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저기 들어갈까?”
은설이 현준을 다시 현실로 불러들였다.
현준은 은설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본격적으로 번화가가 시작되기 직전의 골목 어귀쯤 되는 곳에 작은 동네 카페가 있는 것이 보였다.
은설이 고개를 빼들며 카페 안을 살피는 시늉을 했다.
“아주 근사한 곳은 아니지만. 왠지 맛있을 것 같아. 입간판에 ‘수제’라고 쓰여있는 메뉴가 잔뜩 쓰여 있네.”
현준이 망을 보는 작은 해적 소년처럼 손날을 눈썹 언저리에 대고 있는 은설을 귀엽게 내려다보았다.
“니 맘에 들면 나는 어디든 괜찮아.”
“실은 근사한 곳 데려가려고 검색도 해놨는데, 이렇게 된 신발을 신고 사람들 많은 곳에 가면 다들 나만 쳐다볼 것 같아서 멀리까진 못 나가겠어.”
은설이 미안한 듯 한쪽 어깨와 고개를 살짝 오른쪽 아래로 떨어뜨리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대체 그런 귀여운 몸짓은 어디서 배우는 거야?”
은설의 재롱 아닌 재롱에 현준이 너그러운 웃음을 지어 보이며 물었다.
“내가? 그랬어? 글쎄. 우리 반 애들한테 배웠나?”
민망한지 은설이 담임반 아이들을 들먹였다.
들어선 카페는 테이블이 여섯 자리 정도밖에 없는 아담한 곳이었다.
단발머리에 뿔테 안경을 쓴 마른 몸의 남자가 주인인 지, 하얀 얼굴을 들어 은설과 현준을 반갑게 맞았다.
소박하게 꾸민 카페의 테이블에는 티라이트 양초를 둘러싸고 작은 도자기 인형 동물들이 귀엽게 앉아 있었다.
창가 쪽 가장 많은 도자기 인형들이 있는 테이블로 은설이 자리를 잡았고, 은설과 현준이 앉자마자 카페 주인이 둘에게 메뉴판을 건넸다.
“오, 자리에 앉아서 주문하는 카페는 정말 오랜만인데.”
은설이 신기한 듯 메뉴판을 정독했다.
“너는 뭐 마실 거야?”
“아, 난 아메리카노.”
“괘념치 말고 비싼 거 시켜. 드립으로 시켜줄까? 여기서 원두 고르면 되네.”
은설이 장난스레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아냐. 아메리카노가 마시고 싶어.”
“오케이. 그럼 난. 음······. 아메리카노를 마시겠어!”
은설이 의외의 선택을 하자 현준이 놀란 듯 물었다.
“커피 마시게?”
“응. 한 잔 정도는 괜찮겠지. 한 달 휴가 갖기로 한 김에 제대로 일탈해야지. 그래야 쉬었단 기분이 나지 않겠어?”
주문을 하러 가려고 은설이 엉덩이를 들썩이자 주인이 달려와 ‘주문하시겠어요?’라며 고른 메뉴를 물었다.
“주문을 자리에서 해도 되나 봐요?”
“네. 계산도 후불입니다.”
은설이 아메리카노 두 잔과 케이크 두 조각을 주문했다.
“좋다. 일단은 즐기고 계산은 나중에 하는 거.”
“왜?”
“그냥, 옛날 생각도 나고. 케이크 맛있으면 추가로 더 주문해서 먹는 것도 수월하고.”
은설이 멋쩍게 웃었다.
따뜻한 카페 공기와 방금 그라인드 한 원두에서 피어오른 향이 초겨울 추위에 지친 몸들을 녹여주었다.
커피는 아주 향긋하고 고소했다.
주인이 직접 구웠다는 당근케이크와 초콜릿케이크도 투박한 외형과는 달리 흔하지 않은 달콤함이 느껴졌다.
은설은 그제야 구두굽이 부러지면서 벌어진 일련의 일들로 인해 들떠있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안정이 되고 나니 곧바로 노곤한 몸에 졸음이 밀려왔다.
입을 가리고 살짝 하품을 하는 은설에게 현준이 물었다.
“피곤하지?”
“아니, 추운데 있다가 따뜻한 데 들어와서 그런 거 같아.”
현준을 홀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듯, 은설이 손사래를 쳤다.
현준은 졸려하는 은설을 다르게 해석했다.
이제야 은설이가 '어른이 된 현준'도 편안하다 느끼는 것이라고.
14살 초여름 도서관에서 그랬던 것처럼 은설이 다시 자신의 어깨에 기대어 한숨 잠들 수 있기를 바랐다.
졸고 있는 은설의 옆자리로 옮겨 앉을 결심을 한 현준이 젖 먹던 힘 옆의 용기를 끌어올려 엉덩이를 들썩였다.
그때.
순식간에 깊은 잠으로 빠져든 은설이 스르륵 앞으로 고꾸라져 테이블에 이마를 대었다.
"······. 은설아? 자니?"
“나 잠든 거 아냐. 그냥 머리가 무거워서 테이블 위에 잠깐 올려 둔 거야.”
자기도 놀랐는지 은설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며 되감기 버튼을 누른 것처럼 다시 스르륵 일어났다.
“혹시 내 이마에 자국 났니?”
“아니. 자국이 날 만큼 오래 있지 않았잖아.”
“그래? 그럼 다행이고.”
“귀여워.”
“응?”
“귀엽다고. 알면 알수록. 중학교 때보다 더 그런 것 같아.”
“남편이 나의 이런 모습에 반했었지.”
현준이 씁쓸히 웃으며 은설에게 물었다.
“넌 남편의 어디에 반했어?”
“반한 적은 없는데.”
“응?”
“한눈에 반해서 결혼한 건 아니야. 그냥, 남편을 만날 무렵에 결혼이 하고 싶었어. 더 늦기 전에 아기를 낳고 싶었거든.”
“정말? 아기가 갖고 싶었던 게 결혼의 이유였어?”
“놀랍지? 여자들 중에서도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어. 아무래도 내가 본능이 강한 스타일인가 봐.”
은설이 쑥스럽게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20대 때 몇 번의 연애를 하긴 했는데 진심으로 사랑한단 느낌을 가졌던 적이 없었어. 불행하게도! "
"그러게. 불행하게도······. 그랬었구나."
"어쩌면 나한테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못 느끼는 뭐 그런 거 있잖아. 일찍 때가 묻어 그랬을 수도 있지만."
"무슨 때?"
"인생 별 거 없다. 사람 다 거기서 거기다. 뭐 그런 때? 철이 좀 일찍 든 애들이 종종 그래. 알잖아, 우리 집 어땠는지."
"아."
"언니도 있고, 오빠도 있고. 미리 보고 듣는 게 많아서 기대가 별로 없는 거지."
"아아. 그거 말한 거구나."
"큰 문제만 없다면 너무 늦기 전에 아무 하고라도 결혼해 버려야겠다고 결심을 했었지.”
“이런 대답을 할 줄을 몰랐는데.”
“하하, 여기까지만 들으면 얘가 도대체 남편하고 난임클리닉은 왜 다니는 건가 싶지?”
“응. 오로지 아기가 결혼의 목적이었다면 말이야."
"애초에 결혼을 왜 했냐는 얘기네."
진심을 들킨 현준이 손사래를 치며 얼른 말을 돌렸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난임이라는 게 파트너가 바뀌는 것만으로도 해결이 될 때고 있거든."
"클리닉을 다닐 게 아니라 바람을 피우란 얘긴 건가, 지금? 의사 선생님아, 정말 그런 거니?"
"아니. 그게 아니라······."
말을 할수록 이야기를 산으로 옮겨버리는 자신을 깨달은 현준이 그냥 입을 다물었다.
“오로지 아기가 갖고 싶어서 남편하고 결혼한 건 아냐. 그 정도로 본능에만 충실하진 않다고.”
은설이 살짝 볼멘소리를 했고, 돌파구를 찾은 현준이 가장 궁금했던 한 가지를 은설에게 물었다.
“그럼 왜 임준수 씨하고 결혼했어?”
과거로 돌아간 은설의 두 눈이 아득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