얼마나 회복이 되는지는 환자마다 달라서 지금 확실하게 말씀드리긴 어려워요."

"그럼 일 년 정도는 먹을 각오를 하고 있어야 하는 건가요?."

"네. 혹은 그보다 더."

"······. 약 금방 끊을 수 있는 거면 모유수유를 재도전해봐도 될지 여쭤보려고 했는데."

미주가 안쓰럽게 웃으며 도리질을 했다.

"혹시라도 이상이 느껴지거나, 불안하면 언제라도 연락하세요, 언니. 외래 아니어도, 아니 병원이 아니라도 봐 드릴게요."

'언니'라는 미주의 호칭에 은설이 방긋 웃음을 지었다.

"고마워요. 한미주 선생님."




"찰떡아, 쑥떡아! 엄마 왔어!"

"하이고야, 엄마 왔다! 엄마 보고싶었어요오오."

시어머니가 아이들을 대신해서 은설을 반겼다.

"어머니임, 고생 많으셨죠? 저 대신 애들 돌봐주시느라······."

"아이다. 아이다."

손사래를 치면서도 시어머니는 며칠 간의 몸고생과 맘고생이 떠올랐는지 잠시 회한에 잠긴 듯한 표정이 되었다.

거실에는 친정어머니가 누워 있는 아가들 옆을 지키며 은설을 기다리고 있었다.

"······. 왔어요, 저."

은설은 화도, 어리광도 없는 무덤덤한 목소리로 짧게 인사만 했다.

"고생했어."

어머니도 어색하고 짧은 화답을 했고, 두 사람은 곧바로 아가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찰떡아, 쑥떡아아, 함미들 말씀 잘 들으면서 잘 지내고 있었어?"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다행이네요."

"병원서 즘심 안 먹고 왔제? 시간이 아직 이르다 아이가."

이제 막 정오를 넘긴 시간이었다.

"천천히 먹어도 돼요."

"니 새벽밥 먹고 배고프다."




시어머니가 서둘러 은설과 준수의 점심상을 차렸다.

가스레인지 위에는 이미 한 냄비 가득 끓여 놓은 미역국이 있었다.

시어머니가 고봉으로 퍼담은 밥과 머슴국을 내었다.

"어서 무라. 사돈도 와서 좀 드세요."

시어머니가 어설픈 서울말로 은설의 친정어머니를 챙겼고, 어머니가 마지못한 표정으로 은설 옆에 앉았다.

식탁 위엔 한 눈에도 구별되는 부산식과 서울식의 맵지 않은 반찬들이 한가득 올려져 있었다.

"이 사람 이래 마이 못 묵는다."

"소화가 잘 안 되어서요. 그래도 밥하고 국은 의사 선생님들이 열심히 챙겨 먹으래서 먹어요. 반만 덜 게요, 어머니."

"그거 무 가지고 되겠나."

"약 때문에 모유수유 못해서 무리하게 먹을 필요 읎다. 이 사람 먹을 수 있는 만큼만 먹으면 된다. 부담스럽게 자꾸 무라고 그러지 마래이."

"약은 언제까지 먹으래?"

오가는 대화 속에 틈을 보던 친정어머니가 참고 참았던 질문을 은설에게 던졌다.

"모르죠, 뭐."

"이뇨제지?"

"네."

"신장 괜찮나 모르겠네. 검사 한 번 받아 보고 나오지 그랬어."

"괜찮대. 물어봤어요. 그리고 신장에 무리 갈 정도로 처방하지 않는대요."

"조리원은?"

"가야죠. 이따 전화해 보려고요."




"진짜?"

은설의 말에 준수만 놀라고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2주지? 가서 푹 쉬다 나와. 아무 신경 안 쓰고 쉬긴 거기만큼 좋은 데 없어."

"그래, 느 그 가모 내도 부산에 좀 다녀올란다. 느그 아부지가 지금 얼떨결에 자취생이 돼가 있다. 가서 좀 챙겨주고 와야지 싶다."

저녁 무렵이 되자 친정어머니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밤엔 임서방하고 늬 시어머니가 애기들 봐주기로 했었어. 임서방 출근 전에 내가 와선 손 바꿔드리면 좀 쉬시고."

은설이 없던 사이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 사이에 합의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옷을 입고 나서는 동안 친정어머니가 은설에게 귀띔 아닌 귀띔을 했다.

"애 하나씩 나눠 맡자니 애기들 살림을 나누기도 뭐 하고, 종일 같이 돌보자니 할머니 둘이 애기 돌보는 스타일이 달라서, 돌아가며 한 사람이 일임하는 게 낫더라고."

"알아서들 잘하셨겠지. 내가 뭐 아나요? 아직 내 손으로 애들 돌봐 보지를 않았는데. 두 분이서 서로 맘 상하는 일 없이 애기들 잘 돌봐 주셔서 그저 감사할 따름이에요. 실은 걱정을 좀 했었어요."

"병원에 누워 있으면서 별 걸 다 걱정했네. 그리고······."

현관 근처에 놓여있던 친정어머니의 가방을 챙기느라 은설이 어머니의 말을 놓쳤다.

"응? 뭐라 하셨어요?"

"아유, 어련히 알아서 들고 갈까 봐. 몸 좀 아껴. 별 말 안 했어. 나오지 말고."

아기들을 돌보고 있던 시어머니는 거실에서, 은설은 현관에서 배웅을 하고, 준수가 꺾어 신은 운동화를 끌며 총총히 친정어머니의 뒤를 따라나섰다.




"어머니, 저 먼저 잘게요."

은설이 10시도 되기 전에 시어머니에게 밤인사를 했다.

"그래. 오늘 욕봤데이. 들 가서 푹 쉬그라. 내일 아침에 또 조리원 들 갈 준비 하려면 바쁘다."

"아녜요. 퇴원하고 와서 한 거라곤 차려주신 밥 먹은 거밖에 없는데요, 뭐. 근데 병원에서 2주 넘게 10시 전에 잤더니 습관이 됐는지 무지 졸려서······."

"얼른 자라. 잠을 잘 자야 병도 낫는다. 애들은 할매하고 자알 잔다. 걱정 말고 자그라."

시어머니가 손사래를 치며 은설의 등을 방문 쪽으로 떠밀었다.

"감사해요, 어머님."

쑥스러웠는지, 시어머니가 은설의 감사인사에 대답을 않고 빙그레 웃기만 했다.

"어머니임, 애기들 왔어요오."

"아이고, 왔나? 어디 보자아. 아구, 이레 많이 컸나?"

2주 만에 아이들을 본 시어머니가 깜짝 놀란 표정이 되어 은설에게 물었다.

"할머니이, 저희 많이 컸죠? 이제 허벅지에 살도 붙었어요"

"하따 마, 그르네! 손꾸락맨키로 가느다랗던게 이제 좀 삼삼하이 맨질만 하다."

시어머니가 겉싸개에 싸여 있던 아이들을 내리며 대충 만져봤으면서도 은설의 말에 크게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래, 지낼 만은 하드나?"

"네."

"심심했다 카드라."

아이들을 먼저 올리고, 짐가방을 가지러 한 번 더 주차장으로 내려갔던 준수가 챙겨 온 짐들을 안방으로 나르며 은설 대신 대답을 했다.

"하는 일이 별로 없어가지고요. 젖 말려서 유축도 안 하고, 약 때문에 부기도 다 빠져서 마사지도 기본만 대충 받고요. 그거 받는 것도 힘들더라고요. 쉬기는 엄청 잘 쉬다 왔어요. 아가들이 분유만 먹으니까 밤중수유도 다 해줘서 신경 쓸 게 제 약 챙겨 먹는 거밖에 없더라고요."

"근데 와 이렇게 살이 빠졌노?"

"네?"

"핼쑥하다."

"살이 좀 빠져서 그런가? 그런데 체력은 날이 갈수록 괜찮아지고 있어요, 어머님."

"느 살 뺀다고 안 먹고 그러면 안 된데이. 잘 챙겨 먹어야 잘 낫는 기다."

"네."

"살 뺀다고 안 먹는 기 아이고, 이 사람 못 먹는 기다."

"와?"

"소화가 전처럼 잘 안 돼요. 심부전 후유증 같은 건가 보더라고요."

"맛도 잘 못 느낀다."

"그건 그냥 심리적인 걸 수도 있어요. 어머니 걱정하실라. 그만 얘기해요."

"그런 후유증이 있나?"

"순환이 잘 안 되어서 이런저런 후유증이 좀 나타나나 봐요. 몸이 회복되면 자연스럽게 좋아질 거래요."

"그라모 다행이고. 우째 은설이 입맛 도는 걸 뭘 해줘야 할 낀데. 뭐 먹고 싶은 거 없나?"

"없어요, 어머님.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그냥 제가 가리지 않고 골고루 먹는 게 젤 좋은 방법에요."

"많이 못 먹는데 밥 더 먹으라고 엄마가 강요만 안 하믄 된다."




"어머님 섭섭하시게 왜 말을 그렇게 해?"

시어머니가 점심 준비를 하는 사이, 준수와 함께 아이들이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온 은설이 준수를 나무랐다.

"나라도 해줄 말은 해줘야지. 은설 씨 거절 잘 못하는 성격인 거 아는데. 쌀밥 안 먹는 거 진짜 엄마한테 얘기 안 할 거야?"

"먹을 거야, 쪼금은. 어머니 걱정하셔."

은설은 병에 대한 트라우마가 엉뚱한 방향으로 나타난 상태였다.

"쌀밥만 보면 우울하다며."

"소화가 안 되는 건 아니니까. 그냥 더 큰 스트레스가 뭔지를 따져서 선택한 거예요. 밥 안 먹는다고 같이 지내는 내내 걱정하실 어머니 보는 것보다 그냥 좀 먹는 게 나을 거 같아."

"너무 무리하지는 마. 그러다 체 해."

"응."




심장내과 병동에 입원해 있던 열흘 동안, 이뇨제 부작용으로 부족해진 칼륨을 채우기 위해서 은설은 하루 세 번 모래알 같이 입 안에서 맴을 도는 쌀밥을 억지로 입속에 밀어 넣었었다.

"약이다 생각하고 한 공기를 다 밀어 넣었거든. 진짜 한 톨도 안 남겼었어. 그렇게 삼십 그릇을 먹고 나니까 이제 밥일 약으로 보여요. 그래서 밥공기만 보면 '저거 저거, 병난 사람이나 먹는 약덩어리' 딱 이런 생각이 들면서 조금도 먹고 싶단 생각이 안 들어. 왜냐면, 이제 나는······. 괜찮으니까요."

"안 괜찮잖아요."

준수가 슬프게 칭얼거리는 목소리로 은설에게 대꾸했다.

"그냥 약만 꾸준히 먹는 거지. 증세는 없다고. 환자가 아니니까 퇴원을 한 거지."

"조리원에 있을 때 중간에 한 번 미주한테 갔잖아. 힘들다고. 내가 그날 얼마나 놀랐는데."

"그건 심리적인 거였던 거 같아. 조금만 힘들어도 혹시나 심장에 또 이상이 온 건 아닌가 싶어서 너무 무섭더라고. 지금은 안 그래요. 이제 좀 알겠어. 그냥 좀 쉬면 괜찮아지는 거. 뭐 여차하면 비상약 처방해 준 거 먹으면 되고."

"은설 씨 마음이 많이 여유로워지긴 했네요."

"그래도 쌀밥은 싫어요."

"말하라니까?"

"아냐. 어머님한테 굳이 그 걱정까지 보태드리고 싶진 않아요. 한 달 동안은 웬만하면 어머님 말씀 잘 들으면서 지낼 거야."

"그럴 수 있겠어? 미리 말 하지만 울 엄마가 애들 돌보는 스타일 그냥 딱 35년 전 스타일 그대로야."

"수지가 팁을 알려줬어. 6.25 때도 갓난쟁이들은 태어났고 그 애들이 멀쩡히 잘 자라서 지금 저기 있는 저 할머니들 되었다 생각하니까 마음이 좀 편해지더래요. 30년 전 스타일이어도 어쨌거나 전쟁 때보단 곱게 키워주고 않냐고 나보고 아무 생각 말고 있으래."

"크큭. 아이고, 웃을 타이밍이 아닌데. 쏘리."

"나 아직 애들 못 돌봐요. 계시는 동안 전적으로 어머님께 맡겨야 하는 상황인데 애들 건강에 해 되는 거 아니면 그냥 다 넘길 거야."

"참고로 애들한테 뽀뽀는 하시면 안 된다고는 내가 엄마한테 말해놨어. 충치균 옮는다고."

"오오."

은설이 준수에게 엄지손가락을 추켜 세워주었다.

"나 닮아서 애들이 이가 약할까 봐요."

준수가 쑥스러움과 걱정이 섞인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참, 장모님은 지금쯤 수술 끝나셨으려나?"

"응. 회복실에 계시대요. 언니한테 메시지 왔어."

"처형이 혼자 애쓰시네."

"그러게."

"은설 씨, 울어?"

훌쩍이는 은설의 어깨를 짚으며 준수가 물었고, 은설이 준수의 손을 치우고 세운 두 무릎 위로 얼굴을 파묻으며 말했다.

"준수 씨가 '울어?'소리만 안 했어도 안 울었어요."

"눈물 나면 울어, 이 사람아. 참아 봐야 스트레스만 되지."

"엄마 암수술 하는지도 모르고, 우리 애들 돌봐주러 오지 않을 거라는 말만 듣고 내가 생 지랄을 했어. 섭섭하다고."

"몰랐으니까 그랬지. 신생아 둘을 몽땅 시어머니한테만 맡기기 미안해서 그랬다며. 어머니도 그건 이해하실 거야."

"나 애 낳고 회복하는 거에만 꽂혀서 엄마 아픈 것도 몰라봤어. 그게 너무 미안해."

은설이 기어이 '흑흑'거리는 소리를 냈다.

"울 엄마도 참. 장모님하고 그렇게 합의를 했으면 미리 좀 말을 해주지, 나한테라도. 근데 울 엄마는 우리도 알고 있는 줄 알았대. 장모님 수술하시는 거."

"엄마는 바보같이. 애 낳는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수술날짜까지 다 잡아 놓고서 두 왜 말을 안 한 거야."

눈물을 닦아낸 은설이 이번엔 투덜거리는 소리를 해댔다.

"애기들 낳고 한 달쯤 후니까 웬만히 조리가 된 다음이라서 오늘로 날짜 잡으신 거랬잖아. 이쯤 얘기해도 상관없다 생각하셨겠지. 은설 씨가 이렇게 아파버릴 줄 아셨나, 뭐."

"그래도······."

"이따 통화라도 하게 되면 잘해드려요. 딸내미 산후조리며 핏덩어리들 키우는 거 마음처럼 못해줘서 속상해하고 계실 분인 거 알잖아."

"······."




[엄마아, 괜찮으세요?]

[으응. 괜찮아.]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친정어머니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도 않을 만큼 작고 쇳소리가 잔뜩 섞여 있었다.


[이잉. 아프지 마요, 엄마.]

[야, 위로하겠다고 전화해놓고 니가 왜 울어.]


은설을 다그치는 것은 언니의 목소리였다.


[엄마 어떻대? 괜찮대?]

[한쪽 다 뗐어. 그치만 워낙에 극초기에 발견한 거라 수술은 아주 깔끔하게 잘 됐대. 확실하게는 검사를 더 해보고 말해줄 수 있지만 일단은 항암을 따로 안 해도 될 걸로 보인대.]

[다행이다!]

[시어머니가 한 달 계셔주신댔지? 그 후로는 엄마가 종종 가서 봐주고.]

[응. 두 분이서 그러자고 하셨대.]

[그래도 엄마한테 너무 기대는 말어. 엄청 피곤해할 거란 말이야.]

[응. 안 해. 안 할 거야.]

[그렇다고 아예 안 부르면 섭섭해하니까 니가 적당히 조절해.]

[응.]

[애들은?]

[잘 크고 있어.]

[사진이나 많이 찍어서 엄마한테 보내주고 그래. 암수술이 문제가 아니야, 지금. 아주 궁금해 죽는다, 죽어.]

[응.]

[너도 무리하지 말고. 시어머니가 해주신달때 바짝 기대고 얼른 기운 차려. 가시고 나면 다 니가 해야 하잖아.]

[알았어.]


언니가 성격만큼이나 시원시원하게 복잡한 상황들을 정리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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