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사주에 나무가 없어 무자(無子)라(3)

<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by 이소정

“그렇게 해요.”

“오, 쿨하네. 입장 바뀌었으면 난 준수 씨한테 그래도 한 번 더 참아달라 했을 텐데.”

“난 은설 씨가 말려도 안 참을 걸.”

“우리 엄마 아빠가 자식들 일에 노터치 스타일인 게 이럴 땐 참 다행이라니까. 시시콜콜 감 놔라 배 놔라 했으면 우리 집도 ‘장서갈등’ 만만찮았을 거야.”

“장인, 장모님이 현명하신 거야. 21세기 세기 스타일이셔.”

“무심하다고 안 해줘서, 땡큐.”



은설의 예상대로 시아버지는 못다 한 사주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싶어 했다.

그래야만 어제 쌓인 오해가 풀릴 것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시아버지가 생각한 가장 적당한 타이밍은 아침상을 물리고 난 뒤, 본격적으로 명절 일을 시작하기 직전이었다.

과일 쟁반을 들고 나온 은설이 앉은뱅이 다과상이 놓인 곳에 자리를 잡고 안기도 전에 시아버지가 사주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우리 큰 메느리 어제 아버지 말을 좀 오해한 그 같다. 그기 니 탓을 하는 게 아니고, 크흠."

본격적으로 설을 풀 모양인지 시아버지가 목소리부터 가다듬었다.

"사주가 그러하니 너무 마음 졸이지 말고 찬찬히 준비를 잘 하믄 된다는 뜻이었다."

"······."

"그리고 아부지가 보니까 작년부터 올해까지 자슥을 볼 수 있는 운이 우리 큰 메느리 사주에 들어와 있드라. 노력하면 다 생길 수가 있다. 그리고 또 준수 사주에는 자슥 복이 있으니까······.”

“정말요? 뭐야, 어떻게 된 거예요, 준수 씨? 혹시 나 몰래 밖에서 낳아 놓은 자식 있는 거 아녜요?”

은설이 애꿎게 준수를 몰아붙였다.

사과를 입에 밀어 넣다 말고 준수가 황당한 표정으로 은설을 바라보다가 이내 눈치를 채고 아버지에게 한마디를 쏘아댔다.

“아, 쫌. 그만 좀 하이소. 와 쓸데없는 말을 해서 큰아들네 부부지간을 이간질합니까?”

“아니, 아버님이 사주에 그렇게 나와 있다고 하셨잖아요. 아버님, 혹시 이이가 지금은 아니어도 나중에 막 바람피우고 그러는 거 아녜요? 사주에 뭐라고 나와요?”

“하, 참. 억울해서 못 살겠네. 내 바람이라도 피우고 이런 말을 들으면 억울하지나 않제. 아부지, 뭐라고 말 쫌 해 주이소. 내 사주에 바람피운다고 나옵니꺼?”

“아니, 그르케 해석할 기 아이고오. 부부지간에 이············이 사주를 서로뭐냐············보완을 해 주는 기다. 그치. 응. 준수가 자슥 복이 있으니 우리 메느리가 자슥을 낳을 수 있다 이기지.”

시아버지가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이때다 싶었는지 은설이 시아버지의 말을 받아 새로운 사주 풀이를 이었다.

“아버님, 제가 어제 밤새도록 찾아봤는데요. ‘무자’라는 게 자식이 없다는 게 아니고 아들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거래요."

"그으래애?"

금시초문이라는 듯 시아버지의 눈이 동그래졌다.

"백명산이라고 아시죠? 그 TV에 나오는 유명한 역술가요. 그 사람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거든요. 거기 사주풀이 사례모음이 있는데요."

은설이 시아버지보다 더 신이 났다는 듯 격앙된 목소리로 설을 풀었다.

"애기를 아예 못 낳는 게 아니고요. 그러니까 저는 어쩌면 딸만······. 가만, 아버님 말씀대로라면 준수 씨가 그럼 혹시 밖에서 아들 낳아가지고 데려오는 거 아녜요? 준수 씨, 나중에 나보고 그 애 키워달라고 할 거예요?”

“뭔 소리야. 은설 씨하고 낳은 자식 건사하고 살기도 바빠죽을 텐데 무슨 밖에서 아들을 낳아 온다고 그래."

준수가 억울함의 포인트를 바람에서 대출로 옮겼다.

"바람은 뭐 아무나 피우나, 씨. 요즘은 바람도 돈 있어야 피워요. 난 대출이 많아서 담배도 못 피우고 바람도 못 피운단 말이야. 아부지, 그 씰데없이 사주 배우러 다니지 말고 아들내미 용돈이나 좀 주소.”

급기야 준수가 앓는 소리를 해대기 시작했고, 당황한 시아버지가 급히 자리를 털며 일어섰다.

“쓸디없는 소리 하지 마라. 으히구야, 마 어제 일을 좀 무리하게 해서 그런가 아침부터 피곤타.”

“일은 내가 다 했고마, 당신이 와 일 때문에 피곤합니꺼? 쓸디없이 사주 얘기를 또 끄내니까 피곤치.”

부엌정리를 마친 시어머니가 손에 물기를 털고 나오며 시아버지를 타박했다.




은설이 궁금했었다는 듯 시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저 진짜 궁금해서 여쭤보는 건데요. 저희 결혼하기 전에 좋은 날 잡으신다고 제 사주 물어보시고 궁합도 보셨잖아요. 그때는 거기서 저 ‘무자팔자’라고 말 안 해줬어요?”

“그땐 마 그런 얘기 들은 거 읎읐다.”

“무자 팔자여도 궁합이 괜찮을 수가 있나 봐요? 근데 무자팔자면 꽤 중요한 얘긴데 그 사람은 왜 그 얘기를 안 했대요?”

“글쎄. 서로 잘 맞춰서 산다카고 그케서 좋은갑다 했제, 뭐.”

다른 명리학자의 이야기는 별로 듣고 싶지 않았는지 시아버지는 어느새 옮겨 앉은 소파에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여보, 여서 이카지 말고 들어가서 주무세요.”

“응? 내 졸았나? 으흐, 안 되겠다. 한 잠 더 자야 쓰겄다.”

시아버지가 자릴 털고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쓸디없는 말 대잔치'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시어머니는 은설과 준수도 방으로 들여보냈다.

“음식은 이따 오후에 전이나 좀 부치면 된다. 느그도 잠 좀 더 자라. 어제 내려오니라 피곤했다 아이가.”




시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방에 들어온 은설과 준수가 아직 개켜놓지 않은 이불 위로 나란히 몸을 뉘었다.

누운 채로 소리 없이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은설에게 준수가 물었다.

“이제 속이 좀 시원해?”

“쪼끔. 한 10퍼센트쯤.”

“왜 그것밖에 안 시원해? 신랑이 눈치껏 맞장구도 쳐주고 그랬구만.”

“내 속 풀자고 일부러 어른 당황하게 만든 거에 대한 약간의 죄책감. 그리고······.

“그리고?”

“이렇게 한다고 해서 ‘평생 자식이 없을 수도 있다’는 메시지가 내 마음속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

“계속 귓전에서 맴돌아. ‘무자(無子)’라는 말이. 더구나 오늘은 아버님이 나에게 시한부 선고를 내리셨어.”

“무슨 시한부?”

“자식이 생길 수 있는 운이 작년부터 시작했었고 그게 올해 끝난대.”

“아버지가 진짜 사주쟁이가 아닌데 뭘 그런 걸 신경 써. 믿지 마, 그런 거.”

“올해가 가기 전에 아기가 생길 수 있는 운이라는 말은 믿고 싶어. 물 들어왔을 때 노 젓는다고 운 때가 들어왔다니 좀 더 적극적으로 노력해 보려고. 혹시 알아? 다음 달에 떡하니 임신이 될지.”

“그래요, 뭐 믿는 게 동기부여로 이어진다면 믿어 보는 거지.”

준수가 담담한 목소리로 은설의 말에 동의를 해 주었다.

“근데 만약에 뜻대로 임신이 잘 되지 않으면 말이야. 앞으로 한 달 한 달······. 아기가 생기지 않았다는 걸 확인할 때마다 내가 감내해야 하는 불안이 너무 두려워."

"그렇게 생각하지 마."

"준수 씨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자기 뜻대로 막 틀어막아지고 그래?"

"아니."

고심 끝에 내뱉는 한 마디인지 준수가 계속 한 템포 늦게 대답을 했다.

답변이 시원찮아 혹시나 섭섭해하고 있는 건 아닌지 준수가 은설의 표정을 살폈다.

흐릿한 초점의 눈동자가 허공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머릿속에 휘몰아치는 불안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는 은설은 준수의 짧은 대답 따윈 들리지 않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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