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수화기를 든 채로 숨을 크게 한번 들이켰다 내쉰다. 그리고 결심한 듯 은설이 힘 있게 내선번호를 눌렀다.
[예, 진로상담부 김부식입니다.]
[부장니임, 안녕하세요? 저 교무부 이은설이에요. 제가 오늘 병원에를 좀 가야 해서요. 죄송한데 수업 교환 좀 해주실 수 있으세요? 오늘 6교시에 선생님께서 2학년 3반 수업 들어가 주시면, 제가 내일 2교시에 2학년 3반 수업 들어가는 걸로요. 근데 이렇게 바꾸면 선생님께서 오늘 5, 6, 7교시 3시간 연속으로 수업을 하셔야 해서, 부탁드리기가 죄송스러워서요. 아, 괜찮으시다고요?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예? 아니요, 어디가 아픈 건 아니고 검사를 좀 받아볼 게 있어서요. 네. 네. 아, 다음 주에 출장이시라고요? 그럼요. 교환해 드려야죠.]
은설의 조퇴는 곧 다른 이에게 민폐가 되었다. 그리고 그 다른이에게는 언제라도 수업 교환을 요청할 수 있는 카드가 생긴 셈이 되었다. 오늘 오후 진료를 보기 위해, 내일 은설은 1교시부터 4교시까지 4시간 연속으로 수업을 해야 했다. 다음 주 목요일에는 1교시부터 6교시까지 연속 수업이 잡혔다. 5일 전에도 병원에 가기 위해 무려 3명과 수업을 교환해야 했는데, 결국 교환한 수업들이 한 날에 다 모여버렸다.
'빌어먹을 시간표.'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진료를 보러 가야만 한다. 왜냐하면 오늘은 생리 시작 후 17일째가 되는 날이니까. 현준이 오라 했던 그날이니까.
수업 교환이 가능한 것을 확인하고, 은설은 부장교사에게 조퇴를 할 예정임을 알렸다. 허락을 요청하는 말투로.
“부장님, 저 오늘 조퇴 좀 해도 될까요? 병원에 좀 가봐야 해서···”
“무슨 병원?”
“클리닉이요.”
“아. 맞다. 가야지, 그럼.”
다행히 부장교사는 은설의 조퇴에 너그러웠다. 부장도 어렵게 아들 하나를 얻은 경우였다.
난임 클리닉을 다니기로 결심한 뒤 가장 먼저 그 사실을 알린 사람은 친정어머니도, 시어머니도 아닌 바로 이 남자, 교무부장이었다. 그날 함께 점심급식을 먹으면서, 부장은 아내에게 둘째 낳자는 말은 도저히 못 하겠더라며 은설에게 아내의 고생담을 한참이나 들려주었다.
“그 가시밭길로 들어서겠다니, 참, 위로라기도 뭐 하고, 응원이라 하기도 뭐 하고. 아무튼 힘내요, 이 선생님. 교감선생님한테는 내가 귀띔할게요. 그 양반도 그거 가지고 조퇴 많이 단다고 뭐라 할 사람은 아니니까 걱정 말고.”
“네, 마음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무부장이 알았으니, 이제 이틀 안에 학교의 모든 선생님들이 ‘이은설 선생이 난임 클리닉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은설은 생각했다.
‘좋게 좋게 생각하자. 스트레스받아봐야 나만 쓸데없이 몸 상하지.’
수업 교환을 할 때마다 구구절절 설명 하느니 외려 다들 조금씩은 알고 있는 게 더 편할 수도 있었다. 소문이 퍼질 대로 퍼졌다는 것은 병원에 가기 위해 처음 수업 교환을 했을 때 알 수 있었다. 젊은 선생님들 중엔 아무도 ‘무슨 일 있어요?’나, ‘어디 가세요?’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간혹 학교 안 소문에 둔감한 정년을 얼마 남기지 않은 남자 선생님들이 한 둘 ‘무슨 일이냐’, ‘어디가 아프냐’를 선생님 특유의 습관으로 물었을 뿐이었다.
은설이 이러한 상황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을 때 수지는 은설의 말을 배부른 소리라 일축했다.
[딱히 숨길 마음은 없었지만, 소문이 나버리고 나니까 뭔가 사생활이 다 까발려진 것 같고 좀 그래. 기분이 아주 별로야.]
[야, 그래도 너는 대놓고 눈치 주는 사람은 없잖아. 학교 다닐 땐 전부 그지 같아 보여서 엄마가 교대 가라는 거 죽어도 안 가겠다고 버텼는데. 그만하면 양반인 직장이구만.]
[그럼 뭐 하냐. 수업을 빼고 갈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교환수업 잘못 잡히면 하루에 6시간 연속 수업이야. 난임 클리닉 다니려다 골병들게 생겼다.]
[야, 너는 바꿔줄 사람이라도 있지. 어쨌거나 가야 할 때 맞춰서 갈 수는 있는 거잖아. 일반 회사 다니면 얼마나 눈치 보면서 병원 다녀야 하는 줄 아냐?]
컴퓨터공학과를 나온 수지는 한국에 있을 때 개발자로 일했었다.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초기에는 아무도 모르게 오늘 할 일을 슬며시 내일로 미뤄두고 난임 클리닉에 가는 것이 종종 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은설이 부러워할만한 것은 딱 이때까지의 기간뿐이었다. 프로젝트 진행이 중반을 넘어가고 일주일에 5일은 야근을 하는 때가 되면, 그 와중에 난임 클리닉에 다닌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수지가 일을 끝내야만 다음 작업이 가능한 식으로 일이 맞물리면 빼도 박도 할 수 없이 자리를 지켜야 했다.
[딱 그런 분위기였다고. 감사한 줄 알고 살아라, 이 선생아.]
수지의 말이 백번 옳다고 은설은 생각했다.
‘병조퇴를 달아야 하나, 일반 조퇴를 달아야 하나. 고작 그것만 눈치 보고 있잖아, 나는.’
명확한 규정을 찾을 수가 없었다.
“병원에 가는 것이니 병조퇴일까요? 아니면 앓고 있는 병이 있는 것은 아니니 일반조퇴를 해야 하는 걸까요?”
은설이 이 문제를 두고 고민하고 있을 때, 주변 선생님들의 의견 역시 반반으로 나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교감선생님은 무엇으로 근무상황신청을 하든 결재를 해주었다. 교감 선생님도 답을 모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찝찝한 것은 은설뿐인 듯했다.
일반조퇴는 많이 쌓이면 그것이 성과급 등급산정에 반영이 되었다. 병조퇴는 인사고과에 반영되는 비율이 달라 부담이 훨씬 덜하다. 난임 클리닉은 꼭 정해진 날짜에 가야 하기 때문에, 임산부들처럼 토요일로 진료 날짜를 정해 산부인과에 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마음 같아선 병조퇴를 달고 싶지만, 누군가
라고 따지면, 또 할 말이 없었다. 병조퇴와 일반조퇴 사이에서 갈등하던 은설은 결국 일반 조퇴 신청을 하고 말았다.
‘맘 편하게 일반조퇴 달고 당당하게 조퇴하겠어. 뭐, 아직은 난임이 아닌데 일단 그냥 다녀보는 것뿐이니까.’
애써 일반조퇴를 달아야만 하는 이유를 짜내어보다가, 은설은 울컥 눈물이 났다.
‘나중에 본격적으로 시술 들어가면 그땐 병조퇴 달아야지.’
라고 야무지게 제 몫을 챙기겠다며 했던 다짐 끝에서, 난임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한편으로는 어서 난임 확정을 받고 본격적인 시술에 들어가길 바라는 자신의 이중적인 심정을 직면하고야 말았다.
‘뭐지, 이 개떡 같은 심정은. 난임이 아니기를 바라는 거야, 난임이기를 바라는 거야.’
교무실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안될 일이었다. 무슨 내용이 되었든 간에 괜한 오해와 소문이 날 게 뻔했다. 은설은 배탈이라도 난 사람처럼 냅다 화장실로 뛰었다. 전세 내다시피 했던 두 번째 칸으로 들어가 쏟아져 나오려는 눈물들을 진정시켰다.
첫 번째 칸에서 사람이 들고 나는 소리가 들렸다. 두 세 사람쯤 연달아 오가고 나니, 화장실이 다시 조용해졌다. 화장실 안에 아무도 없다는 확신이 들자, 은설은 그제야 두 번째 칸 밖으로 나왔다. 손을 씻고, 거울을 보며 흐트러진 매무새를 다듬으려는데, 눈물 때문에 오래간만에 그린 마스카라가 번진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