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장착된 강박

<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by 이소정

"음력으로 따져본다 쳐도 내년 1월까지야. 그전에 아기가 안 생기면 나 어쩜 머리가 돌아버릴지도 모르겠어.”

은설의 조바심을 준수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웬만한 일에는 남산 꼭대기 바위 위의 소나무처럼 흔들림이 없는 은설이었다.

그런 은설이 아기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사춘기 소녀의 사랑앓이만큼이나 마음을 졸였다.

이해가 잘 되지 않아 대신 나누어 짊어질 수도 없는 고통과 절망 앞에서 준수는 무력해졌다.

“뭘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모르겠어.”

"응?"

갑작스러운 준수의 진지한 고백에 은설이 천정을 향해있던 고개를 돌려 준수의 눈을 바라보았다.

높낮이가 없던 준수의 말투는 투정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은설이 가만히 준수의 등을 쓸어 주었다.

“내가 속상해하고 있으면, 그냥 이렇게 해주면 돼요.”

“정말? 진짜 이렇게만 하면 돼?”

“응.”

“이거는 만 번도 더 해줄 수 있는데.”

준수가 장난스레 은설의 등 뒤를 파고들며 마구 비벼댔다.

“마누라가 껌벅 넘어가는 등비비기 신공!”

은설이 까륵까륵 거리며 넘어갈 듯 웃어댔다.

“아하하하, 또 있어. 또 있어.”

“이거 말고 뭐?”

“나중에 내가 병원 같이 가자고 하면 군말 안고 무조건 따라 나서 주기요.”

“병원? 나도 같이 가자고?”

“응.”

“왜?”

“왜긴 왜겠어. 이제부터 신랑도 필요하니까 그렇지.”

“나는 집에서만 잘하면 되는 거 아냐?”

“명절 끝나고 올라가면 인공수정 시작하려고.”

“그런 것도 하게?”

준수가 난색을 표했다.

“왜? 싫어?”

“아니. 굳이 그런 인공적인 방법을 써가면서까지 애를 만들어야 하나 싶어서.”

“그건 아버님한테 가서 따지도록 해요. 올해 안에 자식을 만들어야겠다며 은설이가 미쳐 날뛰고 있다고 책임지시라고 그래.”

은설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절대로 말릴 수 있거나 타협의 여지가 있는 것이 아님을 준수는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답. 정. 너의 상황이군.”

“빙고.”

“인공적인 방법을 쓰고 싶지 않다는 신념 따위 내세웠다간 평생 원망 듣겠지?”

“응. 올해는. 계산해 봤는데 내년 설 전까지 인공수정을 세 번 정도 해볼 수 있을 거 같아. 만약에 올해 인공수정에 올인했는데도 아기가 안 생기면······."

"안 생기면?"

"시험관 시술로 넘어가고 싶어."

"아아."

준수가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이내 말을 삼켰고, 은설은 이미 그 말이 무엇인지 눈치를 챈 듯 말을 이었다.

"걱정 말아요. 그전에 준수 씨의 신념에 대해서 다시 같이 고민해 보도록 할 거니까."

"기억은 해?"

"하지. 어떻게 못 해. 내 입장에선 넘어야 할 큰 산인데."

"존중해 줘서 고마워요."

"우리가 시험관을 할지, 자연적으로 아이가 생기길 기다리기로 할지를 결정할 즈음이면, 이미 아버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지난 거예요. 그리고······."

"그리고?"

"그때까지도 우리한테 애기가 안 생겼단 뜻이고."

"생길 거야."

"준수 씨까지 희망고문 하지 마요. 암튼 그즈음이면 나도 마음을 어느 정도는 비울 수 있을 거 같아요. 막무가내로 시험관을 우기진 않을 거라고.”

“알았어요. 일단 올해는 평생에 걸친 원망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마누라 하자는 대로 군말 없이 따르는 걸로."

"탁월한 선택이에요."

"잘 한 선택이어야 할 텐데."

"본인의 결정을 믿어요."

"이게 내 결정이라고? 그게 맞는 말이야?"

"그렇게 믿으면 그런 건 거야. 믿어, 믿어."

"헐."

"그게 아니면, 그냥 마누라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만 생각해요. 마누라 위해 신념도 접은 멋진 남자야, 준수 씨는."

"내가 멋진 남자라는 말만 믿어야겠다."

"오키!"

준수와 은설이 아주아주 오래간만에 서로를 따뜻이 품어주었다.




“마음의 준비가 된 거 같아.”

은설이 차분한 목소리로 현준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했다.

“임신 시도한 지 이제 일 년 조금 넘었는데······.”

여기까지만 말하고 현준이 잠시 말을 멈췄다.

현준의 입에서 나올 다음 말을 기다리며 은설은 긴장을 했다.

‘안 된다고 하면 병원 옮길 거라 그럴까? 병원비 내겠다는데 왜 안 해주냐고 생떼 부려 봐?’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이러저러한 대응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데 현준이 예의 의사다운 목소리 톤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 진행하자.”

현준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이 은설은 고맙고 다행스러웠다.

어째서 서두르는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너도 그렇고 남편도 그렇고 난임검사 결과가 나쁘지 않아서 인공수정을 시도해 보는 방향으로 가는 게 좋겠어."

"응."

은설도 예상했던 시술 방향이었다.

"알고 있겠지만 남편 정액검사 결과가 정상범주이기는 한데 수치가 썩 좋은 편은 아니라 인공수정의 도움을 좀 받으면 수정이 될 확률을 높일 수 있을 거야."

"그래?"

"응. 인공수정은 보통 정자의 질이 조금 떨어질 때 적용하면 성공률이 높거든.”

현준의 설명이 은설의 귀엔 ‘너의 탓이 아니다’라는 말로 들렸다.

‘무자 사주’ 프레임이 씌워진 이후로 처음 느껴보는 위로였다.

“잘 될 거 같아.”

은설이 배시시 웃으며 혼잣말처럼 내뱉는 말을 듣고 현준이 한 발 물러나는 듯한 느낌의 설명을 덧붙였다.

“인공수정의 착상률은 보통 12~15% 정도야."

"그건 알고 있어."

"정자를 한번 선별해서 자궁 안으로 직접 주입시켜 주는 단계가 인공적이라는 거지 수정이 이루어지고 착상되는 과정은 자연임신과 동일하거든.”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현준의 입을 통해 다시 한번 성공률을 확인하니 들뜨던 마음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은설이 살짝 삐친 것 같은 말투로 현준에게 대꾸했다.

“남편한테 얘기해 줘야겠네. 인공이라는 말이 들어가서 그런가 인공수정 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좀 있더라고.”

“아, 그러고 보니 나도 마음의 준비를 좀 해야겠네.”

“니가? 무슨 마음의 준비?”

“니 남편 처음 만나게 되는 것에 대한.”

“하하, 그게 마음의 준비까지 해야 하는 일이야?”

“그러게. 하지만 신경이 좀 쓰이네.”

은설은 긴장한 내색을 비추는 현준을 놀리면서, 한편으론 추석 이후로 까맣게 잊고 있던 자신의 걱정도 새삼 다시 떠올렸다.

아직도 준수는 은설을 진료해 주는 중학교 동창이 남자인 모르고 있었다.

풋풋하고 아름답기만 했던 시간에서 멈춰버린 못다 맺은 첫사랑이라는 것도.

내년 설이 되기 전까지 반드시 아이를 갖고야 말겠다는 생각에 압도되어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인공수정을 하겠다 선언을 한 것이었다.

현준이 느끼고 있는 긴장감의 열 배, 스무 배쯤 되는 부담감이 은설에게도 엄습했다.

‘아, 그나저나 뭐라고 준수 씨에게 설명을 해야 하나.’

현준이 잠시 말을 멈추고 컴퓨터 화면에 떠 있는 차트에 무언가를 적었다.

“정간호사, 이은설 환자 난임진단서 발급받을 수 있도록 안내해 주세요.”

“아, 난임진단서.”

“결정통지서를 병원에 제출해야 지원금 청구가 가능한 상태에서 시술이 진행될 수 있어. 잊지 말고 다음번 진료 때 챙겨 와."

"응."

"시술은 다음번 생리 시작 이틀째부터 시작하는 걸로.”

“응!”

담담하면서도 다부진 목소리로 대답을 하며 은설이 무릎 위에 얹은 두 주먹을 꼬옥 말아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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