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강원도 속초 여행을 다녀와서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주말마다 서울을 벗어나 자연으로 가는 것을 좋아하셨다. 초등학생이던 나는, 영문도 모르고 멍하니 안전벨트를 하고 멀미에 시달렸다. 담배를 피우며 달리던 아버지의 연기와 조용필의 노래들이 여행길 내내 흩어졌다.
‘엄마야! 나는 왜?’
‘먹이를 찾아 어슬렁 거리는 하이에나 같이…’
나는 차에 딸려 가는 동안 유리창을 통해 전신주에 늘어진 전깃줄을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밟는 엑셀의 강도만큼 빠르게 차창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산등성이와 전선의 굴곡이 노래와 제법 쿵짝이 잘 맞을 때도 있었다. 다소 조용하게 전선을 바라보며 즐거워했다.
아마 나처럼 텅 빈 그림을 보며 아빠와 엄마와 외할머니는 주중 동안 쌓였던 복잡한 감정들을 여행을 하며 털어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어른들의 홀가분한 분위기에 맞춰서 언니와 나는 차에서 아빠의 요구에 따라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지만, 어쩐지 시켜서 하는 노래는 그다지 흥이 나지 않았다. 원래도 노래하기를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버지는 시끄러운 것을 못 견뎌하는 분이셨다.
아버지가 깨끗하게 닦아놓은 차창 밖을 바라봤다. 궁금했다.
‘’ 여긴 어디일까?‘’
물어봐도 아버지는 딱히 알려주지 않았다. 말해주신 적도 있었던 것 같지만 알아듣기 힘든 설명이었던 것 같다. 심지어 아버지는 엄마에게도, 할머니에게도 행선지를 알려주지 않고 가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내비게이션도 없어서. 아버지가 기억하는 어떤 장소에 우리를 데려가고 싶었고, 우리는 아버지가 아는 그 공간을 함께 블라인드 이벤트처럼 따라갔다. 기대감보다는 1시간, 2시간이 지날수록 지루하고 졸렸다. 가도 가도 끝이 나질 않으며 힘들어서 점점 몸살을 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휴게소에 들어가서 뜨끈한 어묵이나 호두과자를 사주셨다. 얼마나 맛있었는지.
그렇게 반강제적으로 부모님과 블라인드 여행을 다녔으니 내가 어디를 왜, 언제 어떻게 갔는지 구체적인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곳이 어디인지 알았다면, 그곳에 지리수업을 들을 때 좀 더 유리했을까. 내가 방문한 곳이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그 당시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말이 많은 분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자식들을 데리고 매일 주말마다 본인이 아는 좋은 곳에 데려다 두고 만족스럽게 저만치 떨어져 않아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셨다.
그래서 오히려 아버지가 데려갔던 계곡은 내 기억 속에 안개가 자욱한 무릉도원 같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지나가면서 차속에서 보았던 농장 안에 있던 귀여운 돼지들의 도르르 말린 꼬리를 보고 감탄했던 기억. 지천에 피어있던 꽃들과 나무들을 손가락으로 지나가며 알려주던 아버지. 산책을 하며 열매를 따서 먹여주셨다. 그 싱싱한 열매가 입속에 들어가면 시원하고 달았다. 내 영원한 기억의 공간에 저장된 것이다.
내가 부모님과 했던 여행의 기억들을, 내가 어른이 되어서 아이들과 함께 다니면서 다시 되풀이하고 있다. 그때는 아이였다면 이번에는 어른이 되어서 나는 나의 아이들을 데리고 떠난다. 달라진 것은 내가 어릴 때 아버지가 알려주지 않아서 아쉬웠던 여행지에 대한 역사나 그곳의 상황들, 그곳에서 어떤 음식을 먹고 싶은지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정한다는 것이다.
올해 3월. 일에 치며 온몸이 아프고 갑갑한 기분이 들어서 일정이 없던 주말 속초의 숙소를 잡았다. 자주 가던 곳이라 그곳에서 묵었던 적이 있던 방을 11만 원에 잡았다. 숙소는 딱 너무 더러워서 자괴감이 들지 않는 수준이면 충분하다. 동해 바닷가 근처 낡은 호텔은 걸어서 바닷가를 갈 수는 없지만 우리가 자주 가는 식당과 바다가 근거리에 위치해서 이동하며 시간을 길에 버리지 않을 수 있어서 좋다.
초여름의 속초는 적당히 덥고 시원했다. 그 바다에서 아이들과 미리 계획을 세웠다.
’‘모래사장에서 우리는 야구 캐치볼을 하고 모래놀이를 할 거야. 작년에 갔던 들깨막국수집에 다시 아침을 먹을 거야.’‘
‘’ 저녁에 장을 볼 때는 함께 뭘 먹고 싶은지 묻는다.‘’
중간중간 여행지의 일정을 함께 조율한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기분과 컨디션을 이야기하고, 엄마 아빠에게 쉬거나 뭔가를 먹자로 요구한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굳이 떼를 부린다거나 짜증을 내는 일은 좀체 생기지 않아서 좋다.
여행을 떠나보기 전에는 이렇게 여행을 가면 돈이 얼마가 드는지 영 감이 잡히지 않아서 쓸 때마다 적었다. 식비 얼마, 차비 얼마, 4인가족이 1박 2일을 떠나 숙박비 11만 원, 식비는 저녁, 아침, 점심. 25-30만 원, 기름값까지 하면 50만 원 내외다. 계절에 한두 번 이렇게 떠나며… 이런 시간을 통해 때때로 작은 일로 다투었던 남편과도 마음이 누그러지고 긴장감을 풀기도 한다. 여행을 통해 우리가 서로 갈등하며 힘들었던 일이 참 별거 아닌 작은 일이었다는 사실과, 긴 여행 끝에 집에 돌아와서 평범했던 나의 일상 역시 친근하고 소중했다는 것은 다시 한번 감각한다. 이번 속초 여행 역시 그랬다.
여행을 어릴 때부터 동경하기는 했지만 20대까지 나는 여행을 떠나보지 못했다. 부모님께서 외박을 반대하셨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내가 직접 선택한 여행을 떠나본 것은 27살 때 신혼여행이 처음이었다. 마침내 품 안의 자식에서 벗어나 부모님의 그늘에 나오는 날 처음으로 여행을 떠나며 비행기에 올랐다. 신부화장과 산발한 머리 그대로, 비행기 시간을 잘못 잡는 바람에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김포공항으로 달려갔다.
하와이에 도착은 했지만 도대체 여행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패키지여행을 끊어서 낯 모르는 가이드의 차에 딸려서 멍하니 다니며 먹으라는 거 먹고, 포즈 취하라는 대로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심지어 가이드는 남편이 사진 찍기 싫다는 데도 역정을 내면서 나를 업고 훈훈한 사진을 찍기를 강요하기도 했다. 지나고 나면 모두 웃음이 나는 일이다. 그때 9박 10일의 여행 중 단 이틀만 패키지를 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한다. 나머지 시간은 자유여행으로 와이키키해변을 그저 거닐고, 와이켈레 아웃렛에서 쇼핑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밌었다. 누가 시키는 대로, 가라는 대로 여행을 가는 일은 정말이지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재미없는 일이었다.
유랑을 떠나는 것처럼, 여행지에서 우연히 발견한 식당에서 그 지역의 특산물을 먹어보거나 해변에 우연히 축제가 열려서 가수들의 버스킹을 듣게 되는 날이면 우리는 쾌재를 불렀다. 비싼 돈을 들이지 않아도 우리에게 충분한 여행법을 발견한 것이다. 따뜻한 바다, 시원한 파도, 맨발로 걷는 부드러운 모래사장, 버스킹을 하는 가수, 기분 좋게 배부르게 해주는 맛집. 이 조합이면 충분하다.
수없이 많은 허탕 끝에 발견한 나를 위한 여행의 꿀조합을 통해, 나는 서울살이가 헛헛하고 지칠 때마다 속초로 떠난다. 내가 알아놓은 행복한 여행법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촘촘하게 짜놓아도 그 여행길에 날씨, 새로운 그 동네의 이벤트, 공사, 자연재해 등으로 매번 그 바다에는 다른 일들이 벌어지지만, 그런 변수마저도 설렘이 된다. 내 인생이라는 여행길도 이렇게 계속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며 행복한 여정을 완수할 수 있기를. 사소하지만 내겐 소중한 일들을 차곡차곡 발견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