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을 적어 보낸다.

에세이를 부탁해 10월 주제 '이별'

by 심가연


어릴 때 읽었던 소설에서 점이 되어 사라졌다는 문장이 늘 잊히지 않는다. 초등학교 때 장성에 사는 시골 할머니 집에 갔다가 돌아올 때의 일이었다. 차가 출발하고 시골 할머니가 손을 흔드는데 점점 멀어지고 작아지더니 점이 되어 사라졌다. 그 순간, 아 그 문장이 이 장면을 말한 거였구나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의 창문을 보면서 그 문장의 실제로 경험해볼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 하얀 머리에 은색 비녀로 쪽을 찐 시골할머니는 정말로 점이 되어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때때로 시골할머니를 생각하면 차에서 보았던 그 때가 떠오른다. 그 때가 바로 내기 글로 배운 것을 실제로 경험하는 첫 순간이었다.


시골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거동을 잘하셨지만 며칠을 앓고 힘들어하시다가 돌아가셨다. 노상 혼자 사시던 할머니의 집에 다행히 그때는 임종을 봐줄 고모가 있었다. 그 고모도 올해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떠났다. 어린 시절에는 소설 속 주인공의 삶을 통해 결혼, 출산, 육아, 죽음과 같은 정보들을 글로 읽고 머리로 이해한 뒤에 그것을 알았다고 자만했었다. 허나 실제로 그 일을 내 몸으로 경험해보았을때 이론으로 아는 것과 실제로 아이를 낳는 것을 경험하는 일은 건널 수 없는 격차가 있었다.


그래서 백문이불여일견이라 했나보다.


지금의 나는 늙는다는 것에 대해서 상상하는 시간이 늘고 있다. 막연히 이럴 것이라고 추측해보지만 그것에 대해 완벽하게 알 수가 없다. 노인이 된다는 것, 완전히 늙는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나의 외할머니는 팔순이 넘고는 이렇게 말하셨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라고. 그냥 산다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외할머니는 그 안에서 작은 재미들은 찾아낸다. 동네 친구들을 사귀며 대낮에는 동네 공원에 모여 담소를 나누고 노인정에 모여 고스톱을 하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다. 할머니의 노년기를 바라보며, 나는 어떤 노인이 되고 싶은지 계획을 세워보기도 한다.


철저한 약자로 살아가야 했던 어린 시절에는 어른이 되어 얼른 완성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나이가 들면 분명히 더 성숙하고 완벽해질 거라고 믿었다. 막상 삼십대가 되자. 이제는 철은 든 것 같은데 내가 뭔가 알면 알수록 몸이 약해질 거라는 슬픈 예감이 든다.


사실 돌이켜보면 청춘일 때만큼 더 완벽했던 적은 없었다. 나는 이십 대들을 보고 그렇게 생각하지만, 얼마 전에 만난 삼촌과 외숙모는 우리 가족을 보며 지금이 좋을 때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자라면 더 이상 같이 놀러 가자고 해도 가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고. 삼촌과 외숙모의 얼굴이 아련해졌다. 두 분께는 지금의 내가 청춘일 것이다.


뒤돌아보면, 내 과거는 실패로 얼룩져있지만 나름 치열했고 찌질한 채로 눈물겨웠다. 그 자체로 최선을 다했고 젊었기에 아름다웠던 것 같다. 그 때도 알았다. 지금이 청춘이라는 것을.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지금이 청춘이라는 마음, 그 렌즈를 그대로 지금 가져와서 내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들을 온전히 바라보는 시간을 놓치지 말아야겠다.

하루종일 바쁘게 살다보면 밤이 되면 오늘 뭘 했는지 제대로 기억나는 것이 하나도 없을 때가 있다. 내가 도대체 뭘 하고 사는 걸까 싶다. 그럴 때마다 다짐한다. 후회 없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바로 그 자리에서 사랑한다고 말해야 겠다고 말이다. 사랑받고 싶었는데 남편이 표현해주지 않을 때 더 이상 밥을 달라고 화내는 아이가 되기보다는, 한 발짝 다가가고 싶다. 아직 세상에 서툰 내 아이에게도 실패했을 때 주눅 들지 않고 용기를 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이런 사소한 마음을 지키는 것은 참 어렵다. 자주 잊어버리고 무심해져서 일상에 쫓겨 살아가기 바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안 바쁘면 나아질까 그렇지도 않다. 자꾸 다짐하는 수밖에.


나는 글을 쓰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글은 나의 종교이자 전부이지만 그것이 내 삶보다 절대로 커질 수 없다. 현실에서 해야할 육아와 밥벌이 때문이기도 하고, 애초에 글은 삶을 위해 존재하는 말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커지고 싶어도 내 그릇만큼 겨우 따라올 뿐이다. 글쓰기는 결국 나의 과거를 쫓아오며 기록될 뿐이다. 내가 겪은 삶을 적어 내려 가면서 비춘다. 때로는 졸렬하게 때로는 우습게, 내가 겪은 사건을 재해석하고 변주한다 그것을 읽을 타인에게 함께 당신도 이렇지 않았나요 물으며 이야기를 만들 뿐이다.


나의 글을 전부 나의 이야기이다. 내가 겪은 어떤 일과 잘 이별하고 싶어서, 그것을 아름답게 매듭지어 작품으로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면 유부녀인 지금은 지나간 짝사랑의 추억 같은 것들이 되겠다. 그 이야기들의 끝. 엔딩은 나에게 반짝이는 선물처럼. 다음 삶으로 갈 수 있게 해 준다. 잘 사랑했다. 미저리를 떨었으니 더이상 후회없이 보내주자 싶은 그 때 그 시절 바보 같은 내 모습을 묘사하는 일은 참 재미가 있다.


때로는 글을 쓰기 위해 대단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끌어와 이야기를 쓰기도 하지만, 그런 이야기조차 손끝에서 나 스스로 생각해보지 않은 불씨를 가지고 불을 지핀다. 사실은 내가 두려웠구나 불안해서 그랬구나하며 아주 당연한 심정들을 거리를 두고 바라본다. 그러다 그 불을 끄기 위해서 마음 안쪽을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린다. 그렇게 다 쓰고 나면 이별이다. 물론 수정이 남아있지만 그 이야기에 사로잡혀있던 그 순간과는 완전히 작별하게 된다.


나의 글들은 어디로 갈까. 지금까지는 언제나 내가 쓴 글들의 대부분이 어딘가로 휘발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나는 멈추지 않고 쓰고 있다. 그 글들은 인터넷 세계에서 둥둥 떠 있다가 다른 사람이 쓴 브런치로 순식간에 다음 페이지로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매일매일 이 순간을 적으며 다음 페이지로 밀려난다. 그래서 나는 안간힘을 쓰며 그 글을 매만져 이제는 책으로 만들고 있다. 더 큰 매듭을 만들어서, 더더 큰 매듭을 만들어서 언젠가 비록 점이 되어 사라지더라도 당신에게 하나의 점으로 기억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