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편을 위해 일요일마다 교회를 가지만, 외할머니는 새해가 되면 사주팔자로 신수를 보신다. 교회를 나가서도 다소 애매하고, 점을 보러 간 적도 없는 나는... 종교적인 주관도 없고 왔다 갔다 하고 있다. 두 가지의 종교적 관점을 전해 들으며 아직까지 양쪽의 은근한 영향을 받고 있는 셈이다. 종교는 말로 사람이 가진 욕망과 두려움을 건드리는 면이 있다.
나는 토끼띠로 올해 흑토끼인만큼 할머니가 좋은 신수라고 뒤뜸을 받았다. 그 종이에는 좋은 기회들이 많이 온다고 쓰여 있었다. 그런 신수를 듣자 용기를 얻어서 더욱 과감하게 여러 가지 도전을 해볼 수 있었다. 그런 말들은 달콤하고도 자극적이어서, 깃발을 쫓아 올해 끝없이 달렸다. 그 말 덕분에 실제로 좋은 기회를 잡기도 했다. 다만 정신없이 일을 해낸 것 이외에는 올해 제대로 여행을 간다거나 하는 다른 기억들이 나지 않을 정도로 바쁘게 하루하루를 지냈던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좋은 글을 쓰는 일인데, 좋은 프로젝트들을 많이 하며 다소 주객전도된 부분도 있었다. 올해에 마음에 드는 글이나 작품을 쓰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것이 가장 아쉽고 남은 연말동안 해내고 싶은 일이다.
이제는 멈추어 글을 쓸 시간. 어차피 여름이 지나면, 나는 바쁘게 돌아다니기를 관두는 편이다. 이유는... 체질적으로 몸의 온도가 낮은 편이라서 여름에는 오히려 기운이 나고, 날씨가 서늘해지면 체질상 기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겨울에 많은 일을 하면 반드시 앓아누웠던 기억이 있다.
이제는 쉬어야 돼. 이제는 정말 쉬어야 돼.
그런 마음속의 알람들이 계속 울려서 천천히 속도를 멈췄다. 그런 마음을 먹는데 작은 도움을 준 문장이 있는데 바로 '조용함을 듣는 일'이라는 문장이었다. 돌멩이수프를 운영하는 애리언니는 내가 책을 주문할 때마다 작은 엽서에 편지를 써준다. 그 책 꾸러미에는 '조용함을 듣는 일'이라는 엽서가 있었다. 빠르게 일을 하다가 속초 여행을 갔을 때 그 엽서 꾸러미를 뜯어서 보면서... 나는 잠시 그 엽서의 풍경들을 바라보았다. 엽서에는 내가 차로 달려서 마주한 속초의 잔잔한 파도가 그려져 있었다.
그 하나의 문장은 내게 묻고 있었다.
아주 조용한 가운데,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본 적이 얼마나 되었냐고.
그간 빠르게 바쁘게 달려온 것은 아는 지인이 건넨 엽서라, 그 문장이.. 언니가 내게 무엇을 권하는지 알 것 같았다.
쉼.
나는 내 마음을 소리들을 좀 더 닦아서... 쉬어야 한다는 말 대신 조용함을 듣는다는 행동을 반복해서 곱씹어 보았다. 매일 일하면서 듣던 유튜브를 끄고, 심심하면 틀던 재즈음악도 끄고... 내 주변에 있는 작은 소음들을 들어보기로 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동네 골목길에서 사람들이 문을 여닫는 소리, 길가에 걸어 다니는 사람들 발소리와 바람을 가르며 지나가는 차소리. 내가 두드리는 키보드 소리, 컴퓨터가 돌아가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고 있다.
조용함을 듣다 보면 뱃속이 가라앉고, 머리가 청소되면서 내가 글 쓰면서 하고 싶었던 말을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흑토끼가 되도록 달려온 올해를 돌아보며, 이제는 남은 일들은 아주 조용함 속에서 마무리하고 싶다.
조용함을 듣는 일을 통해, 충분한 쉼을 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