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에필로그(11_마지막) - 이제 진짜 끝!

<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by 이소정

"어?"

수지가 보낸 모바일 돌잔치 초대장이었다.

잠들어 있는 아가들 옆에 새우처럼 누워 있던 은설이 팔이 자유롭도록 자세를 고친 뒤, 초대장에 올라 있는 서우의 사진들을 클릭했다.

"어머! 진짜 많이 컸네."

사진의 마지막엔 서우를 안고 있는 수지와 형석이 부부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살 다 뺐네. 울 수지 다시 예뻐졌구만."

궁금함을 참지 못한 은설이 수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써얼~!! 우리 썰이 이제 다 나았니?]

[살만 해, 그러니까 너한테 전화도 걸지. 서우 돌잔치 하네. 축하해! 갈게.]

[너무 무리는 하지 마. 안 섭섭해할게.]

[진짜 많이 나았어. 돌잔치 즈음엔 지유랑 소유도 백일 가까이 되니까 외출할 수 있을 거야. 궁금해서 못 참아. 준수 씨 졸라서 갈래.]

[그럼 와. 하하. 고마워.]

[뭘. 내가 가고 싶어서 안달이 난 건데.]

[애기들 이름은 지유랑 소유로 확정된 거야?]

[응. 다수결로. 우리가 지은 이름에 아버님이 한자 붙여주시는 식으로 해서 후보가 3개쯤 있었는데 친가 외가 식구마다 다 물어봤더니 임소유랑 임지유가 가장 득표수가 많았어.]

[이쁘네. 첫째가 지유고 둘째가 소유지?]]

[어떻게 알았어? 보통은 소유가 첫째 이름인 줄 알아. 가나다 순의 영향인가 봐.]

[느낌이 그랬어. 내가 애들 얼굴을 알아서 그런가 봐. 지유는 지유처럼 생겼고. 소유는 소유처럼 생겼어.]

[진짜? 나도 그랬어. 그래서 지유가 지유가 되고, 소유가 소유가 됐어.]

[잘 지었네, 그럼. 이미지랑 이름이랑 맞잖아.]

[그렇게 얘기해 줘서 고맙다아.]

[시어머니는? 가셨어?]

[아니, 아직. 내일모레 내려가실 예정이야. 지금 외출하셨어. 애들 아빠랑.]

[뭐 사러?]

[아니. 애들 아빠가 기분 풀어드리려고 모시고 나갔어.]

[며느리랑 한 달 동안 씨름하시느라 힘드셨나? 어머니랑은 잘 지냈어, 참?]

[아니. 근데 잘 못 지낸 게 나는 아니고. 내가 꼬리를 세울 입장이 아니었잖아. 하하. 그리고 울 시어머니는 딱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그냥 '착한 사람'이셔. 이건 진짜 인정. 그전까지는 울 시어머니를 '그래도 이 정도면 정상인 시어머니' 정도로만 정의 내렸었는데, 이번에 확실히 알았어. '착한 사람'이야, 진짜. 그래서 나랑은 잘 지내셨는데, 지금 본인의 아들하고 좀 그러시지.]

[아들? 왜?]

[15년 만에 엄마랑 붙어 산 거잖아. 오래간만에 엄마 잔소리를 들으니 못 참겠었나 보더라고. 어제 애들 분유병 닦는 방법 가지고 어머니한테 한소리 하다가 역으로 잔소리공격 당하고 듣다 듣다 못 참고 덤볐어. 어머니는 대박 삐치시고.]

[준수 씨가 니 몫까지 대신했네. 어머니도 삐치실만 하다. 신생아에 그것도 쌍둥이 독박육아를 대타 뛰고 있는 와중에 아들내미가 섭섭하게 어머니한테 대들었단 말이지?]

[응.]

[그래서 내일모레 내려갈 차표 끊으신 거야?]

[그건 아니고. 아버님이 한 달 넘게 혼자 지내고 계셔서. 나도 많이 나았어. 낮엔 나 혼자서 애들 돌보기도 하고 그래. 어머니 주무시거나 마트가시고 그러면.]

[아, 그럼 지금도 너 혼자 애들 보고 있는 거야?]

[응. 애들 일어나면 분유 먹이고 기저귀 갈아주고 그러다 다시 잠들 때쯤 어머니 들어오시고. 딱 요 사이클 한 바퀴는 할 수 있어.]

[어머니 가시고 나면 독박육아 시작인 거지? 할 수 있겠어?]

[엄마가 가끔 와주실 거 같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그것만도 감지덕지야. 울 엄마 수술한 거 내가 얘기했지?]

[응.]

[밤이 문제야.]

[밤수?]

[응. 여태까지는 어머니가 밤에 애들 딱 끼고 주무셔주셔서 밤잠을 하루에 열 시간씩 자고 그랬단 말이지.]

[와우!]

[어머님 얼굴빛이 지금 잿빛이야.]

[와, 미안하지만 지금은 너네 시어머니한테 확 감정이입 된다. 난 애 하나여도 밤마다 힘들었는데. 쌍둥이 밤수를 혼자 어떻게 하셨지? 애들이 번갈아 깨서 분유 달라고 하면 밤에 삼십 분도 못 잘 텐데. 아, 준수 씨가 좀 도왔겠구나.]

[어머니가 쫓아내셨어. 코 심하게 골아서 애들 귀청 떨어지겠다고. 뭐 그렇게 말씀은 하셨는데, 출근해야 하는 아들 안쓰러워서 혼자 독박하신 거 같긴 해. 난 안 그럴 거지만.]

[그러지 마. 준수 씨가 니 아들은 아니어서 넌 그렇게 못 할 거야. 아마.]

[하하, 맞아. 암튼 그래서 요즘은 낮엔 어머니 좀 주무시게 하고 내가 애들 봐. 근데 진짜 쳐다만 보고 있어. 나 이래도 되니?]

[신생아잖아. 누워 자는데 괜히 안아주는 게 실례지. 깨면 눈이나 좀 마주쳐주고 그러는 거지, 뭐.]

[길게도 안 봐. 어머니가 낮에 두 시간 연속 주무시진 않거든. 마음을 못 놓으시는 건지. 암튼 요즘은 '꼬깔꼬깔'의 힘으로 버티시는 거 같아.]

[과자?]

[응. 평소에 그런 거 절대로 안 드시던 분인데. 어느 날 마트에서 여덟 봉지 든 패키지를 하나 사 오시더니 이틀에 한 봉지씩 뜯어 드시고 지금 한 봉지 남았어. 얼굴은 나보다 더 푸석푸석 해지셨는데 여기 와서 한 달 새 5킬로가 찌셨대. 피곤해서 밥 먹고 과자 먹고 주스 먹고 자꾸자꾸 뭘 막 먹는데 막상 움직이는 동선은 집안뿐이니까.]

[그렇겠다. 모유수유를 하시는 것도 아니고.]

[모유수유 얘기는 하지 마. 가슴 아퍼.]

[앗, 오케오케. 미아안.]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셨나 보다. 끊어. 돌잔치 날 봐.]

[그전에 또 통화하겠지, 우리가. 암튼! 일단 안녕!]

[안녕!]




급하게 끊은 전화를 애들 곁에서 멀찌감치 던져놓고 은설이 종종걸음을 뛰며 현관으로 갔다.

오래간만에 쇼핑몰을, 그것도 아들과 함께 돌고 온 시어머니는 마음이 풀렸는지 표정이 밝았다.

"아가들 옷을 음청 세일해서 팔드라. 아가들 큰 내복은 아직 없다 아이가. 90짜리로 몇 개 사 왔다. 하이고, 가격이 좋아서 사긴 샀는데 내 맘에 쏙 드는 디자인은 없는 기라. 고민하다가 그냥 샀다."

혹시나 은설의 마음에 들지 않을까 염려를 하였는지, 시어머니가 디자인이 마음에 쏙 들지는 않았다는 것을 몇 번이나 강조해서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가 저보다 옷 잘 보시잖아요. 전 이것도 다 이뻐요. 아시잖아요. 애들 아빠가 저 맨날 무채색인간이라고 놀리는 거."

준수가 은설의 말을 받아서 어머니의 역성을 한번 더 들었다.

"맞다, 엄마. 이 사람은 하얀색 하고 검은색 옷만 산다. 아직 애들 옷은 뭐가 이쁜지 감 없다. 고민하지 마라. 은설 씨, 이것 봐요. 엄마가 내 남방도 사줬어."

"준수 씨가 어머니 것을 좋은 걸 좀 사드렸어야죠."

은설이 철없이 새 옷을 자랑하는 준수를 나무랐고, 시어머니가 준수를 감쌌다.

"으응. 봤는데 내 맘에 쏙 드는 게 없드라. 있으모 사돌라켔을 낀데."

"그래도······."

"마음 쓰지 마라."

아들과의 극적인 화해를 마치고, 은설의 착한 시어머니가 걱정 반 기쁨 반의 표정을 지으며 부산으로 돌아갔다.

그 주에 한 영상통화에서 시어머니는 몸살을 크게 앓고 난 후의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나 은설의 안부를 물었다.


[힘들제?]

[어머니가 힘든 날들 저 대신 다 보내주고 가셨어요. 애들이 밤중 수유를 한 번밖에 안 먹고 쭉 잘 자요. 난지 두 달 넘어가서 그런가 봐요.]

[다행이다. 그래도 새벽에 둘 멕이고 그럴라믄 니가 힘들 낀데 걱정이다.]


은설이 대답 대신 쌍둥이들의 얼굴을 차례로 화면에 비추며 말했다.


[할머니이, 할아버지이.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엄마 아빠 안 힘들게 하면서 쑥쑥 잘 자라고 있어요오.]




"준수 씨, 이것도 실어요."

"아냐, 분명히 우리 애기들 안 내려놓을 거야. 불안해서."

"그런가?"

절충형 유모차를 차에 실을지 말지를 두고 은설과 준수가 한참이나 고민을 했다.

"그냥 디럭스를 살 걸 그랬나 봐."

"아니야. 애들 태어나서 지금까지 병원 말고는 한 번도 외출 안 했잖아. 내가 봤을 때 오늘 말고 우리가 외출하는 날은 더 없을 거 같아."

"왜?"

"짐이 너무 많아서."

준수가 첫 외출을 앞두고 은설이 꾸린 두 꾸러미의 짐가방을 가리켰다.

"저 짐이 반으로 줄기 전까지 우리가 어디를 놀러 다니는 일은 없을 거 같아. 차라리 내가 집에서 애들을 보고 은설 씨를 혼자 내보내줄게."

"정말? 약속한 거예요!"

"암튼 이제 좀 나가자고. 이미 늦었어."

"응."




돌잔치 장소는 나루중학교 근처의 소박한 뷔페였다.

"미용실 예약 안 했다며? 근데 왜 이렇게 이뻐? 어째서 다시 아가씨가 된 거야, 애기엄마가?"

은설이 수지의 손을 붙잡고 흔들며 당장 떠오르는 말 중에 최고의 칭찬이 될 법한 말들을 골랐다.

"오래간만에 솜씨 좀 발휘했어. 내가 중학교 때부터 만화는 좀 그렸잖아. 이쁘게. 에구, 우리 쌍둥이들 그새 더 컸네. 서우아빠! 은설이 왔어!"

수지가 아이를 안고 여기저기 인사를 다니고 있는 형석이를 불렀다.

"오, 왔어? 오셨어요, 형? 아이고, 쌍딩이들도 왔네. 서우야, 친구야 친구."

"친구긴 한데, 지금은 엄청 큰 오빠랑 동생들 같이 보이네요. 축하해요, 형석 씨!"

"아유, 저한테도 말씀 놓으세요. 현준이랑은 형동생 하기로 하셨다면서요."

"그럴까, 그럼?"

"예예, 편하게! 그래야 자주 오래 보죠. 그나저나 류현준 이 자식은 왜 아직도 안 와? 곧 행사 시작하는데."

"서우아빠, 저기! 오, 현준이도 와이프랑 같이 왔는데?"




수지 부부가 바라보는 쪽을 향해 은설과 준수도 몸을 돌렸다.

그 사이 배가 꽤 나온 미주가 커리어우먼의 느낌이 물씬 나는 임부복을 차려입고선 차분히 돌잔치 장소로 입장을 했고, 현준이 그 뒤에 바짝 붙어 미주보다 더 안절부절못하지 못하는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야야, 안 그래도 돼. 니가 더 걸리적거리겠어, 미주 씨한테. 오래간만이에요, 미주 씨. 애기 생기고 어째 더 이뻐지셨어."

형석이 예의 그 유쾌함으로 현준 부부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원래 호르몬 변화 때문에 임신 중기에는 피부가 더······."

현준이 인사를 건너뛰고 대신 쓸데없는 사족을 달았다.

"누가 산부인과 의사 아니랄까 봐. 이 대목에서 그런 얘기는 왜 해. 어째 새장가가고 나서 눈치가 더 없어졌어, 저 자식은."

"그러게 말이에요. 좀 혼내주세요. 어머, 나 좀 봐. 인사도 않고. 축하해요, 형석 씨, 축하드려요, 수지언니. 서우야, 축하해."

미주가 병원에서는 본 적 없던 나긋하고 편안한 미소를 띠며 축하인사를 건네고는 곧바로 은설에게 안부를 물었다.

"오늘은 병원 밖에서 만나네요. 진료 때보다 안색이 훨씬 좋아졌어요, 언니."

"미주 씨가 명의라서 그렇죠. 요새 하루가 다르게 컨디션이 좋아지는 거 같아요. 가끔 힘들면 확 숨찰 때도 있지만 그래도 좀 쉬면 나아져요. 비상약 안 먹은 지 2주도 넘은 거 같아요."

진료실이 아닌데도 가만히 은설의 증상 이야기를 들어주던 미주가 걱정이 살짝 섞인 목소리로 은설에게 말했다.

"비상약 겁내거나 아끼지 말고 필요하다 싶으면 참지 말고 드세요. 몸에 무리 갈 정도로 세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그럴게요."

은설이 믿음을 가득 실어 미주에게 답했다.




"나한테는 인사 안 해주니?"

현준이 섭섭한 체를 하며 은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내가 이제 미주 씨랑 더 많이 만나고, 더 친하게 지내야 해서 말이야. 넌 좀 이따 인사해 주려고 그랬지."

은설의 말을 듣고 현준이 몸을 휙 돌려 준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럼 전 형하고 놀죠, 뭐."

"나야 술친구 하나 더 생기면 좋지."

준수가 웃으며 현준에게 맞장구를 쳐주었다.

"자자, 앉으세요, 앉아. 이제 행사 시작합니다."




형석이 내내 서서 인사를 주고받던 일행들을 모두 몰아 한 테이블에 앉혔다.

곧 불이 꺼지고 서우의 성장일기 영상이 하얀 화면 안에 펼쳐졌다.

그리고 생일축하노래와 함께 형석과 수지와 서우가 길을 비춘 환한 불빛을 따라 아기자기한 걸음을 걸으며 돌상 앞으로 입장했다.

"조명받으니까 더 이쁘네, 울 수지. 나도 좀 꾸미고 올 걸 그랬나 봐. 오늘 여기서 내가 제일 후줄해요."

아기들 짐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 혹시라도 아이들 돌보는 데 해가 될까 싶어 예쁜 옷은커녕 선크림 하나도 바르지 않고 나섰던 은설이 속이 좀 상한 목소리로 준수에게 투덜댔다.

"속상해하지 마요. 내 눈엔 은설 씨가 젤 이뻐. 이쁜 딸내미를 한 번에 둘이나 낳아준 우리 마누라가 여기서 일등이야. 봐요, 다들 애기가 한 명씩밖에 없잖아. 우리만 둘이잖아. 우리가 이겼어."

"치이."

말이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도 준수의 한마디 한마디에 은설의 기분이 핀라이트 조명을 받은 듯 환해졌다.

행사가 끝이 나고 미리 식사를 마친 지인들이 하나 둘 자리를 떴다.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며 담소를 나누던 은설과 준수, 현준과 미주도 슬슬 시작되는 쌍둥이들의 칭얼거림을 신호삼아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잠깐, 잠깐만! 다 같이 사진 한 방 찍고 가."

서우와 수지에게 작별인사를 건네는 일행들을 향해 형석이 스냅사진작가를 팔을 끌어 오며 소리쳤다.

"저쪽 벽이 이쁘게 나오던데 방향을 살짝 이쪽을 잡으시고 서주시겠어요?"

돌잔치가 다 끝나도록 자리를 뜨지 않고 형석의 뜻대로 사진을 찍어주던 스냅작가가 일행들의 포즈를 잡아주었다.

"다들 잘 나올 때까지 이쁘게 찍어라. 아, 내 사촌동생이야. 막 찍어 달라 그래도 돼."

형석이 우왕좌왕하는 일행들을 일사불란하게 정렬시키며 기왕이면 가족사진들도 하나씩 찍고 가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자 찍습니다."




옷매무새를 다듬는 미주와 미주의 머리칼을 세심히 넘겨주는 현준, 울먹이는 서우를 안아 달래는 수지와 그 옆에서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서우를 웃기려 애쓰는 형석, 그리고 각각 한 명씩 배에 차고 있는 쌍둥이들의 얼굴이 가려질까 봐 아기띠의 침받이를 가지런히 내려주는 은설과 준수의 모습이 모두 스냅작가의 사진기에 담겼다.

찰칵거리는 사진기 소리에 은설과 수지와 미주가 아직 정리가 덜 되었다며 손사래를 쳤고, 그런 아내들의 모습이 귀여운지 준수와 현준과 형석이 환하게 웃으며 그녀들의 손을 돕느라 분주해졌다.

"자, 이제 진짜 찍을게요. 하나, 둘, 셋!"

드디어 사진이 찍혔다.


그렇게 모두의 행복을 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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