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준수 씨!”
은설이 교문을 나서면서 준수를 픽업했다.
퇴근을 서두르는 차들이 순식간에 은설의 차 뒤로 줄을 섰다.
준수가 재빨리 차에 오르자마자 은설의 팔목을 바라보았다.
“이야, 시계 이쁘네.”
“괜찮죠? 우리 남편이 사줬어요.”
“남편이 누군지 참 센스 있네.”
“안 그래도 교무실에서 준수 씨 센스만점 남편이라고 한바탕 난리였어.”
“이벤트를 준비한 보람이 있군. 대학동창모임 채팅방에다가는 자랑했어?”
“에이, 대놓고 자랑은 좀 그렇지. 프로필사진 바뀐 거 보고 친구들이 뭐냐고 물으면 그때 은근슬쩍 자랑하는 거지.”
“어느 세월에 알아볼 줄 알고.”
“기다리기 힘들어? 하하. 걱정 말아요. 재영이는 아마 바로 알아볼 거야. 질투쟁이잖아.”
“내가 그 집 남편 좀 피곤하게 만들어버렸구만, 이거 참 미안하게스리.”
준수가 으스대며 그 집 남편 걱정을 해댔다.
“근데 우리 어디 가요?”
“은설 씨가 좋아할 만한 곳. 잠깐만.”
준수가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메모해 둔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찍었다.
“파주? 여기 파주 어딘데?”
“응. 가보면 알아요. 죠오기 앞에 차 좀 잠깐 세워요. 운전 내가 할게.”
“와, 여기 예쁘다. 수목원 저리 가라네.”
“좋아할 줄 알았다니까. 야간엔 조명도 켜서 더 예쁘대.”
규모가 꽤나 커다란 정원이 있는 카페였다.
“은설 씨 이런 데 좋아하잖아. 종일 검색해서 몇 군데 찾아봤는데 여기가 집에서 가까우면서 수목원 느낌도 나고 밤에도 이쁘더라고. 부지가 엄청 넓어서 산책로도 만들어 놨대. 여기 밥도 파는 데야. 스테이크랑 파스타 같은 거. 저녁 먹고 차도 마시고 구경 겸 산책도 하면서 놀다 가면 돼.”
준수가 폭풍 검색 끝에 알아낸 것들을 무용담처럼 늘어놓았다.
자신의 노력을 알아달라는 신호라는 걸 은설은 알고 있었다.
“와, 파주에 이런 게 있다는 걸 찾아내다니. 대단하다. 난 아무리 검색해도 이런 데 못 찾겠던데.”
“별거 아냐. 컴퓨터로 먹고사는 사람이 이 정도 검색은 기본으로 할 줄 알아야지.”
준수가 겸손한 말투로 으스대었다.
은설은 그런 준수가 귀여워 보였다.
“신랑 귀엽다고 하면 기분이 썩 좋은 칭찬은 아닌 거지?”
“응. 귀여워도 멋있다고 해줘.”
“멋있어. 최고야!”
은설이 어린아이에게 하듯 엄지를 치켜세웠다.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땐 시간이 이미 6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밥과 차는 마누라가 살게요.”
“그럼 마누라가 먼저 골라요.”
호기롭게 사겠다고 말을 뱉어놓고는 메뉴판에 적혀 있는 식사의 가격을 보고 은설이 고르는 것을 망설였다.
“뭘 고민하고 그래. 좋아하는 거 시키면 되지.”
준수가 메뉴판을 뺏어 들고는 가장 저렴한 메뉴와 두 번째로 저렴한 메뉴를 골랐다.
“이거랑 이거 주세요.”
주문을 받은 직원이 사라지자 은설이 준수에게 나직이 속삭였다.
“땡큐. 여기 이쁘게 꾸며놓은 카페라 그런가 엄청 비싸다.”
“검색할 때 메뉴 가격 확인하는 걸 깜박했네, 내가. 쏘리.”
“담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망설임 없이 비싼 밥 척척 사줄게요. 용돈 딱 세 달만 모으고.”
“세 달이나 모으게?”
“요새 병원 다니느라 용돈이 좀 궁해.”
“생활비로 결제하는 거 아녔어? 병원비잖아.”
“난임병원 다니는 비용을 생활비에서 쓰는 게 왠지 좀 그래서요.”
“에이, 왜 그런 생각을 해.”
“아니 뭐, 그달 그달 병원비 편차가 좀 있어서 생활비 컨트롤이 힘들어지는 것도 있고 해서. 일단은 내 비상금으로 결재하고 있어요.”
“알았어. 그럼 은설 씨 비상금은 터치 안 하는 걸로.”
“자기 비상금은 뭐 내가 언제 터치했나?”
“내 비상금은 다 이벤트 하고 뭐 그러는데 들어가지. 빤하잖아, 돈 쓰는 거.”
“치.”
“둘 다 허투루 쓰고 그러진 않는 걸로 확인도장 찍고, 터치는 안 하는 걸로 합의 봅시다.”
“너무 많이 모으지 않기!”
“대출 갚아야 돼서 많이 모을 수도 없어.”
“얘기 점점 짠해진다. 어! 우리 꺼 나오네. 밥 맛있게 먹자고요.”
“오케이!”
어둠 직전의 짙푸른 저녁하늘과 잘 다듬어진 정원, 클래식한 디자인의 조명등이 제법 조화로웠다.
“여기 확실히 어두워지니 더 예쁘다.”
정원 풍경에 취한 은설이 준수보다 몇 걸음 더 앞서 걸으며 산책을 즐겼다.
까똑.
준수의 휴대전화에 낯선 별명을 가진 사람과의 채팅창이 열렸다.
[싸부님?]
[누구신데 나를 싸부라고 부르십니까?]
[기범이요]
[아! 근데 내가 왜 싸부냐?]
[선생님 부인은 사모님, 선생님 남편은 사부님이라고 부른대서요.]
[누가 그래?]
[엄마가요]
[아 그래 엄마말씀이 맞겠지]
[어떻게 됐어요? 담임쌤이 저 알아봤대요?]
[아니. 암 말도 안 했어. 넌 줄 알았으면 진작 말하고도 남았지.]
[다행]
[담임쌤은 뭐래요?]
[뭘 또?]
[이벤트 성공?]
[니 담임쌤 프사 봐라.]
잠깐의 텀을 두고 기범이에게 다시 메시지가 왔다.
[오오올 뿌듯]
[이제 방해하지 마. 데이트해야 돼]
[뉍! ]
“누구랑 메시지 주고받는 거야?”
걸음이 느려지는 준수에게 은설이 다가가며 물었다.
“으응, 일 때문에. 결과 좀 알려 달래서.”
“일 다 끝난 거 아녔어?”
“순수한데 좀 띄엄띄엄한 놈 하나 있어. 은설 씨가 좋아하는 그네의자다! 저기 좀 앉을까? ”
준수가 휴대전화를 안주머니에 밀어 넣으면서 말을 돌렸다.
은설이 콧노래와 함께 살랑살랑 그네를 흔들며 저녁 어스름과 옅은 바람을 즐겼다.
준수도 은설이 만드는 리듬에 맞춰 무릎을 흔들며 버릇처럼 은설의 귀를 만졌고, 은설은 귀찮은 내색 없이 준수를 가만히 두었다.
“좋지?”
“좋아.”
“다행이네요. 마누라가 좋아해서.”
“근데 정말 왜 한 거예요? 아무 날도 아닌데 이벤트를?”
“그냥. 요즘 은설 씨가 좀 우울해 보여서.”
“아닌데. 나 요즘 엄청 밝게 지냈는데.”
“일부러 그러려고 노력하는 게 다 보이니까 더 안쓰럽더라고. 첨엔 잘 지내서 좋다고 칭찬만 해줄라 그랬지. 은설 씨가 내색 안 하려고 그러는데 괜히 내가 헤집어 놓는 거 같아서. 근데 도저히 그냥 보고 넘길 수가 없어서. 뭐라도 해주면 잠깐이라도 기분이 좋아질 거 같아서 준비를 좀 해봤어.”
“고마워요. 신랑이 그렇게까지 세심하게 나를 관찰하고 있는지 몰랐어.”
“내 마누란데 내가 챙기지, 누가 챙기나.”
“참 이상해. 애기가 잘 안 생겨서 너무 속상한데. 또 이것 때문에 사람들한테 위로와 사랑을 받아.”
“사람들?”
준수의 물음에 은설이 당황했다.
이 상황에서 중학교 동창들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아, 저.”
말하기를 망설이고 있는 은설을 기다리지 못하고 준수가 먼저 입을 뗐다.
“배달원이 기범인 거 눈치챘어?”
“맞지? 어쩐지······.”
뉘앙스를 해석하기가 애매한 은설의 말에 준수가 재차 물었다.
“몰랐었어? 기범인 거?”
“목소리 땜에. 긴가민가 하긴 했지.”
“들켜버렸네. 안 들킬 거라고 호언장담하면서 들여보낸 건데.”
“기범이랑은 대체 어떻게 아는 사이가 된 거야?”
준수가 오후에 있던 일을 은설에게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을 이야기하듯 설명했다.
“하하, 웃겨! 근데 우리 반 학생하고 사적으로 엮이게 된 거 같아 왠지 부담스럽다.”
은설이 웃는 얼굴로 얕지 않은 걱정을 했다.
“기범이는 담임쌤한테 말 안 하고 배달 아르바이트하는 거 들킬까 봐 전전긍긍이던데. 그냥 계속 모른 척 해.”
“어떻게 그래. 오토바이 타는 알바는 위험해서 학교에서 금지시키는데.”
“그럼 피자를 몇 번 더 시켜 먹으면서 현장을 잡아.”
“좀 전까진 기범이를 아군처럼 감싸더니 왜 말이 바뀌어?”
“위험해서 못하게 하는 거라니까 그렇지. 그눔쉬키 은설 씨 말대로 착한 사고뭉치 같드만. 10분도 채 안 봤는데 원래 알고 지내던 애 같아. 은설 씨한테 얘기를 많이 들어서 그런가 봐.”
이야기가 조금 더 기범이에 대한 쪽으로 흘러갔다.
대개는 기범이가 했던 웃긴 행동들이나 말에 대한 것이었고, 은설도 준수도 기범이 덕에 조금 더 웃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