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더 가난해진다면 어떻게 하지?

by 심가연

우리 집은 25평에 마당이 있는 1층 주택이다.

5년 전 이전 주인이 개조한 데로 집 중심에 있는 마당에서 문을 열고, 각자의 집으로 들어가야 하는 문이 3개가 있다. 예전에 지어진 집이라 월세를 받기 좋게 쪼개어 개별난방과 각종 시설이 집 안에 구비되어있다. 이 낡은 집, 작은 평수에 다 들어가려니 비좁고 특이한 구조가 될 수밖에 없다.

남편과 나는 이 주택에서 살림을 시작하며, 그중 가장 넓은 곳에 이 집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과한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들어와 살고, 나머지 한 방은 창고, 한 방은 월세를 받으며 5년을 살았다. 솔직히 이 집이 싫을 때도 많았다. 원래도 겁이 많은데 우리 집은 골목길 막다른 길에 있기 때문에, 밤이 되면 남편한테 전화 걸면서 달려서 집으로 뛰어들어왔다. 혼자 잘 때는 악몽에 시달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살아보니 골목길이라 동네 사람 얼굴을 다 외우고 나니 무서울 것도 없었다.

월세는 적당한 사람이 살겠다고 오면 받고, 내키지 않으면 그저 기다렸다. 집에서 생활하는 일이 많은 집순이에다가 아이를 키우는 주부라서 불편한 사람이 오면 정말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특이한 구조의 집에서 살림을 시작해서 처음에는 참 불편하고 때론 불평했지만, 조금씩 1층 주택에 마당이 있는 나의 작은 집이 좋아지고 있었다. 나는 익숙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다. 집 근처에 공영주차장까지 들어와서 골칫거리였던 주차장까지 해결되자 남편과 나는 더더욱 굳이 이사를 서두르지 말자고 헤죽거렸다.

우리 집 셋방은 5년 전과 가격이 같아 늘 올리지 않았다. 아마도 동네에서 제일 쌀 것 같다. 셋방에 온 첫 번째 손님은 D대기업에 다니던 기러기 아빠였다. 지방에서 올라와 아내에게 생활비를 붙여주고, 절약하고 살고 싶어서 우리 집을 택한 것 같았다. 아이와 아내분이 와서 오손도손 이사를 했는데, 어느 날부터는 새벽마다 몰래 내연녀를 데려왔다. 방음이 되지 않는 옆방에서 그들의 뒤척거림을 듣는 시간이 괴로웠다. 아내에게 알려줘야하나 말아야하나, 나는 이후 그분의 아내를 보지 못했을뿐만 아니라, 마주쳤다고햐도 당연히 이 사실을 전할 용기가 없었을 것이다.


두 번째 손님은 칠순이 넘은 듯한 할머니였다. 할머니의 딸이 집을 보러 와서는 억수 같은 비를 맞으며 엄마가 살 집을 구하러 왔다고 우리 집에서 꼭 살고 싶다고 했었다. 6개월쯤 사시다가 친해지고 정들 무렵, 난방비가 많이 나와서일까, 생활고 때문이었을까? 동네에 사는 언니네 집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그렇게 1월부터 방이 비어 있었다.

오늘도 작년 그때 할머니 딸이 왔을 때처럼 소나기가 쏟아붓는 날이었다. 첫째 아들 평화가 어릴 때라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문득 전화 온 젊은 목소리의 여자가 동생이 살 집을 구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늦은 밤에 폭풍우 소리도 무섭고, 문득 걸려온 전화도 무서웠다. 심장이 떨려서 두근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겁을 먹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길 끝에 인상이 푸근한 두 자매가 우산을 쓰고 우리 집을 찾으며 골목길을 헤매고 있었다.

앳되 보이는 이십 대 동생과 조금 나이차가 있어 보이는 언니였다.
"비는 세나요?" "다리가 많은 벌레가 사나요?" "보증금은 월세 다 내면 꼭 주시죠?" "꼭 주셔야 돼요."라는 질문들이 쏟아졌다. 나는 최대한 솔직하게 답을 해주었고, 우리 집을 나간 후 이십 분 후 내일 당장 계약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 친구가 마음에 들어서 너무 기뻤다. 옆집에 살아도 서로 불편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부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산층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종종 가난하다고도 생각했었다. 한데 셋방을 받고서 그 방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게 될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 소나기가 내리는 날, 휴가를 받아서 꼭 집을 구해야 해서 밤늦게까지 집을 보러 다니는 건 얼마나 고되고 힘들까.

다른 사람을 보면서 위안을 받거나 작아지는 것 모두 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사람은 그렇게 생겨먹은 것 같다. 우리 집에 살게 된 이십 대 여자는 미용사이지만 아직 명함이 없다고 했다. 아직 직장에 다니면서 일을 배우는 중이라고 했다. 결국 자매는 다음날 계약하지 않았다. 내가 너무 솔직하게 말했나 보다.


그 방은 4년 내내 비어있다가 지금은 아이들 놀이방이 되었고, 나의 작업실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우리 집에 월세로 누군가 살았다는 것이 대단히 불편한 일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 번씩 그 시절에 같이 살았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나의 불편보다 그분들의 불편이 더 컸을 것이다. 사업이 망해서 나의 월세방에 올 수밖에 없던 할머니는 우울증에 시달렸다. 작은 월세 방에 들어가지 않던 물건을 버리시곤 마당에 키우던 꽃을 하염없이 바라보셨다. 할머니를 지켜보면서 나이가 들어서 큰 실패를 겪으면 그야말로 희망이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도 언제든 나이가 들어서 갑자기 그런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상상을 해본다. 그럴 때마다 이상한 생각이지만 내가 지금 작은 불편을 감수해본 경험이 나중에 더 힘든 일이 닥쳤을 때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겨낼 '깡'을 만들어줄 거라고 믿는다.


"내가 이것도 해봤는데, 뭐가 무서워서! "

이렇게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지지 않고 빠당빠당하고 야망 넘치는 할머니가 되어야겠다.