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숨을 구멍 찾기

<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by 이소정

“정확히는 그즈음이 되어 봐야 알지. 난포가 내 뜻대로 자라나, 뭐. 약 뜻대로 자라지.”

걸치고 나갔던 가방이며 액세서리 등을 화장대 위에 툭툭 던지듯 풀어놓으며 은설이 퉁명스레 말했다.

“어차피 주말엔 병원도 안 하잖아.”

준수도 벗은 양말을 돌돌 말려 있는 그대로 야구공 던지듯 빨래바구니에 골인을 시켰다.

‘팡! 팡!’하고 양말이 메다 꽂히는 소리가 제법 크게 나자 준수가 슬쩍 은설의 눈치를 보았다.

은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괜스레 더 섭섭해진 준수가 터벅터벅 소파로 걸어와 몸을 널브러뜨렸다.

“어차피 잔치가 일요일 점심이니까 토요일에 느긋하게 내려갔다가 일요일에 잔치 시작할 때 인사만 하고 바로 나와서 올라오면 되잖아."

은설에게선 아무런 말도 돌아오지 않았다.

무슨 생각이 더 들었는지 준수가 흐릿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이어갔다.

"은설 씨 컨디션 괜찮으면 간 김에 해운대 쪽에 핫하다는 베이커리 카페도 가보고. 은설 씨 그런 데 좋아하잖아.”

준수가 말투에 섭섭함을 담아 은설을 회유하려 애썼다.

“병원 토요일에 해. 아마 일요일도 할걸? 진료는 없지만 시술은 한다고 그랬던 거 같아. 날짜 맞추는 게 중요하니까.”

“도대체 산부인과 의사는 언제 쉬어?”

“돌아가면서 쉬겠지. 난임센터에 의사가 현준이 한 명만 있는 것도 아닌데.”

준수는 더 말을 하지 않았다.

평소의 은설을 생각한다면 이번엔 부산에 가고 싶지 않은 은설의 의중이 확고해 보였다.

그렇다고 큰아버지 팔순 잔치에 자식 내외를 대동하고 가야 면이 선다는 아버지의 바람을 완전히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




준수는 차라리 적절한 차선을 생각하기로 한 듯 은설에게서 눈길을 거두었다.

은설의 마음은 오히려 그즈음에서 흔들렸다.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나직이 한숨을 쉬는 준수를 보니 은설은 자신이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생각했다.

남편에게 ‘유난 떨지 않아도 내 자식 되려면 다 붙어 있기 마련’이라는 소릴 듣고 이혼할지 말지를 고민하며 밤새 펑펑 울었다는 김 선생의 말도 떠올랐다.

준수의 인성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도 준수에게서 만큼은 그런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마음이 더 간절해지고 다급해져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을 나중을 생각해서 지금은 준수의 사정을 봐주는 것이 나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지금 이 순간보다 더 간절해질 날이 올 것이라 당연스럽게 가정한 스스로가 어이없었다.

은설이 안방 파우더룸에서 준수는 또 거실 소파에서 각자의 계산에 빠져 있는 동안 집안에는 무거운 침묵만 흘렀다.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난 것은 은설이었다.

“저녁 먹으러 나가자. 가위 바위 보 져서 설거지하게 될까 봐 집에서 해 먹자 소릴 못하겠어.”

준수가 말없이 일어나 빨래바구니에서 돌돌 말린 양말을 도로 꺼내어 신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는 눈빛 제안이 서로 통했는지 둘은 아무 말 않고도 함께 아파트 단지 앞 상가로 걸어 들어갔다.

자주 가는 백반집의 유리벽 너머로 반찬 라인업을 확인하곤 준수가 활짝 웃으며 문을 열어젖혔다.

“제육 먹고 싶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오늘 마침 딱 제육이 나오는 구만.”

준수가 썩 신이 났는지 뽑은 휴지를 돌돌 말아 수저받침을 만들어 은설의 숟가락과 젓가락을 세팅해 주었다.

살짝 부드러워진 둘 사이의 분위기에 풀무질을 하듯 은설이 준수에게 다정히 하루 동안의 일과를 물었다.

“오늘 오전엔 뭐 했어? 병원 간다고 오래간만에 평일에 연차 쓰고 쉰 거잖아.”

“늦잠 자고.”

“그건 주말에도 하는 거잖아. 아깝다, 좀.”

“그래도 조조는 볼 수 있게 일어났어.”

“영화관 갔었어?”

“응.”

“혼자 뭐 봤어?”

은설이 억울하다는 듯 준수의 일과를 캐물었다.

“다크하우스”

“아. 그래 뭐 그건 혼자 봐도 돼.”

“공포 영화라?”

“응.”

준수와 은설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범한 대화를 이어갔다.




반찬으로 나온 잡채를 맛있게 호록이며 은설이 짧은 시간이나마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을 준수에게 말했다.

“시술이 큰 아버님 팔순잔치 날 이후면 같이 가고, 시술을 그전에 하게 되면 적당히 둘러서 못 간다 말씀드리고 난 집에서 쉬는 게 좋겠어.”

“난 아버지 어머니한테 은설 씨 인공수정 해서 못 간다 말씀드리고 아예 안 갈라 그랬는데?”

“그건 좀······.”

“왜?"

"부담스러워."

"뭐가? 아, 인공수정 하는 거 부모님한테 말 안 하게?”

“말씀드리면 또 기대하실 거 아냐. 실패하면 실망하실 거고. 잘 되면 서프라이즈 소식으로 전하면 그뿐이지만. 결과가 좋지 않으면 내가 받는 데미지가 너무 클 거 같아."

“데미지가 더 커질 게 뭐가 있어.”

“마음이 그렇다고. 내 잘못이 아니어도 내 잘못처럼 느껴지는 걸 어떡해. 거기에 부모님한테 왠지 죄스러워해야 하는 상황까지 얹고 싶지 않아."

팔순 잔치 이후로 시술일이 잡히면 따라나서겠다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이 죄책감을 덜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만약 본의 아니게 시술받은 사실이 알려지고 결과가 마저 좋지 않다면?'

시댁 행사에 참석하느라 생활 패턴이 무너졌고, 컨디션 난조를 겪으면서 인공수정이 잘 이루어지지 않은 듯하다고 핑계를 댈 생각이었다.

혼자 짊어지기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이 죄책감을 은설은 조금이라도 남들에게 분산시키고 싶었다.

"하아, 근데 못 가게 되면 뭐라고 핑계를 대야 하나.”

은설의 한숨을 들은 준수가 준수가 생각지도 않은 묘안을 대신 내주었다.

“출발 당일 급설사로 대중교통 탑승 불가.”

“오오, 괜찮은데!”

“대신 나라도 부산에 가봐야 할 거 같은데. 그래도 돼?”

“응. 서로 마음 편한 방향으로 하는 게 제일 좋을 거 같아.”

“장모님더러 우리 집에 와서 하루 주무시라 그래.”

“봐서.”

“장모님 한테도 얘기 안 하게?”

“응. 일단은."

“암튼 혼자 있지는 마. 친구라도 불러서 같이 있어.”

“걱정해주는 거야?”

“걱정되지, 그럼.”

“그러면 자기도 부산 가지 말고 그냥 내 옆에 있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러면 부부사이에 갈등만 깊어질 거 같아서 그 말은 안 하고 참을게.”

“안 참은 거 같은데.”

“아냐, 참은 거야. ‘가지 마’라고 마무리 안 했잖아, 말을.”

“그래도 안 참은 거 같은데.”

“참은 거라 치고 맛있게 밥 먹자. 후식은 마누라가 쏠게요.”

“새로 나온 아이스크림 사줘요. 어게인 편의점에서 파는 거.”

“오케이!”

저녁 무렵의 바람은 가을의 것이 확실했다.

선선한 바람이 얄팍한 은설의 카디건을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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