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인 작가의 ‘만약은 없다’ 에세이 중 인상적이었던 문장이 있다.
“언젠가부터 내가 사는 집에는 빛 한 톨 들어오지 않는 암실이 갖춰져야 했다.”
응급의학과 의사로 일하는 남궁인 작가는 이사할 때마다 완벽한 암실이 되는 방을 꼭 만들어야 한다. 그에게는 암실이 필요한 것이다. 매일 죽음을 목격하는 응급실에서 벗어나 취하는 휴식의 공간이다. 아직은 살아있지만 언제나 죽음을 목전에서 봐야 하는 삶이라면 하루하루가 얼마나 생생하고 날카로워질까. 그는 그가 본 죽음을 공간의 어둠으로 치유하려는 걸까. 어둠은 어떻게 그에게는 휴식이 될 수 있을까. 차라리 어둠 속에서 그는 무언가를 지우고 있는 게 아닐까. 남궁인 의사가 응급실에서 본 처참한 죽음을 마주한 뒤, 그는 한참을 어두운 방 안에 앉아있어야 했다고 했다.
그 문장을 아주 오래도록 곱씹어보았다. 그의 마음을 상상해 보았다. 나는 완벽한 어둠 속에서 잠을 자본 적이 없다. 가로등불이 밝은 도시에서 자랐고, 방은 늘 가족들과 함께 썼으며, 아이들이 태어나고 나서는 혹시나 아이들을 밟을까 봐 간접조명을 켜고 생활했다.
지금도 작은 스탠드 불빛에 의지하여, 그 고요한 어둠 속에 잠긴 사람을 상상해 본다. 그의 삶은 매우 노곤할 것이다. 그것을 괜스레 염려하고, 그 치열함을 질투해보기도 한다. 그 가 비극을 목격하고 고통스러워하며 적어 내려 간 문장이 알림이 오면 달려가 읽어 내려가며 조여진 심장을 붙잡기도 했다. 고통스러워서 아름다울 수도 있다니.
암실.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면. 그곳은 아늑할까? 아니면 블랙홀처럼 나를 잡아먹을까. 나는 아주 작은 빛 아래 떨며 완전한 어둠을 상상해본다. 암실. 그 안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면 다시 내 안의 무언가가 살아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