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사달이 난 것은 퇴근시간을 5분 남겨둔 때였다.
교실 상태를 점검하고 내려오니 학생부장이 호출했다는 쪽지가 모니터에 붙어있었다.
“이선생님 반에 ‘기범’이 있죠. 그 노무쉐키가 또 무슨 사고를 친 거 같은데?”
교무부장은 이미 학생부장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있는 듯했다.
“기범이가요? 또요?”
“뭔 사고인지 지금 학생부에 경찰 와있나 봐. 나랑 같이 좀 가봅시다.”
“경찰 하고 만나야 될 정도로 나쁜 애는 아닌데···”
“사내자식들 사고 치고 다니면 그건 알 수가 없어요. 착한 거랑 사고 치는 거랑은 다르다니까. 우리 아들놈도···아유, 내가 그 눔 낳겠다고 왜 사서 고생을 했나 후회가 막심이라니까.”
여러모로 재미없는 농담이었다. 기범이의 일로 은설의 머릿속은 이미 터질 듯이 복잡했고, 교무부장이 후회 중이라던 그 일을 하기 위해 지난 3일을 준수와 지지고 볶고 있는 중이었다. 부장의 농담을 받아 줄 여력이 없는 은설이 교무수첩을 챙기며 부장을 재촉했다.
“지금 바로 가죠, 부장님.”
종종걸음을 치며 간 학생부에는 배가 불룩하게 나온 나이 든 경찰이 학생부장과 노트북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어. 저기 담임선생님 오셨네. 이은설 선생님, 이리 와서 이것 좀 봐 봐요.”
주차된 차량블랙박스 영상이었고, 남의 집 대문을 차고 달아나는 기범이의 뒷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거 이은설선생님네 반 애 맞아요?”
“글쎄요. 뒷모습이라 잘···”
“제보가 들어왔대요. 문빵 하고 달아단 범인이 우리 학교 김기범이라고. 예전 같으면 동네 애들 짖꿎은 장난이라고 욕하고 넘겼을 텐데 요샌 사방이 cctv라 다 잡네. 아니 얘는 고등학생씩이나 돼가지고 문빵을 하고 지랄이야. 초등학생처럼.”
제보가 있다면 담임의 비호는 무의미했다.
“책가방이 요즘 기범이가 매고 다니는 거랑 비슷하긴 하네요.”
“애 좀 불러봅시다.”
기범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며칠 전 문빵했던 것 때문에 경찰이 학교에 왔다는 메시지를 기범이에게 남기고, 은설은 티 나지 않게 준수에게도 메시지를 보냈다.
10분쯤 기다리니 기범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 그래. 알겠어. 일단 학교로 와. 와서 이야기하자.”
“뭐래요?”
“부모님한테는 말 안 하면 안 되냐고요. 지금 바로 온대요.”
30분쯤 지나서 경찰까지 찾아왔다는 말에 놀란 기범이가 걱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학생부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른의 시선에서 보면 큰 일은 아니었다. 문빵을 당했던 집주인도 재발이 되지 않게 따끔하게 혼이나 좀 내어 달라며 경찰에게 부탁한 모양이었다. 경찰은 엄밀히 말하면 ‘재물손괴죄’에 해당된다느니, 당한 사람이 민사소송을 걸 수도 있다느니 하는 말로 짧고 굵게 겁을 준 뒤 바로 경찰서로 돌아갔다. 부모의 꾸지람도 겁내는 아이인 기범이는 닭똥만 한 눈물을 뚝뚝 흘렸다.
학생부장은 경찰까지 학교에 왔으니 없던 일로 덮고 넘어갈 수는 없고, 학교 차원에서 엄하게 징계를 했다는 얘기 정도는 해야 집주인도 수긍하고 넘길 것이라며 큰소리 한번 내지 않고 기범이를 제압했다. 그러는 동안 시간이 또 한 시간쯤이 흘렀고, 은설은 기범이 앞에서 부모에게 연락을 했다. 최대한 차분하게, 별 일은 아니라는 듯이.
놀란 부모가 한달음에 학교로 찾아왔지만, 시간은 이미 9시를 넘기고 있었다. 학생부장은 애도 많이 놀랐고, 다시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집에선 너무 다그치지 마시고 다독여주시라며, 얄팍한 가벽 너머에 홀로 앉아 있는 기범이가 들을 수 있도록 학부모와 상담을 했다. 은설은 아까부터 간헐적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기범이를 달래느라 애를 먹고 있는 중이었다.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 거야? 부모님한테 많이 혼날까 봐 걱정되어서 그래?”
“아니요. 그건 괜찮은데. 학교에 경찰까지 오고. 나중에 징계도 받고 그러면 선생님들이랑 저 잘 모르는 애들이 저를 되게 나쁜 애라고 생각할 거 같아서요.”
장난꾸러기 기범이는 실은 학교를 꽤나 좋아하는 아이였다. 친구도 많고, 인기에 민감했으며, 선생님들하고 친한 체를 하며 농담을 하는 것도 즐겼다.
“학생부장님이 그랬잖아. 선생님들 어렸을 때는 꿀밤 한 대 맞고 지나가는 장난이었다고. 니가 걱정하는 만큼 너 나쁘게 생각들 안 해.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기범이는 부모의 손에 이끌려 10시가 다 되어서야 집으로 갔다. 우리 반 아이 때문에 고생 많으셨다는 인사를 학생부장에게 몇 번이나 하고 나서야 은설은 좀 편안해진 마음으로 교무실로 돌아왔다.
“다 끝났어? 고생 많았네. 이선생님.”
교무실엔 교무부장이 아직 남아 있었다.
“걱정되어서 퇴근 못하고 계셨던 거예요? 저희 반 아이 땜에 죄송해서 어째요.”
“그것도 있고, 일도 좀 남은 게 있었고. 겸사겸사지 뭐. 교무부장이 다 그렇지, 신경 쓰지 마요. 아, 담임선생님이랑 학생부장이 고생했지 뭐. 불금 저녁에 집에도 못 가고.”
은설이 교무실을 나설 때까지 교무부장은 움직이질 않았다. 먼저 가보겠다며 인사를 하고 돌아서면서 은설은 준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준수에게서 제깍 답신이 왔다.
몇 주 만의 휴식이긴 했다. 준수의 입장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렇지.
“맥주라니······.”
“그래, 뭐. 즐겨도 될 땐 즐겨야지.”
집에 들어서니 맥주 한 잔으로 기분이 좋아진 준수가 은설을 반갑게 맞았다. 거실 테이블에 반 정도 남아 있는 반반치킨상자가 보였다.
“자기 오면 같이 먹을래다가 너무 배고파서 한 조각씩 맛만 좀 보다가 일찍 오긴 틀린 거 같아서 그냥 먹어 버렸지. 그래도 꾹 참고 은설 씨 닭다리랑 날개는 남겼어. 잘했지?”
“잘했어. 11시까지 어떻게 기다려.”
“자기는 저녁 먹었어?”
은설은 그제야 자신이 저녁도 먹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애가 무슨 사고를 쳤길래 저녁도 못 먹고 수습을 했어?”
“문빵”
“문빵? 요즘도 그거 하고 노는 고딩이 있네.”
준수가 냉장고에서 차갑게 식은 콜라를 꺼내왔다.
“몸에 안 좋은 건 알지만, 마누라가 좋아하는 치콜 하면서 기분 좀 풀어봐요.”
준수가 건네는 콜라를 받아 들고 은설이 치킨 앞에 앉았다. 다이어트를 그만두는 순간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치킨을 우걱이니 오히려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는 듯했다. 은설은 배부르게 치킨과 콜라를 먹고 준수가 보던 영화를 함께 마저 다 보았다. 침대에 몸을 뉘어선 준수의 팔을 베고 누워 오늘 저녁 내내 기범이의 일로 얼마나 진을 빼야 했는지에 대해 한참이나 투덜거렸다.
그리고 은설은
오래간만에 기분 좋게 준수와 사랑을 나누었다.
숙제가 아닌 사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