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시험관 한다고 무조건 쌍둥이가 나와? 상식이 있을 만큼 있는 사람이 왜 그런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 거야? ”
미주는 자존심이 상했다. 현준이 뱉은 ‘바보’라는 단어 때문은 아니었다. 의심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발끈하는 현준의 의중이 ‘무모한 시험관’보다는 ‘원치 않는 임신’에 있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미주는 차마 더 따져 물을 수 없었다. ‘원치 않는다’는 말을 현준으로부터 직접 듣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두렵고 무서웠다.
대신 미주는 ‘바보’라는 말을 물고 늘어졌다.
“농담이잖아요. 구분 못해요? 가볍게 듣고 넘길 줄 몰라요? 아님 본인 전공에 대해 내가 너무 하찮게 대한다고 느꼈던 거였어요? 그럴 리가. 아직도 나를 그렇게 모르다니. 선배야 말로 같은 의사이면서 어떻게 나를 그런 사람 취급해요?”
따져 묻는 말의 앞뒤는 상관없었다. 그저 현준을 몰아붙이기만 하면 된다고 미주는 생각했다.
노발대발하는 미주의 모습에 놀란 현준이 곤두세웠던 태도를 누그러뜨리고 가만히 미주를 응시했다. 미주도 그제야 목소리를 낮추고 조근조근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말했다.
“시험관시술받고 싶단 얘기 농담처럼 던져서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요. 그렇지만 반은 진심도 있었어요. 우리 서로 바빠서 얼굴 보는 것도 여의치 않을 때가 많은데, 시험관 하면 그런 제약들에서 좀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러다 정말 쌍둥이가 생기면 그것 나름대로 좋은 일 아닌가 그런 생각도 했고요.”
“쌍둥이임신이 얼마나 위험부담이 큰데 그걸 바라는 거야.”
“그것도 알아요. 모를 리 없잖아요. 선배 말대로 나도 의사인데. 더구나 심장내과 의사라고요, 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쌍둥이를 원하는 내 상황에 대해선 조금도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그리고 내가 정말 반드시 그렇게 하고야 만다고 했어요? 그저 이런저런 부담들에 대해 남편에게 하는 넋두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이야기를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받아치는 거예요?”
대화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이해심 없는 남편’이 되어버린 현준은 미주에게 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고, 말문이 막힌 채로 죄 없는 음식들만 가루가 될 때까지 씹어 삼켰다.
“먼저 일어날게요. 의미 없어. 이런 식사.”
자리를 먼저 박차고 일어난 것은 미주였다. 현준이 선물한 꽃다발과 목걸이를 그대로 자리에 놓아둔 채였다.
현준은 미주를 붙잡지 않았다.
이후 몇 달간의 각방생활 끝에 현준은 미주에게 이혼서류를 내밀었다. 미주는 ‘이게 뭐냐’고 묻지 않았다.
“미안하다. 처음부터 맞지 않는 자리인 걸 알면서도 욕심내고 덜컥 앉아버린 내가 어리석었어.”
“처음부터라는 말이 가슴 아프네. 뭐야,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보란 말도 못 하게. 너무한 거 아녜요?”
미주는 우는 듯 웃는 듯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농담처럼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귀찮은 서류를 하나 받아 드는 것처럼 현준이 건네는 서류봉투를 받아 탁자 위에 가만히 내려놓았다.
“그때, 자존심 세우지 말고 그냥 베개 들고 서재로 갈 걸 그랬나?”
미주의 물음에 현준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하나만 물어요. 결정적인 이유가 뭐예요? 아버지 마음대로 선배 휘두르려 했던 거? 아니면 시험관 하쟀던 거? 그것도 아니면, 첫사랑을 아직도 잊지 못해서?”
“너와 결혼을 하기로 선택한 이유 중에 네가 없었어. 그게 너에게도 나에게도 독이 될 선택이었다는 걸 나중에서야 깨달았어. 미안하다 깨달음이 너무 늦어서.”
“마지막 비수가 너무 커요, 선배. 괜히 물어봤네.”
미주는 끝내 눈물을 쏟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흐트러진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후의 절차는 미주 집안의 전담 변호사를 통해 진행이 되었다. 서류를 건넨 다음 날부터 현준은 출근을 할 수 없었다. 며칠 후 담당간호사로부터 현준의 짐을 부쳐줄 주소지를 묻는 전화가 왔고, 병원 쪽 상황은 장인의 특별지시에 의해 빠르게 정리되었다는 짧은 소식을 전달해 들을 수 있었다.
이혼이 확정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현준은 철저하게 외면받았으며, 미주도, 장인과 장모도, 변호사를 제외한 미주 집안의 그 어떤 사람과도 마주치지 않았다. 각오하지 않은 바는 아니었지만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자신의 처지에 현준은 당황했다. 변호사를 만나는 일 외에는 일체의 외출을 하지 않는 아들의 바라보며 현준의 부모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자신의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지만 밖에서 조금씩 새어 들어오는 어머니의 울음소리와 아버지의 깊은 한숨이 현준의 심장 언저리에 칼날이 꽂히는 듯한 통증을 일으켰다.
“‘마음이 아프다’라는 게 원래 이렇게 실체가 있는 말이었구나.”
거실에 인기척이 느껴지면 차마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현준은 방문에 기대어 주저앉은 자세로 혼잣말을 지껄였다.
집안의 분위기가 안정이 되는 데에는 몇 주의 시간이 필요했다. 현준도, 현준의 부모도 마치 현준이 결혼하기 전의 시간으로 돌아간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밥을 먹고 있는 현준의 앞에 마주 앉아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다가 딱 한마디를 했다.
“아들. 미안해. 그때 등 떠밀어서.”
“그러신 적 없어요.”
“아니야, 그때 내가 했던 모든 말이 사실은 다 너 등 떠미는 말이었어. 안 그런 척 돌려 말했을 뿐이지. 미안해. 이제 안 그럴게.”
현준은 그때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미주에게도, 부모에게도 시련과 상처를 안긴 장본인, 모든 문제의 화근이 자신이라는 생각이 현준을 괴롭혔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흑, 죄송해요.”
구간반복기능이 망가져 한 가지 단어만 무한히 반복되는 재생장치처럼 현준은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며 울었다.
“아들, 그러지 마. 괜찮아. 이러면 엄마가 너무 마음 아파.”
“어머님이랑 아버님은 어찌 지내셔요? 잘 지내고 계신 거예요?”
“응? 아, 응. 잘 지내고 계시지, 그럼.”
잠시 어머니 생각을 하고 있던 현준은 때마침 부모의 안부를 묻는 미주의 말에 흠칫 놀랐다.
“왜 그래요? 뭐 안 좋은 일 있으세요?”
“아니. 부모님 생각 잠시 하고 있었어. 미주 소식 궁금해하셨거든. 우리가 나쁜 일이 있어서 헤어진 건 아니니까. 내내 안쓰러워하셨어. 미주한테 미안해하시고.”
“때마침 물은 부모님 안부였네요. 아직 텔레파시는 좀 통하나 보네.”
미주가 웃으며 가볍게 농을 던졌고, 현준도 미소로 장단을 맞춰주었다.
“잘 지내다 왔다고 전해주세요. 걱정 않으셔도 된다고. 선배랑 헤어지고 나서 사실 젤 아쉽고 아까웠던 게 바로 좋은 시부모님도 함께 놓치게 되는 거였어요. 아버님, 어머님 같은 분들을 또 어떻게 만나겠어.”
“그렇게 생각해 줘서 고마워. 전해드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