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사주에 나무가 없어 무자(無子)라(2)

<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by 이소정

“이거를 함 봐 봐라. 아부지가 요즘 문화센터에서 사주명리학 수업을 듣거든. 이기 느그 사주 풀이 한 기다.”

시아버지가 방에서 두툼한 책과 노트 한 권을 들고 나왔다.

“은설이 성당 다닙니데이. 아 불편하게 그러지 마소.”

부엌에서 과일이며 주전부리를 챙겨 나온 시어머니가 말리는 말을 했다.

“괜찮아요, 어머님. 그리고 요즘은 카페 같은 데서 사주풀이 재미로도 보고 그러는데요, 뭐.”

“사주 명리학은 미신이 아이야. 이기 몇 천년 동안 데이타를 모아서 낸 통계자료 같은 기라고오.”

시아버지가 자신이 공부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학문임을 강조했다.

“네. 옛날에 명리학만 전문으로 공부한 사람 뽑는 과거시험도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은설이 별로 개의치 않으니 걱정 말라는 듯 시아버지를 두둔해 주었다.

“느그 결혼할 때 사주 받은 거 있다 아이가. 그거 가지고 아부지가 사주풀이를 해봤다.”

본격적으로 설을 풀 요량인지 시아버지가 제대로 자리를 잡고 앉아서 무어라 적혀 있는 것이 많은 노트를 펼쳤다.

“준수는 사주에 불이 네 개나 있다. 이러니 승질이 불같고 화를 잘 참지 못하는 기다.”

시아버지의 말 속에서 지난 제사 때의 준수를 나무라는 뉘앙스가 묻어났다.

준수는 듣는 둥 마는 둥 관심 없다는 듯 TV만 보았다.

“그런데 은설이는 ‘계수’라고. 물이 많은데 이기 큰 물이 아이고 시냇물처럼 고요한 작은 물이라. 이래서 느그가 좋은 연분인기야.”

작은 물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퍼지는 불만 꺼주며 잘 맞추어 산다는 것이었다.

만약 은설이 큰 물이었다면 준수가 가진 불의 기질을 다 꺼버려서 준수가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았을 것이라며 시아버지가 천만다행이라는 듯 이야기를 했다.

은설은 자신의 입장에서 사주풀이를 다시 해석했다.

‘큰 불이 옆에 있으니, 가뜩이나 적은 물이 다 말라버릴지도 모르겠네. 이거 나한테는 손해 나는 이야기 아닌가.’

은설의 표정이 점점 떨떠름해져 갔다.

이 와중에 한 번 더 불을 지른 것은 시아버지의 다음 말이었다.




“근데 우리 큰 메느리 사주에 나무가 너무 부족해. 나무가 하나도 없어. 나무가 이기 자슥 복이거든. 말하자면 무자(無子) 팔자인 기라.”

“무자요?”

은설이 저도 모르게 큰소리를 내었다.

아버지 목소리가 안 들리는 척 TV만 보던 준수가 날카롭게 눈을 치켜뜨며 아버지의 사주명리학 책을 덮어버렸다.

“치우소, 마. 그 어디서 돌팔이 사주쟁이한테 배운 걸 가지고 사주풀이를 해주네 마네 하고 그래요.”

“돌팔이 아이다. 문화센터에서 강사 하는 사람이다.”

“진짜 잘하면 문화센터 강사를 왜 합니꺼? 자기 철학관 내서 비싼 돈 받고 사주 봐주제.”

“제 사주가 무자팔자래요?”

은설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래. 그래서 아가 잘 안 생기는 기다. 그러니까······.”

상황을 눈치챈 시어머니가 시아버지의 말을 자르며 사주풀이 판에 끼어들었다.

“가뜩이나 아 가지는 거 때문에 신경 쓰는 아한테 뭔 말을 그리 해요. 그런 말은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사주에 자슥 복이 없어서 그런 거니 너무 마음 졸이지 말라는 거지. 그리고 사주가 이래도 이기 다 극복하는 방법이 있다고. 응?"

시아버지가 변명이 아닌 척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평소에 나무를 가까이 하고. 나무로 된 소품을 몸에 지니고 다녀도 좋고. 느그 집에 화분이 별로 없제? 올라가면 행운목 같은 거를 몇 개 사서 창가에 두고 그래라.”

“하, 참. 그만하라는데도 말 많네. 그만 하소, 좀.”

급기야 시어머니가 은설과 준수를 대신해 화를 내고 나섰다.

“나무는 무슨 나무고? 지금 있는 거 하나도 죽일 판인데. 쓸데없는 소리 말아라. 내 이래서 부산 안 내려올라켔는데. 아이씨.”

준수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덩그마니 남겨진 은설이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는데 준수가 금방 겉옷과 은설의 손가방을 챙겨 들고 방에서 나왔다.

큼큼 거리며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일부러 화를 많이 누르고 있는 티는 내며 은설과의 외출을 통보했다.

“부산에 있는 친구들하고 저녁에 만나기로 했어요. 집사람도 같이 갈 거예요.”

시어머니가 잘 되었다는 듯 퍼뜩 다녀오라며 손짓을 했다.

거실에 앉아 있던 은설이 얼떨결에 그 길로 현관으로 가 신발을 신었다.

“어머니, 아버님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실컷 놀다 오니라.”

시어머니가 주머니에서 슬쩍 오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은설의 손에 쥐어주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느그 아버지가 가끔 저래 주책을 떤다. 나쁜 마음으로 그런 건 아니니 느그가 쪼끔 이해를 해줘라. 응? 요걸로 맛있는 것도 사 묵고 기분 풀고 와라. 내가 느그 대신 실컷 혼내 노께.”

시어머니에겐 잘못이 없었다.

은설이 쓰윽하고 웃음을 한번 지어 보이며 시어머니를 안심시켰다.

꼬깃하게 손바닥에 쥐어진 오만원을 들고 은설은 준수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친구들 어디서 만나? 서면? 해운대? 광안리?”

은설의 손을 꼭 잡고 아파트 단지를 성큼성큼 걸어 빠져나가는 준수를 종종걸음으로 쫓으며 은설이 물었다.

“다들 장가갔는데 명절 전에 쓸데없이 친구를 왜 만나. 와이프한테 욕먹거나 엄마한테 욕먹거나 둘 중에 하난데.”

“그럼 뭐야? 일부러? 나 구해주려고?”

은설이 활짝 웃으며 재차 물었다.

“저번에 못 그랬던 거 미안해서.”

“오, 저번 거까지 한꺼번에 용서해 줄게요.”

“한꺼번에? 오늘은 왜?”

“오늘은 약 3분간 나만 거실에 남겨둔 거 미웠어.”

“그건 옷하고 가방 챙기느라 그런 거지.”

준수가 야박하다는 듯 은설에게 섭섭한 눈빛을 보냈다.

“담에 나도 데리고 들어가서 챙겨.”

“알았어요. 담엔 거실에서 은설 씨 손잡고 일어날게.”

“앗싸!”

“앗싸는 무슨. 그런 일이 없어야 앗싸인 거지. 아무튼 우리 아부지가 문제야.”

“오늘은 나도 그렇다고 생각해. 내가 무자 팔자라니."

은설의 표정이 뒤늦게 밀려오는 기분 나쁜 감정을 그대로 준수에게 드러냈다.

"사주에 나무가 없는 사람은 그럼 다 자식이 없는 건가? 그럼 준수 씨 팔자에도 나무가 없나? 그걸 여쭤볼 걸 그랬네.”

“됐어. 이제 그만 신경 써. 돌팔이 사주풀이를 뭘 그렇게 신경 써.”

“어떻게 신경이 안 쓰여? 수천 년 동안 쌓여온 통계자료라잖아.”

“증거 있어?”

“응?”

“누가 모은 자료래?”

“그러게.”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

“응.”

하고 대답은 했지만, 은설은 내내 사주 이야기뿐이었다.

준수와 해운대 바닷가에서 밤바닷바람을 쐬는와중에도.

달맞이고개의 전망 좋은 카페에서 동해바다의 야경을 감상하는 동안에도.




“준수 씨하고 나하고 잘 맞는 사주랬는데 자식 복이 없는데도 잘 맞는 사주라고 할 수가 있나?”

“은설 씨, 이제 그만 쫌······.”

“벌이예요. 아버님 대신 준수 씨가 받는 거야. 아, 나도 미칠 것 같아. 머릿속에서 사주 얘기가 떠나질 않아. 입도 내 뜻대로 안 멈춰.”

“종교도 있는 사람이 왜 그래. 사주 같은 걸 믿으면 쓰나.”

“나일론신자라 그런가 봐.”

은설이 씁쓸히 웃었다.

카페 소파에 깊숙이 몸을 기대고 은설은 팔짱을 낀 채로 한동안 창 밖만 바라보았다.

무슨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지 준수가 말을 걸어도 잘 듣지 못하는 듯했다.

“······씨? 은설 씨? 내 말 들리기는 해?”

“응?”

“11시 넘었는데 이제 슬슬 집에 갈까 물어봤잖아.”

“아, 벌써? 가야지. 내일 일해야 하는데. 어머니 아마 10시부터 기다리고 계셨을 거야. 전화 안 하셨네? 준수 씨한테도 안 하셨어? ”

“응.”

“우리 눈치 보시나 보다. 전화가 오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이대로 쭉 심통 난 며느리 할까?”

은설이 웃으며 준수에게 장난을 걸었다.

“맘대로 해.”

은설과 달리 준수는 진지한 목소리였다.

그제야 은설도 목소리를 가다듬고 생각 끝에 내린 자신의 결론을 준수에게 말했다.

“혹시 사주 이야기 다시 하시면, 그땐 나도 내 방식대로 대처할게요."

"어떻게?"

"몰라. 그렇지만 다음번엔 그냥 듣고 넘기는 것보다 말대꾸라도 좀 하는 게 내 마음이 더 편하겠어. 준수 씨 엄마 아빠한테 내가 좀 그래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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