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첫 시술(1)

<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by 이소정

“나 9시 30분에 정확히 난포 터지는 주사 맞아야 하잖아.”

“아하!”

“착하게 좀 살려고 하려 했더니만. 눈치 없어, 칫."

"그러게."

"그리고 오늘은 좀 일찍 눕고 싶기도 해요. 같이 TV 보고 과일 먹는 거는 한 시간이면 충분하잖아요. 나 오늘 10시부터 잘 거야.”

“그래? 그럼 들어가야지. 마누라가 눕고 싶다는데. 오늘은 TV 볼 때 말 하지 마. 아버지 수다는 내가 다 커버할게.”

어깨가 으쓱해진 준수는 다음날도 은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아침상에선 준수가 아예 팔순잔치 이후의 가족 스케줄은 없다는 선언을 했다.

“일찌감치 갑시더. 미리 인사를 해놔야 밥도 편하게 묵는다. 아, 그리고 우리는 거서 바로 서울 올라갈게.”

“으이? 와, 표를 이른 걸 끊읐나?”

“일요일이라 표가 마음대로 잘 없다. 아니면 음층 비싼 거 사야 된다.”

“그래, 마. 그래라, 그럼.”

시아버지가 내심 아쉬운 기색을 비쳤지만 은설도 준수도 그냥 모른 척을 했다.

“피곤하지 않아?”

“괜찮아요. 이틀 동안 나름 힐링하고 왔잖아. 팔순잔치에서 보낸 두 시간 빼곤 완벽한 휴가였어.”

“아버지하고 TV 본 두 시간도 빼야지.”

“그 정도야 뭐, 가족끼리 TV 좀 본 거 가지고.”

“부산에서 보낸 일정이 아주 만족스러웠나 보군. 역시, 단 걸 잔뜩 먹인 게 효과가 있었어.”




월요일 아침.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준수는 내내 은설의 컨디션을 체크했다.

은설은 병원에 제출해야 할 가족관계증명서를 잘 챙겨 왔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게 중요해요. 우리가 부부라는 걸 확실하게 밝혀 주는 서류.”

“부부가 아닌데 와서 인공수정을 할 수도 있어서?”

“그런가 보네.”

은설과 준수의 시술은 첫 타임으로 잡혀 있었다.

“시간대별로 시술 스케줄이 있더라고. 현준이가 진료실이랑 시술실 왔다 갔다 하느라 바빴겠어, 아주.”

진료 대기실 의자에 앉아 은설이 준수에게 속삭였다.

“마누라 진료받을 때마다 따라오는 사람들이 많은 건가 했더니, 여기 앉아 있는 남자들 다 시술 때문에 와 있는 거였나 보네.”

하나 같이 어둡고 멍한 표정들이었다.

“준수 씨도 긴장 돼요?”

“몰라. 묻지 마요.”

정간호사가 은설을 호명했다.

“진료 보러는 나 혼자 들어갔다 나올게요. 여기서 좀 기다려.”

“응.”

은설의 초음파를 확인한 현준의 표정이 꽤나 흡족한 듯 보였다.

그러면서도 현준은 걱정하는 말부터 했다.

“난포가 꽤 많이 자라서 수정이 잘 이루어진다면 다태임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겠어.”

“둘 이상?”

“응, 지난달엔 인공수정으로 배아 다섯이 착상되어서 심장소리까지 들은 경우도 있었어. 그럴 경우 아주 난감해져. 현실적으로 다 살리기 어렵고 그러면 선택유산을 해야 하는데 산모 입장에선 몹시 결정하기 힘든 일이지.”

“그래서 그 산모는 어떻게 됐어?”

“다행히 둘이 도태 됐어. 그래도 세 쌍둥이야.”

“그러게. 이중에 제일 건강한 녀석 하나만 떡 하니 수정되면 좋겠다.”

“그게 제일 좋지.”




짧은 진료를 마치고 나온 은설을 준수가 반갑게 맞았다.

“뭐래?”

“난포가 많이 터져서 어쩌면 다태임신 가능성도 있다고.”

“다태?”

준수의 표정에 히비가 교차할 때 보이는 당황스러움이 묻어났다.

“잘 되면. 김칫국물부터 마시지 마요. 미리 걱정도 말고.”

“응.”

인공수정 시술을 담당하는 간호사가 은설과 준수를 안내했다.

“남편 분 먼저 채취하실 거예요. 안쪽 채취실에 들어가시면 간호사분이 다시 안내해 주실 거고요."

간호사의 목소리는 친절했지만 매뉴얼대로의 멘트임이 느껴졌다.

"정자 채취 후에 인공수정을 위한 처치를 하는 하는데 그게 대략 1시간 정도 걸려요. 그러니까 인공수정 시술은 지금부터 약 2시간 후에 이루어질 예정이고요.”

간호사가 가족관계증명서를 받아 들고 처음 보는 기계 앞으로 은설과 준수를 안내했다.

“어? 혈관등록하는 건가 보다.”

준수가 먼저 기계를 알아봤다.

“지문처럼? 본인 확인 하는 건가?”

“바뀌면 큰일 나니까 그런 가보다. 이 병원, 시스템은 참 믿음이 가게 돌아가고 있구만.”

곧 바코드가 새겨져 있는 종이띠가 은설과 준수의 손목에 채워졌다.

“속 없게 놀이동산 온 기분 나고 그런다.”

은설이 농담을 했지만 준수는 쉽게 웃지 못했다.

“준수 씨 왜 그래요? 긴장했어?”

“긴장은 무슨.”

간호사가 웃으며 준수부터 안내를 했다.

“남편분 채취 먼저 할게요.”

간호사가 안내하는 말 아래로 은설이 준수에게 속삭였다.

“오, 준수 씨 드디어 비밀의 방에 입성하네요.”

“비밀의 방?”

“남편분이 채취하시는 동안 아내분은 여기서 대기하셔도 되는데 몇 번 해보신 분들은 보통은 아래 카페로 많이들 가세요."

"그래도 제가 여기서 기다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

"남편분들이요, 보통은 아내분들이 카페에서 기다려주는 걸 더 선호하시더라고요. 마음이 더 편하시대요. 처치 마칠 때까지 어차피 두 분 다 한 시간 이상 대기도 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병원 1층에 있는 카페는 일찍 내려가지 않으면 빈자리가 별로 없어요."

간호사가 팁을 알려주듯 친절히 다른 사람들의 노하우를 전해주었다.

“아, 그렇겠네요!”

은설이 말 잘 듣는 학생처럼 낭랑한 목소리로 대답했고, 준수는 아무 말이 없었다.




간호사로부터 바코드가 새겨진 작은 플라스틱 컵 하나를 받아 들은 준수가 드디어 비밀에 방으로 입성했다.

모니터 크기만 한 벽걸이 TV.

편하지도 불편하지도 않은 1인용 리클라이너.

리클라이너 옆에 걸려 있는 헤드셋.

TV 아래 작은 서랍장 위에 놓인 휴지와 물티슈.

꼭 필요한 것들만 놓여 있는 협소한 공간이 묘한 불편감을 주었다.

큼. 헙. 쿨럭.

옆 방 남자가 헛기침하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이 말 도 안 되는 방음 상태는. 헤드셋만 주면 그만인 게 아니잖아, 지금.”

준수의 미간이 푹 하고 찌그러졌다.

가장 참을 수 없이 화가 나는 것은 겨우 세 가지 중에서만 선택을 해야 하는 영상의 퀄리티였다.

“여자 간호사가 골랐나.”

극한의 환경에서 훌륭한 결과를 이끌어내기엔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많은 영상들이었다.

“아, 나 되게 예민한 스타일인데. 우쒸."




준수를 혼자 들여보내고 은설은 로비에 있는 카페로 내려왔다.

헤어진 지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준수가 은설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다가와 의자 위에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애썼어요. 고생 많았지?”

“응, 장난 아니었어.”

그냥 인사처럼 한 위로의 말이었는데 준수가 진심으로 고생한 티를 내자 은설은 괜스레 심통이 났다.

‘설마 조영술보다 더 힘들었을라고.'

"내가 뭐 하고 있는지 밖에 있는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 생각하니 자괴감이 들더라."

'배에 멍이 들거나 말거나 주사기 찔러대는 것보다 설마 더 자괴감이 들었을까.'

"억지로 하려니 너무 괴로웠어요."

'호르몬제 부작용 때문에 며칠씩 휘청거리며 지내는 것보다 설마 더 괴로울 리가 있나.’

집에서도 나 모르게 가끔 하던 일 아니었냐며 빈정대려는 입술을 은설이 힘을 주어 꾹 눌렀다.

난임 치료라는 일련의 과정에 처음으로 발을 들인 준수 입장에선 이것도 충분히 힘든 일일 수 있을 터였다.

그렇게 이해하기로 마음먹는 편이 괜한 스트레스를 피하는 길이라고 은설은 생각했다.

“계란판이라도 좀 붙여 놓지. 방음이 전혀 안 되더라고. 옆 방 남자 헛기침소리가 들리더라니까. 간호사들 지나가면서 뭐라 뭐라 하는 것도 들리고."

준수의 투덜거림이 계속 이어졌다.

"집중을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헤드셋만 주면 단 가.”

“너무했네. 준수 씨처럼 예민한 스타일도 배려를 좀 해줘야지.”

“기분이 어땠는지 알아? 처음 가본 친구네 집 골방에서 몰래 야동 보면서 그거 하고 있는데 방문 밖에서 친구랑 친구네 엄마가 귀 대고 다 듣고 있는 거 같은 느낌?”

자기도 모르게 준수가 말한 장면을 상상하고 만 은설이 혀를 빼 내밀며 인상을 찌푸리는 것으로 준수에게 공감을 표했다.

“가장 최악이었던 건 뭐냐면 말이야.”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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