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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사랑과 숙제 사이

<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by 이소정

‘기범이가 집에서 많이 혼나지 않아야 할 텐데’로

은설의 수다가 마무리되었다.


“우리 마누라 오늘 고생 많았어요.”

준수가 흘러내린 은설의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며 가벼운 손길로 쓰다듬어주었다. 힘을 뺀 준수의 손끝이 은설의 관자놀이와 귓불, 목선 언저리를 간질였다. 은설은 가만히 준수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은설 씨는 귀가 참 이뻐.”

“준수 씨가 귀를 좋아하니까 이뻐 보이는 걸 거야.”

“아니야. 이것 봐. 귓불도 이쁘고, 쪽. 귓바퀴도 탱글거리는 게 촉감도 좋고, 쪽.”

칭찬 한 마디에 뽀뽀 한 번씩.

은설이 좋아하는 스킨십이었다.

준수는 귓불에 한 번, 귓바퀴에 한 번 뽀뽀를 해준 다음 은설의 귓불을 입술로 살짝 물어 당겼다.

그 바람에 준수의 숨결이 은설의 귓구멍으로 훅 하니 들어왔다.

“마누라는 귀보다는 목이 좋다니까요.”

은설이 준수의 머리를 살며시 아래로 밀었다.

“나는 귀가 좋지만, 마누라를 위해서 목에다가 열심히 노력을 해볼게요.”

준수가 혀끝을 살짝 대어 은수의 목선을 아래에서 위로 훑어 올렸다.

“앗!”

은설이 수줍고 기분 좋은 음성을 짧게 뱉어냈다.

“왜? 좋아한다며.”

“흐흐흐, 간지러워서. 흐흣.”

“좋아하시긴.”

은설의 반응이 썩 만족스러웠는지 준수가 한껏 더 정성을 들여 은설의 목에 퍼붓듯 키스를 했다.

“훗”

은설의 음성이 신음에 가까운 소리로 변하는 듯하자 준수도 함께 흥분했다.

“오랜만이다 그렇지? 이렇게 기분 좋게 시작하는 거.”

준수가 은설의 목에서 가슴께로 천천히 키스의 자리를 옮기며 말했다.

“응. 얘기는 나중에. 그냥 지금은······. 집중하고 싶어.”

준수의 말에 ‘숙제’라는 단어가 단박에 떠오른 은설이 준수의 말을 막았다. ‘숙제’라는 단어에 이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를 생각들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은설이었다.

‘사랑’을 나누는 것은 준수뿐만 아니라 은설에게도 오랜만의 일이었다. 집중하고 싶다는 은설의 말 한마디에 몸이 동했는지 준수가 은설의 몸을 반쯤 올라탔다.

“마누라는 사실 목보다 아랫배에 더 민감하지. 후훗.”

준수가 보드라운 은설의 아랫배를 쓰다듬다가 다시 키스를 했다. 따뜻한 준수의 입술이 닿자 은설이 놀란 듯 몸을 움츠렸다.

“꿈틀대지 마요. 귀여워서 집중을 할 수가 없어요.”

하면서 준수가 장난스럽게 은설의 배를 간질였다.

“학! 아니야. 이러면 안 돼. 너무 간질이면 도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돼.”

“그런가. 그럼 다시 집중!”

“하······.”

“좋아?”

“응. 좋은데 몸이 뜨거우면서 추워.”

“추워?”

“응.”

“마누라 몸이 허해진 게 맞나 보네.”

준수가 침대 한편에 몰아두었던 이불 한 자락을 끌어 은설의 상체를 살짝 덮어주었다.

“내일 흑염소도 사줄게요.”

“흑염소는 필요 없는데. 몸이 뜨거워지니까 상대적으로 공기가 차게 느껴져서 그런 건데.”

“그래?”

준수가 은설을 덮고 있던 이불을 도로 걷어내었다.

“그럼, 같이 뜨거워지자.”

한참이나 은설을 기분 좋게 하는 데에 집중하던 준수가 기다렸다는 듯 은설을 덮쳤다.

격정의 시간을 보내고 준수가 가늘게 떨리는 팔을 천천히 접으며 은설 위로 무너져 내렸다.

은설은 준수의 등을 포근히 감싸 안아주며 쓰다듬었다.

“어때? 이불보다 내가 더 따뜻하지?”

“이불보다 훨씬 따뜻하고 훠얼씬 무거워.”

“어쩔 수 없어요. 반품 안 돼요. 그냥 데리고 살아요.”

준수가 새색시처럼 수줍은 말투로 앙탈하듯 투덜거렸다.

“99만 원짜리 곰인형 같아서 반품 안 해요. 맘에 쏙 들어.”

“치이. 칭찬이야 흉보는 거야.”

준수가 재빨리 은설의 고개 아래로 팔을 밀어 넣었다.

은설도 고개를 당겨 준수의 겨드랑이 깨로 파고들었다.

“원래 이래야 하는 건데.”

“원래 이래야 하는데 그동안은 숙제하듯 해서 재미없었단 말 하고 싶은 거지?”

“재미없다기보단 부담스러웠지.”

“이해도 되고 섭섭도 하고.”

“섭섭해?”

“나의 간절함을 외면받는 기분이야. 근데, 준수 씨는 준수 씨대로 감정선을 무시당하는 기분이었을 거 같아서 그동안 말 못 했지.”

“이해해줘서 땡큐. 오늘은 간만에 아주 충만한 감정으로 임했어요. 알지?"

준수의 너스레에 은설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근데, 원래 여자 몸이 감정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 아닌가?”

“아기 만드는 일 앞에서는 감정이고 뭐고 없더라고. 무엇이든 할 수 있어.”

“그래? 그 정도로 압도적인 건가, 임신이?”

“아, 그래서 더 섭섭했나? 나는 뭐든지 참고 다 할 수 있는데, 남자인 자기가 예민하게 분위기 따져서?”

“남자도 분위기 따져 이 사람아. 올챙이의 질과 양이 다르다고.”

“진짜?”

“느낌상.”

“······. ”


둘 사이에 짧은 침묵이 흘렀다.

준수가 퍼뜩 생각이 난 듯 은설에게 물었다.

“쟁기자세 안 해?”

“응”

“왜?”

“오늘은 해봤자 의미가 없는 거 같아서. 아까 낮에 배란이 끝났다는 느낌을 받았거든.”

“우울해졌어?”

“응.”

“가뜩이나 기분 안 좋은데 남편이랑은 티격거리는 상태고, 반 애는 사고를 치고. 마누라 오늘 엄청 힘들었겠네.”

“뭐, 조금. 엊그제 놓치고 지금 했으니 아마 이번 달도 임신 가능성을 낮을 거야. 마음 비우고 있으려고.”

“그래, 우리가 이렇게 기분 좋게 사랑을 나눈 것으로 이번 달은 성공적으로 보낸 거라고 생각하자.”

“그러게. 어떤 면에선 성공했네.”

“진짜 중요한 면을 회복한 거지. 기왕 마음 비운 거.. 이번 달은 오늘 누린 행복으로 만족하도록 해요.”

‘행복’이란 단어에 꼭 어울리는 제스처를 하고 싶었는지 준수가 팔을 둥글게 말아 은설을 포근히 감싸 안았다.

“코. 막. 혔.”

“참아요. 은설 씨한테 숨 막히게 행복한 느낌 주려고 애쓰는 중이에요. 학!”

은설이 준수의 겨드랑이를 간지럽혀서 준수의 팔을 끌러 내었다.

화들짝 놀라 은설을 팽개치듯 밀어내었던 준수가 냉큼 다시 은설의 머리를 끌어 가슴에 품었다.

“이러고 자자.”

“이대로 잠들면 준수 씨 코 고는 소리가 직방으로 내 정수리 위에 떨어져서 나는 잠들 수가 없는데.”

“난 이 자세가 딱 좋은데. 은설 씨한테 다리 올려놓기도 좋고.”

“기왕이면 잠들 때까지 만족스러운 남편이 되도록 해요.”

은설이 준수의 몸을 타고 넘어와 등을 껴안았다.

“나는 이게 좋아. 코 고는 소리도 적당히 덜 들리고 준수 씨 다리 비비기도 좋고.”

은설이 준수 종아리 사이로 발을 밀어 넣고 쓱쓱 문질러대기 시작했다.

“다리를 비비는 거 보니 곧 잠들겠구먼.”

“준수 씨도 슬슬 원하던 바 아닌가.”

“그렇지. 그건 그렇긴 하지.”

“잘 자요.”

“응. 은설 씨도 잘 자요.”

폭풍우 속 같은 사흘을 보내고 얻은 꿀 같은 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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