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건강보험료 납부확인서는 어디서 뽑지?"
“국민건강보험 홈페이지.”
이런저런 서류를 준비하느라 바쁜 은설의 뒤통수에 대고 준수가 일을 거드는 말을 했다.
“어머! 언제 들어왔어?”
“좀 전에. 뭐 하느라 신랑 들어오는 소리도 못 듣고 그래요. 섭섭하게.”
“미안요. 정부지원금 신청해 보려고 서류 준비 중이었어.”
“뭐 내라는 게 많아? “
“엄청”
“신청하면 받을 수는 있고?”
“아마도? 우리 같은 평범한 소시민들이야 받아 마땅하지.”
“좋은 말인지, 나쁜 말인지 모르겠네. 혹시 돈 많이 못 벌어 온다고 지금 신랑 타박하는 거야?”
“아니, 지원금 산정 기준에 꼭 포함이 되어서 다만 얼마라도 지원금 받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고 말하는 거야.”
“그건 걱정 말아요. 나보다 월급 많은 조차장님네도 지원금 받았다니까.”
“조차장님네요? 작년에 결혼한?”
“응. 와이프가 마흔네 살 이래. 거기도 식 올리자마자 바로 애기 가지려고 노력했는데 잘 안되어서 결혼 1주년 기념으로 부부동반 난임검사를 했대.”
“신박한 결혼기념 이벤트군.”
“그 집은 바로 시험관 한다는 거 같던데?”
“그래? 시험관을 해야만 하는 확실한 이유가 있었나 보다. 부럽네.”
“뭐가 부러워?”
“시험관 한다며. 그게 인공수정보다 확률이 더 높단 말이야.”
은설은 분명 시험관아기 시술에 대해선 준수의 신념을 반영해 조금 더 깊이 고민해 보겠다고 했었다.
그러고선 시험관을 진행하는 부부 이야기에 마냥 부러워하는 은설에게 빈정이 상한 준수가 툴툴거리며 대거리를 했다.
“그럼 은설 씨도 시험관 하겠다 그래.”
“친구가 인공수정 하래. 원인불명이고 아직 임신 시도한 지 1년 조금 넘었을 뿐이라면서.”
“그럼 친구 말 들어야지. 의사인데.”
퍼뜩 기회가 왔다는 생각이 은설의 머릿속을 스쳤다.
준수와의 대화 중에 정말이지 오랜만에 등장한 의사 친구에 대한 이야기였고, 시험관보다는 인공수정이 낫겠다는 판단에선 현준과 준수가 대동단결 되었다.
‘에라, 모르겠다!’
은설은 자신의 머리가 더 고민할 새를 주지 않기로 하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을 뱉었다.
“걔도 남자라 그런가 애가 타들어가는 내 마음을 잘 몰라.”
“그 의사 친구가 남자였어?”
준수의 눈이 쏟아질 듯 동그래졌다.
“내가 얘기했잖아.”
“중학교 동창이라고만 했지.”
“정말? 내가 얘기 안 했어? 난 여태 얘기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나는 은설 씨 중학교 동창이라길래 당연히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나 공학 나왔는데. 다녔던 곳 다 공학이었어.”
“알아. 그래도 여자인 줄 알았지.”
“뭐야, 지금 싫은 내색 하는 거야? 내가 남자 의사 부담스럽다고 할 땐, 의사가 그냥 의사지 남자 의사 여자 의사가 어딨냐고 했던 사람이 준수 씨 아녔나?”
“그건 그렇지만······.”
“의사가 동창이라 병원 바꿔야겠다 했을 땐, 의사 친구 둔 거를 복으로 알라고 했던 사람도 준수 씨 아녔나?”
“그땐 동창이 여자인 줄 알았고.”
“뭐예요. 왜 자꾸 말이 바뀌어? 남자 의사도 괜찮고, 중학교 동창 친구가 의사인 것도 괜찮은데 왜 중학교 동창 친구가 남자 의사인 건 안 되는 건데?"
"그래도······."
"알죠? 나 말 바뀌는 거 제일 싫어하는 거. 너무한 거 아녜요. 인공수정 들어가려니까 싫어서 일부러 태클 거는 거 아니야?”
절대로 화내지 않을 것.
중요했다.
은설이 신들신들 웃으며 짓궂은 표정을 하고 준수를 놀려댔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에요. 현준이에게 진료를 받으라며 등 떠민 건 모두 당신! 여기서 화를 내거나 삐치면 당신인 속 좁은 남즈아. 넘어 간다. 넘어간 다아아아아······.’
현준의 얼굴이 빨개졌다 하얘졌다를 반복하다가 별안간 훅 하고 찌푸려졌다.
‘헉!’
은설은 등어리의 땀구멍 하나하나에서 펌프가 가동되는 것이 느껴졌다.
‘아, 화내려나.'
잔뜩 주름이 잡힌 미간 사이로 준수가 콧김을 훅 하고 올렸다.
“아 왜 별안간 속 좁은 남자를 만들고 그래. 의사가 그냥 의사지 여자 남자가 어딨다고.”
'통과!'
“걔 난임 쪽으로 되게 유명한 애란 말이야. 시험관 시술 성공률이 60%가 넘는대, 평균이 30-40%인데. 나도 첨엔 좀 망설여졌는데 성공률 높은 의사인 거 알고 눈 꼭 감았어."
준수는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면 쉽게 수긍을 하는 스타일이었다.
"아직 시험관 단계까진 안 갔지만 만약에 그거 하게 되면 말이에요. 한 번에 몇 백 씩 드는 시술인데 기왕이면 성공률이 높은 쪽에 기대는 게 좋을 거 같아서.”
그리고 가성비에 민감했다.
상황을 은근슬쩍 돈 얘기와 연결시키면서 은설의 마음에 일말의 가책이 일었다.
하지만 현준을 선택한 이유가 준수에게 좀 더 간절하게 느껴져야만 했다.
“성공률 높은 건 저번에 들어본 거 같기도 한 얘기고······."
“응 내가 전에 한두 번 얘기했던 거 같아.”
준수의 표정이 한결 누그러졌다.
결국 준수는 기왕이면 아는 사람에게 진료받으라며 은설을 설득하던 때와 마찬가지의 이유로 자신의 마음을 다스렸다.
대신 몹시 투덜대기 시작했다.
“진짜 실력이 좋기는 해? 근데 왜 아직 애기가 안 생겨 우리?”
한 고비 넘겼다는 것이 확실해지자 은설이 다시 서류 정리를 하기 위해 몸을 컴퓨터 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시험관 성공률이 높은 거지. 그전까지 하는 치료나 시술은 자연임신이 좀 더 잘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방식인 거야."
"그럼 진작에 인공수정을 해주지."
"인공수정도 이름만 인공수정이지 난자랑 정자가 만나서 수정되는 과정은 자연임신하고 같아.”
“그래? 근데 왜 이름이 인공수정이야?”
“그러게. 정자를 괜찮은 애들로만 선별하는 전처리작업을 해서 자궁 안으로 직접 넣어주는 게 인공적인 과정이라 그런가 봐."
“헷갈리게 이름을 지어놨네.”
준수가 애먼 시술 명칭 탓을 했다.
“내가 직접 봐서 실력이 별로인 거 같으면 병원 바꾸자고 할래.”
준수가 아이처럼 입이 나온 소리를 했다.
은설이 대자연의 어머니처럼 너그럽고 흔들림 없는 미소를 지으며 준수에게 말했다.
“그래. 준수 씨 마음에 안 들면 그렇게 하자.”
그제야 준수도 마음이 좀 풀렸는지 얼굴색이 누그러졌다.
“왠지 못 생겼을 거 같아. 그 친구.”
“왜?”
“의사라며.”
“의사는 다 못 생겼어?”
“잘 생겼으면 여자애들이랑 놀러 다니느라 바빠서 공부를 못 했겠지. 중학교 때부터.”
“중학교 땐 잘하는 친구 아녔어. 나중에 훅 치고 올라갔대, 성적이.”
“······.”
“동창이라 편하다고 은설 씨한테 친절하게 안 하고 까탈 부리고 그러지는 않아?”
“뭐 너그러운 동네 아저씨 스타일은 아니지만, 환자한테 까탈 부릴 정도로 성격이 안 좋진 않은데. 그건 직업정신이 없는 거잖아. 의료도 나름 서비스업종인데.”
“하긴. 요즘은 그러면 병원도 망하지.”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준수가 내내 투덜거렸다.
“병원은 커? 기왕이면 큰 병원 다니는 게 좋을 텐데. “
“집 근처에 내가 다닐 만한 병원 중에 제일 크고 좋은 데야. 병원을 고르고 골라서 갔더니 그 친구가 나중에 새 담당의로 온 거라니까.”
“알아.”
“왜 그래요오? 혹시 의사 친구한테 지금 질투 중?”
계속되는 준수의 투덜거림에 지쳐갈 즈음에도 은설은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현준과의 첫 진료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준수를 더 심각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제 그만 툴툴거리고 운전에 집중하도록 해용.”
“몰라요. 그냥 입이 안 멈춰.”
제법 큰 규모의 병원 건물과 세련된 인테리어의 위용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병원 로비에 들어서면서 준수의 투덜거림이 조금 잦아들었다.
“좋네. 병원.”
“나름 유명한 곳이라니까. 우리는 3층으로 가면 돼요.”
“응.”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내내 준수는 말이 없었다.
은설은 준수의 표정을 한번 더 살폈다.
“긴장되지?”
“아니! 내가 왜? 은설 씨 친구를 만나면 만나는 거지 뭐.”
“아니, 그거 말고. 난임센터에 처음으로 진료받으러 와보는 거잖아요.”
“내가 받나.”
“지금부턴 우리 둘이 같이 받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애기는 함께 만드는 거니까.”
준수가 한 번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뱉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