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기대가 되어도 기대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해

<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by 이소정

“진짜 말 안 할 거야?”

“그렇다니까.”

“그럼 적당히 둘러대지 뭐 하러 따라와.”

“거짓말하긴 싫어.”

“말 안 할 거라며.”

“말 안 하는 거랑 거짓말하는 거는 다르지.”

준수와 실랑이를 하면서도 은설 역시 자신의 태도가 이중적이라 생각했다.

“그냥 내 마음 편한 대로 행동하는 거야. 너무 이해하려고 애쓰지 마.”

캐묻는 것이 싫었다.

아프다는 핑계를 대면 구구절절 굴비처럼 엮여 나올 거짓말이 한 둘이 아니었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혼자 있는 건 아닌지.

친정에선 돌봐 줄 누군가가 오는지,

그 모든 각본을 짜고 말이 헛나오지 않도록 최소한 몇 주는 애써야 할 상황과 이틀 연속의 장거리 이동 중에 그저 후자를 택한 것뿐이었다.

은설의 선택엔 휙 갔다가 얼굴만 비추고 바다구경이나 하자던 준수의 말도 한몫을 했다.

“이번에 잘 되면 또 언제 바다 구경 하러 다니겠어. 놀러 다닐 코스 좀 잘 알아봐 봐요.”

기차 안에서 은설은 짐짓 신이 난 척을 했다.

같이 가자고 조르던 준수는 막상 은설이 따라나서는 상황을 부담스러워했다.

“월요일 아침에 바로 시술인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내 자식이 되려면 무슨 짓을 해도 애기가 꼭 붙들고 있다는 얘기를 믿어 보려고. 시술 당일엔 난임휴가 내서 종일 집에서 쉬니까 괜찮을 거야.”

“그런 게 있어서 다행이야. 나도 그런 게 되면 좋을 텐데. 김지연대리 알지?"

"우리보다 비슷하게 난임클리닉 다니기 시작했다던?"

"반차를 썼더라고. 것도 나중에 몰래 도는 소문 듣고 알았지만. 은설 씨 고생하는 걸 옆에서 봐서 그런가 안타깝더라.”

“반차면 시술받고 바로 출근한 거겠네. 이론적으론 아무 상관없다 하지만 자괴감 들었을 거야."

"자괴감?"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건가. 이러고 일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않나. 뭐 그런 생각들.”

“그렇겠네. 최소한 당일만큼은 스트레스를 피하고 싶었을 텐데.”

“우리 신랑 이해심이 언제 이렇게 바다처럼 넓어졌지?”

“은설 씨 배에 주사 꽂아주는 순간부터. 내가 놔준 것도 멍들었지?”

“응.”

“기술이 부족했나 봐. 좀 더 연마를 해야겠어.”

“오늘 밤에 놓을 난포 터지는 주사가 마지막이길 바랄 뿐이야.”

하고 말은 했지만 불안을 떨쳐버리기는 어려웠다.




인공수정을 앞두고 난임휴가를 쓰겠다는 은설에게 했던 김 선생의 말이 내내 은설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첫 번째 인공수정에서 임신에 성공하는 건 로또나 마찬가지지.”

난임치료 유경험자인 데다가 지극히 현실적인 김 선생은 은설에게 섣부른 축복을 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 하되 처음부터 너무 기대는 하지 마."

"그러게요. 에휴."

"가만. 혹시 지금 내 말 자기 인공수정 하는데 막 초 치는 것처럼 들려? 그런 거 아닌데.”

"쵸큼? 하하. 근데 오해 안 해요. 유경험자의 조언으로 분류해 드릴게요."

"땡큐. 암튼 기대 않고 있다가 잘 되면 기쁨이 더 클 테니까, 기대를 접고 있는 상황을 슬퍼하지도 말고. 내 말 지금 앞뒤가 맞아? 샘?"

“걱정 마세요. 샘 이과잖아요. 샘 말이 귀를 통과할 때 제가 알아서 적당히 양념 쳐가지고 찰떡 같이 들어요.”

“그럼 그것도 땡큐.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더라고. 쓸데없이 자책도 하지 말고. 우린 주어진 현실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중이니.”

은설에게 진심으로 감정이입을 해서인지 십 년도 더 전에 난임치료를 받았던 김 선생이 현재형으로 말을 했다.

“아, 난 했었지. 암튼 굳이 조언을 하자면 말이야. 몸이 힘든 것보다는 마음이 힘든 상황을 피하도록 해."

"알겠어요."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수업 중이나 담임반에서 애눔시키들이 속 썩여도 적당히 넘길 건 넘겨버리고 말이야. 응?”

시술을 코 앞에 두고 부산행을 강행한 것도 김 선생이 해준 조언의 영향이 컸다.

몸이 힘든 것보다는 마음이 힘든 상황을 피할 것.

은설은 이것이 자신을 위한 최선이라 생각했다.




준수가 기차를 타기 전 부랴부랴 사온 도시락을 풀었다.

“맛있겠죠?”

눈빛이 신이 가득한 준수를 보니 웃음이 났다.

“도시락 먹고 싶어서 기차표 끊은 사람 같아요.”

“비행기는 주스 한 잔 먹고 말잖아. 그래도 올라올 땐 마누라의 컨디션을 고려해서 비행기표로 끊어 놨어요.”

“아, 정말?”

“비쌌어. 일요일 저녁비행기라.”

“땡큐.”

“6시 비행기니까 8시 전엔 우리 집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가자마자 푹 자고 월요일 아침에 병원 가자.”

“저녁 먹을 시간이 애매하네.”

“괜찮아. 5시까지 먹으러 돌아다닐 거니까.”

“팔순 잔치 가면 먹을 거 많지 않을까?”

“많이 먹으면 안 돼. 내가 해운대 쪽에 근사한 디저트카페 알아놨단 말이야.”

“오오!”

“신나죠?”

“네에!”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 우리 마누라가 부산에 갈 맛이 나지.”

“준수 씨도 이번은 내가 괜히 무리하는 거라고 생각해?”

“따라나서준 건 고맙지만, 나중에 시술 전에 너무 무리했다고 후회할까 봐 그러지.”

“그런 마음도 없잖아 있긴 해요.”

“부산 도착하자마자 다시 서울 올라가는 기차로 바꿔 타는 방법이 아직 남아 있으니 생각 있음 말해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혹시 잘 안 되면 핑계 댈 구석을 마련해두고 싶어서 따라온 것도 있는 것 같다고요. 큰 아버님 팔순 잔치 다녀오느라 무리해서 그렇다고."

"아아. 어쩐지 은설 씨가 너무 순순히 따라나서더라니."

"첫 번째 인공수정에서 임신이 되는 건 로또 되는 거나 마찬가지라는데,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잘 안되면 내가 또 상처받을까 봐서요”

“은설 씨 마음속이 아주 복잡하네요.”

“나도 이러는 내 행동이 잘 이해가 안 되는데 준수 씨는 오죽하겠어.”

“일단 집을 나선 거니 지금은 그냥 아무 생각 말고 재미나게 놀러 다닐 궁리만 해요.”

“아버님 어머님이 섭섭 해시면 어쩌지?”

“그건 걱정 말고. 내가 알아서 할게. 난 거짓말 잘해.”

“오, 멋져!”

“나중에 은설 씨한테도 거짓말하고 그럴 수도 있는데 뭘 멋지대.”

“괜찮아요. 다 티 나요. 아버님 어머님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시는 거겠지.”

준수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은설은 그런 준수를 보며 즐거워했다.




부산에서의 일정은 준수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일 정도로 부담스럽지 않게 흘러갔다.

부산역에 내린 뒤 준수는 곧바로 본가에 가지 않았다.

도착했다. 응. 밥 먹고 들어갈 끼다. 온 김에 친구들도 좀 만나고 그래야제. 명절엔 와도 잘 못 본다, 다들 바빠서. 응. 기다리지 마라. 응. 응. 이제 끊으라 택시 타야 된다.

“어때요, 신랑의 솜씨가.”

“우리 친구 만나러 가요?”

“아니, 만날라고 했는데 캔슬되어서 은설 씨랑 둘이 데이트했다 할 거예요.”

“아하!”

준수가 미리 알아본 레스토랑에선 꽤 근사한 저녁식사가 나왔다.

달맞이고개의 족욕카페에선 오래간만에 힐링다운 힐링을 했다.

"부산에 온 보람을 이미 다 찾았어. 알아보느라 고생했어요. 근데······."

칭찬에 으쓱해진 준수가 부모님이 기다리실 텐데 이제 그만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은설을 외려 말렸다.

“가봐야 불편하게 앉아서 재미도 없는 TV나 볼텐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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